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nolaterthannow

born as Seoulite, missing Boulder, and loving wife

김용완 | 챔피언

챔피언
영화는 너무나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1%의 독창성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영화를 영화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다만, 영화가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가 반영하는 현대 한국사회의 얼굴에서 조금 흥미로운 구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먼저 이 영화는 ‘대안 가족’을 평범하게 그린다.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밝은 결말이 대안가족의 ‘완성’이 되어버리게 만들어버린다. 이게 이 영화가 가진 무서운(?) 부분이다. 개그소재마저 어디선가 베껴온 듯한 진부함의 연속에서 주인공이 가짜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이 몹시 자연스럽다. 주인공의 배경은 이 영화가 반영하는 한국사회의 또다른 어두운 부분이다. 주인공은 미국으로 입양되어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 여의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달동네에 거주하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비주류 스포츠의 최강자로 발돋움한다는 설정을 통해 영화는 한국사회가 가진 모든 비주류 정서를 한 사람 안에 무식하게 뭉뚱그려버린다. 이게 이 영화가 가진 두번째 무서운(?) 부분이다. 그야말로 이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소수로 차별받는 모든 소재를 끌어다가 가장 주류 영화다운 방식으로 만든, 욕할 수 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정서를 가진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더더욱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하는 귀여운 남매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 이 영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마동석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역할, 그로 인해 탄생한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한다. 권율과 한예리도 딱 주류 영화의 평균적인 조연이 해야 할 부분까지만 무난하게 해낸다. 배우들의 연기가 딱히 훌륭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불가사의한 영화다.

Julien Baker | Turn Out the Lights

줄리엔 베이커
오직 ‘감정’ 하나로 자신의 음악에 승부를 보려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예술가로서 쌓아올린 자아의 내면을 가감없이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 세계를 완성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몹시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온도와 모양이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성 역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감정으로 노래하는 사람의 음악이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그 감정의 전달(delivery)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의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줄리엔 베이커(Julien Baker)가 작은 음반사 6131에서 데뷔 음반 [Sprained Ankle]을 내놓았을 때 많은 이들이 흥분을 하고 상찬을 보낸 것은 그녀가 고백하는 감정의 조각들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감정이 청자에게 전달되는 과정 역시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타도어(Matador)에 픽업되어 발매한 두번째 음반 [Turn Out the Lights]은 더 큰 기대와 함께 ‘혹시나’하는 걱정을 수반했다.

결과적으로 새음반에서 그녀가 전달하는 울림의 폭은 더 커졌다. 드럼과 베이스같은 리듬파트 악기를 거세한 상태에서 오직 기타와 피아노에 의지해서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음악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후렴구는 코러스와 중첩되어 더 두꺼워졌고, 강하게 내지르는 부분도 더 많아졌다. 떨림은 더 심해졌다. 세심해졌다기 보다는 그 낙폭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커졌다. ‘절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이 복수의 곡들에서 스쳐 지나간다. 흡사 플릿 폭시스의 후렴구를 듣는 듯한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이 느껴진다. 다만, 전작에 존재했던 본이베어와 같은 나른하고 나긋한 자기반성적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전달방식은 여전히 훌륭하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음반 커버와 비슷한 색깔의 어두운 보라색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여전히 갈구한다. 그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절실함을 청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음악적 재능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레코딩 환경에서 명민하게 ‘요령’을 공부한 부지런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새소년 | 여름깃

새소년 여름깃
수퍼루키 새소년의 첫 EP [여름깃]이 내뿜는 진짜 힘은 라이브 무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아직 이들의 ‘소문난 잔치’를 직접 구경해보지는 못했지만, 온스테이지처럼 녹음이 잘 된 라이브 무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레벨은 영상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라이브가 스튜디오 음반보다 뛰어나다는 명성을 가진 대부분의 그룹이 가진 공통점은 연주력이 무척 탄탄하다는 점이다. 음악적 기본기가 뛰어나면 공연의 흐름을 다른 요인들에 빼앗길 확률이 적어진다. 새소년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롱런할 수 있는 밴드 음악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

이번 EP에는 사이키델릭 음악부터 슈게이징, 블루스까지 다채로운 장르가 새소년만이 가지고 있는 바탕 위에 잘 버무려져 있다. 그 독특한 정체성은 아마도 확실히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황소윤 개인이 가진 아우라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접한 거의 모든 음악들 중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확실히 최근 등장한 여성 기타리스트 중 가장 맛깔나게 기타를 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세인트 빈센트처럼 진보적이진 않아도, 미츠키처럼 장르 속에 파묻혀 제멋대로 퍼져나가진 않아도, 본인들의 음악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확실한 화장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르에 대한 이해, 좋은 음악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훅’에 대한 이해, 과잉과 부족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점에 대한 이해 등,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잘 알려진 “긴 꿈”을 비롯해 타이틀곡 “여름깃”, 이들을 록큰롤 아이돌로 만들기에 충분한 섹시한 노래 “파도”, 그리고 EP를 마무리짓는 밴드 이름과 동일한 곡 “새소년”까지 버릴 노래가 하나도 없다.

대전에서 약배전 커피 마시기

2월말 대전으로 내려온 이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 중 하나는 ‘좋은 로컬 로스터리 커피숍’을 찾는 일이었다. 정확하게 두달동안 대전의 좋다는 커피숍을 찾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나이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로컬’에 집착한 나머지 내가 사는 ‘동네’에서 로스팅한 커피를 일상에서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 대전이라는 ‘지방’에서 살기로 작정한 이상, ‘서울’에서 문화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이러한 시도는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며칠전 블랙워터포트에서 주문한 비로소커피의 약배전 블렌드인 ‘너의 이름’이 오늘 오후 도착했고, 바로 학교 기숙사로 가지고 들어가 서울에서 챙겨온 도구들을 이용해 급하게 한 잔을 내렸다. 푸어 오버로 내린 그 한 잔의 커피는, 대전의 수많은 커피숍에서 마신 그 어떤 커피보다 맛있었다. 깊은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대체 왜 그렇게 고생(과 돈낭비)을 했지, 라는 자책감과 5월 1일 로스팅했다는 낙인을 보며 신선한 원두를 빠르게 보내준 비로소커피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했다.

톨드어스토리, 곰에스프레소, 비터앤스위트, 싱크커피로스터스, 커피살림팩토리, 커피인터뷰같은 대전의 유명한 로컬 로스터리에서 대표 메뉴라고 내놓는 커피는 대부분 중, 강배전이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원두의 신선함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는지 강배전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달콤한 다크초콜렛 풍미나 묵직한 바디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냥 기분 나쁜 쓴 맛과 짠 맛이 가득할 뿐이었다. 목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오일리한 느낌도 전혀 없었다. 어쨌든 연남동의 리이슈 커피를 제외하면 서울의 핫한 커피숍들이 대부분 원두 본연의 과일향 풍미를 극대화시킨 약배전 커피를 주로 내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트렌드의 전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체현상인지, 대전 로컬숍들의 완고함에 기인한 이 지역 특유의 풍토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 듁스커피나 프릳츠에서 원두를 제공받는 앤아워페이스나 몇몇커피 등 젊은 감성의 커피숍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신맛이 지나치게 강해서 입안이 얼얼할 정도였다. 입안의 감각이 상처받을 정도로 산미를 강조한 커피는 다시 찾고 싶지 않다. 신선하지 않은 원두로 내린 커피가 주는 불쾌한 느낌과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대전 로컬 커피숍을 다녔고, 로컬숍을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최대한 전향적인 자세에서 커피의 맛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완벽한 실패였다. 그 어떤 커피숍도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좋은 커피’라는 생각조차 갖지 못하게 했다. 대부분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다 마시지 못하고 나올 정도였다. 한 잔의 좋은 커피를 마실 때 받는 수많은 감정적인 위로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절망스럽게도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듁스, 프릳츠, 리브레, 테일러와 같은 유명한 서울의 로스터리숍들이 온라인 유통망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펠트나 비로소 등 내가 사랑하는 공간들도 블랙워터포트 플랫폼을 통해 신선한 원두를 온라인으로 공급하고 있다. 나는 비로소커피의 원두를 오늘 받아들고 구원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 정도로 대전에서 좋은 산미를 느끼는 일은 힘들다.

Rival Consoles | Persona

rival consoles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은 시대를 막론하고 일단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문법을 극단적으로 거스르려는 시도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결과물이 성공적일 경우 청자에게는 기분좋은 충격과 함께 ‘귀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 될 수 있다. 크라프트베르크(Fraftwerk)나 초기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지적인 실험들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영역을 한차원 넓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닐스 프람(Nils Frahm)처럼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함께 아우르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이들의 작업들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잉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라이벌 콘솔스(Rival Consoles, 본명은 Ryan Lee West)의 다섯번째 정규음반 [Persona] 역시 이러한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은 특이하게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1966년 발표했던 동명의 영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줄거리만  대충 살펴봐도 엄청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그녀를 보살피던 다른 여자의 인격이 서서히 겹쳐지는 심리 스릴러물이라고 하는데 벌써 거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음반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낀 라이벌 콘솔스의 음악은 다분히 해체적이고 효과적이다. 박자와 박자 사이를 해체하고 음과 음 사이를 분해하여 새롭게 배치하는 구조주의적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그렇게 재배치된 소리들이 마치 음향효과처럼 청자의 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려는 작곡가의 자세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자신을 보살피던 여자를 ‘관찰’한다는 사실을 그녀를 보살피던 여자가 알아차린 뒤 분노한다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라이벌 콘솔스는 소리의 재구성을 통해 보편적인 대중음악이 청자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효과와 조금 다른 차원의 효과를 청자와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점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라이벌 콘솔스의 [Persona]는 최근 들었던 모든 음반들 중 가장 놀라운 집중력과 농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음반의 첫곡 “Unfolding”부터 놀라움을 선사하는데, 이 놀라움은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처음 느꼈을 때의 ‘촉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가 전개되는 내내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래 자체의 완벽함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다.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4/4박자에 질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대중음악이 가진 기승전결이나 훅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이 음반을 무척 즐겁게 들었다. “thrilled,” 혹은 “joyfully tensioned”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Kacey Musgraves | Golden Hour

musgraves
정통 컨트리음악 장르에서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의 커리어에서 2015년 발표한 음반 [Pageant Material]은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대중적인 성공과 평단으로부터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낸 이 음반을 통해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음악세계를 컨트리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정의내리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조금씩, 급하지 않게 컨트리 음악이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시도를 조금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 최근 발매된 [Golden Hour]라고 할 수 있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고유의 음악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심지어 R&B와 디스코 등 흑인음악의 문법 위에서 만들어진 노래도 있다. 쟁글거리는 통기타와 단조롭게 이어지는 박자 등 전통적인 컨트리 음악을 들을 때 연상되는 사운드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대부분의 노래에서 끈적거리며 밀고 당기는 리듬과 매혹적으로 울려퍼지는 신디사이저가 주도하고 있다. 사실 백인들의 음악인 컨트리에서 흑인음악적 요소를 차용하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음반이 특별히 더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는 머스그레이브스의 시도가 결코 급진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세계가 전이되고 확장되는 과정이 무척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쭉 듣던 그런 스타일의 노래라고 느끼며 감사하다 보면 사실 완전히 새로운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식이다. 그리고 이 사려깊음은 철저하게 머스그레이브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감싸는 포근한 사운드, 그 위에 뿌려지는 결정적인 훅들의 조화로움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음악을 워낙 잘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Happy & Sad”인데, 전형적인 보컬팝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변화가 무쌍하고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도 매혹적이다. 가사도 전에 없이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다.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 노래는 보다 대표적인 머스그레이브스 스타일의 노래인 “Space Cowboy”와 컨트리 범주 안에서 이해 가능한 “Butterflies”인데, 이 음반이 시도하고 있는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싱글커트곡의 선정이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앤써니 루소, 조 루소|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전국 스크린의 80% 이상을 독점했다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우리 부부에게 영향을 미칠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대전에서의 완전한 정착을 아직 이루지 못한 우리는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극장에서 보낼 때가 늘었는데, [레이디버드]까지 보고 난 직후 대전의 거의 모든 스크린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쓸어담아버리는 바람에 사실상 이 영화를 보도록 강요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관련 영화 중 그 어떤 영화도 보지 않았고 심지어 마블에서 발간한 그래픽 노블 중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본 미국식 히어로물 그래픽 노블이라면 배트맨 관련 몇 권과 [왓치맨] 정도가 전부였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나를 만나기 전의 아내(짧게 말하기엔 좀 뭐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아내의 영화 취향은 나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뉜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가 그나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해 상대적으로 익숙하다는 점 정도였다.

아무튼, 마블의 세계관에 대해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것이 전부인 나같은 사람도 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었다는 점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유일한 장점이다. 아 하나 더 있구나.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어야 할 수퍼스타들이 씬 몇 개에만 등장하는 조연으로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래서)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을 많이 보지 못한 점, 돈 치들, 폴 베타니, 마크 러팔로같은 좋은 배우들이 철저히 계산된 ‘money-making’ 대사들만 꼭두각시처럼 내뱉는 모습을 영화 내내 지켜봐야 하는 점, 조쉬 브롤린과 브래들리 쿠퍼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는 점, 그 외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올랐던 374가지의 불만들은 모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블의 히어로들과 세계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알겠고 이 프로젝트가 왜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는지 그 이유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같은 사람은 이 영화를 볼 이유가 거의 없어보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출연진들이 살짝 보여주는 키치한 세계에서 조금 위로받은 것을 빼면 이 영화가 가진 유머감각도, 서스펜스도, 서사도, 연기도, 연출도, 그래픽도,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Khruangbin | Con Todo El Mundo

Con Todo El Mundo
우리는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돌 그룹이 되고 품 비푸릿(Phum Viphurit)의 내한공연 예매가 시작된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매진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화산업의 영향력 측면에서 그 흐름의 방향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구권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주고 받거나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영향력의 방향이 일방적인 흐름을 나타냈다면, 모바일과 스트리밍의 시대인 요즘 비서구권 음악의 대외 진출이 조금씩 더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건 단순히 플랫폼의 발달로 인한 원거리 소비의 간편화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비서구권 국가의 정치 및 경제가 조금씩 안정화되면서 서구권 음악을 단순히 수입, 추종했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자생적인 음악생산 환경 및 유통구조를 조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과거 뛰어난 제3세계 음악가가 서구권 매체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일종의 ‘사건’이었다면, 이제는 좋은 음악성과 상품성을 갖춘 비서구권 뮤지션이 안정적으로 배출되고 대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노출되는 일이 일상화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이런 음악상품이 일정한 루트를 통해 서구권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시스템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최근 세이 수 미(Say Sue Me)에 엘튼 존이 열광하고 예지(Yeaji)를 피치포크 등의 매체가 주목하게 된 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비서구권 국가가 가진 유,무형의 음악적 인프라스트럭처가 이제 어느정도 수준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국어로 비행기를 뜻하는 크룽빈(Khruangbin)은 텍사스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다. 텍사스를 기반으로 잔뼈가 굵은 세 명의 베테랑 연주가가 합심하여 결성한 인스트루멘탈 밴드인데, 6,70년대 타이 훵크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텍사스에 있는 단골 타이 식당에서 타이 훵크 음악을 접했고, 이후 각자 지속하던 활동을 접고 본격적으로 타이 훵크를 파기 시작한다. 이들의 두번째 음반 [Con Todo El Mundo]는 스페인어로 “with everybody”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 남부 시골에서 결성된 다인종 타이 훵크 밴드가 스페인어 제목의 음반을 냈다, 라는 문장이 엄청 힙하게 느껴진다면, 이 음반을 듣고 이들의 음악이 결코 ‘힙’이나 ‘키치’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과거 타이 훵크를 현재에 되살리는 수준을 넘어선, 미국의 느끼한 버터냄새가 잔뜩 추가된 고유하고 세련된 네오-사이키델리아 소울 세상이다. 세르주 갱스브루,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 같은 대가들의 영향력도 느껴지고, 리버브가 꽉 물린 기타 사운드에서 물결따라 흔들거리는 서프 뮤직의 향기도 맡을 수 있다. 타이 훵크를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감상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그 편이 크룽빈의 음악을 또렷하게 각인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듯 ‘남부 타이 훵크(Southern Thai Funk)’라는 영역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크룽빈이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어보인다.

그레타 거윅 |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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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독립영화계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Lady Bird)]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그리고 명민한 성장영화다. 그녀가 직접 주연을 맡고 공동으로 각본을 쓴 [프랜시스 하(Frances Ha)]를 본 이후 거윅이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해 했는데,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데뷔 작품에서부터 그녀의 젠체 하지 않는(down to earth) 성향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묘한 흥분감마저 느껴졌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사실 새크라멘토가 그리 작은 도시는 아닌데 뉴욕과 비교가 되다 보니..) 를 떠나 뉴욕으로 가고 싶어하는 한 소녀가 좌충우돌하다 부모의 품을 떠난 뒤에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어찌보면 흔하디 흔한 서사구조를 가지고도 주제의식의 진실성과 소소한 디테일을 앞세워 관객을 무장해제시켜버리고야 마는 능력은 분명 주목받아야만 한다. 거윅이 다른 감독의 디렉팅을 일방적으로 받는 연기를 하며 커리어를 마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연출가로서도, 극본가로서도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낼 것이라고 확신한 이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샤얼샤 로넌(Saoirse Ronan)과 같은 재능 넘치는 배우를 만나 에너지가 꽌 찬 흥겨운 코메디-드라마 한 편을 잘 만들어냈다.

[레이디 버드]는 [프랜시스 하]의 프리퀄로도 받아들일 수 있고, [보이후드]의 코메디 버전, 혹은 여자 버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랜시스 하]에서 몸과 마음이 고갈된 프랜시스가 새크라멘토의 부모에게 돌아가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이 그 장면을 집어넣을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을 [레이디 버드]에서 확인한 것 같아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또한 [프랜시스 하]에서 주인공의 ‘숨겨진 이름(중에서도 성(surname))’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했던 것처럼 [레이디 버드]에서는 “내가 내 자신에게 지어준 이름(given name)”인 “lady bird”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레타 거윅이 스토리텔러로서 천착하는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한편, [레이디 버드]는 엔딩씬에서 이야기를 완결짓지 않고 갑자기 끝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자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영화가 보여주는 부분(졸업시즌부터 입학까지) 이제 막 열여덟살이 되어 새로운 곳에서 첫 발을 내딛은 그녀에게 하나의 마침표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삶은 지속될 것이고, 그녀에게 어머니의 눈물은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천으로 미래에서 기능할 것이다. [보이후드] 역시 주인공의 삶을 12년 간 따라가며 보여주지만 결코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마무리짓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숙어(“seize the moment”)로 결말을 대신한다. [레이디 버드]에서 주인공 레이디 버드가 부모에게 전화로 목소리를 남기고 어딘가를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장면과  [보이후드]에서 주인공 메이슨이 새롭게 만난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황량한 자연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이 두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Kasbo | Places We don’t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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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 전자음악가 칼 가스보(Carl Garsbo)의 스테이지 네임 카스보(Kasbo)가 2018년 발매한 데뷔 음반 [Places We don’t Know]를 반복해서 듣는 와중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chill,’ 혹은 ‘chillout’ 뿐이었다.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하거나 심심하지도 않게 음반 전체를 균일한 온도로 채워나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카스보의 국적을 알아보기 전 이미 진동하는 ‘북유럽 냄새’를 맡으며 이 음악가의 음악적, 생물학적 배경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꽤 괜찮은 훅을 가진 미디움 템포의 깔끔한 팝-일렉트로닉 넘버가 잔뜩 포진해 있어 듣는 내내 귀가 즐거운 편이다. 엄청난 새로움이나 대단한 혁신은 없지만, 패션 핏(Passion Pit)이나 처치스(Chvrches)같은 젊은 전자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이레이저(Erasure), 뉴 오더(New Order) 등의 음악을 좋아한 전력이 있다면 불편함 없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이번 데뷔 음반의 첫 싱글 “Aldrig Mer”나 “Over You”같은 곡에서는 카스보가 객원보컬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 음반에서 개인적인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Snow in Gothenberg”(칼 가스보의 고향이 스웨덴 구텐베르그다) 에서는 상당히 광활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