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Iver | i,i

네번째 정규음반 [i,i]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보니베어(Bon Iver), 혹은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의 음악세계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세 장의 음반은 어쩌면 매우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수준에서의 ‘드러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첫번째 음반 [For Emma, Forever Ago]는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인디-포크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300명 정도 규모의 볼더의 폭스 극장(Fox Theatre)에서 단촐한 밴드 구성과 함께 한 버논을 처음 보았을 때 참 단단한 인디음악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가 10년 뒤 전자음악을 할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위스컨신의 작은 숲속에서 나와 빅밴드와 함께 만든 [Bon Iver]는 –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 확장되기 시작한 그의 음악세계가 내딛는 또다른 첫걸음이었는데, 역시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음반이었고, 당시 우리는 그의 새계가 ‘완성’되었다고 ‘착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만명 규모의 레드락 야외극장(Red Rocks Amphitheatre)에서 저스틴 버논은 확실히 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포크음악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레벨로 나아갔지만, 어쨌든 여전히 인디의 범주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칸예 웨스트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거쳐 그의 세계가 한번 더 확장되기 시작하였고, 3집 [22, a Million]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소리는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가사는 알아듣기 힘들었으며, 실험적인 전자음악의 빈번한 사용만큼이나 음반커버와 노래제목은은 기호처럼 모호하게 느껴졌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4집 [i,i]를 듣고 나서야 그의 세번째 정규음반이 한 극단을 경험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그는 세 번의 꽤 괜찮은 여행을 마친 후, 비로소 그의 음악세계의 한 절정을 여기 4집에서 풀어놓았다. 물론 지난 세 번의 음악여행 모두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저스틴 버논이라는 희대의 아티스트가 걸어온 길을 기록한 인디-영웅적인 성장담의 한 챕터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다.

밴드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집부터 스튜디오 작업을 늘 함께 해온 션 케이시(드럼, 키보드)와 매튜 맥커핸(드럼, 베이스)이 이번에도 음반작업에 참여해 보니베어 사운드의 핵심 중 하나인 더블-드러머 시스템을 형성했고, 2집부터 밴드 사운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섹소폰은 3집에 이어 이번에도 마이클 루이스가 연주했다. 또한 이들을 포함해 총 여섯명이 보컬 작업에 참여했다. 스튜디오 작업에 참여한 멤버 구성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저스틴 버논의 음악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요소 – 겹겹이 쌓인 보컬 층위, 관악기의 사용, 더블-드러머를 동원한 리듬파트의 강조 – 는 2집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3집부터 확연하게 달라진 점으로 많은 이들이 전자음악의 도입과 그로 인해 보니베어의 장르가 달라졌음을 지적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음악에서 포크의 냄새를 맡는다. 여전히 쓸쓸한 위스컨신의 작은 동네 골목이 떠오른다. 보니베어의 장르는 변화하거나 옮겨간 것이 아니라 확장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고, 확장되었다기 보다는 음악적 핵심요소는 그대로 간직한 채 그들만의 장르를 서서히 조립하고 쌓아올려 만들어온 것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오히려 인디포크부터 전자음악까지, 상이한 형식 안에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꼽는 1집과 2~4집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상징, 혹은 기호체계의 변화를 들고 싶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사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아니, 더이상 그가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음악에 많은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있지만, 영어의 문장구조 속에서 체계적으로 그 내용을 표현하기 보다는 (난해한) 음반 커버와 (더 난해한) 노래 제목, 그리고 분절적이고 상징적인 기호체계로 구성된 음악구조를 통해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서 오히려 최근의 음악작업 방식이 더 마음에 들고, 조금 더 완성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보니베어의 음악은 확고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비로소 버논의 스토리라인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편협한 장르구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레벨로 올라간 것이다. 비슷한 부류로 묶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는 라디오헤드와 뷰욕이 있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그냥 라디오헤드의 음악이고, 이들 외에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이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뷰욕도 마찬가지다. 이제 보니베어도 그런 아티스트가 됐다. 이제부터는 보니베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세상이 펼쳐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