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배: 위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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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배의 음악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정확하고도 분명한 메시지다. 그 메시지에는 단호한 입장이 있다. 2010년대 한국 대중 음악계가 이 메시지에 대한 가치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음악마저 이미지화시켜버리는 아이돌 음악이나 90년대 소녀 감성을 포장만 바꾸어가며 판매하는 되돌이음표같은 ‘한국형 이지 리스닝’ 혹은 ‘한국형 컨템프로리 어덜트’ 음악, 더 나아가 메시징을 주된 상품화의 수단으로 삼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여자를 더 ‘쿨’하고 ‘칠’하게 꼬실 수 있는지에만 탐닉하는 흑인 음악 계열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 굉장한 미덕을 윤영배는 침착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음악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로 기능한다. 엘리엇 스미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그의 목소리나 음악 스타일 역시 사실 하나음악/푸른곰팡이 음악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며, 오히려 이에 더해 바흐같은 클래시컬한 음악들을 더 많이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답습’보다는 ‘정통성’의 개념에서 해석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가 지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를 믿게 된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윤영배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의 메시지가 첫곡 “자본주의”나 “점거”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탐구라는 범주에 머물지 않고 “선언”이나 “백년의 꿈”에서처럼 그와 비슷한 수준의, 혹은 그보다 더 깊은 수준의 자기 성찰로도 나아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밖으로만 내지르며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는 노래들이 갖지 못하는 따스함과 유려함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부조리함을 애써 외면하며 탐미주의에 치중하는 연약한 요즘 인디 음악이 갖지 못한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림과 글보다 사진과 영상이 더 익숙한 시대로 넘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문의 글이 불필요해지는 세상은 아니다. 여전히 필요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윤영배는 무거운 주제를 피해가지 않는, 건조하지만 담백한 문체를 가진 긴 호흡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좀처럼 읽지 않는 그런. 떠들석하게 일을 벌이며 자신을 치장하는 데에는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침묵하는 대다수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입장과 그 입장을 실천하는 행동이 음악 속에 담겨 있다. 이런 음악을 2014년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대충 뭉뚱그려 감사함이라고 해두자.

옥상달빛 at K-Art Hall, Seoul

친구의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이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공연을 공짜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0원보다 더 큰 가치를 나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비록 epsilon 만큼일지라도 플러스는 플러스니까. 문제는 이 공연의 티켓 가격을 온전히 다 치루고 온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다.

5만 5천원. 이 공연을 인터파크에서 예매했을 때의 티켓 가격이다. 실제로 가본 케이 아트홀은 아주 좋은 공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크지 않은 규모에 적절한 수준의 음향 시설과 편안한 좌석을 가지고 있는 공연장을 대관하려면 그정도 가격을 책정해야 수지타산이 맞을 수도 있다. 옥상달빛 정도 되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은 물론 나흘 연속 서울 공연에서 몇백석 규모의 공연장 좌석을 솔드아웃시킬 수 있을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 공연을 5만원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생들, 혹은 옥상달빛이 데뷔 초반 타겟으로 삼았던 88만원 세대라면, 이거 뭔가 심하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옥상달빛은 유희열의 전폭적인 서포트로 ‘뜬’ 뮤지션이다. 이들이 현재 음악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같은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 아직도 언더에 적을 두고 있지만 간간히 공중파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밴드라는 정보 정도뿐. 만약 유희열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해서 입담을 뽐내지 않았다면, 노골적으로 88만원 세대를 노리고 ‘우리는 가진 것도 없고 빽도 없지만 그나마 그렇게 없는게 장점이다!’ 라는 대책없이 보수적인 힐링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며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이슈화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 케이아트홀 수준의 공연장을 대관할 수 있었을런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140분 남짓한 공연에 5만 5천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오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돈 쪼개가며 부산에서 상경해 당일치기로 보고 돌아가는 대학생이라면 이게 과연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공연은 예상대로 아주 적은 수의 노래와 아주 많은 양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곡과 곡 사이에 상당히 많은 코멘트를 했는데 공연을 보다보면 과연 이게 노래를 주제로 한 공연인지 토크를 주제로 한 코트 콘서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중간에 게스트로 나온 ‘인디’ 뮤지션들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수다로 때웠고, 1부와 2부로 나뉜 공연의 2부는 우습게도 네곡 정도만을 부르고 끝나버렸다. 이쯤되면 과연 5만 5천원을 낸 사람들이 이 공연에서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옥상달빛의 공연에서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개그가 아니었을까. 유쾌한 대화 사이 사이에 간간히 들려주는 듣기 편한 -그래서 그들이 부른 노래들이 구분조차 잘 되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 노래들에서 위안을 찾고 그렇게 ‘힐링’ 하다가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게 5만 5천원 이상의 가치를 할까?

친구는 “그조차도 고파서” 라고 설명해주었다. 그정도 수준의 공연조차 한국에선 쉽게 찾기 어렵기 때문에 –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 자연스럽게 티켓 가격이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한국에서 각종 음악 페스티벌이 장사가 잘 되어서 대기업들의 자본이 흘러들어오는 이유도 다 한국 음악팬들의 갈증때문이다.

난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분하다. 그토록 음악을 좋아하고 공연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어째서 씨디 한장, 음원 하나 제대로 구입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진정으로 공연을 좋아한다면 최소한 뮤지션들이 공연으로 먹고 사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정도의 수요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연인과 함께 데이트하기 좋거나 쿨해 보이기 좋은 –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찍어서 올리기 좋은 – 페스티벌은 마치 반드시 가야 하는 것처럼 트위터에 적어대면서 전국 모든 레코트샵들의 씨를 말리고 있고 다운로드를 돈내고 하면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건 시장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본적인 시민 의식중 한 부분이 심하게 뒤틀려져 있음을 뜻한다. DVD 시장이 한국에서 궤멸당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즉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페스티벌에 가서 방방 뛰는건 하나의 실체적 경험으로써 삶에 유의미한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무형의 음악을 듣거나 다운받아 봐도 화질에 큰 차이가 없는 영화를 몇만원씩 돈주고 사서 보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연인과 혹은 친구와 함께 외부에서 즐길 수 있는, 그래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 좋아요가 막 찍히는 그런 경험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방에 틀어 박혀 혼자 즐기는 경험에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걸 천박함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치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청춘콘서트2” 포스터를 보았다. 현징영이나 룰라같은 왕년의 뮤지션들이 다함께 모여 공연을 여는 모양이다. 수요를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을 것이다. 유희열이 스케치북에서 이 컨셉으로 방송을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기획이다. <나는 가수다> 에서 왕년의 가수들이 모여 90년대 히트곡들을 다시 부르지 않았다면 이 수요는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방식도 좋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요를 기획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식은 음악을 구입하는 것이다. 유의미한 비용을 지불하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이 힘겨운 발 한걸음을 움직여 공연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음악계도 답답하다. 뮤지션은 공연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음반을 내면 당연히 투어를 돌아야 하고 투어를 돌며 실력을 검증받고 인지도를 쌓아 다음 음반을 녹음할 돈을 마련한다. 그 와중에 뭐 기회가 닿으면 공중파에도 출연하고 행사도 뛸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건 공연을 준비한답시고 몇달 전부터 얼마나 노력하는지 생색은 있는대로 다 내고 공연은 달랑 사나흘 해버리고 마는 뮤지션들이 진짜 뮤지션들인지 의심스럽다. 투어를 돌 만큼 전국적으로 뮤지션들을 환영해주는 수요도 없고 공연장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며 공연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변명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공연으로 먹고 살 정도의 능력을 가진 뮤지션들이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면 그 또한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막말로 미국에서 전국 투어를 도는 몇몇 괜찮은 인디 밴드들의 오프닝 밴드들을 아무나 하나 골라서 한국에 툭 떨어뜨려 놓으면 그들보다 더 죽이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뮤지션들이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별로 없을 것 같다. 아마추어리즘과 인디정신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치기어린 도전과 거대 자본을 거부하는 독립적 소자본의 운영 정신은 반드시 구분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가끔 이 둘을 헷갈리는 뮤지션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떡하니 그 적은 자본을 빨아먹으며 음반을 내는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난 옥상달빛이 잘못된 공연 기획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옥상달빛으로 상징되는 인디-오버 사이 경계에 위치한 뮤지션들의 ‘가치’ 에 거품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이들이 이런 거품을 껴안으면서까지 공연을 그렇게 지나치게 좋은 곳에서 해야만 하는 척박한 환경이 못마땅한 것이다. 사운드가 조금 구려도, 좌석이 하나도 없어서 두시간동안 서서 봐야 하는 공연장이어도 기꺼이 보러 가고 싶은 뮤지션들이 한국에도 많다. 2,3만원 정도면 하루 저녁 가볍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정도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의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다.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시장 형성을 위한 초석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뭐가 진짜 잇하고 쿨하고 핫한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마 결혼식장에 가면 줄서서 돈내고 식권받은 다음 결혼식은 보지도 않고 밥만 먹으러 가는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일 것 같다. 진짜 멋진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셀카 포즈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휴일: My Feet Don’t Touch the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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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일이라는 뮤지션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약 두가지의 반응이 섞여서 (하지만 모두 격렬하게) 튀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드디어..!” 하는, 현대 주류 영미팝의 감성을 한국 인디씬에 그대로 ‘이식’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감탄사였고 다른 하나는 “아니 이 친구는 대체..?” 하는, 조휴일이라는 뮤지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악적 아우라에 대한 찬사였다. 그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훅과 창의적인 가사는 뮤지션 개인의 이미지, 혹은 입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아이돌 팬덤과 같은 열렬한 지지층을 생성해낼 수 있었다. 이 긴 제목을 가진 앨범은 조휴일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 뉴저지에 있는 집에서 만든 데모 테잎에 수록되어 있던 노래들을 편집한 것이다. 3분이 넘지 않는 20개의 곡들이 별다른 순서에 대한 고려가 없어보이는 정렬 방법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정규 앨범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조휴일이라는 뮤지션이 과연 어떤 배경을 거쳐 한국에 당도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좋은 사료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매한 두장의 정규앨범에서 느껴졌던, 번뜩이는 재치와 재능이 엿보이는 곡들도 있고, 그저 한번 시험삼아 만들어 본 듯한 곡들도 있다. 뮤지션 개인에 대한 관심도가 이처럼 높았던 적도 참 드문 것 같은데, 이 앨범은 그러한 적폭적인 관심과 애정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 혹은 해설서 정도쯤 되는 것 같다.

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사실 난 정태춘과 박은옥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세대가 아닐 뿐더러, 그들을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연배도 아니었다. 그들이 이미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뒤에서야 비로소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나다. 그들이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 가 운동권 선배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중에 글로 배워야 했던 사람이 나다. 그래서 정태춘과 박은옥이 10년만에 발표한 이 새 음반을 선뜻 구입하기 어려웠다. 내가 들을 자격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단순히 한번 들어보자, 라는 생각에서 구입한 음반인데 뒷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정태춘의 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좋았다. 아니 아름다웠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 속지에 있는 정태춘의 글을 인용해본다.

지난 30여 년을 함께해 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준 감사한 벗들을 생각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 

‘강이 그리워’ 는 가을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네에 다녀와서 썼고, ‘섬진강 박 시인’ 은 또 그때 거기 이웃의 박남준 시인으로부터 받은 그의 신간 시집을 읽고 거기서 몇 구절을 차용하며 썼다. …… 
……..’서울역 이씨’는 어느 겨울 서울역에서 죽은, 한 노숙자를 생각하며 썼다. ‘바다로 가는 시내 버스’는 온전히 박은옥을 위한 노래이며 ‘눈 먼 사내의 환원은’은…. 
……’날자, 오리배…’는 오늘도 이 지구위를 떠도는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박민규의 어느 단편소설집 우화를 확장하여 썼다. ……

이러한 선한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만든 음악이 아름답지 않을리가 없다. 때로는 낮게 읇조리며, 때로는 아예 멜로디를 포기하고 시를 낭송하는 느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태춘의 목소리는 화려하지 않지만 굵고 깊다. 블라인드를 걷어 창 밖이 활짝 보이게 하고 씨디를 걸어 음악을 듣다 보면 가슴 한켠이 허 해지면서 동시에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나와 같은 세대의 그 어떤 젊은 뮤지션들도 흉내내지 못할, 인생에의 깊이에서 오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래서 감사히 듣게 된다.

9와 숫자들: 유예

9와 숫자들의 최신작인 <유예> 는 8곡, 37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 아주 간결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처럼 “러닝타임이 40분밖에 안하는데 벌써 지루하다 싶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들은 영리하고, 영리한 만큼 음반의 구성도 충분히 재미있게 꾸며 놓았다. 지루할 틈은 없다. 전작이 가지고 있었던 미덕이기도 하다. 약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전작의 댄서블한 느낌이 많이 옅어진 반면 조금 더 복고적인 한국 록음악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느낌이 든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과거의 정서를 되살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노선이긴 하지만, 리듬이 넘실거리는 흥겨운 팝에서 조금 더 록의 본연의 색깔에 가까운 음악으로 레퍼런스를 변화시킨 것이다. 전작이 벗꽃이 흩날리는 봄의 음악이라면, 신작은 낙엽이 지고 첫눈이 올 때쯤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초겨울의 음악같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읭?” 하면서 생각보다 별로라는 느낌이 든 것이 사실이지만 계속 듣다 보니 결코 나쁘지 않은 음악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래 들을 수록 진한 맛이 우려져 나오는 것이 9와 숫자들 음악의 또다른 미덕이라고 한다면, 이 앨범 역시 같은 맛과 향을 가져다 줄 것이다.

Various Artists: 이야기해주세요

종군위안부 문제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나 알고 있는 이슈다. 모두가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고, 또 타인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동정하고 지지하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인부터 초등학생까지, 그 누구도 진심을 다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이제 그 할머니들은 몇십분 남짓 생존해 있을 뿐이다. 만약 그들이 전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들 외에는. 아니 이 할머니들조차 그들이 원하는 “승리” 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실에 대한 책임자의 인정 정도일 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수의 희생자들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독립 여성 음악인들이 모여서 음반을 만들었다. 부클릿을 보면 대부분 한번쯤 들어본, 혹은 최소한 한장의 음반은 가지고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을 만들었다. 음반은 세곡을 제외한 전곡이 이 음반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로 채워져 있다.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기존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가사쪽에서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쪽을 택한 듯 보인다. 아마도 할머니들은 이들의 음악을 평생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들의 음반은 할머니들보고 들어보세요, 하고 선물해 드리는 의미라기 보다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건다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러한 방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사려깊고 시적인 가사를 익숙한 멜로디에 얹어서 어렵지 않게 전달한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이 가진 목적성과 의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상은과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이 동시에 들어 있는 앨범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곡들이 많이 들어 있는 앨범이고 (즉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기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몇몇 뮤지션들의 새로운 시도는 두 귀를 번쩍 뜨이게 하기도 한다. 앨범의 여는 한희정의 “이 노래를 부탁해” 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오지은은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 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성취해 내고 있다. 시와는 아마도 이러한 목적성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여성 음악인일 것이다. 자신의 곡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네” 와 투명과 협연한 “Way to the Light” 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황보령의 “비단” 은 혹시나 여성 뮤지션들만이 모여 있어서 힘에서 달리는게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단언하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보여준다. 현재 한국 독립 음악인들중 황보령보다 더 밀도있는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남상아의 “놀이터” 와 지현의 “나와 소녀들과 할머니들에게” 역시 주의깊게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룩앤리슨: Ready to Go!!

이 앨범은 굉장히 straight 하다. 그리고 straightforward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달리고 그 와중에 멈칫거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하다. 이 앨범에서 취하고자 하는 목적 의식은 매우 단순하고, 또 그것을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로 달려 쟁취해 버린다. 딱히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 정리들만을 사용해 아주 간단하지만 명쾌한 논리로 6페이지 정도의 논문을 써 내려가는 느낌. 그 안에서 흠잡을 구석은 전혀 없다. 음악을 듣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 목적인 즐거움을 달성하고 있는데 무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그 ‘즐거움’ 이 문자 그대로의 즐거움이라면, 오감을 만족시키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락큰롤 본연의 즐거움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장르에의 종속성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할 일이다. 이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는 전세계에 오천팀 정도 있을 것이고, 다시 말하면 굳이 룩앤리슨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언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놀랍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팝펑크 형태의 노래들로 앨범을 채우고 있는데 2012년에 등장한 진정한 펑크인 무키무키만만수와 비교해 보면 더욱 도드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걱정스러운 부분은 과연 이들이 이 앨범에서 이룬 기분 좋은 성취가 과연 뮤지션의 공로로 오롯이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 프로듀서인 하세가와 요헤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역시 프로듀서가 젊은 뮤지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내고 있다. 룩앤리슨이 다음 앨범에서도 여전히 생기발랄한, lively 한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이들은 마이 캐미컬 로맨스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새 앨범이 오랜만에 나왔다. EP <Nince Days or a Million> 이 나온 때가 2009년, 정규 앨범만으로 치면 8년만이다. 새 앨범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는 메시지보다는 음악의 형식과 문법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고민하는 듯 보인다. 굳이 단어를 끄집어내자면 반복, 점층, 대구 정도? 앨범은 의미없는 단어들을 무한 반복하며 가장 미니멀한 형태의 음악적 뼈대만을 남긴 “Smoke Hot Coffee Refill” 으로 시작해 역시 무의미한 4음절의 단어들을 단 한번의 반복없이 끊임없이 생성해 내는 “끝말잇기” 로 마무리되는데 이 마지막 곡은 소닉 유스를 연상시키는 노이즈의 향연이다. 앨범 중간 중간에 3호선 버터플라이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몇 킬링 넘버들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앨범의 테마 자체를 바꾸어 버릴 정도는 아니다.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한 타이틀곡인 것 같고. 하나의 테마로 밀도있는 앨범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요즘 트렌드”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부분 4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을 가지는 곡들 열세개를 우겨 넣은 것을 보면 멤버들이 이 앨범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 굳이 뮤지션들의 수준이나 클래스를 나누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가 대단한 내공을 가지고 있고 또 결코 듣는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혹은 믿음을 주는 뮤지션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 앨범이 가지는 한계 혹은 아쉬운 점 역시 이런 접근 방식에서 찾고 싶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은 흔들리는 듯 희미한 듯, 미열과 함께하는 약한 감기처럼 불안한 정서를 정성스럽게 디자인된 사운드 위에 가감없이 담아내는 데에 있었다. 이들이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것이 겉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메시지가 실종된다. 실종된 메시지와 함께 하는 3호선 버터플라이는 아무리 흥미로운 컨셉으로 가득찬 앨범이라고 해도 가슴을 후려치는 한방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앨범 중간 중간에 진짜 좋은 곡들이 많다. 영화 <그녀에게> 에 수록되어 유명해진 “Cucurucucu Paloma” 의 리메이크 버전에는 남상아의 매력이 물씬 풍겨 나오고, “너와나” 에서는 오랜만에 힘을 잔뜩 분출해 내는 스트레이트한 록넘버를 맛볼 수 있다. “꿈속으로” 도 너무 좋다.

이승열: Why We Fail

이번에 이승열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했다. 유엔미 블루 이후 꽤 오랜 기간동안 방준석과 이승열이라는 이름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 꽤 확고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 정도만 멀리서 들었을 뿐이다. 이승열의 음악을 정식으로 음반을 구입해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의 목소리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그리고 그는 단지 자신의 목소리에 나이브하게 의존하는 송라이팅을 하지 않고 아주 많은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순도 높은 완성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인 “솔직히” 는 기독교 신약 성서에 나오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 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중 다섯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 잠들어 버리고 다섯 처녀는 끝까지 눈을 뜨고 기다려 신랑을 맞이한다. 천국은 그렇게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그런 비유다. “솔직히” 가 놀라운 점은 이승열이 가스펠의 코드 진행 구조를 따오면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분하게 시작해서 후렴구에서 하이톤과 로우톤의 보컬로 극단적으로 갈라지며 노이즈를 폭발시킨다. 들끓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졸았을까 하늘엔 섬광, 도적의 피리소리 점점 커질 때, 나는 무릎을 꿇어 엎드려, 이 세상은 다 타올라 버리네” 라는 후렴구 가사의 상승 작용을 극대화시킨다. 딱 두번 반복되는 후렴구는 “예정론? 무척 어렵지, 그만 가봐야 해, 잘 지내길” 이라는 두번째 버스로 인해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즉 반드시 깨어 기다려야만 가치있는 것을 얻을 것이라는 성경의 모티브를 뒤틀어 마지막 후렴구 직전에 등장하는 가사 “달콤한 잠을 자는 사람들, 아무도 깨울 수 없는 사람들” 에서 자아의 혼란을 내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현실의 흐물거리는 일상을 두둔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깨어 있는 것이 “불멸과 우울증의 밤” 은 아니었는지, “달콤한 잠을 자는 것” 이 “꺼져가는 등불을 바라보는 두려움” 을 이겨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있는 것이다. 가사와 형식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곡들이 이렇게 몇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생각할 꺼리를 계속해서 던져준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무거우며 적당히 성가신 이 앨범의 가치는 가볍게 들을 수 없음에 있다. 40분짜리, 심지어 30분짜리 러닝타임을 가지는 정규 앨범들이 판치는 현대 음악 산업에서 68분의 러닝타임에 꾹 눌러 담은 그의 메시지는 분명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서너시간만에 후딱 읽을 수 있는 라이트한 소설들 틈바구니 속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굵직한 책을 선택하는 듯한 느낌이다. 행간마다 글쓴이의 철학을 추리하고 탐구해 가며 읽어야 하고 문장 하나 하나가 어떻게 쓰였는지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야 한다. 그러한 무거움이 이승열의 음악에 담겨져 있고 바로 이점이 나로 하여금 이 앨범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것 같다.

META & WRECKX: DJ & MC

가리온이라는 힙합 바디를 처음 접한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매우 오래전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중학교때인지 고등학교때인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메타와 나찰, 디제이 소울스케임과 제이유, 뤡스는 그보다 아마 훨씬 전부터 신촌과 홍대 등지를 떠돌며 힙합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2집이 언제 나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 MP 등지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술안주로 써먹는 단골 메뉴중 하나였다.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내놓은 가리온의 2집은 상당히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메타는 결혼을 했고 (ㅜㅜ) 뤡스와 손잡고 이 앨범을 발매했다. “Show Me the Money” 같은 캐이블 방송까지 나오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기 보다는 그냥 “이제 형도 편하게 사셔야죠..” 하는 심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메타는 앞으로도 당분간 편하게 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듣던, 대학교 시절 신촌 대로변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던 MP 를 드나들던 그 시절 그대로의 음악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그 당시 쓰던 샘플을 그대로 쓰는 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가 렉스와 함께 만들어내는 힙합은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추구해 왔던 “한국형 힙합” 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래핑이 해학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성취를 이룬 것은 아주 일부분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철저히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돈을 벌기에는 시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길만을 가면서 음악적인 성취를 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리스펙을 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