조휴일: My Feet Don’t Touch the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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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일이라는 뮤지션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약 두가지의 반응이 섞여서 (하지만 모두 격렬하게) 튀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드디어..!” 하는, 현대 주류 영미팝의 감성을 한국 인디씬에 그대로 ‘이식’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감탄사였고 다른 하나는 “아니 이 친구는 대체..?” 하는, 조휴일이라는 뮤지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악적 아우라에 대한 찬사였다. 그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훅과 창의적인 가사는 뮤지션 개인의 이미지, 혹은 입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아이돌 팬덤과 같은 열렬한 지지층을 생성해낼 수 있었다. 이 긴 제목을 가진 앨범은 조휴일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 뉴저지에 있는 집에서 만든 데모 테잎에 수록되어 있던 노래들을 편집한 것이다. 3분이 넘지 않는 20개의 곡들이 별다른 순서에 대한 고려가 없어보이는 정렬 방법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정규 앨범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조휴일이라는 뮤지션이 과연 어떤 배경을 거쳐 한국에 당도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좋은 사료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매한 두장의 정규앨범에서 느껴졌던, 번뜩이는 재치와 재능이 엿보이는 곡들도 있고, 그저 한번 시험삼아 만들어 본 듯한 곡들도 있다. 뮤지션 개인에 대한 관심도가 이처럼 높았던 적도 참 드문 것 같은데, 이 앨범은 그러한 적폭적인 관심과 애정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 혹은 해설서 정도쯤 되는 것 같다.

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사실 난 정태춘과 박은옥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세대가 아닐 뿐더러, 그들을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연배도 아니었다. 그들이 이미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뒤에서야 비로소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나다. 그들이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 가 운동권 선배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중에 글로 배워야 했던 사람이 나다. 그래서 정태춘과 박은옥이 10년만에 발표한 이 새 음반을 선뜻 구입하기 어려웠다. 내가 들을 자격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단순히 한번 들어보자, 라는 생각에서 구입한 음반인데 뒷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정태춘의 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좋았다. 아니 아름다웠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 속지에 있는 정태춘의 글을 인용해본다.

지난 30여 년을 함께해 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준 감사한 벗들을 생각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 

‘강이 그리워’ 는 가을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네에 다녀와서 썼고, ‘섬진강 박 시인’ 은 또 그때 거기 이웃의 박남준 시인으로부터 받은 그의 신간 시집을 읽고 거기서 몇 구절을 차용하며 썼다. …… 
……..’서울역 이씨’는 어느 겨울 서울역에서 죽은, 한 노숙자를 생각하며 썼다. ‘바다로 가는 시내 버스’는 온전히 박은옥을 위한 노래이며 ‘눈 먼 사내의 환원은’은…. 
……’날자, 오리배…’는 오늘도 이 지구위를 떠도는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박민규의 어느 단편소설집 우화를 확장하여 썼다. ……

이러한 선한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만든 음악이 아름답지 않을리가 없다. 때로는 낮게 읇조리며, 때로는 아예 멜로디를 포기하고 시를 낭송하는 느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태춘의 목소리는 화려하지 않지만 굵고 깊다. 블라인드를 걷어 창 밖이 활짝 보이게 하고 씨디를 걸어 음악을 듣다 보면 가슴 한켠이 허 해지면서 동시에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나와 같은 세대의 그 어떤 젊은 뮤지션들도 흉내내지 못할, 인생에의 깊이에서 오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래서 감사히 듣게 된다.

9와 숫자들: 유예

9와 숫자들의 최신작인 <유예> 는 8곡, 37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 아주 간결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처럼 “러닝타임이 40분밖에 안하는데 벌써 지루하다 싶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들은 영리하고, 영리한 만큼 음반의 구성도 충분히 재미있게 꾸며 놓았다. 지루할 틈은 없다. 전작이 가지고 있었던 미덕이기도 하다. 약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전작의 댄서블한 느낌이 많이 옅어진 반면 조금 더 복고적인 한국 록음악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느낌이 든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과거의 정서를 되살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노선이긴 하지만, 리듬이 넘실거리는 흥겨운 팝에서 조금 더 록의 본연의 색깔에 가까운 음악으로 레퍼런스를 변화시킨 것이다. 전작이 벗꽃이 흩날리는 봄의 음악이라면, 신작은 낙엽이 지고 첫눈이 올 때쯤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초겨울의 음악같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읭?” 하면서 생각보다 별로라는 느낌이 든 것이 사실이지만 계속 듣다 보니 결코 나쁘지 않은 음악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래 들을 수록 진한 맛이 우려져 나오는 것이 9와 숫자들 음악의 또다른 미덕이라고 한다면, 이 앨범 역시 같은 맛과 향을 가져다 줄 것이다.

Various Artists: 이야기해주세요

종군위안부 문제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나 알고 있는 이슈다. 모두가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고, 또 타인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동정하고 지지하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인부터 초등학생까지, 그 누구도 진심을 다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이제 그 할머니들은 몇십분 남짓 생존해 있을 뿐이다. 만약 그들이 전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들 외에는. 아니 이 할머니들조차 그들이 원하는 “승리” 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실에 대한 책임자의 인정 정도일 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수의 희생자들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독립 여성 음악인들이 모여서 음반을 만들었다. 부클릿을 보면 대부분 한번쯤 들어본, 혹은 최소한 한장의 음반은 가지고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을 만들었다. 음반은 세곡을 제외한 전곡이 이 음반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로 채워져 있다.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기존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가사쪽에서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쪽을 택한 듯 보인다. 아마도 할머니들은 이들의 음악을 평생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들의 음반은 할머니들보고 들어보세요, 하고 선물해 드리는 의미라기 보다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건다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러한 방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사려깊고 시적인 가사를 익숙한 멜로디에 얹어서 어렵지 않게 전달한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이 가진 목적성과 의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상은과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이 동시에 들어 있는 앨범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곡들이 많이 들어 있는 앨범이고 (즉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기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몇몇 뮤지션들의 새로운 시도는 두 귀를 번쩍 뜨이게 하기도 한다. 앨범의 여는 한희정의 “이 노래를 부탁해” 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오지은은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성취해 내고 있다. 시와는 아마도 이러한 목적성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여성 음악인일 것이다. 자신의 곡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네” 와 투명과 협연한 “Way to the Light” 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황보령의 “비단” 은 혹시나 여성 뮤지션들만이 모여 있어서 힘에서 달리는게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단언하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보여준다. 현재 한국 독립 음악인들중 황보령보다 더 밀도있는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남상아의 “놀이터” 와 지현의 “나와 소녀들과 할머니들에게” 역시 주의깊게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룩앤리슨: Ready to Go!!

이 앨범은 굉장히 straight 하다. 그리고 straightforward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달리고 그 와중에 멈칫거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하다. 이 앨범에서 취하고자 하는 목적 의식은 매우 단순하고, 또 그것을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로 달려 쟁취해 버린다. 딱히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 정리들만을 사용해 아주 간단하지만 명쾌한 논리로 6페이지 정도의 논문을 써 내려가는 느낌. 그 안에서 흠잡을 구석은 전혀 없다. 음악을 듣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 목적인 즐거움을 달성하고 있는데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그 ‘즐거움’ 이 문자 그대로의 즐거움이라면, 오감을 만족시키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락큰롤 본연의 즐거움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장르에의 종속성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할 일이다. 이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는 전세계에 오천팀 정도 있을 것이고, 다시 말하면 굳이 룩앤리슨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언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놀랍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팝펑크 형태의 노래들로 앨범을 채우고 있는데 2012년에 등장한 진정한 펑크인 무키무키만만수와 비교해 보면 더욱 도드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걱정스러운 부분은 과연 이들이 이 앨범에서 이룬 기분 좋은 성취가 과연 뮤지션의 공로로 오롯이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 프로듀서인 하세가와 요헤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역시 프로듀서가 젊은 뮤지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내고 있다. 룩앤리슨이 다음 앨범에서도 여전히 생기발랄한, lively 한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이들은 마이 캐미컬 로맨스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새 앨범이 오랜만에 나왔다. EP <Nince Days or a Million> 이 나온 때가 2009년, 정규 앨범만으로 치면 8년만이다. 새 앨범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는 메시지보다는 음악의 형식과 문법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고민하는 듯 보인다. 굳이 단어를 끄집어내자면 반복, 점층, 대구 정도? 앨범은 의미없는 단어들을 무한 반복하며 가장 미니멀한 형태의 음악적 뼈대만을 남긴 “Smoke Hot Coffee Refill” 으로 시작해 역시 무의미한 4음절의 단어들을 단 한번의 반복없이 끊임없이 생성해 내는 “끝말잇기” 로 마무리되는데 이 마지막 곡은 소닉 유스를 연상시키는 노이즈의 향연이다. 앨범 중간 중간에 3호선 버터플라이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몇 킬링 넘버들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앨범의 테마 자체를 바꾸어 버릴 정도는 아니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한 타이틀곡인 것 같고. 하나의 테마로 밀도있는 앨범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요즘 트렌드”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부분 4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을 가지는 곡들 열세개를 우겨 넣은 것을 보면 멤버들이 이 앨범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굳이 뮤지션들의 수준이나 클래스를 나누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가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고 또 결코 듣는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혹은 믿음을 주는 뮤지션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 앨범이 가지는 한계 혹은 아쉬운 점 역시 이런 접근 방식에서 찾고 싶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은 흔들리는 듯 희미한 듯, 미열과 함께하는 약한 감기처럼 불안한 정서를 정성스럽게 디자인된 사운드 위에 가감없이 담아내는 데에 있었다. 이들이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것이 겉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메시지가 실종된다. 실종된 메시지와 함께 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는 아무리 흥미로운 컨셉으로 가득찬 앨범이라고 해도 가슴을 후려치는 한방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앨범 중간 중간에 진짜 좋은 곡들이 많다. 영화 <그녀에게> 에 수록되어 유명해진 “Cucurucucu Paloma” 의 리메이크 버전에는 남상아의 매력이 물씬 풍겨 나오고, “너와나” 에서는 오랜만에 힘을 잔뜩 분출해 내는 스트레이트한 록넘버를 맛볼 수 있다. “꿈속으로” 도 너무 좋다.

이승열: Why We Fail

이번에 이승열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했다. 유엔미 블루 이후 꽤 오랜 기간동안 방준석과 이승열이라는 이름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 꽤 확고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 정도만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이승열의 음악을 정식으로 음반을 구입해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의 목소리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그리고 그는 단지 자신의 목소리에 나이브하게 의존하는 송라이팅을 하지 않고 아주 많은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순도 높은 완성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인 “솔직히” 는 기독교 신약 성서에 나오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 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중 다섯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 잠들어 버리고 다섯 처녀는 끝까지 눈을 뜨고 기다려 신랑을 맞이한다. 천국은 그렇게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그런 비유다. “솔직히” 가 놀라운 점은 이승열이 가스펠의 코드 진행 구조를 따오면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분하게 시작해서 후렴구에서 하이톤과 로우톤의 보컬로 극단적으로 갈라지며 노이즈를 폭발시킨다. 들끓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졸았을까 하늘엔 섬광, 도적의 피리소리 점점 커질 때, 나는 무릎을 꿇어 엎드려, 이 세상은 다 타올라 버리네” 라는 후렴구 가사의 상승 작용을 극대화시킨다. 딱 두번 반복되는 후렴구는 “예정론? 무척 어렵지, 그만 가봐야 해, 잘 지내길” 이라는 두번째 버스로 인해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즉 반드시 깨어 기다려야만 가치있는 것을 얻을 것이라는 성경의 모티브를 뒤틀어 마지막 후렴구 직전에 등장하는 가사 “달콤한 잠을 자는 사람들, 아무도 깨울 수 없는 사람들” 에서 자아의 혼란을 내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현실의 흐물거리는 일상을 두둔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깨어 있는 것이 “불멸과 우울증의 밤” 은 아니었는지, “달콤한 잠을 자는 것” 이 “꺼져가는 등불을 바라보는 두려움” 을 이겨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있는 것이다. 가사와 형식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곡들이 이렇게 몇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생각할 꺼리를 계속해서 던져준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무거우며 적당히 성가신 이 앨범의 가치는 가볍게 들을 수 없음에 있다. 40분짜리, 심지어 30분짜리 러닝타임을 가지는 정규 앨범들이 판치는 현대 음악 산업에서 68분의 러닝타임에 꾹 눌러 담은 그의 메시지는 분명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서너시간만에 후딱 읽을 수 있는 라이트한 소설들 틈바구니 속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굵직한 책을 선택하는 듯한 느낌이다. 행간마다 글쓴이의 철학을 추리하고 탐구해 가며 읽어야 하고 문장 하나 하나가 어떻게 쓰였는지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야 한다. 그러한 무거움이 이승열의 음악에 담겨져 있고 바로 이점이 나로 하여금 이 앨범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것 같다.

META & WRECKX: DJ & MC

가리온이라는 힙합 바디를 처음 접한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매우 오래전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중학교때인지 고등학교때인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메타와 나찰, 디제이 소울스케임과 제이유, 뤡스는 그보다 아마 훨씬 전부터 신촌과 홍대 등지를 떠돌며 힙합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2집이 언제 나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 MP 등지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술안주로 써먹는 단골 메뉴중 하나였다.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내놓은 가리온의 2집은 상당히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메타는 결혼을 했고 (ㅜㅜ) 뤡스와 손잡고 이 앨범을 발매했다. “Show Me the Money” 같은 캐이블 방송까지 나오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기 보다는 그냥 “이제 형도 편하게 사셔야죠..” 하는 심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메타는 앞으로도 당분간 편하게 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듣던, 대학교 시절 신촌 대로변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던 MP 를 드나들던 그 시절 그대로의 음악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그 당시 쓰던 샘플을 그대로 쓰는 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가 렉스와 함께 만들어내는 힙합은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추구해 왔던 “한국형 힙합” 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래핑이 해학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성취를 이룬 것은 아주 일부분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철저히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돈을 벌기에는 시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길만을 가면서 음악적인 성취를 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리스펙을 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랑: 욘욘슨

이랑의 <욘욘슨> 은 최근 가장 유쾌하게 들었던 앨범이다. 밴드의 프론트 워먼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랑은 스토리텔링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듯 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단순한 리듬 세션의 단촐한 구성 위에 기본적으로 팝과 포크를 바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이 아주 큰 새로움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이들의 음악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랑의 스토리텔링 기법에서 온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난한 욕망을 아주 솔직히 드러내면서 따스한 인간미를 획득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표현 방식이고 이를 온전하게 성취한 예술인은 따지고 보면 사실 몇 없기도 했다. 이랑은 훌륭한 가사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메시지 전달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포크라는 플랫폼까지 음악의 모든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에서 벨엔 세바스챤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쿠스틱 버젼의 홀드 스테디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한국판 퍼스트 에이드 키트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퍼런스는 많다. 형식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기 때문에.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특별하다. 영리하게 잘 구성된 데뷔 앨범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앨범. 여담이지만 홍상수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

Mimyo: Floating Ones

취미로 블로그에 앨범 리뷰를 쓰다 보면 외국 음악에 조금 더 관대하고 한국 음악에 조금 더 비판적이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도일 것 같다. 첫째, 외국 음악은 메타크리틱이나 가디언, 뉴욕타임즈, 심지어 피치포크까지 뒤져가며 “검증된” 앨범만을 구입한다. 이에 반해 한국 음악은 그런 식으로 게으른 나를 위해 검증해 줄 미디어가 없다. 알음알음 “좋더라” 하는 음반들을 구입해야 한다. 타국에 있다 보니 앨범을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절차도 번거롭기 때문에 많은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한국 음악에 대한 귀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 음악에 더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애정이 있으니까 화도 내고 잔소리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것 아닐까. 비겁한 변명이다.

여기 드디어 한국인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 칭찬할 수 밖에 없는 음반 한장이 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뮤지션 Mimyo 는 내가 트위터에서 말을 걸면 상냥하게 대답해 주는 유일한 셀러브리티다.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사이트 krrr.kr 를 관리하기도 하고 가끔 웨이브에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앨범에 대한 자세한 리뷰나 뒷 이야기들은 인터넷상의 다른 미디어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감상용 댄스음악” 에 대한 회귀본능같은 일깨워 주었다. 리듬감이 거의 완전히 거세된 댄스음악에 대한 욕구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앰비언트적인 효과까지 주는 이 앨범을 헤드폰을 끼고 들을 때 느껴지는 유일함(uniqueness) 같은 것을 느꼈다. 다른 뮤지션들이 흉내낼 수 없고 제공해 줄 수 없는 긴장감을 즐겼던 것 같다. 이 앨범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가지는 또다른 미덕은 음악으로부터 파생되는 연상 작용의 무한한 팽창성이다. 아주 좋은 음악이라도 그 음악이 주는 특정 이미지만을 수동적으로 소비해야만 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별로인 음악이라도 그 음악을 들으며 다른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 있고, 그러한 사고과정의 확장을 경험하며 내적인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 앨범은 후자에 가깝다. (“별로”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는 점에서 사고 과정의 확장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서치 아이디어를 얻는다던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한다던가 하는 식의 개인적인 경험으로의 확대같은 것들.

이런 음악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뮤지션의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면 당사자에게 너무 슬픈 일일 것 같다. 그보다는 최근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라는 말이 더 반가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