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운 | 소공녀

[소공녀]는 관객 입장에서 일종의 테스트처럼 작용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소는 일반적으로 기호식품이라고 알려진 담배와 위스키를 계속 즐기기 위해 거주 목적의 집을 포기한다. 실제로 짐을 챙겨 나와 거리를 떠도는 자발적 홈리스 미소의 선택을 두고 “굳이 저럴 필요까지 있나, 담배와 위스키 중 하나만 포기해도 되지 않았나”, 혹은 “왜 굳이 가사도우미 일을 고집하려 하나,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고시원에서라도 잘 수 있을텐데” 등의 의문을 품은채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와 달리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쪽이 있을 것이다. 미소의 행보에 대한 공감의 정도를 통해 관객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 간 거리를 측정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선사하는 첫번째 흥미로운 지점이다. 물론, 그 어느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해도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전환된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지향점이 균형적인 시각으로 양쪽의 의견을 고루 청취하는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쯤 생각해볼 질문을 던지되 그 답까지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점이 [소공녀]가 가진 또다른 미덕이다. 미소가 잠잘 곳을 청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은 과거 밴드활동을 함께 했던 멤버들의 집이다. 그들의 ‘집’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물질적인 의미로서의 공간보다는 다사다난한 인간군상이 수집되는 사회활동의 채집 현장처럼 보여진다. 시댁 식구들과 갈등하며 자아를 잃어가는 젊은 여성의 집, 아내와 이혼한 뒤 쓰레기더미 속에서 오직 슬퍼하기만 하는 나약한 남성의 집, 과거의 자신을 감추고 들어간 부유한 가족 앞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꾸며야만 하는 여성의 집 등, 감독은 미소의 시선을 통해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견고한 사회적 통념 및 부조리의 틈을 재치있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을 믿으며 호기롭게 집을 포기한 미소의 점점 곤궁해지는 삶이 그려진다. 담배, 위스키와 함께 미소의 유일한 삶의 의미였던 남자친구는 현실과 타협하여 미소의 곁을 떠나고, 휴대폰 유지비용과 머리결의 변색 방지를 위해 복용하던 약값마저 떨어지는 상황이 묘사된다. 거주공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극한의 경계선까지 밀려난 그녀는 결국 영화 말미에 자발적이지 않은, 어쩌면 비자발적인 온전한 홈리스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런 그녀의 삶에는 여전히 담배와 위스키가 함께 한다. 선택에는 반드시 상충관계가 존재하며, 그 선택의 대가는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어쩌면 뻔한) 결론에 다가가는 과정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깔끔하다.

[소공녀]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을 굳이 꼽자면 주인공 미소 정도가 있을텐데, 영화 속 미소는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이타적이고 현명하며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다만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집이 없을 뿐이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미소보다 많은 면에서 떨어지지만 오직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를 업신여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 역시 ‘집’이라는 가치를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미소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이 갖는 가치만큼이나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구속하지를 미소의 극단적인(?) 예를 통해 깨닫게 된다면, 담배와 위스키가 집보다 결코 덜 소중하다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만큼은 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소의 행동이 설득력을 갖는 중요한 이유는 배우 이솜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꽤 굵직한 선으로 방점이 찍힐 이 영화에서 이솜은 자신이 가진 신체적 장점을 한껏 뽐내며 꽤 그럴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 외의 연기들은 평범했다. 적당히 평면적이고 적당히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미소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2010년 이후 서울의 변화가 아니라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다. 현재 서울은 사회구조적인 분화가 몹시 빠른 속도로 발생하고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의 상류층은 부의 축적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고, 서울의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은 조금 더 창의적인 장점을 활용하여 ‘다른’ 생활방식을 창조해내고 있다. 상수와 연남, 이태원, 문래, 혹은 그 어딘가에서 전통적인 자본주의 통념에 기초하는 부의 축적을 거부한채 ‘YOLO’를 추구하는 세대가 점점 그 두께를 두텁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낀 서민, 혹은 중산층은 (미소의 남자친구처럼) 상류층에 기생하며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와중에 서울 곳곳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문화로부터 창출되는 산업의 찌꺼기를 적당히 즐기기도 하며 불안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지방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계층의 다양한 방향으로의 분화는 [소공녀]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식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거의 유일한 증거다. 영화의 주요 무대 중 하나로 쓰이는 싱글몰트바 코블러는 김앤장 변호사 빌딩과 서울종로경찰서 바로 옆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다. 미소는 그곳에서 현금을 내고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벌충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것이 젊은 시절 부리는 객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위스키를 목으로 넘기는 그 순간의 행복은 결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미소의 그 찰나의 행복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소공녀]는 그 정도의 넉넉함이 관객의 마음 속에 있는지 묻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도전적이고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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