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en Baker | Turn Out the Lights

줄리엔 베이커
오직 ‘감정’ 하나로 자신의 음악에 승부를 보려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예술가로서 쌓아올린 자아의 내면을 가감없이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 세계를 완성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몹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온도와 모양이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성 역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감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이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그 감정의 전달(delivery)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의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줄리엔 베이커(Julien Baker)가 작은 음반사 6131에서 데뷔 음반 [Sprained Ankle]을 내놓았을 때 많은 이들이 흥분을 하고 상찬을 보낸 것은 그녀가 고백하는 감정의 조각들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감정이 청자에게 전달되는 과정 역시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타도어(Matador)에 픽업되어 발매한 두번째 음반 [Turn Out the Lights]은 더 큰 기대와 함께 ‘혹시나’하는 걱정을 수반했다.

결과적으로 새음반에서 그녀가 전달하는 울림의 폭은 더 커졌다. 드럼과 베이스같은 리듬파트 악기를 거세한 상태에서 오직 기타와 피아노에 의지해서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음악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후렴구는 코러스와 중첩되어 더 두꺼워졌고, 강하게 내지르는 부분도 더 많아졌다. 떨림은 더 심해졌다. 세심해졌다기 보다는 그 낙폭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커졌다. ‘절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이 복수의 곡들에서 스쳐 지나간다. 흡사 플릿 폭시스의 후렴구를 듣는 듯한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이 느껴진다. 다만, 전작에 존재했던 본이베어와 같은 나른하고 나긋한 자기반성적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전달방식은 여전히 훌륭하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음반 커버와 비슷한 색깔의 어두운 보라색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여전히 갈구한다. 그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절실함을 청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음악적 재능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레코딩 환경에서 명민하게 ‘요령’을 공부한 부지런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새소년 | 여름깃

새소년 여름깃
수퍼루키 새소년의 첫 EP [여름깃]이 내뿜는 진짜 힘은 라이브 무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아직 이들의 ‘소문난 잔치’를 직접 구경해보지는 못했지만, 온스테이지처럼 녹음이 잘 된 라이브 무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레벨은 영상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라이브가 스튜디오 음반보다 뛰어나다는 명성을 가진 대부분의 그룹이 가진 공통점은 연주력이 무척 탄탄하다는 점이다. 음악적 기본기가 뛰어나면 공연의 흐름을 다른 요인들에 빼앗길 확률이 적어진다. 새소년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롱런할 수 있는 밴드 음악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

이번 EP에는 사이키델릭 음악부터 슈게이징, 블루스까지 다채로운 장르가 새소년만이 가지고 있는 바탕 위에 잘 버무려져 있다. 그 독특한 정체성은 아마도 확실히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황소윤 개인이 가진 아우라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접한 거의 모든 음악들 중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확실히 최근 등장한 여성 기타리스트 중 가장 맛깔나게 기타를 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세인트 빈센트처럼 진보적이진 않아도, 미츠키처럼 장르 속에 파묻혀 제멋대로 퍼져나가진 않아도, 본인들의 음악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확실한 화장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 좋은 음악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훅’에 대한 이해, 과잉과 부족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점에 대한 이해 등,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잘 알려진 “긴 꿈”을 비롯해 타이틀곡 “여름깃”, 이들을 록큰롤 아이돌로 만들기에 충분한 섹시한 노래 “파도”, 그리고 EP를 마무리짓는 밴드 이름과 동일한 곡 “새소년”까지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다.

Rival Consoles | Persona

rival consoles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은 시대를 막론하고 일단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문법을 극단적으로 거스르려는 시도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결과물이 성공적일 경우 청자에게는 기분좋은 충격과 함께 ‘귀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 될 수 있다. 크라프트베르크(Fraftwerk)나 초기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지적인 실험들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영역을 한차원 넓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닐스 프람(Nils Frahm)처럼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함께 아우르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이들의 작업들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잉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라이벌 콘솔스(Rival Consoles, 본명은 Ryan Lee West)의 다섯번째 정규음반 [Persona] 역시 이러한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은 특이하게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1966년 발표했던 동명의 영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줄거리만  대충 살펴봐도 엄청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그녀를 보살피던 다른 여자의 인격이 서서히 겹쳐지는 심리 스릴러물이라고 하는데 벌써 거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음반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낀 라이벌 콘솔스의 음악은 다분히 해체적이고 효과적이다. 박자와 박자 사이를 해체하고 음과 음 사이를 분해하여 새롭게 배치하는 구조주의적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그렇게 재배치된 소리들이 마치 음향효과처럼 청자의 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려는 작곡가의 자세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자신을 보살피던 여자를 ‘관찰’한다는 사실을 그녀를 보살피던 여자가 알아차린 뒤 분노한다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라이벌 콘솔스는 소리의 재구성을 통해 보편적인 대중음악이 청자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효과와 조금 다른 차원의 효과를 청자와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점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라이벌 콘솔스의 [Persona]는 최근 들었던 모든 음반들 중 가장 놀라운 집중력과 농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음반의 첫곡 “Unfolding”부터 놀라움을 선사하는데, 이 놀라움은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처음 느꼈을 때의 ‘촉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가 전개되는 내내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래 자체의 완벽함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다.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4/4박자에 질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대중음악이 가진 기승전결이나 훅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이 음반을 무척 즐겁게 들었다. “thrilled,” 혹은 “joyfully tensioned”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Kacey Musgraves | Golden Hour

musgraves
정통 컨트리음악 장르에서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의 커리어에서 2015년 발표한 음반 [Pageant Material]은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대중적인 성공과 평단으로부터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낸 이 음반을 통해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음악세계를 컨트리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정의내리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조금씩, 급하지 않게 컨트리 음악이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시도를 조금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 최근 발매된 [Golden Hour]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고유의 음악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심지어 R&B와 디스코 등 흑인음악의 문법 위에서 만들어진 노래도 있다. 쟁글거리는 통기타와 단조롭게 이어지는 박자 등 전통적인 컨트리 음악을 들을 때 연상되는 사운드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대부분의 노래에서 끈적거리며 밀고 당기는 리듬과 매혹적으로 울려퍼지는 신디사이저가 주도하고 있다. 사실 백인들의 음악인 컨트리에서 흑인음악적 요소를 차용하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음반이 특별히 더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는 머스그레이브스의 시도가 결코 급진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세계가 전이되고 확장되는 과정이 무척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쭉 듣던 그런 스타일의 노래라고 느끼며 감사하다 보면 사실 완전히 새로운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식이다. 그리고 이 사려깊음은 철저하게 머스그레이브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감싸는 포근한 사운드, 그 위에 뿌려지는 결정적인 훅들의 조화로움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음악을 워낙 잘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Happy & Sad”인데, 전형적인 보컬팝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변화가 무쌍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도 매혹적이다. 가사도 전에 없이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다.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 노래는 보다 대표적인 머스그레이브스 스타일의 노래인 “Space Cowboy”와 컨트리 범주 안에서 이해 가능한 “Butterflies”인데, 이 음반이 시도하고 있는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싱글커트곡의 선정이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Khruangbin | Con Todo El Mundo

Con Todo El Mundo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돌 그룹이 되고 품 비푸릿(Phum Viphurit)의 내한공연 예매가 시작된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매진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화산업의 영향력 측면에서 그 흐름의 방향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구권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주고 받거나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영향력의 방향이 일방적인 흐름을 나타냈다면, 모바일과 스트리밍의 시대인 요즘 비서구권 음악의 대외 진출이 조금씩 더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건 단순히 플랫폼의 발달로 인한 원거리 소비의 간편화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비서구권 국가의 정치 및 경제가 조금씩 안정화되면서 서구권 음악을 단순히 수입, 추종했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자생적인 음악생산 환경 및 유통구조를 조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과거 뛰어난 제3세계 음악가가 서구권 매체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일종의 ‘사건’이었다면, 이제는 좋은 음악성과 상품성을 갖춘 비서구권 뮤지션이 안정적으로 배출되고 대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노출되는 일이 일상화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런 음악상품이 일정한 루트를 통해 서구권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시스템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최근 세이 수 미(Say Sue Me)에 엘튼 존이 열광하고 예지(Yeaji)를 피치포크 등의 매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비서구권 국가가 가진 유,무형의 음악적 인프라스트럭처가 이제 어느정도 수준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국어로 비행기를 뜻하는 크룽빈(Khruangbin)은 텍사스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다. 텍사스를 기반으로 잔뼈가 굵은 세 명의 베테랑 연주가가 합심하여 결성한 인스트루멘탈 밴드인데, 6,70년대 타이 훵크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텍사스에 있는 단골 타이 식당에서 타이 훵크 음악을 접했고, 이후 각자 지속하던 활동을 접고 본격적으로 타이 훵크를 파기 시작한다. 이들의 두번째 음반 [Con Todo El Mundo]는 스페인어로 “with everybody”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 남부 시골에서 결성된 다인종 타이 훵크 밴드가 스페인어 제목의 음반을 냈다, 라는 문장이 엄청 힙하게 느껴진다면, 이 음반을 듣고 이들의 음악이 결코 ‘힙’이나 ‘키치’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과거 타이 훵크를 현재에 되살리는 수준을 넘어선, 미국의 느끼한 버터냄새가 잔뜩 추가된 고유하고 세련된 네오-사이키델리아 소울 세상이다. 세르주 갱스브루,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 같은 대가들의 영향력도 느껴지고, 리버브가 꽉 물린 기타 사운드에서 물결따라 흔들거리는 서프 뮤직의 향기도 맡을 수 있다. 타이 훵크를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감상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그 편이 크룽빈의 음악을 또렷하게 각인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듯 ‘남부 타이 훵크(Southern Thai Funk)’라는 영역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크룽빈이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어보인다.

Kasbo | Places We don’t Know

kasbo
스웨덴 출신 전자음악가 칼 가스보(Carl Garsbo)의 스테이지 네임 카스보(Kasbo)가 2018년 발매한 데뷔 음반 [Places We don’t Know]를 반복해서 듣는 와중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chill,’ 혹은 ‘chillout’ 뿐이었다.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하거나 심심하지도 않게 음반 전체를 균일한 온도로 채워나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카스보의 국적을 알아보기 전 이미 진동하는 ‘북유럽 냄새’를 맡으며 이 음악가의 음악적, 생물학적 배경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꽤 괜찮은 훅을 가진 미디움 템포의 깔끔한 팝-일렉트로닉 넘버가 잔뜩 포진해 있어 듣는 내내 귀가 즐거운 편이다. 엄청난 새로움이나 대단한 혁신은 없지만, 패션 핏(Passion Pit)이나 처치스(Chvrches)같은 젊은 전자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이레이저(Erasure), 뉴 오더(New Order) 등의 음악을 좋아한 전력이 있다면 불편함 없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이번 데뷔 음반의 첫 싱글 “Aldrig Mer”나 “Over You”같은 곡에서는 카스보가 객원보컬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 음반에서 개인적인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Snow in Gothenberg”(칼 가스보의 고향이 스웨덴 구텐베르그다) 에서는 상당히 광활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Mount Eerie | A Crow Looked at Me

eerie
“예술가는 불행할 때 최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속설은 가끔 너무 잔인하게 다가온다. 일개 청자에 불과한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던질 때 따라오는 책임감은 먼지처럼 가볍지만, 정작 이 명제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게 되면 아찔하고 서늘한 죄책감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워싱턴 주 출신 필 엘버룸(Phil Elverum)의 1인 프로젝트 마운트 에리(Mount Eerie)의 2017년 작품 [A Crow Looked at Me]는 예술가 개인의 불행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반이다.

필 엘버룸의 아내 제네비에브 고셀린(Genevieve Gosselin)은 2015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은둔형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았던 이 부부가 2016년 공개적으로 GoFundMe 페이지를 통해 병원비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절박한 곳까지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병원비는 바닥났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고셀린은 2016년 여름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엘버룸의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 [A Crow Looked at Me]가 발매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완벽에 가까운 평을 받으며 그 해의 음반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마운트 에리는 행복해졌을까?

[A Crow Looked at Me]는 나지막한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이 음반을 여는 첫번째 노래 “Real Death”는 반주조차 없이 “Death is real”이라는 엘버룸의 건조한 목소리로 시작하여 (차마 노래라고 할 수조차 없는 울먹거림으로) “I love you”라고 말하며 끝맺는다. 바로 이어지는 두번째 노래 “Seaweed”에서는 “우리에겐 1년 6개월 된 딸이 있어. 당신이 죽은지 이제 11일이 되었네”라는 가사를 무심하게 내뱉는다. 음반의 가사는 엘버룸 개인이 겪은 실제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수필에 가깝다. 통기타만이 외롭게 떠받치는 그의 목소리는 말하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혹은 울먹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이정도 수준의 실제적 고통의 기록을 청자의 입장에서 ‘즐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물론, 데이비드 벤의 [자살의 전설]처럼 사적 경험을 비틀어 예술의 영역에서 풀어놓는 방식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폴 엘버룸이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또 지나치게 깊다보니 이것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버거울 뿐이다.

폴 엘버룸의 몸부림은 이 음반 이후 이어진 [Now Only]에서 계속된다. 예술가 개인의 불행을 통해 대중음악계가 또 한 장의 명반을 건진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인 것인가, 고민해보게 된다.

Typhoon | Offerings

typhoon
타이푼(Typhoon)의 노래 “Empiricist”를 NPR의 All Music Considered 팟캐스트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행동거지를 바지런하게 가다듬었다. 노래가 끝난 뒤 팟캐스트를 통해 두 DJ의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 역시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Empiricist”는 참으로 신기한 노래였다. 8분이 넘는 이 긴 곡은 지루할 틈 없이 서정성을 맹렬하게 내뿜는다. 서정적이라는 표현과 맹렬하다는 표현이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노래는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들끓는듯한 마음을 단정한, 하지만 만연체의 수필로 꾹꾹 눌러담은 듯한 이 기묘한 곡은 나로 하여금 타이푼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타이푼은 오레곤주 살렘(Salem) 출신 밴드다. 밴드 멤버는 모두 열두명에 이른다. 밴드라기 보다는 작은 오케스트라, 혹은 빅밴드의 형태에 가깝다. 노래를 부르고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사를 쓰는 카일 모튼(Kyle Morton)이 밴드의 핵심이다. 현재 오레곤주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포틀랜드 기반 밴드인 디셈버리스트(The Decemberists)나 밴드의 구성이 비슷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가 비교대상으르 주로 거론되지만, 타이푼의 네번째 음반 [Offerings]만 듣고나면 오히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나 나띵(Nothing)같은 슈게이징 밴드가 먼저 생각난다. 로우(Low)로 대표되는 슬로코어 음악들도 연상이 된다. 다만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기타노이즈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고자 한다면 타이푼은 기타에만 의존하지 않는 풍성한 사운드 구성 속에서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라인을 또박또박 낭독하는 느낌이다. (그럼 결국 다시 아케이드 파이어인가?!) 실제로 [Offerings]는 13개의 노래가 총 네 챕터로 나뉜 구조를 따르고 있다. 밴드 리더 카일 모튼에 따르면 “Floodplains,” “Flood,” “Reckoning,” 그리고 “Afterparty”로 구성된 음반의 네 부분은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인간의 심경 변화를 순서대로 나타낸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현대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들의 심오한 철학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음반의 구성에 따라 곡의 성격과 색깔이 명확히 나뉘는 것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다. 음반을 시작하는 첫 세 곡, “Wake,” “Rorschach,” “Empiricist”는 노래 외에 그 어떤 소음도 불필요한 존재로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세 노래가 마치 한 노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도 좋고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각 노래 안에서의 구성도 좋다. 하지만 이후 음반의 중반 부분은 힘이 달린 듯 뒷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용두사미가 될까 걱정되는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Darker”부터 시작되는 음반의 후반부에 배치된 곡들이다. 첫 세 곡에서 느껴졌던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으며 음반을 단단하게 마무리한다.

NPR의 팟캐스트 All Songs Considered를 공동 진행하는 로빈 힐튼(Robin Hilton)은 이 노래를 소개하며 “맙소사, 타이푼의 이 음반은 실로 대단하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Carrie and Lowell]이후 처음으로 음반을 들으며 울음을 터뜨렸다”라고 언급했다. 힐튼의 수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케 하는 수작이다. 그러고보니 수프얀 스티븐스도 오레곤주 유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오레곤 출신 뮤지션들 특유의 서정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제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미쉘 자우너도 어린 시절을 부모님과 오레곤 유진에서 보냈고. 하여튼 그 동네에 뭔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The Edge of Daybreak | Eyes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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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즐겨보았다. 회차마다 챙겨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열심히 시청했다.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얼마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된 만화를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고, 이때부터 교도소 생활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여러 매체의 평을 종합해보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실제 교도소 생활에 대한 고증이 꽤 잘된 편이라고 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위의 만화와 드라마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꽤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교도소에 들어간, 소위 죄를 지은 사람들의 내면은 그렇지 않은 ‘일반인’이 쉽게 깔아뭉개고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조금 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말해보자면, 감옥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은 맑고 건강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흔히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 중 하나로 블루스를 꼽는다. 이 블루스의 형식을 만든 ‘시조’ 중 상당수가 감옥생활을 하던 흑인 노예들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그리 놀랍지 않은 부분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백인 주인을 살해한 노예, 배가 너무 고파 먹을 것을 훔친 노예, 매를 맞는 것이 너무 아파 구역을 벗어나 도망치다 잡힌 노예, 그외 이런저런 이유로 감옥에서 만난 흑인들이 모여 신세를 한탄하며 흥얼거린 가락이 구전으로 전해져 블루스라는 짧고 우울한 형식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쁜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오히려 감옥이라는 삭막한 공간에서조차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의 눈에는, 이들에게 감옥 안에서 노래 한줄 부를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엄청난 특혜나 불평등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옥과 평생 인연을 맺을 일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죄수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처벌’에 대한 중세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이들에게 허락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박탈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1970년대 버지니아 주립 교도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6년에서 60년까지 다양한 형량을 선고받은 흑인들이 ‘포우헤이튼(Powhatan)’이라는 애칭을 가진 버지니아 주립교도소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단순 강도부터 살인까지, 이들의 죄목은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꽤 괜찮은 음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피아니스트였던 맥어보이 첼리스 로빈슨(McEvoy Chellis Robinson)은 열명의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들끼리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1969년 약국에서 물건을 훔친 죄로 구속되었다. 제임스 캐링턴(James Carrington)은 가스펠 그룹에서 활동하며 버지니아 지역의 뛰어난 R&B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사귀던 백인 여자친구의 부모가 그를 여자친구 폭행혐의로 고발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렸다. 자할 누비(Jamal Jahal Nubi)의 아버지는 블루스맨이었다. 그 역시 버지니아 지역에서 다양한 그룹을 이끌며 퍼커션 주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어느 파티에서 친구들이 그의 차를 몰래 훔쳐타고 나간 사건이 발생했고, 그 차가 나중에 범죄단체에 이용되면서 차의 주인이었던 누비는 순식간에 공범으로 몰려 구속되었다. 이 외에도 코넬리우스 “닐” 케이드(Cornelius “Neal” Cade), 해리 콜먼(Harry Coleman)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진 ‘전직’ 음악가들이 교도소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감옥에서 만나 엣지 오브 데이브레이크(The Edge of Daybreak)라는 그룹을 결성한 것은 그래서 우연이라기 보다는 필연에 가까웠다.

누메로(Numero) 레코드에서 내놓은 61번째 복각판은 이 엣지 오브 데이브레이크라는 그룹이 포우헤이튼 교도소에서 만든 최초이자 마지막 정규 음반 [Eyes of Love]다. 이 음반은 1979년 9월 14일, 단 하루, 다섯시간만에 녹음되었다. 그룹의 멤버 캐링턴은 버지니아의 리치몬드에 위치한 알파 오디오(Alpha Audio) 스튜디오에 녹음을 부탁했지만, 교도소 당국은 보안상의 이유로 외부 녹음을 거절했다. 당시 3천불 정도였던 녹음비용 역시 죄수 신분이었던 그룹 멤버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결국 당시 알파 오디오의 사장이 모든 금액을 지불하고 8명의 특별 감시관을 추가로 고용한 뒤에야 교도소 당국의 감시 하에 녹음을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다섯시간 뿐이었다. 모든 곡은 원테이크 형식으로 녹음되어야 했다. 음반에 수록된 8곡 중 “Our Love”는 교도소측의 빨리 끝내라는 독촉을 받으며 서둘러 녹음된 노래다. 그 와중에 지역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고 비싼 퍼커션까지 빌려 녹음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Eyes of Love]는 1980년 몇몇 지역 라디오와 언론에서 주목하기도 했지만, 초판으로 발매된 약 3천장의 음반이 홍수로 인해 유실되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멤버들은 각기 다른 교도소로 뿔뿔히 흩어졌고, 두번째 음반은 녹음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어떤 멤버는 출소하여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재개했지만, 다른 멤버는 끝내 바깥 공기를 다시 마시지 못하고 교도소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음반은 버지니아 로어노크시의 한 레코드샵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이후 누메로 레코드를 통해 복각되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이 완성한 8곡의 소울-블루스 발라드는 무척 아름답다. 다섯시간만에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만큼 여유롭고 따뜻하다. 이 음반의 발매사는 ‘포우헤이튼 교정당국’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위와 같은 뒷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음반을 처음 듣는다면 꽤 특이한 이름을 가진 레이블이 훌륭한 음반을 발매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감옥이라는 삭막함(이 역시 평범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악기 연주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단 여덟곡만이 존재하는 바람에 바이닐의 앞뒷면을 뒤집고 다시 플레이시키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 음반을 계속해서 플레이시키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영혼을, 우리가 감히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말이다.

Jackie Shane | Any Other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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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쉐인(Jackie Shane)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누메로 레코드에서 나온 복각판 [Any Other Way]의 발매소식을 통해서였다. 그 전까지 이런 아티스트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부터 잊혀진 음악가를 발견해서 새롭게 조명받게 만드는 미국 음악산업의 마케팅 기법이 참 부럽기도 하다) 1971년 토론토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진 뒤 그녀는 ‘완전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다. 2006년 음악연구가 빌 먼슨(Bill Munson)이 재키 쉐인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프랭크 모틀리(Frank Motley)로부터 그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아 직접 통화에 성공하기 전까지, 음악계에서 재키 쉐인은 사자(死者)로 기억됐다. 누메로 레코드에서 발매된 [Any Other Way]은 재키 쉐인이 발매한 여섯장의 7인치 음반과 공연 실황에서 뽑은 노래 2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가로서 넘치는 끼와 폭발적인 에너지, 음악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열정,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펑크-소울 음악과 끈적한 블루스 음악이 한가득 담겨 있다. 1960년대 토론토와 보스턴 지역의 인디 R&B 씬에 대한 흔적을 찾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또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흑인 여성 음악가가 백인 중심의 타지에 뿌리를 내리고 인정을 받기까지 거쳐야 했던 많은 과정들을 따라가다보면 재키 쉐인이라는 인물이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캐나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자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198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 재키 쉐인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숫자로 정리된 그녀의 커리어는 단촐하지만,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강렬하다. 그녀는 1940년 내쉬빌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는데, 네살 무렵부터 여자아이 옷을 입고 노는 것을 즐겼고 여섯살 무렵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운명이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다. 1947년 조부모가 사망한 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오하이오로 이주했지만 열살 때 다시 내쉬빌로 돌아왔고, 그곳에 있는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스펠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녀의 첫번째 우상은 냇 킹 콜이었다. 13살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러한 그녀를 인정하고 지지했다.

여성 음악가로서 재키 쉐인의 커리어는 십대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펍에서 드러머로 채용되어 정기적인 공연을 가지기 시작한 그녀는 곧 주목을 받아 엑셀로/내쉬보로(Excello/Nashboro) 스튜디오 밴드의 정규 멤버로 채용되었고, 자신의 밴드 라벨 앤 먼데이(Lavelle and Monday)를 이끌어나갔다.

1958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음악적 정착지를 찾던 그녀가 새롭게 발견한 곳은 캐나다의 몬트리얼이었다. 흑인들이 그나마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내쉬빌을 떠나 당시 백인과 가톨릭이 중심이 된 도시였던 몬트리얼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그녀와 그녀의 밴드가 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머물던 호텔에 갑자기 갱스터 무리가 들이닥쳐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던 와중 갱스터 집단의 리더가 그만 재키 쉐인에게 꽂혀버렸다. 자신이 키워줄테니 이곳에 계속 머물러라, 만약 나를 떠난다면 당장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그녀를 협박했다. 당시 19살이었던 그녀는 이것이 운명인갑다, 싶어 그곳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갱스터 두목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음악활동을 이어나갔고, 시내 다운타운의 한 클럽에서 프랭크 모틀리를 만나 그녀 커리어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밴드를 얻었다. 모틀리는 디지 길레스피에게서 트럼펫을 사사했다. 쉐인과 모틀리는 1959년부터 몬트리얼의 여러 클럽을 돌며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청중은 보통 200명, 혹은 300명 내외였다. 그때까지 쉐인은 화장을 예쁘게 했지만 남성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당시에는 주로 미드-슬로우 템포의 블루스 넘버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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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토론토로 넘어와 조금 더 큰 규모의 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윌리엄 벨(William Bell)의 노래 “Any Other Way”를 처음으로 커버한 것도 1962년, 토론토에서였다. 이 노래에는 윌리엄 벨이 직접 쓴 가사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Tell her that I’m happy, tell her that I’m gay

쉐인은 가사 중 이부분이 좋아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Cookin’ 레코드에서 발매되었고, 보스턴과 토론토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토론토에는 R&B만을 다루는 라디오 방송국이 없었지만 “Any Other Way”는 지역 차트에서 2위까지 상승했다. 토론토는 이후 1971녀까지 쉐인과 모틀리가 실제로 거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그녀의 첫번째 전성기가 펼쳐졌다. 토론토와 보스턴 뉴욕에서 그녀가 커버한 노래들이 7인치 음반으로 발매되었고 빌보드에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남성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지만, 머리를 한껏 길렀고 하이힐도 신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는 토론토의 사파이어 터번(Saphire Tavern)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지게 되었는데, [Any Other Way]의 뒷부분을 채우는 라이브 실황도 바로 이곳에서 녹음되었다. 토론토 지역사회에서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하며 그녀의 정체성도 보다 확실히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마치 마이클 잭슨을 만난 것 같았다”며 기뻐했고, 그녀와 누군가가 데이트라도 하면 다음날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많은 지역 음악가들이 그녀와 교류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녀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늘어놓았다. 재키 쉐인의 공연은 당시 토론토에서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구성요소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을 찾은 후부터 지속적으로 차별을 경험한 그녀지만 대외적으로 활발한 양성평등 운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그녀 역시 자신이 다르게 취급받는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공연장에서 종종 모놀로그를 길게 행하곤 했는데(누메로 레코드의 복각판에도 “Money”라는 제목의 트랙에서 그녀의 유쾌한 모놀로그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중 상당부분이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에 대한 그녀의 쿨한 반응과 마음다잡기에 할애되었다고 한다.

“당신들은 나랑 함께 여행을 해봐야 아, 예수가 재림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엄청 몰려다닌다니까요. 그들은 제가 손을 잡아주고 축복을 내려줄거라는 것을 알죠. 영혼도 치료해주고요. 그러니까 나에게 돈을 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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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그녀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새로운 집을 구했고, 이후 내쉬빌과 토론토, LA 등에서 공연을 하며 커리어를 마무리짓는다. 1971년의 대부분을 LA에서 보냈는데, 당시 그녀는 10년 넘게 계속된 공연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고 한다. 프랭크 모틀리는 여전히 토론토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모틀리는 그녀가 컴백하기를 바랬지만, 쉐인은 콩코드 터번(Concord Tavern)에서 단 한번의 공연을 더 행한 뒤 완전히 사라진다. 몇번의 공연이 더 약속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틀리는 공연 약속을 이행하라며 칼을 들고 쉐인을 위협했지만, 이번에는 몬트리얼에서 만난 갱스터 두목의 위협에 응했던 때와는 달리 초연하게 거절하고 뒤돌아섰다. LA에는 연인과 어머니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7년 그녀의 어머니 제시(Jessie)가 숨질 때까지 그녀 옆에서 조용히 삶을 이어나갔다.

2016년, 토론토 도심에 위치한 22층짜리 한 빌딩에 벽화가 그려졌다. 토론토의 음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곳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의 초상화였다. 글렌 굴드(Glenn Gould)와 B.B.킹(B.B. King)처럼 우리에게 잘 열려진 뮤지션들 사이 한가운데에 위치한 재키 쉐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제가 잊혀졌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군요. 제가 했던 공연들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고마움을 표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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