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 John Misty | God’s Favorite Customer

FJM_GodsFavoriteCustomerCover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가 서브팝(Sub Pop)에서 발표한 네번째 정규 음반 [God’s Favorite Customer]는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발매되었다. 75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 꾹꾹 눌러담은 역작 [Pure Comedy]가 불과 1여년전 이맘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영미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은 일반적으로 새 음반을 발표한 후 꽤 오랜 기간 투어를 다니기 마련인데, 파더 존 미스티 정도 되는 스타급 뮤지션은 북미 지역과 유럽 지역의 주요 도시들만 돌아다녀도 1년이 훌쩍 넘는 기간을 버스와 비행기 안에서 보내게 된다. 기나긴 투어 기간과 이후 재충전을 위한 휴식 기간, 그리고 새로운 음반 작업을 위한 기간까지 고려하면 음반과 음반 사이 간격이 2,3년 쯤 된다고 해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이 불세출의 유머감각(!)을 가진 뮤지션이 불과 1년만에 새로운 음반을 발매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번아웃 증후군’까지 떠올리며 걱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그러한 근심(?)과는 달리, 그리고 1년이라는 짧은 음반 발매 간격이 무색하게, 2018년 발매된 새 음반 [God’s Favorite Customer]은 전작과 비교해도 결코 뒤쳐진다고 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전작 [Pure Comedy]가 음악가가 과시할 수 있는 ‘과잉’의 가장 현명한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한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 [God’s Favorite Customer]는 파더 존 미스티가 쇳소리 나는 둔탁한 소리들을 잠시 옆에 개켜두고 가벼운 옷을 걸쳐 입어도 충분히 그 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또다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과 (역시 상대적으로) 단촐한 악기 구성, 그리고 조금 더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솔직한 목소리’로 무장한 이번 음반은 파더 존 미스티가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더하게 만든다.

이번 음반의 주요한 특징 두가지로 파더 존 미스티 스타일의 발라드가 거의 완성되었다는 점과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올뮤직(allmusic.com)은 이번 음반을 초기 엘튼 존(Elton John)의 음악과 비교하며 발라드에 대한 파더 존 미스티의 애정이 무척 잘 드러난 음반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나도 이 점에 적극 동의한다. 그는 분명 고전적인 장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내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쉬 틸먼(Josh Tilman)만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져 ‘파더 존 미스티 워드’를 점점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음반은 지금까지 그의 음반에 등장한 많은 이야기들이 품고 있던 위악적 유머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Mr. Tilman”과 “Just Dumb Enough to Try” 등 음반의 베스트트랙을 듣고 있다 보면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면으로 파고드는 대신 음반의 색깔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절망스러워보이진 않는다. 걱정스럽다기 보다는 당연히 따라오는 수순처럼 느껴진다.

파더 존 미스티가 발표한 세 장의 전작들 모두 나는 무척 좋게 들었다. 그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Pure Comedy]에 이르러 인디씬을 대표하는 맹주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God’s Favorite Customer]는 나의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좋은 음반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음반이 충분히 올해의 음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Beach House | 7

beach house
2015년 한 해에만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이례적인 생산성을 보여주었던 비치 하우스(Beach House)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2018년에 엄청난 음반을 발표해버렸다. 이들의 일곱번째 정규 음반 [7]은 [Bloom] 이후 오랜만에 비치 하우스의 음악이 지체없이 내뿜는 폭발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드림팝, 혹은 슈게이징에는 두 개의 양가적 세계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방구석’이다. 신발이 뚫어져라 땅바닥만 쳐다보며 연주하는 방구석 덕후들이 만드는 음악이 드림팝이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을 ‘흑백’이라고 느꼈다면 그건 아마 이 방구석에서 스물스물 풍겨져 나오는 곰팡이 냄새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방구석 안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는 꿈나라 속 ‘신세계’다. 이들은 방구석 안에서 세계를 꿈꾸고 우주를 꿈꾸고 환상을 만들어낸다. 방구석 안 원더랜드가 덕후들이 뛰어노는 낙원이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을 출렁이는 물결처럼 느꼈다면 그건 아마 뮤지션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무한한 신세계를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7]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세계를 드러낸다. 고개를 조금 더 치켜 들었고 목소리에도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사운드는 전에 없이 탄탄하고 화려하다.

[Depression Cherry]와 [Thank You Lucky Star]는 비치 하우스만의 독특한 ‘방구석’ 냄새를 잘 담아낸 음반이다. 즉, 멜랑꼴리하면서도 달콤쌉싸름한 비치 하우스식 발라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성이었다. [7]은 조금 결이 다르다. 첫곡 “Dark Spring”부터 위풍당당하고 화려하며 거침이 없다. 물론 이들의 가사는 여전히 [Teen Dream] 시절부터 고유하게 유지해온 십대의 멜랑꼴리한 정서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지만,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첫곡에서 “Pay No Mind”로 이어지는 연결지점에서 본이베어(Bon Iver)의 [Bon Iver] 음반이 떠올랐다. 그만큼 청량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Lemon Glow”까지 이어지는 음반의 전반부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Teen Dream] 이후 이들이 보여준 집중력 중 최고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치 하우스 멤버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프랑스어로 만든 “L’Inconnue”는 음반 내에서 조금 특이한 곡인데, 비치 하우스의 최근 작품들보다는 서브팝(SubPop) 레코드와의 계약 전 인디 시절의 색채가 조금 더 강하게 드러난다. 아마 첫녹음 이후 5년 만에 공개된 노래여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Drunk in LA,” “Dive”로 이어지는 음반의 중반부를 지나 “Lose Your Smile”에 다다르면 비치 하우스만이 간직한 ‘신세계’가 무엇인지 조금 더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R&B, 디스코 등 새로운 장르와의 적극적인 교배는 이 음반이 가진 또다른 매력이다. “Black Car”에서는 전위적인 신디 사운드가 노래의 첫 1분을 지배한다. “Dive”에서는 비치 하우스만의 멜랑꼴리한 정서가 하나의 장르로 거의 정착되었음을 확신케 만드는 강한 에너지를(그만큼 강한 드럼 비트와 함께) 느낄 수 있다.

[7]은 비치 하우스의 긴 음악 커리어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각각의 노래는 고유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아마도 이들의 변화한 녹음방식덕분일 것이다. 모든 곡을 한꺼번에 녹음하던 전과 다르게 멤버들은 하나의 노래에 대한 작곡, 작사 작업이 끝나면 그 즉시 녹음을 시작했다. 작곡과 녹음 작업을 꾸준히 병행한 결과 각각의 노래가 가진 개성이 조금 더 잘 살아날 수 있었다. 이것이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 음반이 가진 또다른 미덕이다. 음반 전체가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능력은 원숙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지만,  결코 힘은 빠지지 않았다. 좋은 드림팝 음반이다.

김해원 | 바다와 나의 변화

김해원
김사월X김해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이들의 음악은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김사월X김해원 들어봤어요?” “네, 완전 대박” 따위의 대화를 자주 주고받았다. 이들의 음악에 심장이 뛰었던 사람들은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크씬에 일으킨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을 넘어 한국 음악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이들의 음악은 서늘하면서도 뜨거웠고, 명쾌하면서도 다차원적이었으며, 매혹적이지만 마냥 살갑게 굴지도 않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김사월은 두 장의 솔로 음반을 통해 인디씬에 확고한 자기만의 위치를 만들었다. 주체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명료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녀의 음악은 단순히 잘 만든 음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김사월의 목소리를 꾸준히 접하는 동안 김해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프로듀싱과 영화음악 등을 통해 음악가와 청자, 감독과 관객의 매개자로 활동”해온 그가 “스스로 텍스트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곡, 작사는 물론 연주와 녹음, 편곡과 믹싱까지 음반 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힘으로 해낸 [바다와 나의 변화]는 놀라운 수준의 들끓는 에너지가 절제된 목소리 안에 고요히 담겨 있는 묘한 작품이다. 도시를 떠나 바다를 가까이 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김해원은 이번 음반에서 오롯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찰은 깊은 수준까지 내려간다. 연인 사이에도 드러내기 힘든 마음의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긁어내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주는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소리의 빈공간조차 농밀하게 채워져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로 작곡은 빈틈이 없다. 홈레코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녹음도 깔끔하다.

이 음반은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지극히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엇 스미스를 삼촌으로 둔 수프얀 스티븐스가 빅 띠프의 멤버들과 음반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첫곡 “Hungry Boy”에서 김해원은 ‘소리’를 직조하는 과정에서 단 일보도 후퇴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헝클어진 머리”와 “불길”에서는 이 음반을 듣는 청자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만큼 솔직해질테니, 나의 음악을 듣는 당신도 진실해지길,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다. “Television” 쯤에 이르면 김해원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제 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봤어”라는 단 한 줄의 가사를 두 번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후 묵묵히 이어지는 연주를 통해 화자의 감정을 절절하게 노출한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 라고 반문하는 이 노래를 듣는 청자의 마음도 함께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불길”과 “새벽녘”에서 보여주는 김해원의 기타 연주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인데, 이는 단순히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 악기연주를 통해 어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Listener”와 “종달새”에서는 그의 음악적 뿌리가 여전히 포크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잊고 있었다!), “Why So Hard?”에서는 김해원식 아름다움의 한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왜 후반부에 배치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이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순수하게 아름답다. 이 곡에 이어지는 음반의 타이틀곡 “바다와 나의 변화”과 음반을 마무리짓는 “오늘”에서는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화자의 서늘한 고백을 마주해야 한다. “차가워지는 물”과 “짐이 되어가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끼는 것들과 사람을 위해” “무거운 옷”을 입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고 되내이는 김해원의 고백을 듣다보면 얼굴의 솜털이 삐죽 곤두설 정도로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 가만히 자리잡고 있는 뭉클하고 뜨거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좀처럼 갖기 힘든 기이한 체험이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우리가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을 통해 상상하고 기대했던 김해원의 음악보다 훨씬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맑은 음악을 [바다와 나의 변화]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다. 윤영배 이후 언제 이토록 좋은 포크 음반을 접해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에게는 현재까지 이 음반이 ‘올해의 음반’이다. 최소한, 상반기 최고의 음반이다. 최소한. 반드시 헤드폰으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Julien Baker | Turn Out the Lights

줄리엔 베이커
오직 ‘감정’ 하나로 자신의 음악에 승부를 보려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예술가로서 쌓아올린 자아의 내면을 가감없이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 세계를 완성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몹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온도와 모양이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성 역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감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이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그 감정의 전달(delivery)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의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줄리엔 베이커(Julien Baker)가 작은 음반사 6131에서 데뷔 음반 [Sprained Ankle]을 내놓았을 때 많은 이들이 흥분을 하고 상찬을 보낸 것은 그녀가 고백하는 감정의 조각들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감정이 청자에게 전달되는 과정 역시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타도어(Matador)에 픽업되어 발매한 두번째 음반 [Turn Out the Lights]은 더 큰 기대와 함께 ‘혹시나’하는 걱정을 수반했다.

결과적으로 새음반에서 그녀가 전달하는 울림의 폭은 더 커졌다. 드럼과 베이스같은 리듬파트 악기를 거세한 상태에서 오직 기타와 피아노에 의지해서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음악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후렴구는 코러스와 중첩되어 더 두꺼워졌고, 강하게 내지르는 부분도 더 많아졌다. 떨림은 더 심해졌다. 세심해졌다기 보다는 그 낙폭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커졌다. ‘절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이 복수의 곡들에서 스쳐 지나간다. 흡사 플릿 폭시스의 후렴구를 듣는 듯한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이 느껴진다. 다만, 전작에 존재했던 본이베어와 같은 나른하고 나긋한 자기반성적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전달방식은 여전히 훌륭하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음반 커버와 비슷한 색깔의 어두운 보라색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여전히 갈구한다. 그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절실함을 청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음악적 재능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레코딩 환경에서 명민하게 ‘요령’을 공부한 부지런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새소년 | 여름깃

새소년 여름깃
수퍼루키 새소년의 첫 EP [여름깃]이 내뿜는 진짜 힘은 라이브 무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아직 이들의 ‘소문난 잔치’를 직접 구경해보지는 못했지만, 온스테이지처럼 녹음이 잘 된 라이브 무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레벨은 영상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라이브가 스튜디오 음반보다 뛰어나다는 명성을 가진 대부분의 그룹이 가진 공통점은 연주력이 무척 탄탄하다는 점이다. 음악적 기본기가 뛰어나면 공연의 흐름을 다른 요인들에 빼앗길 확률이 적어진다. 새소년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롱런할 수 있는 밴드 음악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

이번 EP에는 사이키델릭 음악부터 슈게이징, 블루스까지 다채로운 장르가 새소년만이 가지고 있는 바탕 위에 잘 버무려져 있다. 그 독특한 정체성은 아마도 확실히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황소윤 개인이 가진 아우라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접한 거의 모든 음악들 중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확실히 최근 등장한 여성 기타리스트 중 가장 맛깔나게 기타를 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세인트 빈센트처럼 진보적이진 않아도, 미츠키처럼 장르 속에 파묻혀 제멋대로 퍼져나가진 않아도, 본인들의 음악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확실한 화장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 좋은 음악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훅’에 대한 이해, 과잉과 부족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점에 대한 이해 등,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잘 알려진 “긴 꿈”을 비롯해 타이틀곡 “여름깃”, 이들을 록큰롤 아이돌로 만들기에 충분한 섹시한 노래 “파도”, 그리고 EP를 마무리짓는 밴드 이름과 동일한 곡 “새소년”까지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다.

Rival Consoles | Persona

rival consoles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은 시대를 막론하고 일단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문법을 극단적으로 거스르려는 시도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결과물이 성공적일 경우 청자에게는 기분좋은 충격과 함께 ‘귀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 될 수 있다. 크라프트베르크(Fraftwerk)나 초기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지적인 실험들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영역을 한차원 넓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닐스 프람(Nils Frahm)처럼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함께 아우르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이들의 작업들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잉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라이벌 콘솔스(Rival Consoles, 본명은 Ryan Lee West)의 다섯번째 정규음반 [Persona] 역시 이러한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은 특이하게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1966년 발표했던 동명의 영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줄거리만  대충 살펴봐도 엄청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그녀를 보살피던 다른 여자의 인격이 서서히 겹쳐지는 심리 스릴러물이라고 하는데 벌써 거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음반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낀 라이벌 콘솔스의 음악은 다분히 해체적이고 효과적이다. 박자와 박자 사이를 해체하고 음과 음 사이를 분해하여 새롭게 배치하는 구조주의적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그렇게 재배치된 소리들이 마치 음향효과처럼 청자의 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려는 작곡가의 자세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자신을 보살피던 여자를 ‘관찰’한다는 사실을 그녀를 보살피던 여자가 알아차린 뒤 분노한다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라이벌 콘솔스는 소리의 재구성을 통해 보편적인 대중음악이 청자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효과와 조금 다른 차원의 효과를 청자와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점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라이벌 콘솔스의 [Persona]는 최근 들었던 모든 음반들 중 가장 놀라운 집중력과 농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음반의 첫곡 “Unfolding”부터 놀라움을 선사하는데, 이 놀라움은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처음 느꼈을 때의 ‘촉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가 전개되는 내내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래 자체의 완벽함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다.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4/4박자에 질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대중음악이 가진 기승전결이나 훅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이 음반을 무척 즐겁게 들었다. “thrilled,” 혹은 “joyfully tensioned”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Kacey Musgraves | Golden Hour

musgraves
정통 컨트리음악 장르에서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의 커리어에서 2015년 발표한 음반 [Pageant Material]은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대중적인 성공과 평단으로부터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낸 이 음반을 통해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음악세계를 컨트리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정의내리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조금씩, 급하지 않게 컨트리 음악이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시도를 조금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 최근 발매된 [Golden Hour]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고유의 음악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심지어 R&B와 디스코 등 흑인음악의 문법 위에서 만들어진 노래도 있다. 쟁글거리는 통기타와 단조롭게 이어지는 박자 등 전통적인 컨트리 음악을 들을 때 연상되는 사운드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대부분의 노래에서 끈적거리며 밀고 당기는 리듬과 매혹적으로 울려퍼지는 신디사이저가 주도하고 있다. 사실 백인들의 음악인 컨트리에서 흑인음악적 요소를 차용하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음반이 특별히 더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는 머스그레이브스의 시도가 결코 급진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세계가 전이되고 확장되는 과정이 무척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쭉 듣던 그런 스타일의 노래라고 느끼며 감사하다 보면 사실 완전히 새로운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식이다. 그리고 이 사려깊음은 철저하게 머스그레이브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감싸는 포근한 사운드, 그 위에 뿌려지는 결정적인 훅들의 조화로움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음악을 워낙 잘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Happy & Sad”인데, 전형적인 보컬팝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변화가 무쌍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도 매혹적이다. 가사도 전에 없이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다.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 노래는 보다 대표적인 머스그레이브스 스타일의 노래인 “Space Cowboy”와 컨트리 범주 안에서 이해 가능한 “Butterflies”인데, 이 음반이 시도하고 있는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싱글커트곡의 선정이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Khruangbin | Con Todo El Mundo

Con Todo El Mundo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돌 그룹이 되고 품 비푸릿(Phum Viphurit)의 내한공연 예매가 시작된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매진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화산업의 영향력 측면에서 그 흐름의 방향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구권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주고 받거나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영향력의 방향이 일방적인 흐름을 나타냈다면, 모바일과 스트리밍의 시대인 요즘 비서구권 음악의 대외 진출이 조금씩 더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건 단순히 플랫폼의 발달로 인한 원거리 소비의 간편화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비서구권 국가의 정치 및 경제가 조금씩 안정화되면서 서구권 음악을 단순히 수입, 추종했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자생적인 음악생산 환경 및 유통구조를 조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과거 뛰어난 제3세계 음악가가 서구권 매체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일종의 ‘사건’이었다면, 이제는 좋은 음악성과 상품성을 갖춘 비서구권 뮤지션이 안정적으로 배출되고 대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노출되는 일이 일상화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런 음악상품이 일정한 루트를 통해 서구권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시스템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최근 세이 수 미(Say Sue Me)에 엘튼 존이 열광하고 예지(Yeaji)를 피치포크 등의 매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비서구권 국가가 가진 유,무형의 음악적 인프라스트럭처가 이제 어느정도 수준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국어로 비행기를 뜻하는 크룽빈(Khruangbin)은 텍사스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다. 텍사스를 기반으로 잔뼈가 굵은 세 명의 베테랑 연주가가 합심하여 결성한 인스트루멘탈 밴드인데, 6,70년대 타이 훵크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텍사스에 있는 단골 타이 식당에서 타이 훵크 음악을 접했고, 이후 각자 지속하던 활동을 접고 본격적으로 타이 훵크를 파기 시작한다. 이들의 두번째 음반 [Con Todo El Mundo]는 스페인어로 “with everybody”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 남부 시골에서 결성된 다인종 타이 훵크 밴드가 스페인어 제목의 음반을 냈다, 라는 문장이 엄청 힙하게 느껴진다면, 이 음반을 듣고 이들의 음악이 결코 ‘힙’이나 ‘키치’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과거 타이 훵크를 현재에 되살리는 수준을 넘어선, 미국의 느끼한 버터냄새가 잔뜩 추가된 고유하고 세련된 네오-사이키델리아 소울 세상이다. 세르주 갱스브루,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 같은 대가들의 영향력도 느껴지고, 리버브가 꽉 물린 기타 사운드에서 물결따라 흔들거리는 서프 뮤직의 향기도 맡을 수 있다. 타이 훵크를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감상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그 편이 크룽빈의 음악을 또렷하게 각인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듯 ‘남부 타이 훵크(Southern Thai Funk)’라는 영역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크룽빈이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어보인다.

Kasbo | Places We don’t Know

kasbo
스웨덴 출신 전자음악가 칼 가스보(Carl Garsbo)의 스테이지 네임 카스보(Kasbo)가 2018년 발매한 데뷔 음반 [Places We don’t Know]를 반복해서 듣는 와중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chill,’ 혹은 ‘chillout’ 뿐이었다.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하거나 심심하지도 않게 음반 전체를 균일한 온도로 채워나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카스보의 국적을 알아보기 전 이미 진동하는 ‘북유럽 냄새’를 맡으며 이 음악가의 음악적, 생물학적 배경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꽤 괜찮은 훅을 가진 미디움 템포의 깔끔한 팝-일렉트로닉 넘버가 잔뜩 포진해 있어 듣는 내내 귀가 즐거운 편이다. 엄청난 새로움이나 대단한 혁신은 없지만, 패션 핏(Passion Pit)이나 처치스(Chvrches)같은 젊은 전자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이레이저(Erasure), 뉴 오더(New Order) 등의 음악을 좋아한 전력이 있다면 불편함 없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이번 데뷔 음반의 첫 싱글 “Aldrig Mer”나 “Over You”같은 곡에서는 카스보가 객원보컬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 음반에서 개인적인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Snow in Gothenberg”(칼 가스보의 고향이 스웨덴 구텐베르그다) 에서는 상당히 광활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Mount Eerie | A Crow Looked at Me

eerie
“예술가는 불행할 때 최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속설은 가끔 너무 잔인하게 다가온다. 일개 청자에 불과한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던질 때 따라오는 책임감은 먼지처럼 가볍지만, 정작 이 명제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게 되면 아찔하고 서늘한 죄책감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워싱턴 주 출신 필 엘버룸(Phil Elverum)의 1인 프로젝트 마운트 에리(Mount Eerie)의 2017년 작품 [A Crow Looked at Me]는 예술가 개인의 불행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반이다.

필 엘버룸의 아내 제네비에브 고셀린(Genevieve Gosselin)은 2015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은둔형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았던 이 부부가 2016년 공개적으로 GoFundMe 페이지를 통해 병원비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절박한 곳까지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병원비는 바닥났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고셀린은 2016년 여름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엘버룸의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 [A Crow Looked at Me]가 발매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완벽에 가까운 평을 받으며 그 해의 음반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마운트 에리는 행복해졌을까?

[A Crow Looked at Me]는 나지막한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이 음반을 여는 첫번째 노래 “Real Death”는 반주조차 없이 “Death is real”이라는 엘버룸의 건조한 목소리로 시작하여 (차마 노래라고 할 수조차 없는 울먹거림으로) “I love you”라고 말하며 끝맺는다. 바로 이어지는 두번째 노래 “Seaweed”에서는 “우리에겐 1년 6개월 된 딸이 있어. 당신이 죽은지 이제 11일이 되었네”라는 가사를 무심하게 내뱉는다. 음반의 가사는 엘버룸 개인이 겪은 실제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수필에 가깝다. 통기타만이 외롭게 떠받치는 그의 목소리는 말하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혹은 울먹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이정도 수준의 실제적 고통의 기록을 청자의 입장에서 ‘즐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물론, 데이비드 벤의 [자살의 전설]처럼 사적 경험을 비틀어 예술의 영역에서 풀어놓는 방식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폴 엘버룸이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또 지나치게 깊다보니 이것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버거울 뿐이다.

폴 엘버룸의 몸부림은 이 음반 이후 이어진 [Now Only]에서 계속된다. 예술가 개인의 불행을 통해 대중음악계가 또 한 장의 명반을 건진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인 것인가, 고민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