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yes Blood | Titanic Rising


이제야 비로소 2019년에 들었던 음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마다 다짐하는 목표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장의 음반 듣기’다. 지금까지 내게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조금 번거로운 루틴의 연속으로 정의되어 왔다.

1. CD나 LP같은 물리적 매체를 주문하거나, 직접 매장에서 구입한다.
2. 집으로 배달되거나 직접 가져온 음반을 CD플레이어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플레이시켜 음악을 감상한다. 거의 대부분 곡 단위가 아니라 음반 단위로 듣게 된다.
3. 몇 번을 반복해서 감상한 후, 블로그에 그 느낌을 옮겨 적는다.

3번까지 완료해야 한 장의 음반을 “들었다”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정의에 따르면 2019년에는 음반을 한 장도 제대로 듣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2019년은 위와 같은 루틴이 깨진 첫번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먼저, 물리적 매체를 거의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외벌이’를 하게 되면서 사치재 소비를 줄이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LP를 돌리며 음악을 듣는 행위에 대해 ‘현타’가 왔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로 애플뮤직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 더 나아가, 요즘에는 집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나 차 안에서 보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스트리밍 형태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더 선호하게 된다. 이렇게 루틴이 변하다 보니 블로그에 음악에 대해 감상문을 남기는 것조차 게을리 하게 되었다. 음악을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고, 음악을 조금 더 가볍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은 죄책감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기중의 스케쥴 속에서 한가로이 블로그에 음악 감상문이나 쓰고 있을 여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어진 탓도 크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해도 다 핑계일 뿐이다. 좋은 음악을 들었다면 그에 대한 기록을 한 줄이라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력이 나쁜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오늘 이야기할 첫번째 뮤지션은 와이즈 블러드(Weyes Blood)다. 멕시칸 서머(Mexican Summer) 레이블에서 서브팝(Sub Pop)으로 옮긴 후 첫번째 작업물로 [Titanic Rising]을 발표했다. 2016년 [Front Row Seat to Earth]로 좋은 평을 받고 3년만에 내놓은 새 음반인데, 같은 캘리포니아 출신 뮤지션 에어리얼 핑크(Ariel Pink)와 함께 2017년에 발표한 EP [Myths 002] 이후로는 만 2년만이다. 이번 음반에서 와이즈 블러드가 선호하는 음반 단위의 음악 구성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작에서도 느껴졌던 웅장하고 담대한 색채가 한층 강해졌는데, 곡과 곡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눈에 띌 정도로 매끄럽고 단단하다. 조니 미첼(Joni Mitchel)을 빼닮은 목소리톤은 그대로인데 그 목소리를 가지고 노는 솜씨는 훨씬 좋아졌다. 여기에 더해 송라이팅과 편곡에도 눈을 뜬 것인지, 라이브에서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되는 노래들이 제법 많이 발견된다. 비틀즈가 연상되는 밝은 분위기의 “Everyday”조차 종반부로 갈수록 격하게 몰아치는 감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Something to Believe”, “Titanic Rising”, “Movies”까지 휘몰아치는 부분이 음반의 첫번째 절정이다. 포크 음악 ‘주제에’ 웅장하다는 감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작년에 미츠키가 인디씬을 후려쳤다면, 올해는 와이즈 블러드가 인디씬 최고의 뮤지션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월 5일. 25년.

최근 단과대 동료 교수 여섯 명과 학교 근처 양식집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식당은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미국식 식당’으로 보이기 위해 내부 치장에 정성을 쏟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긴 뿔을 가진 황소 머리 모형(그것은 누가 봐도 어설픈 모형이었다)이나 유명한 ‘Route 66’ 패널을 벽에 걸어 놓는 식이었다. 보통 교수님들을 모시고 가게 되는 전형적인 식당(예: 인자한 아주머니가 떨어진 반찬을 알아서 채워주시는 한식집)은 아니었지만, 그 날 저녁 모임의 명분이 ‘단과대 건물 3층에 연구실을 둔 젊은 교수들이 새로 오신 교수님을 환영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택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교수들’이라고 해봤자 역시 그 자리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은 나였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요즘 ‘젊은 교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몇 년 동안 공부를 한 공통적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술이 한 두잔 들어가고 난 뒤 자연스럽게 90년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긴 머리를 보고 “커트 코베인같네요”라고 농을 친 것이 시발점이었다. 한껏 신이 난 40대 ‘아재’들은 자신이 아직 잊어버리지 않은 90년대 음악의 각종 정보들을 두서없이 쏟아내기 시작했고, 결국 대화는 레드 제플린과 건스앤로지스 사이 어딘가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끼는 편인 나는 가끔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 주는 정도에서만 대화에 참여했는데, 간혹 눈치 빠른 누군가는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적당히 그 시대를 모르는 척 하며 시간을 때웠다.

90년대 5천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사 들으며 머리를 흔들어대던 십대 소년들은 허리둘레가 걱정스러운 나이의 중년에 진입했다. 당시 음악을 함께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시애틀 4대 천왕”으로 통했던 밴드 –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엘리스 인 체인스 – 의 보컬리스트 중 오직 에디 베더만이 생존해 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와닿는 부분이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오직 에디 베더 뿐이라니. 와.) 요즘 기타를 좀 치고 홍대씬을 어슬렁거린다는 록 키드는 어떤 뮤지션을 롤 모델로 생각할까. 커트 코베인은 화석이 되어 있을까. 그가 죽은지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오던 노래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가 들려주던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이나 아버지가 즐겨 듣던 산울림의 음반, 그리고 당시 무척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가 알던 음악세계의 전부였다. 그 날, 배철수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슬프고 무거운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규 프로그램을 잠시 멈추고 오늘 세상을 떠난 한 뮤지션을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두 시간동안 가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외국 뮤지션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우리나라의 디제이를 이리도 슬프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어떤 노래들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확실히 “Smells like Teen Spirit”이 나왔을 것이고, “Come as You are”같은 곡도 나왔을 것이다. 1994년 4월 6일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에 나에게 일어난 일 중 확실하게 기억하는 한가지는, 너바나와 같은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국내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체 왜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그의 음악에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빨려들어갔다.

그 후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음악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다. 시애틀 그런지 음악과 판테라 등의 뉴메탈을 들으며 중학교를 졸업했고, 포티스헤드의 트립합과 블러의 브릿팝, 그리고 머큐리 레브나 윌코 등 인디뮤직의 힘을 빌어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다. 대학교 시절 연애에 정신이 팔려 사랑을 속삭이는 인디팝을 선별해 구애할 때 이용했고, 군대에서 음악을 들을 여유가 생기면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에디 히긴스나 찰리 헤이든같은 재즈 음악을 찾아 낮은 볼륨으로 들었다. 미국 유학 시절은 개인적으로 무거운 삶의 무게를 처음 경험하느라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만 보면 천국과도 같은 시기였다. 거의 매주 공연을 보러 다녔고, 푼돈이 모아지면 아마존에서 음반을 구입해 끊임없이 돌려 들었다. 당시 보았던 윌코와 플릿 폭시스, 아케이드 파이어, 본 이베어 등의 공연은 지금도 매 순간이 기억날 정도로 좋았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난 음악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현실의 무거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나 웨인 스탠리처럼 젊은 나이에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 음악을 통해 힘을 얻고, 음악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내 삶은 음악과 동격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음악이라는 영혼의 동반자를 옆에 끼고 살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며칠 전 그 교수 모임에서 누군가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관련하여 궁금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이었는지, 코트니 러브에 의한 타살이었는지, 둘 사이에 딸이 있었는지, 아들이 있었는지, 지금 몇 살인지, 등등 한물간 TMZ에나 나올 법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 듣고 싶지 않아 “딸이구요, 이름은 프랜시스 빈 코베인이구요, 1992년 생이니 지금 스물 일곱 쯤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빠르게 말하고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쉽거리로 치부되는 한 가수의 삶과 죽음이, 나와 같은 ’90년대 키드’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바꾸어버린 엄청난 존재로 기억된다.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볍게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자동차 ‘삼식이’가 랜덤으로 노래를 재생할 때 너바나의 노래가 나온다. 그 때마다 90년대의 어느 시점엔가로 돌아가, 여드름 투성이 얼굴을 한 한 소년을 마주한다. 여드름이 가득한 못난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싫어 엄마를 졸라 집안의 거울을 모두 치우게 했던 이 예민한 소년은,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찾아내 너바나의 [Nevermind]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전세계 3천만명 정도가 공통적으로 경험했을 이 기억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지금도 늘 자신의 머리를 엽총으로 날려버린 그 사람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십대의 마음으로, 십대의 정신으로 늘 살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Jessica Pratt | Quiet Signs

Jessica Pratt, [Quiet Signs]

제시카 프랫(Jessica Pratt)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전자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꿈 속을 사뿐히 걷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때문에 드림팝 계열이겠거니, 하고 지레 짐작해버리기 까지 했다. 그녀의 2019년 신보 [Quiet Signs]는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 따로 챙겨두고 자주 듣게 되었는데, 웬걸, 두번째로 이 음반을 들었을 때 그녀의 음악에는 전자음악기기가 사용되기는 커녕, 드럼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전자피아노 정도는 사용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통기타 하나로 진행되는 그녀의 음악은 전자음악과는 거리가 한참 먼, 굳이 따지자면 포크음악의 범주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포크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 음악적 뿌리를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까? 굳이 변명거리를 찾자면, 제시카 프랫의 음악세계가 하나의 장르로 국한시키기에는 상당히 깊고 다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단에서 제시카 프랫의 음악을 정의내리거나 어딘가에 포함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freak folk’, 우리나라 말로 하면 괴물포크(..!)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포크의 하위장르다. 기존의 포크 문법에서 벗어나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잔뜩 첨가한 새로운 포크 운동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을텐데, 히피 운동이 활발하던 1960,70년대 시작된 이 흐름은 한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1990년대 이후 바쉬티 번얀(Vashti Bunyan)이 발견되고 애니멀 컬렉티브와 그리즐리 비어가 인디씬에서 성공을 거둔 후 현재 인디포크음악의 하위장르로 어느정도 자리를 굳힌 모양새다. 보통 여기에 속한다고 알려진 뮤지션 중 우리가 알법한 인물은 영화 [주노(Juno)]의 음악으로 유명한 킴야 도슨(Kimya Dawson)과 앞서 언급한 그리즐리 비어 등 뉴욕 인디포크씬의 한 무리들을 꼽을 수 있겠고, 범위를 조금 넓히면 조안나 뉴섬과 수프얀 스티븐스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 같다.

LA 출신의 제시카 프랫은 사이키델릭-프릭-안티 등등 새로운 기조의 포크음악 앞에 붙일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충족시키는 음악문법을 구사한다.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사실 가사를 분간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여기에 낯선 밤거리 풍경을 연상시키는 악기들이 소품처럼 배치되어 어둡고 쓸쓸한 정서를 배가시킨다. 전통적인 포크의 색채가 많이 남아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신보 [Quiet Signs]에서는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특징이 훨씬 강조되고 있는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랫의 목소리 톤도 전작보다 훨씬 높고 가늘게 올라간 듯 느껴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어 통상적인 드림팝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정서들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내가 프랫의 음악을 당연히 전자음악이구나, 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이 단순히 어둡고 침침한 것은 아니다. 음반의 색깔은 오히려 축축한 안개가 낮게 깔린 도시의 거리 어딘가에 자리잡은 허름한 펍에서 조곤조곤 나누는 즐거운 수다에 가깝다.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듣다보면 결국 빠져들게 되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는 음반이다.

XXX | Language

XXX | Language

[쇼미더머니]을 통해 메인스트림 문화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주류 한국 힙합은 미국 흑인음악의 형식과 내용 모두 별다른 고민 없이 베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붐뱁, 트랩, 클라우드, 어쩌구저쩌구 하는 힙합의 다양한 얼굴들 중 한국 힙합이 내재적으로 탄생시킨 독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힙합은 문화다”를 주구장창 외치는 그들은 정작 미국 힙합문화의 단편적인 모습들만을 그대로 직수입해 상표조차 떼지 않고 사용 중이다. [쇼미더머니]에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명 래퍼가 영어로 감탄사를 내뱉는 장면이 유독 자주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왜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적인 힙합’에 대한 고민은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가장자리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발견된다.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구사한 메타와 렉스의 “무까끼하이”와 같은 시도는 물리적 성공이 유일한 목표, 혹은 숭고한 미덕 정도로 취급되는 [쇼미더머니]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XXX는 래퍼 김심야와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프랭크(FRNK)로 이루어진 힙합 듀오다. 이들은 아직 [쇼미더머니]의 바깥 테두리에 위치해있다. [Language]는 이들이 발표한 EP인데, 최근 꽤 즐겨 자주 들은 음반이다. 음반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 요인은 김심야의 래핑보다는 프랭크의 사운드메이킹 쪽에 있다. 프랭크의 감각적인 작곡과 사운드메이킹은 이들의 음악을 [쇼미더머니] 제작과정에서 급하게 만든 ‘음원순위용’ 노래들과 차별화시킨다. 최근 힙합에서 이런 사운드를 듣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귀를 즐겁게 해주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최전선을 목격하는 듯 하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프랭크의 사운드는(실제로 칼을 가는 소리가 효과음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분노로 가득찬 고음의 김심야의 목소리와 제법 잘 어울린다. 김심야의 랩은 비트에 맞게 때려 박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메인트스림 한국 힙합계에 대한 차오르는 분노가 느껴지긴 하는데, 래퍼의 ‘자세’는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하더라도 래퍼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화가 난 것은 그가 내뱉는 다채로운 욕설 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데, 왜 화가 났는지 청자를 이해시키려고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는다. 이런 형식적인 문제는 그가 공격하는 메인스트림 한국 래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약간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설픈 영어 가사는 한국어를 모르는 청자에게도 김심야의 ‘자세’를 설명하는 차원으로는 제법 쓸만하게 느껴지지만, 이 역시 ‘왜 부끄러움은 한국 청자의 몫인가’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Girlpool | What Chaos is Imaginary

Girlpool | What Chaos is Imaginary

뮤지션의 음악적 여정을 데뷔 시절부터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지켜보는 과정은 흥미롭다. 뮤지션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내 마음이 다 안타깝고, 음악적으로 큰 진보를 이루어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보태준 것이 없지만 괜히 뿌듯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에이 지역 출신 인디록 듀오 걸풀(Girlpool)은 십대 시절인 2014년 발표한 첫번째 음반 [Before the World was Big]부터 지금까지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온 밴드다. 이들을 마음 깊숙히 응원해오고 있는 이유는 단지 짧은 기간 이루어낸 음악적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보다 먼저인 삶 자체를 응원하게 되었다.

물론, 데뷔 음반에서 보여준 깔끔하고 산뜻한 미니멀리즘 펑크 음악에 매료되어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기타와 베이스로만 구성된 단순한 구성 위에 켜켜이 쌓아올린 카랑카랑한 두 목소리의 하모니는 꽤 근사했다. 2017년 발표한 2집 [Powerplant]에서 이들은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데뷔 음반의 미덕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다채로운 악기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었을지언정 이 듀오의 재능이나 가능성이 퇴보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적었을 것이다. 여전히 이들의 음악이 가진 특이성, 혹은 유일성은 존재했다. 오히려 내게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상당히 우울해진 음반의 분위기였다. 이들에게 안좋은 일이 있나, 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1집에서 보여준 호기, 혹은 패기를 찾기 힘들었다.

그 ‘무슨일’이 있긴 있었다. ‘안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삶의 큰 변곡점인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2019년 발표한 3집 [What Chaos is Imaginary]의 첫곡 “Lucy’s”를 듣고 ‘멤버가 바뀌었나?’라고 생각했다면,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먼저 멤버는 전과 동일하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클레오 터커(Cleo Tucker)와 하모니 티비대드(Harmony Tividad)가 여전히 걸풀의 주인공이다. 다만, 이 중 클레오 터커의 성(性)이 여자에서 남자로 변화했다. 사춘기 소년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알토의 보이스톤은 클레오 터커의 것이다. 이제 이 밴드는 여성듀오가 아닌 혼성듀오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밴드에 생긴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고 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들은 기존에 발표한 모든 걸풀의 노래를 두 옥타브는 낮아진 터커의 목소리에 맞추어 다시 다듬는 작업을 해야했다. 지난 음반들, 특히 데뷔 음반이 가진 매력 중 상당 부분은 여성 소프라노 두명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화음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자신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같은 일반인이 생각하기 힘든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2집의 우울한 분위기, 3집의 도전적이면서도 드리미한 사운드는 이들 삶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이러한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를 낸 이 젊은 듀오는 [What Chaos is Imaginary]에서 여전히 근사한 음악을 들려준다. 이제 이들의 음악은 더이상 미니멀하지도 않고, 펑크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치하우스(The Beach House)를 연상시키는 드림팝 계열에서 논의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매체가 “슬리터-키니에서 비치 하우스로의 변화”라고 표현했듯, 이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를 간직한 채 디스토션과 퍼즈가 잔뜩 걸린 기타를 치고 드럼과 키보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며 사운드케이프를 광활한 차원으로 넓혀버린다. 타이틀곡 “What Chaos is Imaginary”나 “Pretty”같은 곡은 영락없는 잘 만든 드림팝 넘버이고, 달라진 터커의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Hire”나 “Lucy’s”도 드리미한 사운드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운드라는 점은 약점이자 강점이다. 3집에서 이들은 새로운 변화에 여전히 적응해나가는 듯 보인다. 비단 달라진 목소리 톤때문만은 아니다. 1집과 비교하면 같은 밴드의 음악인가, 싶을 정도로 작법까지 많이 달라졌다. 미완성인채 앞으로 달려나가는 듯한 모습이 불안하기 보다는, 이들의 음악세계가 어떤 완성판으로 빚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지점이 더 많지 않나 생각한다.

KIRARA | Sarah

KIRARA | Sarah

공연을 할 때마다 청하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뮤지션 키라라(KIRARA)가 “음반 안에서 개연성을 가지게 만든 첫번째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는 [Sarah]는 그녀의 세번째 정규음반이다. 키라라의 표현에 따르면 앞선 두 장의 정규음반이 기존에 작업했던 곡들을 음반의 형태를 갖추어 발매한 “모음집”의 형태였다면, [Sarah]는 ‘Sarah’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슬픔, 외로움, 절망과 같은 감정을 녹여내고 있다. 여기서 ‘Sarah’는 아마도 당연히 키라라 자신이겠지만, 키라라와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기도 할 것이다.

키라라의 음악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다. 음반의 첫 곡이자 음반의 전체적인 방향을 정립하는 곡 “걱정”에는 이 뮤지션의 사려깊고 섬세한 마음씀씀이가 잘 드러나있다. 한 친구의 자살로부터 시작된 염려와 걱정의 관념은 [Sarah]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잘 지내냐”는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번민과 얼마나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 속을 오고 나갔을까. 이러한 절절한 마음에 대한 표현은 이어지는 노래인 “Wish”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Sarah]만이 가지는 어떤 하나의 얼굴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녀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쁘고 강해” 보이기도 하고, 웨이브에 실린 표현처럼 “뿌숨과 감화”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Sarah]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층위의 시각과 주제가 있을 것이다. 하우스와 빅비트, 시부야케이와 같은 장르, 캐미컬 브라더스, 이디오테잎, 코넬리우스와 같은 뮤지션, “Rain Dance” 등에서 드러나는 재미있는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라라의 음악에 대한 반응 중 상당 부분이 청자와 뮤지션 간에 발생하는 감정적인 교감에 대한 고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자음악만큼 뮤지션과 청자 간 존재하는 감정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장르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전자음악을 흔히 “기계적”이라는 이유로 멀리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인간의 목소리를 포함해 음반의 형태로 청자의 귀에 전달되는 음악의 대부분은 0과 1의 신호로 변환된 기계음이다. 오히려 전자음악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추상적이라는 특징을 지니며, 이 지점에서 성공적인 성취를 이루어내는 뮤지션의 경우 본인의 감정을 상대적으로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추상화를 볼 때 아무런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 혹은 현실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도 화가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가 있듯 말이다.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궤변이지만, 아무튼 나의 이런 가정에 따르면 [Sarah]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키라라가 전자음악이 가진 추상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소리의 분해와 조립의 과정을 통해 본인만의 특유한 질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음반이고 고마운 음반이다.

Adrianne Lenker | Abysskiss

Adrianne Lenker | Abysskiss

[Masterpiece]와 [Capacity], 두 장의 정규음반으로 인디록/포크 씬에 확고히 그 이름을 아로새긴 빅 띠프(Big Thief)의 메인보컬이자 리더인 에이드리앤 렌커(Adrianne Lenker)는 자신이 이끄는 밴드가 높은 명성을 얻는 과정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날 것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이상 그녀의 음악이 아니게 되니까, 아마도 그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작업을 묵묵히 해냈다. 그 과정을 묵묵히 지나왔다. 이미 무척 강인한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성공을 자축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도 않은 것 같은데 솔로 음반을 툭 던지며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조금 더 자유롭게 뛰어놀고, 조금 더 어둡게 침잠한다. 에이드리앤 렌커는 첫번째 솔로 음반 [Abysskiss]를 통해 또다른 차원으로 올라간 듯 보인다. 꽤 훌륭한 밴드를 이끄는 메인 보컬에서 씬 전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독립적인 뮤지션으로.

그녀의 이름 앞에 같은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는 뮤지션들의 이름을 나열해볼까. 조니 미첼(Joni Mitchell),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 조아나 뉴섬(Joanna Newsome), 그리고 그루퍼(Grouper)와 마운트 이리(Mount Eerie), 어쩌면 선길문(Sun Kil Moon)까지. 인디포크씬의 쟁쟁한 이름들과 비교해도 에이드리앤 렌커의 음악세계는 결코 무르거나 작아보이지 않는다.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노랫가락은 차라리 ‘spoken words’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는 다른 일을 하며 가볍게 듣는 ‘배경음악’으로 그녀의 음악을 취급하는 것을 애초에 차단시킨다. 높라운 집중력이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단촐한 악기구성이지만, 프로듀싱부터 악기연주, 믹싱까지 빅 띠프의 멤버들이 함께 했다. 탄탄한 팀워크가 렌커 개인의 이야기에 올인되었을 때 발휘되는 깊이와 밀도는 상상 이상이다.

[Abysskiss]에는 심지어 위에 열거한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유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음반의 수록곡 중 빅 띠프의 기존 노래들과 가장 비슷한 색깔을 지닌(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랑할) “Cradle”과 “Symbol”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두 곡, “Out of Your Mind”와 “Blue and Red Horses”는 의도적인 불협화음과 엇박자로 뒤덮여 있다. 렌커가 결코 노래를 잘 못 부르는 보컬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 들을 때에는 꽤 의아한 부분으로 느껴질 법 한데, 이건 렌커식 유머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녀는 이 음반에서 상처와 악몽에 집착하여 끝도 없이 밑으로 파고드는 절망과 자기비하로 점철된 시니컬한 유머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덜레덜레 걸어가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미소도 지어주는, 그래서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길을 택한 렌커의 강인한 주체성은 이렇게 청자의 기대를 거스르는 부분들에서 조금 더 도드라진다.

2017년 최고의 음반으로 빅 띠프의 [Capacity]를 꼽았는데, 그 선택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들어도 “미쳤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흡인력을 지닌 음반이다. 렌커의 세계로 가득찬 [Abysskiss]는 빅 띠프의 전작에 비해 한껏 힘을 뺀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사색을 위한 공백과 쉼표, 말줄임표들이 더 눈에 띈다.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웅얼거리는(murmur) 부분도 많고, [Capacity]에서 정점에 달했던 뛰어난 훅이 아예 거세된 노래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bysskiss]는 렌커의 세계를 가장 또렷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2018년 가장 중요한 음반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Boygenius | Boygenius EP

2018년 발매된 뛰어난 음반들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Boygenius EP]를 꼽고 싶다. 이 음반이 나의 ‘Top 5’ 음반 목록에서 제외된 단 하나의 이유는 정규음반이 아니라는 사실때문인데, 이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썩 합당한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이 음반이 가진 파괴력은 엄청나다. 아마도 2018년에 발명된 모든 화음 중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화음을 간직한 음반일 것이고, 2018년에 등장한 모든 음반을 통털어 가장 자신만만한 음반이자 동시에 가장 젠체하지 않는 음반일 것이다.

줄리엔 베이커(Julien Baker)와 피비 브릿저스(Phoebe Bridgers), 루시 데커스(Lucy Dacus)는 필라델피아의 한 음악 페스티벌에서 만나 친해진 이후 함께 투어를 돌자는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이후 몇 번의 만남과 끝도 없이 이어진 이메일들, 그리고 긴 전화통화들을 거친 후 공동 음악작업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단 두 장의 음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줄리엔 베이커 뿐 아니라 피비 브릿저스와 루시 데커스 역시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뮤지션들이었으니, 음악계에서 이 프로젝트를 두고 “인디수퍼그룹”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NPR에서 진행하는 [Tiny Desk Concert] 등에서 몇 곡을 처음으로 선보인 후 발매된 EP는 평단과 팬들 모두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이후 이들은 처음의 약속처럼 – 하지만 이제는 자작곡과 함께 – 열심히 투어를 돌고 있다.

음반은 총 6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의 갯수 뿐 아니라 각 노래의 구성도 단촐하다. 인디 포크와 인디 록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최소한의 악기만을 동반한 채 이들의 목소리에 꽤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세 명이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후렴구에서 하나로 합치되는 구조로 진행되는 곡들이 많은데, 이 지점에서 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세 명의 호흡이 놀라울 정도로 좋기 때문에 그 자체로 귀가 즐겁기 때문이고(마음껏 내지르는 베이커의 목소리가 요정처럼 속삭이는 브릿저스의 목소리와 어울릴 때의 황홀함이란!), 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고 설득력이 있어 귀 뿐 아니라 머리와 마음까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을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여성 개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과 주체성(independence)의 확립이라고 말할 것이다. 타인을 통한, 혹은 타인을 거친 자신의 모습은 떳떳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내재적인 성찰과 반성, 그 이후 드러나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을 통해 보다 단단한 개인 뿐 아니라 세상과의 온전한 관계가 완성될 수 있다. 보이지니어스의 음악은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불편함과 충돌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도 그러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음반의 첫 곡 “Bite the Hand”는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사랑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선언하고 있는데,

난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널 사랑할 수 없어
난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널 사랑할 수 없어
난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널 사랑할 수 없어

여기 너를 최대한 배려한 사랑이 있어
하지만 너는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있어
내 손은 묶여 있는데, 너의 손은 중력과도 같네


이러한 선언은 철저한 자기고백 위에서 조금 더 숭고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센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다. 음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Souvenir”는 줄리엔 베이커를 괴롭혀온 악몽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브릿저스가 “공동묘지”와 “병원”으로 받고, 이걸 다시 데커스가 “손에 박힌 가시”와 “새벽 수술”로 공명함으로써 공감과 연대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후렴구는 단지 “Ooh-ooh-ooh-ooh”일 뿐이지만, 충분히 아름답다. 폭력에 대한 절묘한 시선은 또 어떠한가. “Stay Down”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villian”이라 칭함으로써 폭력의 방향이 일방적일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를 통해 폭력을 멈추기 위한 흐름 역시 일방적일 수 없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음반의 타이틀곡 격인 “Me & My Dog”은 그저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초창기 단편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줄리엔 베이커의 음반들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 역시 베이커의 투어 일정을 확인하던 중 알게 되었다. 하지만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EP를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난 후 뒤늦게 나머지 두 명의 멤버인 피비 브릿저스와 루시 데커스의 음악세계 역시 베이커 못지 않게 아름답고 단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나처럼 일부로부터 시작하여 보이지니어스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간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과정 역시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할 필요는 없다. 배우고 생각하며 조금씩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보이지니어스는 나의 이런 생각에 왠지 동의해줄 것만 같은 음악이다.

Jeff Tweedy: WARM

지난해에는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쓰지 못했다. 음악을 꾸준히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꾸준히 듣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는 ‘물리적 매체(CD든, LP든)의 형식으로 구입한 음반에 대해서만 블로그에서 이야기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위기에 봉착한 첫 해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물리적 음반을 구입하지 않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물리적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음반가게가 주변에 전무하기 때문이고, 둘째, 세종시로 내려온 뒤 우리 가족의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문화적 낭비’를 더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플뮤직에 한달에 만원 정도를 내고 거의 대부분의 음악을 무한정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음반 한 장을 만원 넘게 주고 산다는 것은 낭비에 가까운 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을 끝까지 거부하는 독서광의 취향과도 같은 이 고지식함에는 음반을 손으로 직접 고르는 디깅(digging)과 턴테이블에 음반을 걸고 치직, 거리는 잡음을 듣는 아날로그적 감성 등 낭비되는 금액보다 더 큰 행복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데, 나는 지난해부터 과감히 이 행복을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 일종의 사치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이러한 행복이 없어도 음악을 진실되게 듣는 과정은 전혀 손상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마지막 남은 고집조차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위와 같은 나름의 혼란기(?)를 겪으며 가장 후회되는 것은 지난해 발매된 좋은 음반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가장 좋게 들었던 다섯장의 음반을 인스타그램에 짤막하게 남겨 놓았는데,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
Snail Mail: Lush
Mitski: Be the Cowboy
The Beach House: 7
Khruangbin: Con Todo El Mundo

2018년은 위의 다섯장 외에도 정말 좋은 음반이 꽤 많이 나온 해라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기록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중 2019년 1월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 [WARM]은 ‘올해의 음반’에 필적할 정도로 좋아서 반드시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윌코(Wilco)는 내 세대의 인디음악 팬들에게나, 나 개인에게나 무척 특별하게 다가오는 그룹이다.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을 하나만 꼽으라면 언제나 2009년 7월 3일 콜로라도주 모리슨(Morrison)의 레드락스 야외공연장(Red Rocks Amphitheatre)에서 관람했던 윌코의 공연을 꼽는데, 그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그 날이 내 생일이었고, 제프 트위디가 직접 “오늘 생일인 사람들 모두 축하합니다”라는 멘트를 했다는 점이 물론 가장 큰 이유일 수 있겠지만 이건 너무 개인적이라 공식적(?)인 이유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음악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음반 중 하나를 발표한 예술가임과 동시에 음악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 그룹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공연을 본 뒤 이제 햇수로 10년 째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필적할 정도로 좋은 공연은 보지 못했다. 윌코 정도 되는 엄청난 커리어를 남긴 밴드가 앵콜을 두 번, 세 번씩 열정적으로 서비스하는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고, 곡과 곡 사이에 트위디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로 관객들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훌륭한 무대 매너와 비교될 정도의 입담을 자랑하는 뮤지션도 아직 무대에서 만나보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전통적인 로큰롤 악기 구성에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공기의 밀도를 꽉 채우는 압도적인 사운드메이킹 능력을 보여준 연주실력을 가진 뮤지션도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윌코의 음악을 좋아하는 한국팬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공연을 보라”고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한 셈이다. 그들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가장 미국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 중 하나이자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후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음악을 꾸준히 해온 밴드, 거기에 더해 미국 인디씬의 흐름을 정의내리고 한 시대의 기틀을 확립한 밴드라는 타이틀이 그리 거창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제프 트위디(Jeff Tweedy)는 윌코의 보컬이자 리더이자 알파요 오메가인 아티스트다. 일리노이의 작은 마을에서 노동자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여섯살 때 기타를 선물받고 12살 무렵 자전거 사고로 한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로커빌리와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로컬 밴드의 보컬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뒤 윌코라는 영광의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그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해 첫번째 솔로 음반 [WARM]을 발매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역시) 첫번째 회고록 [Let’s Go]에서 그는 한평생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약물(주로 진통제를 언급하고 있다)을 5주 이상 끊은 적이 단 한차례도 없음을 밝힌바 있다.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팬들을 기다리게 만든 그의 첫번째 솔로 음반은 모두의 예상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둡다. 그리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이 음반으로 인해 트위디가 윌코의 보컬리스트라는 이미 높은 명성에서 한단계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였음을 직감한다. 음반의 형태로 시현된 제프 트위디의 자서전이자 그를 평생 괴롭혀온 정신질환과 약물중독, 그로 인한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감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담아낸 섬뜻한 수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이런 나도 아직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여러분도 다시 한번 힘을 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묵직하게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음악이 별로면 말짱 꽝이기 마련이다. [WARM]의 수록곡은 메시지와 음악적 형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음악적 커리어의 근간이자 뿌리인 컨트리와 포크 음악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딘 채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악기 연주는 제프 트위디가 직접 했는데, 그의 두 아들인 스펜서와 새미 트위디가 각각 드럼과 백킹 보컬로 참여한 점이 이채롭다. (제프 트위디는 2014년 아들 스펜서와 함께 [Sukierae]를 발매한 적이 있다) 가족의 참여는 그로 하여금 조금 더 진실된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게 된다. (아래 지미 키멜 라이브 영상에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백킹 보컬을 하는 이가 아들 새미다) 11곡의 수록곡은 격정적인 정점이나 화려한 편곡같은 ‘할리우드적 포인트’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의 목소리를 조근조근 따라가다보면 결코 지루하지 않게 몇 번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Having Been Is No Way to Be”에서는 약물 중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네가 과거에 했던 마약은 뭐야?
왜 그걸 다시 시작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내 친구들이 아니야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면
마약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게 다 무슨 소용이야


“Bombs Above”에서는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참회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과 같았어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조금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정말 미안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이야기했어
고통은 모든 이에게 마찬가지라고
그는 옳았어.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엔 너무 잘못되었지


제프 트위디의 통렬한 자기고백은 거의 모든 곳에서 너무나 직설적이고도 시적인 방식으로 반복된다. 아름다운 선율과 단촐한 악기구성,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얹혀 전달되는 가사는 침울한 진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가라앉아 있지만, 그의 따뜻한 목소리는 노래를 듣는 타인까지 가라앉히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까. 노아의 방주 신화를 차용한 “Let’s Go Rain”은 시니컬한 자기비하와 리스너에 대한 존중이 함께 들어있는 전형적인 트위디 풍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오, 나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세상의 모든 죄를 씻어버렸지
누군가는 파괴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하지
그리고 난 그게 한번 더 일어날거라고 생각해

내가 한때 크리스찬일 때는 말야(역자주: 트위디는 그의 유대인 아내를 따라 최근 유대교로 개종했다)
그걸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
그런데 지금에서야, 하늘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하늘이 오줌을 갈길 때 비로소 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겠지

오, 난 나무배를 만들어야겠네
나와 함께 기타의 바다에 살지 않겠어?


음악은 아름답다. 가사는 진솔되다. 좋은 음반이 아닐 이유가 없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어야 하는 음반이다.




김민기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2001년, 혹은 2002년 무렵 어느 겨울날 이 뮤지컬을 처음 접했고,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충격은 아마도, 애써 무시하고 있던 세상의 밑바닥을 날것 그대로 접해야 했던 어린날의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이후 두 세번 정도 더 관람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관람 후 계단에서 기다리던 출연진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여유도 생겼지만, 관람 중 어느 순간 맞닥뜨렸던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감동은 여전한 크기로 전해져왔다. 유학을 나와있던 중 [지하철 1호선]이 4천회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느꼈던 서운함도 아직 잊지 못한다. 영원히 달릴 것 같았던, 마냥 씩씩해보였던 작품이 갑자기 운행을 종료한다는 통보를 해왔을 때 느꼈던 서늘하고 먹먹한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가슴 한구석에 살아남아있다. 연속 공연을 중단한 김민기 대표가 이후 아동극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며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조차 없게 된 것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매일 이 작품을 기억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첫번째 관람 이후 이 작품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그런 작품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 속으로 16,17년 전 감정이 살아나는 듯 해 묘한 반가움을 느꼈다. (사실은 뛸 듯 기뻤다) 그 때 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한 감동으로 다가올지도 궁금했고, 그 당시 이 작품을 통해 발견했던 마음 속 깊숙한 곳부터 시작된 아우성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반응할지도 궁금했다. 나는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 몇몇 예술 작품과 서적들을 통해 현재의 자아를 획득한 경우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십대 시절 읽지 않았다면, 머큐리 레브(Mercury Rev)의 [Deserter’s Songs]를 수험생 시절 듣지 않았다면,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책들을 유학을 떠나기 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 1호선] 역시 마찬가지다. 입대 전 방탕한 대학생 시절에 만난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은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지금의 나는 그 때로부터도 멀리 달아나 있지만, 최소한 그 뿌리는 아직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관람하는 것은 최소한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찾았다. 아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 우리가 함께 보는 공연에서 어떤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다시 찾은 학전블루 소극장은 여전히 낡고 좁았다. 좌석은 세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 시간동안 내 뾰족한 엉덩이를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했다. 하지만 앞좌석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고 불편한 좌석도, 매캐한 냄새가 은근히 퍼지는 지하의 공연장도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할 뿐, 공연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을 식혀버리는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공연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경은 여전히 1998년 IMF 위기가 터진 직후였고, 선녀는 여전히 제비를 찾아 1호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그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1998년을 살고 있었다. 혼혈로 태어나 사창가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철수도, 그런 철수를 주워다 키운 곰보할매도, 곰보할매의 가게에서 우동을 외상으로 먹는 안경도, 그런 안경을 사랑하는 걸레도 모두 그대로였다. 지하철에서 UFO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는 교주와 고무장갑을 파는 잡상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공연에서 2018년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부분은 음악이었다. 밴드 ‘무임승차’의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 드럼과 색소폰이 빠지고 바이올린과 건반, 퍼커션이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모든 곡에서 약간의 편곡이 이루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연에서 정말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공연을 올리는 배우들이 바뀌었고, 그 공연을 보는 나와 내 주변의 관람객이 바뀌었다. 우리는 이 작품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1998년의 공기에서 20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 당시의 무겁고 우울한 공기에서 조금씩 벗어난 우리는 이제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의 고단함으로 옮겨온 터였다. 비록 기억은 하고 있을지언정 더이상 그 순간을 살지 않은 우리들이 공연장에서 가장 서서히, 하지만 기어코 가장 극적으로 변해버린 존재가 아니었을까. 한 인터뷰에서 이번 [지하철 1호선]에 참여한 배우 중 과거에 공연되었던 [지하철 1호선]을 직접 경험한 배우는 딱 한 명 뿐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1998년이 2018년의 우리에게 ‘역사’로 기억되는 것처럼, 이 공연의 무대에 서는 배우들에게도 이 작품은 하나의 역사였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에서 작지않은 이질감을 느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선녀와 철수, 걸레와 안경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 이번에 무대에 오른 젊은 배우들이 받아들였을 1998년과 나를 비롯한 객석의 많은 ‘늙은’ 관객이 기억하는 1998년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12월 쯤 되어 예정된 100회 공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 이 배우들은 어떤 공기를 내뿜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관객으로부터 어떤 공기를 받아들일 것이며, 1998년을 반복해서 상기시키는 대사와 몸짓을 통해 무엇을 체화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적지 않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1호선]은 4,000회에서 100을 더해 딱 4,100회까지만 운행한다고 한다. 김민기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정리하고 가야 할” 작품들이 학전에 쌓여 있고, [지하철 1호선]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가장 먼저 털고 넘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이 작품이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이 작품의 2008년, 2018년 버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의 말처럼 만약 그렇게 시대를 한번 더 옮겨야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번안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어야만 할 것이다. 2018년을 살아가는 철수와 걸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변했으며, 우리와 시대 안에 존재하는 공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을 그리고 있는 [지하철 1호선]은 여전히 넘치는 생명력으로 펄떡거렸다. 오프닝에서 선녀가 독창을 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짜릿한 기운은 한 이름없는 술취한 직장인이 남산 아래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다. 선녀의 이야기가, 걸레의 이야기가, 빨간바지의 이야기가 관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 개개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여전히 눈 앞에서 펼쳐졌다. 좁고 불편한 객석에서 세시간 만에 몸을 일으키며 고맙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다시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100회 뿐이라 해도, 이렇게라도 다시 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