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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as Seoulite, missing Boulder, and loving wife

Stella Donnelly | Beware of the Dogs

호주(Australia) 출신 뮤지션 스텔라 도넬리(Stella Donnelly)의 첫번째 정규 음반 [Beware of the Dogs]는 기쁘지만 슬프고, 유쾌하지만 우울하고, 반갑고 소중하지만 답답하고 미안한 음반이다. 2019년 참 좋은 음반과 뮤지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어서 기쁘지만 다시는 나오면 안되는 음반이기에 슬프고, 음반 곳곳에 깃든 그녀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유쾌해지지만 그 밝은 표현이 성폭력과 성차별, 남성우월주의 등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 그래서 반갑지만 답답하고, 소중한 음반이지만 동시에 미안해지기도 하는 음반이다.

스텔라 도넬리는 2017년 그녀의 첫번째 EP [Thrush Metal] 을 발표할 당시 호주의 한 펍에서 접시를 닦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녀는 “10명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NPR Tiny Desk Concert 에서 공연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두고(하지만 절대 이루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채) 살고 있었다. EP가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으며 Secretly Canadian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게 그만 대박이 터져버렸다. 결국 그녀는 최근 밥 보일린의 초대를 받아 NPR Tiny Desk Concert에서 공연을 했다. 물론 열명보다 더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서.

단순히 도넬리의 음악을 맥 드마코(Mac Demarco) 류의 찰랑거리는 인디팝과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조금 따를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호주 출신 선배 뮤지션 코트니 바넷(Courtney Barnett)과 비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기타를 중심으로 음악을 진행시켜 나가고, 곡마다 명확한 스토리 텔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를 전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음반은 성폭행을 당한 도넬리의 친구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반의 첫 곡 “Old Man”의 밝은 분위기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가사는 생각보다 훨씬 직설적이다.

그는 뉴스의 스포츠 섹션을 읽고 있어
이상한 웃음을 짓는 하얀색 이빨을 가진 백인 남자
뭔가를 했군
집에 혼자 있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길 원했거든
우리에게 미소를 보이며
이봐, 만약 그녀를 한번만 더 건드리면
당신의 아내와 아이에게 모두 이야기하겠어
그 시간에 대해
왜냐하면 지금은 1993년이 아니거든
넌 직장을 잃었고
이 사회에서도 아웃이야

오, 내가 두려운 거야, 늙은이?
아니면 내가 뭘 할지 두려운거야?
당신은 나를 두 손으로 잡았지
그리고 이제 세상이 당신을 잡으려 해

이 음반이 그렇다고 단순히 페미니즘의 메시지만으로 승부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음악이 우선 충분히 괜찮다. 타이틀곡 “Beware of the Dogs”와 “Boys will be Boys”는 도넬리의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구성된 곡인데, 맑은 기타톤과 섬세한 도넬리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Old Man”은 앞서 언급한 맥 드마코가 연상될 정도로 청량하고 아름다우며, “U Owe Me”는 싱글로도 손색 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쾌하다. “Lunch”는 정교하게 잘 짜여진 좋은 팝넘버다. 음반 전체적인 구성도 괜찮은 편이고, 트랙을 굳이 뛰어 넘고 싶을 정도로 구린 곡도 없다. 도넬리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와 목소리, 이 두 요소가 완벽한 음악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음악을 직접 만들어내는 재능은 거의 없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 부러움과 경탄이 동시에 터져나온다. 올해의 신인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데뷔 음반이다.

The Comet is Coming | Trust in the Lifeforce of the Deep Mystery

더 코멧 이즈 커밍(The Comet is Coming)을 단순히 재즈 트리오라고 소개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과 같은 부연 설명을 붙이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들의 음악을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몇 개의 장르 이름보다는 촉각, 혹은 미각적 느낌을 설명하는 형용사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만큼 더 코멧 이즈 커밍의 음악은 강렬하고 직관적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들의 음악은 정교하게 잘 짜여진 명품 옷처럼 탄탄하고 빈틈이 없다. 반복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미리 설계된 미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재미가 있다. 혹자는 이들이 재즈의 미래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이들은 재즈 뿐 아니라 소울, 펑크, 힙합, 전자음악, 사이키델릭 등 현재 트렌드를 장악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 장르를 아우르는 조금 더 큰 그림을 이들이 그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흥분한다.

스스로의 음악을 “apocalyptic space funk”라고 정의하는 세 명의 런던 출신 뮤지션이 처음 만난 곳은 2015년 런던의 한 공연장에서였다. 드러머 맥스웰 할렛(Maxwell Hallet)과 키보디스트 댄 리버스(Dan Leavers)는 당시 퓨처리스틱한 음악을 하는 듀오 사커96(Soccer96)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근처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있던 색소포니스트 샤바카 허칭스(Shabaka Hutchings)를 만나 단숨에 의기투합하게 된다. 선 라(Sun Ra), 존 콜트레인과 같은 선대 뮤지션에 대한 애정을 공통분모로 하여 이들이 결성한 그룹의 이름은 그 이름도 요상한 더 코멧 이즈 커밍. 그룹을 만들면서 무대 이름도 새롭게 정했다. 할렛은 베타맥스(Betamax), 리버스는 다날로그(Danaloque), 허칭스는 킹 샤바카(King Shabaka). 컨셉도 확실했다. 세기말, 사이키델릭, 장르 불문. 이들이 2016년 발표한 데뷔 음반 [Channel the Spirits]는 내 귀에는 조금 버거웠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좋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곁에 두고 즐겨 듣을 수 있는 그런 음반은 아니었다. 몇 번을 겨우 들은 후 뒤로 넘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컨셉이 확실한 뮤지션의 음악이 갖는 가장 큰 단점은 그 컨셉에 동의하지 못하는 청자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되게 진한 산미를 가진 원두는 그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산미를 즐기지 않는 커피 애호가에게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그런 그들이 발표한 두번째 음반 [Trust of the liveforce in the Deep Mystery]는 그런 호불호조차 뛰어넘을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호날두의 플레이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축구팬조차, 르브론 제임스의 농구를 사랑하지 않는 안티-르브론 팬조차 결국 호날두나 제임스가 이룩한 업적에는 고개를 저으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 셈이다. (물론 코멧 이즈 커밍의 음악을 그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음반에서는 시각적 강렬함이 조금 더 빛을 발한다. 베타맥스의 스네어 소리와 킹 샤바카의 엘토 색소폰 음이 빚어내는 조화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여기에 더해 전체적인 사운드를 만지는 다날로그는 더 코멧 이즈 커밍의 음악을 조금 더 퓨처리스틱하게, 다른 말로 하면 때깔나게 꾸며놓았다. 이들과 가장 비슷한 색깔을 내는 뮤지션으로 테임 임팔라(Tame Impala)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광기’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점에서 콜트레인과 닮았고, 한도 끝도 없이 최면적이라는 점에서 테임 임팔라와 비슷하다. 음반의 베스트 트랙은 한 곡만 꼽기에는 너무 차고 넘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Summon the Fire”부터 “미쳤다”라는 표현 밖에는 나오지 않는 대단한 킬링 파트를 품고 있는 노래 “Birth of Creation”, 일렉트로닉의 차원으로 훌쩍 넘어가버리는 “Timewave Zero”, 음반에서 가장 사이키델릭한 “Blood of Past”, 심지어 명상적이기까지 한 “The Universe Wakes Up” 등,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Sharon van Etten | Remind Me Tomorrow

올해 초, 샤론 반 에뗀(Sharon van Etten)이 5년만에 발표한 싱글 “Comeback Kid”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대체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그녀의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노래였다. 피아노와 통기타로 포근하게 감싸안아 나른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분했던 그녀의 포크음악은 기타와 드럼, 신서사이저에 의해 ‘광폭’하게 변했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던 반 에뗀의 목소리는 이 노래에서 울부짖기 시작했으며, 어떤 순간에는 상처나고 긁힌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후 발매된 [Remind Me Tomorrow]를 확인해보니, “Comeback Kid”에서 우려(?)했던 것만큼 음반 전체가 엄청난 변화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전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으로 음악세계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한 사실처럼 보인다.

단지 5년만의 시간때문일까. 샤론 반 에뗸의 [Remind Me Tomorrow]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동안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프로듀서가 바뀌었다. 이번 음반에서 새롭게 합류한 프로듀서 존 콘글턴(John Congleton)은 엔젤 올슨(Angel Olsen), 세인트 빈센트(St.Vincent) 등 로킹한 음악을 지향하는 여성뮤지션의 음반을 프로듀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콘글턴은 반 에뗀의 음악세계를 기타를 중심으로 재편했고, 전작에서 부재했던 리듬과 디스토션을 대폭 강화하면서 포크에서 록, 혹은 팝으로의 장르적 변신을 꾀했다. 음악 외적인 변화는 아마도 반 에뗀의 개인적인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아이를 임신했고 출산했으며, 넷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했고, 심리건강 상담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음악 커리어 바깥에서 지난 5년 중 대부분을 보낸 반 에뗀이 보고 느꼈던 것들이 이 음반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렉트로-팝을 연상시킬 정도로 세련되어진(..) 악기 구성이나 편곡과 별개로, 그녀의 음악은 훨씬 적극적으로 변모했다. 음반 전체의 분위기가 사색적이고 목가적이었던 전작 [Tramp]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후속작 [Are We There]에서 아주 미세한 매너리즘, 혹은 슬럼프를 감지했기에 이번 신작에서의 대폭적인 마인드셋 변화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나아가, 그녀의 가사는 여전히 사색적이고 탐미적이다. 이 음반의 대표곡 “Comeback Kid”의 가사를 보면 결코 그녀가 ‘대놓고 들이대는’ 성격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금 더 철저해진 공감과 상대방이 놀라지 않게 다가가려 하는 세심함이 있을 뿐이다. 음반의 또다른 좋은 곡인 “Seventeen”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자신의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이해하려 하는 공감이 눈에 띈다. 이 노래가 특히 더 좋은 점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시 그 거울을 자신에게 비추고자 하는 노력이 꽤 진지해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음반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은 첫째, “you”, 즉 2인칭 타자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며, 둘째, “당신”과 호응하는 “I”, 즉 1인칭 화자로 모든 정신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떤 노래에서 반 에뗀이 울부짖는다면 그것은 드디어 그녀가 ‘밖으로 나왔기’ 때문일 것이며, 이것은 하나의 명징한 성장의 상징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처연한 자기고백, 그것을 아주 세련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음반이다. 당연히 올해의 음반 중 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Weyes Blood | Titanic Rising


이제야 비로소 2019년에 들었던 음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마다 다짐하는 목표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장의 음반 듣기’다. 지금까지 내게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조금 번거로운 루틴의 연속으로 정의되어 왔다.

1. CD나 LP같은 물리적 매체를 주문하거나, 직접 매장에서 구입한다.
2. 집으로 배달되거나 직접 가져온 음반을 CD플레이어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플레이시켜 음악을 감상한다. 거의 대부분 곡 단위가 아니라 음반 단위로 듣게 된다.
3. 몇 번을 반복해서 감상한 후, 블로그에 그 느낌을 옮겨 적는다.

3번까지 완료해야 한 장의 음반을 “들었다”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정의에 따르면 2019년에는 음반을 한 장도 제대로 듣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2019년은 위와 같은 루틴이 깨진 첫번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먼저, 물리적 매체를 거의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외벌이’를 하게 되면서 사치재 소비를 줄이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LP를 돌리며 음악을 듣는 행위에 대해 ‘현타’가 왔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솔직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로 애플뮤직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 더 나아가, 요즘에는 집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나 차 안에서 보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스트리밍 형태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더 선호하게 된다. 이렇게 루틴이 변하다 보니 블로그에 음악에 대해 감상문을 남기는 것조차 게을리 하게 되었다. 음악을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고, 음악을 조금 더 가볍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은 죄책감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기중의 스케쥴 속에서 한가로이 블로그에 음악 감상문이나 쓰고 있을 여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어진 탓도 크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해도 다 핑계일 뿐이다. 좋은 음악을 들었다면 그에 대한 기록을 한 줄이라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력이 나쁜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오늘 이야기할 첫번째 뮤지션은 와이즈 블러드(Weyes Blood)다. 멕시칸 서머(Mexican Summer) 레이블에서 서브팝(Sub Pop)으로 옮긴 후 첫번째 작업물로 [Titanic Rising]을 발표했다. 2016년 [Front Row Seat to Earth]로 좋은 평을 받고 3년만에 내놓은 새 음반인데, 같은 캘리포니아 출신 뮤지션 에어리얼 핑크(Ariel Pink)와 함께 2017년에 발표한 EP [Myths 002] 이후로는 만 2년만이다. 이번 음반에서 와이즈 블러드가 선호하는 음반 단위의 음악 구성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작에서도 느껴졌던 웅장하고 담대한 색채가 한층 강해졌는데, 곡과 곡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눈에 띌 정도로 매끄럽고 단단하다. 조니 미첼(Joni Mitchel)을 빼닮은 목소리톤은 그대로인데 그 목소리를 가지고 노는 솜씨는 훨씬 좋아졌다. 여기에 더해 송라이팅과 편곡에도 눈을 뜬 것인지, 라이브에서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되는 노래들이 제법 많이 발견된다. 비틀즈가 연상되는 밝은 분위기의 “Everyday”조차 종반부로 갈수록 격하게 몰아치는 감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Something to Believe”, “Titanic Rising”, “Movies”까지 휘몰아치는 부분이 음반의 첫번째 절정이다. 포크 음악 ‘주제에’ 웅장하다는 감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작년에 미츠키가 인디씬을 후려쳤다면, 올해는 와이즈 블러드가 인디씬 최고의 뮤지션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untouched by Notre Dame fire

많은 이들에게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최근 빠리의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많은 빠리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오바마나 트럼프같은 세계 유명인사들도 노틀담 성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도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자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 중 하나인 성당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스타그램에는 저마다 개인적으로 간직한 노틀담 성당의 모습을 올리며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빠리에서 노틀담 성당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다지 마음이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만큼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이유는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나는 빠리가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보도블럭 한장까지 도시의 역사로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고 스카이라인을 보존하기 위해 고층건물조차 허락하지 않는 빠리 시민의 완고함을 존중한다. 아침 길거리 공기 위에 스며드는 빵 냄새와 지하철 역사에 울려퍼지는 악사의 음악을 사랑한다. 하지만 몇백년 전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경외감보다는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꼈다. ‘역겨움’이라는 표현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생제르망 데 프레 성당(Church of Saint-Germain-des-Prés) 앞에서 에서 문자 그대로의 메스꺼움을 느꼈다.

몇백년 전 대성당이 건축되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수천명의 노역이 동원되었다.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었을 것이다. 수십년, 때로는 백년이 넘게 걸리는 건축과정에서(노틀담 성당은 정확하게 100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책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노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지 않았다. 성당이 완성된 후 프랑스 혁명 전까지 일반인은 이 성당에 출입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치루는 등 여전히 노틀담은 상위계층의 전유물로 남아 있었다. 신에 대한 찬양을 증거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성당이다. 그 성당에서 신을 향해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은 계급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었다. 당시의 신은 계급주의를 신봉하는 신이었다.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많은 중세시대 대형 건축물이 인구의 99%를 차지하는 서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증거는 외부 장식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틀담 성당의 정문 주변에는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되고 조각된 예술품이 도처에 깔려있다. 정문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문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예술적인 장식물은 모두 권위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의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 권력자이자 권위자로서의 신의 모습, 다양한 형태로 노려보는 듯한 악마와 괴물들의 모습이 성당의 거의 모든 외관을 휘감고 있다. 12사도와 천사의 표정은 이들이 우리 편인지, 혹은 우리를 지배하러 온 이들인지 헷갈릴 정도다. 당시 성당은, 그 앞을 지나다니던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절대적인 신 앞에 복종하라. 단, 당신의 왕과 귀족은 신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고 있으니, 왕과 귀족에게도 복종하라. 대충 이런 메시지로 읽힌다. 즉 신과 지배계층의 모습을 일치시킨 것이다. 이런 노틀담 성당이 내 눈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99%의 확률로 나의 조상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 역시 한번도 없다. 지금은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해도, 그 공간의 역사적 유래는 변하지 않는다. 서양 건축물에 대한 내 불호의 예외가 있다면 프라하에서 확인한 카프카의 생가, 혹은 니스에서 찾아가본 세잔의 아뜰리에 정도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삶을 살다 간 예술인의 개인적인 공간 정도가 내가 유럽에서 사랑하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외 대부분의 관광명소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의 폭압적인 권위주의가 읽혀져 더이상 있기 싫어진다. 노틀담 성당이 불탄 것이 경사로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슬퍼할 일도 아니다.

Niall Ferguson | The Ascent of Money

국내에는 [금융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The Ascent of Money] 외에도 영국 출신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책이 꽤 여러 권 번역되어 시중에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조금 놀랐다. 나는 [The Ascent of Money]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만큼 친절하게 쓰인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이나 행동 경제학, 케인즈의 일반균형 이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y; MBS)과 블랙-숄즈 모형의 복잡한 공학적 원리 등이 책의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이 없다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려하고 쉽게 쓰인 문장과 독자를 쉽게 몰입시키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니얼 퍼거슨이 속한 ‘장르’인 경제사(economic history)가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초라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국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소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장점이 [The Ascent of Money]에서 극대화되어, 이 책의 주 목적인 인류의 금융사 개관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반해야 하는 다소 어려운 경제학 이론조차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돕고 있다. 그 미덕을 인정받아 에미 상 등 굵직한 상도 수상하며 퍼거슨의 명성이 한껏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The Ascent of Money]는 금융의 기원과 발전을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금융이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강조하는데 집중한다. 다만 요즘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big history’ 의 대표 저작답게 금융사의 모든 측면을 세심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고, 은행의 탄생, 보험의 탄생, 버블, 부동산 시장의 명과 암, 국제금융과 퀀트 등 금융사의 중요한 지점을 관통하며 부문별로 가장 중요한 사례를 한두가지 씩 소개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퍼거슨의 훌륭한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사례로부터 중요 개념으로 일반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게 친절한 안내문을 곳곳에 설치해준다는 점이다. 금융처럼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도 드문데, 상식 수준에서 널리 알려진 서양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연결시켜 가시성을 확보해준다는 점도 그의 책이 왜 대중적인지 쉽게 알게 되는 대목이다. 예컨대 현대 금융감독기관이나 중앙은행이 행하는 세부적인 매커니즘을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라 하더라도, 메디치 가문의 영특한 재산불리기 방식과 영란은행의 탄생 비화 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요 금융정책기관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탄생했고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식이다.

단순히 금융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책은 아니다. 퍼거슨의 번뜩이는 통찰력은 쉬운 문장 속에서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중-미 간 활발한 무역-금융 거래를 통한 자본의 국제적 이동의 부활을 언급하며, 현재(이 책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발간되었다)의 추세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한번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잠재요인으로 양 국 간 정치적 갈등, 더 구체적으로 무역 부문에서의 갈등을 지적하는 대목에 다다르면 그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5년 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 없다’는 판단을 내린 블랙-숄즈/VaR 모형의 실패 사례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퍼거슨은 당시 VaR 모형이 만약 11년 이상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추정했다면 실제 발생한 규모의 손실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5년과 11년은 어찌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차이지만, 그 6년의 차이만으로 현대 금융사의 방향이 통째로 틀어지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비판은 경제사학자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의 비판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명확하다. 은행과 보험, 주식 버블과 자산시장의 한계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책의 중반부까지는 완벽에 가까운 균형과 호흡을 보이지만, 국제금융시장과 2000년대 이후의 금융 흐름을 짚어내는 6장 및 결론 부분에 다다르면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이것은 책이 출판되었던 시기가 2009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불완전성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간신히 규명되던 시기였고, 이후 세계경제의 방향성이 시계제로인 시기였다. 석학 퍼거슨이라고 해도 2008년 이후의 세계경제가 지금처럼 굼뜨게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버낸키가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바젤III 등 시스템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잡아내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어떤 방향으로 설계될지 그 구체성까지는 살펴보지 못했을 것이다. 퍼거슨은 금융경제학자, 혹은 경제예측론자보다는 역사학자에 가까운 시선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책에서 배워야 할 교훈도 그의 문장만큼이나 간단, 명료하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필연적이었으며, 모든 경제적 사건은 그 필연성 위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퍼거슨이 가진 정치적 스탠스(그는 미트 롬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오바마를 호되게 비판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금융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책은 급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조금 더 공부해야 할 부분들이 발견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4월 5일. 25년.

최근 단과대 동료 교수 여섯 명과 학교 근처 양식집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식당은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미국식 식당’으로 보이기 위해 내부 치장에 정성을 쏟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긴 뿔을 가진 황소 머리 모형(그것은 누가 봐도 어설픈 모형이었다)이나 유명한 ‘Route 66’ 패널을 벽에 걸어 놓는 식이었다. 보통 교수님들을 모시고 가게 되는 전형적인 식당(예: 인자한 아주머니가 떨어진 반찬을 알아서 채워주시는 한식집)은 아니었지만, 그 날 저녁 모임의 명분이 ‘단과대 건물 3층에 연구실을 둔 젊은 교수들이 새로 오신 교수님을 환영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택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교수들’이라고 해봤자 역시 그 자리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은 나였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요즘 ‘젊은 교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몇 년 동안 공부를 한 공통적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술이 한 두잔 들어가고 난 뒤 자연스럽게 90년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긴 머리를 보고 “커트 코베인같네요”라고 농을 친 것이 시발점이었다. 한껏 신이 난 40대 ‘아재’들은 자신이 아직 잊어버리지 않은 90년대 음악의 각종 정보들을 두서없이 쏟아내기 시작했고, 결국 대화는 레드 제플린과 건스앤로지스 사이 어딘가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끼는 편인 나는 가끔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 주는 정도에서만 대화에 참여했는데, 간혹 눈치 빠른 누군가는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적당히 그 시대를 모르는 척 하며 시간을 때웠다.

90년대 5천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사 들으며 머리를 흔들어대던 십대 소년들은 허리둘레가 걱정스러운 나이의 중년에 진입했다. 당시 음악을 함께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시애틀 4대 천왕”으로 통했던 밴드 –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엘리스 인 체인스 – 의 보컬리스트 중 오직 에디 베더만이 생존해 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와닿는 부분이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오직 에디 베더 뿐이라니. 와.) 요즘 기타를 좀 치고 홍대씬을 어슬렁거린다는 록 키드는 어떤 뮤지션을 롤 모델로 생각할까. 커트 코베인은 화석이 되어 있을까. 그가 죽은지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오던 노래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가 들려주던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이나 아버지가 즐겨 듣던 산울림의 음반, 그리고 당시 무척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가 알던 음악세계의 전부였다. 그 날, 배철수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슬프고 무거운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규 프로그램을 잠시 멈추고 오늘 세상을 떠난 한 뮤지션을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두 시간동안 가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외국 뮤지션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우리나라의 디제이를 이리도 슬프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어떤 노래들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확실히 “Smells like Teen Spirit”이 나왔을 것이고, “Come as You are”같은 곡도 나왔을 것이다. 1994년 4월 6일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에 나에게 일어난 일 중 확실하게 기억하는 한가지는, 너바나와 같은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국내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체 왜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그의 음악에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빨려들어갔다.

그 후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음악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다. 시애틀 그런지 음악과 판테라 등의 뉴메탈을 들으며 중학교를 졸업했고, 포티스헤드의 트립합과 블러의 브릿팝, 그리고 머큐리 레브나 윌코 등 인디뮤직의 힘을 빌어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다. 대학교 시절 연애에 정신이 팔려 사랑을 속삭이는 인디팝을 선별해 구애할 때 이용했고, 군대에서 음악을 들을 여유가 생기면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에디 히긴스나 찰리 헤이든같은 재즈 음악을 찾아 낮은 볼륨으로 들었다. 미국 유학 시절은 개인적으로 무거운 삶의 무게를 처음 경험하느라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만 보면 천국과도 같은 시기였다. 거의 매주 공연을 보러 다녔고, 푼돈이 모아지면 아마존에서 음반을 구입해 끊임없이 돌려 들었다. 당시 보았던 윌코와 플릿 폭시스, 아케이드 파이어, 본 이베어 등의 공연은 지금도 매 순간이 기억날 정도로 좋았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난 음악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현실의 무거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나 웨인 스탠리처럼 젊은 나이에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 음악을 통해 힘을 얻고, 음악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내 삶은 음악과 동격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음악이라는 영혼의 동반자를 옆에 끼고 살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며칠 전 그 교수 모임에서 누군가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관련하여 궁금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이었는지, 코트니 러브에 의한 타살이었는지, 둘 사이에 딸이 있었는지, 아들이 있었는지, 지금 몇 살인지, 등등 한물간 TMZ에나 나올 법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 듣고 싶지 않아 “딸이구요, 이름은 프랜시스 빈 코베인이구요, 1992년 생이니 지금 스물 일곱 쯤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빠르게 말하고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쉽거리로 치부되는 한 가수의 삶과 죽음이, 나와 같은 ’90년대 키드’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바꾸어버린 엄청난 존재로 기억된다.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볍게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자동차 ‘삼식이’가 랜덤으로 노래를 재생할 때 너바나의 노래가 나온다. 그 때마다 90년대의 어느 시점엔가로 돌아가, 여드름 투성이 얼굴을 한 한 소년을 마주한다. 여드름이 가득한 못난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싫어 엄마를 졸라 집안의 거울을 모두 치우게 했던 이 예민한 소년은,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찾아내 너바나의 [Nevermind]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전세계 3천만명 정도가 공통적으로 경험했을 이 기억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지금도 늘 자신의 머리를 엽총으로 날려버린 그 사람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십대의 마음으로, 십대의 정신으로 늘 살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황승택 |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기자생활을 오래 한 지은이가 암투병생활을 하면서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와 같은 전문성이나 숭고함은 발견할 수 없지만, 기자 특유의 조사근성에 기반한 디테일한 묘사가 글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이게 끝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잘 정돈된 글을 읽을 때의 감흥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독자가 개인의 삶에 투영할 수 있는 부분은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이 책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죽음에 대한 취재’에 대한 관심이 첫번째 이유이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인에 대한 역사(史)를 최대한 많이 읽고 싶다는 욕망이 두번째였다. 내가 늙어감에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떠오른 걱정거리는 나의 죽음이 아닌, 내 부모의 죽음이었다. 내가 죽는 것보다 내 부모가 죽었을 때의 상황이 두렵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어디까지 마음이 무너져 내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과 가깝게 다가간 사람의 에세이에서 최대한 많은 힌트를 찾으려고 한다. 트위터를 하던 당시, 어떤 계정의 주인이(젊은 사람이었다)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분의 언니가 대신 트위터에 짤막하게 “사망하였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겼고, 그 계정은 한동안 계속 살아 있었다. 그 당시 느낌이 참 기묘하고 서늘했다.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세밀하게 다룬 글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찐함과 서늘함이 있다. 공인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로 편입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인의 역사는 여전히 낮은 기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금 더 많은 개인 역사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김상아 |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나의 부모님은 항상 개와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화정리 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은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옛 화정리는, 우리가족이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흙냄새의 소중함을 깨달은 곳이다. 이 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일구는 기쁨을 만끽했고, 누나와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논두렁을 뛰어다니거나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누나가 이마에 작지 않은 크기의 흉터를 갖게 된 것은 그 시절 하수구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고, 내가 아버지와 누나에게 시계 읽는 법을 배운 것도 그 즈음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우리 가족 주변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진돗개일 때도 있었고 ‘잡종’일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항상 개를 선물해주는 지인이 있었고, 그 분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1년도 쉬지 않고 우리는 개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 가족을 거쳐간 개의 수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은 함양 산골자락에 자리잡은 부모님댁에 잡종견 두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마리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열마리가 넘는, 한 때 우리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의 이름을 아직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었으니까. 무척 사나워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진돌이, 유난히 듬직하고 속이 넓어서 함께 살던 다른 개들까지 보듬어 주었던 복실이, ‘아픈 손가락’이었던, 작고 작고 작았던 미니, 인간만큼이나, 아니 대부분의 인간보다도 더 지혜로웠던 뽀미.. 어느 카툰에서처럼, 그들은 나를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결론은 항상 명확하다. 그들은 인간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그 가족은 아버지나 어머니일 확률이 높다. 최소한 나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매일 밥을 주던 사람도 아니었고, 매일 그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사랑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다. 개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개에게 살짝 인사만 한 뒤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들의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못난 가족이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천국에서 개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대체로 이런 형식이었다.

“개들때문에 일찍 들어가봐야 해”

“개들 밥줘야 해서 너 못 만난다.”

“개가 심심해 하니까 좀 와서 놀아주면 안되겠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누나와 나, 그리고 개는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진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개는 개일 뿐, 인간과 결코 동급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개집을 매 계절 새로 만들어주는 사람도 아버지이고, 늦은 밤 목줄을 끊고 산속으로 산책나간 개를 찾아 몇시간을 헤매는 사람도 아버지이다. ‘서양식’으로 인간과 개가 반드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만 가족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많은 한국인은 개를 가축의 한 종류로 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개에게 쏟는 애정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그리고 캐를 키우셨다. 누나와 내가 독립된 가족을 만들어 곁을 떠난 뒤에도 부모님은 계속 개를 키우신다. 개와 함께 살아가신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겨진 모습을, 함께 사는 개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분들의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기도 하다.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은 개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글 쓰는 일을 퍽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녀의 아기가 툭툭 던지는 보석같은 말들과 늙은 개가 가지런하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이다. 단지 그것들을 엮는 것만으로 이 책은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겨보았다. 나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안아주는 사람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온 개 하나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딸 하나, 이렇게 둘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물론 남편도 있는데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책에는 유기견 센터에 존재하는 ‘뜬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기견센터의 우리는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유기견들은 제대로 걷기도, 서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러 오거나, 2주 뒤로 정해진 안락사를 통해 고통을 끝낼 때까지.

몇달 전, ‘강아지 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대전의 유기견 센터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때의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격렬하게 우리를 향해 짖어대는 수많은 유기견들의 울음소리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울음소리는 적대감이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처음 보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을 따라 이 고통 속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집단적인 절실함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와야 했다.

이후 우리 부부는 결국 유기견을 데려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달에도 임신에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둘이서 살고 있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를 만날 때마다, 교수 휴게실에서 동료, 선배 교수들의 육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아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친구나 동료의 육아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위로와 부러움을 건네고, 인스타그램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늘 like 버튼으로 화답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활동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슬프다. 내가 아직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고, 삼신할매가 우리 부부를 많이 질투해서 이런 것인지 그녀를 만나 따져 묻고 싶다. 나의 부족함과 못남이 결국 우리 부부를 이 고통 속에 빠트린 것 같아 죄책감에 고개를 들기 힘들 때도 많다. 최근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마음 속의 괴로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삶은 이미 아내만으로 충만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새로운 가족을 절실히 원하지 않게 만든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절실하게 새 가족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가족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하는 상상만으로 이미 너무나 행복해져서 실제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기도 한다. 단지 상상만으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흔치 않다. 그 새로운 가족이 개였어도, 혹은 아내의 몸에서 태어날 우리를 닮은 사람이었어도,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유기견 센터에서 눈이 마주친 유기견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동시에 너무나 적막해서 음악이나 TV볼륨같은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집 안의 빈 공간이 내 탓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얼마나 더 절실해져야 하는지, 얼마나 더 절실하게 새로운 가족을 원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