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의 현실과 한계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청문회 문제로 뉴스판이 떠들썩하다.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가지 의혹들과 그 해명을 지켜보며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공무원으로서의 업무 적합성 등이 청문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질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분위기는 전혀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듯 보인다. 후보자로서 하자가 있는지 여부가 정쟁의 중심에 있는 모양인데, 그 하자라는 것조차 법적인 기준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정서”와 같은 모호한 개념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논쟁의 차원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후보자는 오래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 정권을 옹호해 왔다는 점에서 유시민과 유사한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유시민이 제도권 밖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느끼고 직접 노무현을 돕기 위해 직접선거를 거쳐 국회를 통해 정치판에 뛰어든 것과는 달리, 조국은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 위에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사업자 기반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여 목소리를 높이다 선출직 공무원으로 이 ‘판’에 들어왔기에 그 결이 꽤 명확히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즉,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회적 위치는 두 인물이 서로 공유하는 지점일지 모르나, 정치판의 거물로 성장하기 까지 지나온 과정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나는 그 성장과정이 조국을 유시민과 구분짓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조국과 조국을 지명한 현 정권이 현재 어려움을 겪게 된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조국과 같은 성장배경과 사회적 위치를 가진 사람을 ‘강남좌파’라 부른다. 재단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태어나 뛰어난 학업능력을 바탕으로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안정적인 직업을 일찌감치 획득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탄탄대로만을 걸어왔다는, 이 ‘강남’이라는 요소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뻔한 성공담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상위계급의 이너서클 안에 갇혀 우경화하지 않고 하위계층을 위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낸 ‘좌파’ 이미지가 합쳐질 경우 대중에게 꽤 신선한 매력을 선사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요소를 모두 가진 인물이 소셜미디어에서 스타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성공은 개인의 능력에 좌우된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의미가 있다면, 조국이 획득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그를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비록 그의 성취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할지라도,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즉 기득권층에 야합하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 자체가 꽤 쿨하고 멋져 보이는 것이며 충분히 따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평생 학계에만 있어 국가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전무한 그가 선출직 공무원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온라인에 형성된 그에 대한 강한 지지와 믿음이 이를 증명한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전문성보다는 그의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더 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서울대 법대 교수라는 타이틀은 공직자로서의 전문성을 최소한으로 담보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국이 이렇게까지 거물이 된 배경의 한편에는 검찰을 필두로 한 현 권력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사법부와 검찰이 신뢰를 잃는 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데, 조국은 어느 순간부터 많은 대중이 ‘개혁’하기를 바라는 검찰의 반대편을 상징하는 인물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교수 시절 실제로 검찰개혁 등에 대해 꽤 많은 목소리를 내어 왔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민정수석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마냥 맹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조국의 ‘하자’가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향한 대중의 믿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지금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온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발견될 수록, 그리고 그가 획득한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자녀에게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증여하려한 정황이 포착될수록, 결국 그 역시 ‘좌파’라는 이미지 안에 감추어진 ‘강남’으로서의 속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렇고 그런 사람 중 하나라는 실망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후보자의 해명에서 살펴볼 수 있듯, 실제 불법으로 드러난 것은 현재까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만약 후보자측이 청문회에서 불법성 여부를 중심으로 방어하기 시작한다면 패착이 될 확률이 높다. 대중은 그가 여전히 다른 ‘강남’과는 다른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고, 이는 다분히 감정적이며 정치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황교안 역시 법무부장관 후보자 시절 청문회를 거쳤다. 그도 ‘강남’이었고, 부동산 투기부터 고액 변호사 수임료 문제까지 불편한 과거가 꽤 여럿 드러났음에도 장관직에 임명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그를 노골적인 ‘강남’으로만 생각했지, 그에게 약자를 향한 애정이라던가 소수자를 위한 법재정 의지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속한 세상에서 자유로웠다. 조국은 다르다. 그는 사회적 올바름, 정의의 공평한 실현, 경제적 평등 추구라는 다른 세계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특히 그가 되려 하는 법무부장관의 경우 공직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 모두에 속해있는 만큼, 후보자의 삶 자체에서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황교안이 뼛속까지 강남우파를 대변하는 꼴통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내세움으로써 대선후보까지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면, 조국은 공정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와중에도 사회적 정의를 위해 헌신한 일생을 셀링포인트로 내세울 수 밖에 없는 어려운 포지션을 스스로 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조국의 인생은 남들보다 쉬었으며, 그의 딸 역시 남들보다 쉬운 길을 걸어왔다.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깨를 내어 함께 행진하고자 하는 그의 ‘동지’들보다 훨씬 쉬운 길을 기득권 세력이 좋아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편취해왔다면, 그 자체로 조국에 대한 믿음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이 점이 유시민과 조국을 나누는 경계선이며, 노무현과 문재인이 왜 여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좋은 지점일 것이다. 대중이 전처럼 조국에게 그들의 어깨를 내어줄까? 단지 문재인이 지명한 후보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현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그리고 지금까지 현 정부가 펼쳐온 정책들은 어떤 차원 안에서 나름의 최선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정책, 대북정책, 통상정책 등등,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분명 이보다 더 못한 정책을 펼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정책도 많았고, 오판이라는 느낌이 확 드는 결정도 많았다. 하지만 이건 그들이 가진 인간적 한계때문이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거나 특정 기업, 혹은 세력과 결탁하기 위한 목적에서 벌어진 의도된 실패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책적 실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국민은 그 실패를 용납해야 한다. 이명박이나 최순실처럼 개인적 욕심을 위해 나라 정책을 움직이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으나, 단순한 정책 실패 한 두개로는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현 정권은 그러한 차원에서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국 후보자 문제도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편이다. 법무부장관이 무척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조국이라는 개인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사법정의 전체가 흔들리거나, 혹은 갑자기 눈에 띄게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국으로 상징되어 한동안 꽤 트렌디한 브랜드로 이름을 날렸던 ‘강남좌파’라는 특정 사회계층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조 후보자 문제를 현 정권의 문제로 확대해석하기보다는, 현 정권의 핵심 지지세력 중 하나였던 이들이 가진 민낯이 과연 어떤 색깔일까,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12 thoughts on “강남좌파의 현실과 한계

  1.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봅니다
    중2때 부터 역사교사의 꿈을 안고
    5년 동안 역사탐구 써클 활동을 하면서
    타학생들과 교사들과
    역사 관련 토론 및 연구를 했으며
    5년 동안 거의 매주 역사로 교육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수업 연구 및 개선을 위해서 노력한 친구와

    별 생각없이 살다가
    고2 겨울방학 때, 수능불똥 떨어져서
    책상 앞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친구 둘이

    고려대 역사교육과에 지원을 했을 때,
    누가 더 역사교사로서의 비전과 열정을
    더 인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능점수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전자의 학생을 뽑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2.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봅니다
    중2때 부터 역사교사의 꿈을 안고
    5년 동안 역사탐구 써클 활동을 하면서
    타학생들과 교사들과
    역사 관련 토론 및 연구를 했으며
    5년 동안 거의 매주 역사로 교육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수업 연구 및 개선을 위해서 노력한 친구와

    별 생각없이 살다가
    고2 겨울방학 때, 수능불똥 떨어져서
    책상 앞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친구 둘이

    고려대 역사교육과에 지원을 했을 때,
    누가 더 역사교사로서의 비전과 열정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수정이 안 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능점수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전자의 학생을 뽑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 너무 좋은 비유를 들어 질문해주셔서 제가 그 뜻을 헤아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야기해주신 비유가 조국 후보자의 딸에 대한 이야기가 맞을지요? 저는 우선 조국 후보자의 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습니다. 법무부장관으로서 조 후보자가 우리나라 사법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정에서 사실상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인물로서의 조국의 이미지에서 그의 딸이 거쳐온 행적은 중요한 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 혹은 해명자료만 가지고는 조국의 딸이 과연 의학에 대해 큰 열정이 가지고 살아왔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본인만이 알고 있는 부분이겠죠.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오랜 ‘노력’에 대해서는 그 저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노력이 별로 진실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일반적인 상식과 배치되는 방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그 ‘꿈’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현재 ‘국민정서’ 상 불편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적 인물로서 롤모델이 되기에 하자가 생긴 것이지요. 물론, 저는 이것 역시 법무부장관 청문회에서 다루어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에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조 후보자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현 정권, 혹은 현 정부의 성공/실패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 조 후보자로 대표되는 ‘강남좌파’의 이미지가 어쩌면 너무나 환상적으로 잘 직조되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냉철하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현문에 대한 우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아니요, 조국 딸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국 딸이 남들보다 쉬운 길을 갔다고 하셔서
      혹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신가 해서
      여쭤본 겁니다 ㅎㅎ

      전 개인적으로 학종을 지지하는 사람이거든요

      음.. 개인적으로 교육의 표면적인 목적은
      계층이동의 유연성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자료 첨부가 안 되네요;)
      수능 전형에 비해서 학종이나 학생부 교과 전형이
      기초수급자 및 1-4분위 소득층 학생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오히려 수능이 DNA와 가정적 환경요소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합리적이고, 수치화에 의한 객관성 담보가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를 번스타인(Bernstein)은
      “언어에도 사회적 유전자가 담겨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각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회화한다고 해서
      그것을 ‘정교화된 어법(elborated linguistic codes)’과
      ‘제한된 어법(restricted linguistic codes)’으로 나누었죠

      정교화된 언어가 경찰, 담임 선생님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제한된 언어는 짭새, 담탱이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애초에 학교 교육이라는 건 정교화된 어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운 좋게’ 정교화된 어법을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당연히 학업 성취도 면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겠죠

      부모가 언어를 사용할 때,
      굉장히 논리적이고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길동아~ 책상 위에서 첫 번째 서랍을 열면 가위가 있을 거야
      그걸 엄마한테 가져다 주면 엄마가 이렇게 웃지요~ ^^”
      로 표현하는 집과

      “길동아! 책상에 가위!”라고 얘기하고
      길동이가 어리버리하고 있으면 “아!! 책상에 가위!!”
      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분명 정교화 수준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아예 “돈 많은 집 자제들 입학최대제도를 둬서
      몇 명 이상은 받지 말아라”라는 식의 규제가 있지 않는 이상
      부모님의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신 등이 높은 친구들이
      무슨 전형이든간에 유리할 수 밖에 없겠지만
      수능과 학종의 통계를 보면
      “수능에 비해서 학종이 계층이동에 있어서
      훨씬 더 개방적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고등학교 성적을 현재 한국 입시제도로
      환원을 하면 1.5등급 정도로
      건국대학교 물리학과에 갈 정도입니다

      역사, 대수학, 기하학, 도형 기하학, 물리 등은 최고등급이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영어, 한문, 지리, 화학 미술 등은 별로거든요
      (실제론 독어와 불어..)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려 하는데 둘 중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하태경 의원보다는
      아인슈타인 같은 인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시경이 수능으로 고려대학교를 갔지만
      그가 고3때와 재수할 당시에
      정말 깊은 사랑에 빠졌었다고
      회고하는데..
      그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감성적으로 사랑해보고
      이별해보고.. 그 이별에 아파하며.. 회상하고 추억하며..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노력을 했던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 내공의 감성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요??
      (물론 뭐 철저하게 통제하는 삶을 살아서 고3 때, 사랑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에 간 후에 음악을 듣고,
      발성과 발음연습 등을 하고 사랑하면서 감성을 채워넣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그렇게 철저하고 냉혹해지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박진영이 학력고사 100일 남기고 머리 눈썹 다 삭발하고
      100일 공부해서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다고 하죠
      (물론 그는 어릴 적 미국에서 살다온 경험으로
      영어 과목에 있어서 상당 부분 메리트가 있긴 했겠죠
      학력고사가 현재의 수능처럼 모든 과목에서 초고득점을 받아야
      소위 얘기하는 명문대 입학이 가능한 시험은 아니었으니까요)

      마이클 잭슨, 마돈나, 바비 브라운 등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그 음악을 수천 수만 번 듣고, 노래 부르고 춤 추는 걸 좋아했던 그가
      그 부분을 포기하는 대신 책상 앞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면
      더 좋은 사람으로 평가해야 하는 걸까요?
      사람을 수능식 줄세우기 형태로 평가하는 게 과연
      옳은 건가 싶어서요
      다양한 인간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평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능 전형도 존재하긴 해야 하지만
      조국 딸 같은 일이 터질 때마다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고
      현대판 음서제라면서 폐지해야 한다고 비난하는 거 보면
      조금은 화가 납니다
      기자들도 학종과 특기자 전형을 구분하지 못 하고
      사실관계 확인 없이
      기사 써대고, 적지 않은 분들은 여기에 휘둘리고요

      물론 조국 딸 때처럼 학종에서
      외부 스펙을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올림피아드나 외부 수상실적 같은 것을
      기재하거나 암시할 경우에 불합격 처리 시켜버리거든요
      오로지 교내활동만 기재할 수 있고
      독서활동 같은 경우에도 고액 과외 같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저자명과 책 제목 정도만 쓸 수 있게 했고요

      즉,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일지라도 자신이 어려서부터
      관심있고, 흥미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수능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이 표현 정말 싫어합니다만..)에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거죠

      제가 처음 쓴 글의 예는 제가 직접 겪었던 친구들입니다
      과목은 다르게 예를 들었지만요

      에고.. 직접적으로 학종을 까신 것도 아닌데..
      괜시리 오버한 것 같네요 -_-;;
      에고.. 더 길게 쓰고 싶지만..
      너무 민폐를 끼친 거 아닌가 싶어서 -_-;;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D

      추신1) 맨위에 댓글은 지워주셔도 됩니다 ㅎㅎ

      추신2) 아마 임명직과 선출직을 헷갈리신 것 같습니다

    • 좋은 답글 감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학종’ 제도 자체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이 제도, 혹은 이 제도가 속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인데요, 수능이라는 단일 시험으로 일렬로 줄 세워 대학교에 들어온 아이들보다는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한 평가방법을 통해 들어온 아이들이 대학교에 조금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조국의 딸이 거쳐온 과정을 학종이라는 하나의 입시제도에 대한 불합리성으로 확대해석하여 공격하는 이들은 그 자체로 몰상식이라 할 수 있으니, 저는 가볍게 무시하렵니다.

      이와 별개로 저는 조국의 딸이 정말 의사라는 직업에 헌신할 마음으로 중학교때부터 그 과정을 준비해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의 문제이므로 논리적이지 않지만, 이 비논리성이 정치의 감정적인 영역에 해당하고, 정치의 비논리성이 어쩌면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답글에서 예로 드신 성시경과 마돈나 등의 예는 일견 합당합니다. 말씀하신 ‘과정’에 방점을 둔 입시평가방식을 현재 미국 등 선진국에서 행하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정’의 평가 방식은 전적으로 정성적일 수 밖에 없는데, 한국사회는 정성적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조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부모와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일 확률이 대단히 높고, 이와 비슷한 ‘알음알음’이 평가의 각 단계에 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사회이며, 이 좁은 사회에서 객관성을 확보할만한 엄정한 법치주의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남에는 조국의 딸과 같은 이들이 수 없이 존재합니다. 고등학교 때 논문을 쓰고,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영어권 국가에서 몇 년 살다 오고,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생과 함께 생활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학생의 ‘의지’나 노력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종이라는 제도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부모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말씀하신 보조 장치를 도입하고 있지만, 현직에서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완벽하지 않은 현실이 존재함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 그렇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학생과 그 학생의 학부모인 교사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 하게 해야 할테고
      비리에 대해선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엄격한 것 이상의 처벌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교내활동에 한한 내용을 기재할 수 밖에 없으니
      그래도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성실했던 친구에게
      기회가 갈테고
      아무래도 학교는 꽤 좁은 사회이다 보니
      어떤 비리 비슷한 게 생겼을 때,
      그 소문 역시 삽시간에 퍼질 확률이 높을 겁니다

      교사 역시 단순하게
      “얘가 공부 잘해서 줬어요”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고
      평가 기준의 객관성을 확보해야겠고
      장학사는 와서 학교 좀 둘러보고
      교장과 커피나 마시면서 시간 보내고
      가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한
      본연의 임무를 성실하게 해야 될 테고요

      2005 수능에서 대규모 컨닝 사건이 있었죠
      올해 수능에서도 가벼운 부정행위부터
      컨닝까지 있었고요
      그리고 숙명여고 사건도 있었죠

      이러한 사건 모두 그다지 깊지 않은 그 내면에는
      썩어빠진 학벌주의가 역겹기 그지 없는 호흡을
      씩씩대며 거칠게 몰아쉬고 있을텐데요
      이 본질을 단번에 뜯어 고칠 수 없다면..
      즉, 제도의 급진적 변화를 추구할 수 없다면
      제도보다는 개인의 도덕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능에 비해서 객관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응시원서비를 아주 많이 인상하고
      또한 각 학교마다
      각각의 뚜렷한 평가기준을 만들어서
      모든 지원자들에게
      합격한 이유와 불합격한 이유에 대해서
      피드백을 상세하게 해줘서
      일정 부분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양질의 답변 감사드립니다~

  3. 1. 읽다 보니 김규항씨의 글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습게도 상황의 본질을 묘파한 건 조국 측이다. 그들은 며칠 전 ‘국민 정서와 괴리는 인정하지만 적법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국민 정서’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의 에토스다. 정치는 로고스(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에토스(정서적 신뢰)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국민 정서와 괴리’는 참작할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 본질이다. 에토스가 사라지면 정치도 사라진다. 이 정권의 정치적 에토스는 조국 덕에 이미 상당 부분 손상되었지만, 기어코 임명을 강행한다면 완전히 날아가고 만다.’

    2. 대학생 시절 방학을 이용해 사회의학 교수님 연구실을 왔다리갔다리 하며 설문조사를 돌리고 통계도 돌려보고 마감시한도 넘겨보고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권유해보셔서 해본 일인데, 처음에는 이런 일의 최종 목표가 논문이라는 점도 몰랐지요. 결국 통계까지는 돌렸는데 ‘좀 더 다듬으면 좀 무난한 한글저널에 출판할 수도 있겠다.’라고 얘기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에도 도저히 못해먹겠다 싶어서 접었던 기억이 나요.

    졸업을 앞둔 학기에는 2주간의 기간동안 지역 보건소를 찾아가 위와 비슷한 작업을 하고 밤새워가며 통계를 돌려서 PPT 만들고 발표하면서 교수님한테 털리고, 억울한 게 좀 생겨서 피드백 중에 울분을 날렸던 생각이 나요. 당시의 교수님(위의 지도교수님이셨습니다.)께서, ㅇㅇ이가 화가 많이 났구나. 라고 교실 밖에서 이야기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고생했던 경험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과마다 갯수는 다르지만 전문의 시험을 보려면 전공의 기간 동안 논문을 써서 하나라도 출판을 해야 합니다. 대략 수료 2년 전부터 준비를 하게 되는데, 한달에 한번 지도교수님을 방문해서 논문 주제에 대해 토의를 하고 허가를 맡고 하는 과정에서 거의 반년 넘게 까먹었습니다. 그 와중에 동기들은 통계 공부하느라 멘탈이 터져 나가고..
    병원 수련보다 오히려 논문쓰는 데에 이가 갈렸던 친구들이 많았을 거에요. 의사들에게 의학 논문이란 그런 존재에요. 이제는 눈이 틔여서 머신 수준으로 써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ㅎㅎ

    아무리 봐도 고딩이 2주만에 제1저자로 병리학 논문을 하나 써냈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은 부모가 개입했다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부모가 부친인지 모친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의사들 개개인에겐 그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침 출근 전에 와이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쨌든 우리도 딸이 하나 있으니까요. 기사를 읽을 때면 제 딸 생각도 많이 납니다.

    “암만 봐도 의사라는 직종이 좋긴 한가봐. 조국 정도 사람이 별의 별 수를 다 써서 기여코 딸래미를 의대생을 만들어놨으니.”
    “뭐 당신 보면 그럴 법도 하지. 당신이 얘기했잖아 좀만 고생하고 나면 안정적인 소득이 생긴다고.”
    “근데 뭐 그 정도 부자가 그 돈 벌게 하려고 굳이 저런 방법까지 동원해서 의사를 만드려고 하지?”

    생각해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어주려고 그런 것 같진 않고,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던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산대 상황을 봤을 때는 아마 순조롭게 의대 생활에만 적응했다면 교수직까지 무리없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문제는, ‘의대생’들은 온갖 평가와 시험에 단련되어 그 자리에 올라선 애들이고(그래서 평상시에도 서열세우는 걸 정말로 좋아합니다.), 그런 애들과 경쟁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시험을 준비해본 적이 없어 보이는 그 학생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학창시절 맘고생을 많이 해놔서..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동정심이 들기도 하네요.

    •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정치라는 생물은 정말 펄떡펄떡 살아숨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 같습니다. 그만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조국의 딸이 개인적으로 겪고 있을 고초에 마음이 쓰이면서도, 이와 함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딸의 앞날을 짐작하지 못한 조국과 그의 가족에게 속상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트위터에서는 ‘과거의 조국과 현재의 조국이 맹렬히 싸우고 있다’는 농담이 유행이라는데요, 과거에 자신이 한 말에 발목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시쳇말로 ‘현타’가 오네요. 말씀하신 대부분에 적극 동의하며, 특히 명예와 지위 등을 소중히 여기는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을 생각할 때 저 역시 딸에게 물려주려 한 가치는 사회적 위치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았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 아직도 정의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교정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사실, 조국 딸에 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몇 개만 말씀드리면 그 문제시 되는 논문이
      10년 동안 인용 2번에 그친 논문이었다는 점과

      지도교수 말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도 2-3시간
      설명 듣고 공부하면 진행이 가능한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당시 개정 전의 을 보면
      거의 교수의 권한으로 저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 논문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게 지도교수 자신이고
      그 다음 기여한 게 조국 딸이었고
      다른 교수 혹은 박사들은 말 몇 마디 나눈 게 끝인데
      책임저자와 제1저자를 전부 자기가 맡는 건 오버인 것
      같아서 무리인 거 알면서도 제1저자에 넣었다는군요

      그리고 당시 부산대 의전원이 MEET 점수를
      ‘반영하지 않았는데’ 조국 딸 미트 점수가 80점대였다네요

      아마 미트 점수가 부족해서
      다음 해에 전략적으로
      미트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부산대에 지원했을테고요

      지방국립대 의전원 합격자 평균과 비교해보면
      (서울대 의전 썼다가 불합격 했을 때의 학점)
      조국 딸의 텝스 점수는 105점이 더 높고(905점)
      학점은 0.8점 더 높고(94점)
      미트 점수는 2-10점 더 낮습니다

      보니까 서울대 대학원 다닐 때부터
      의전원을 준비했었던 듯 싶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은 의전원에 가지 못 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 같은 거였고요

      사실관계만 작성해 보았습니다

    • 글이 빠졌는데 개정 전의
      입니다

      서울대 대학원 다닐 때
      이미 의전원 준비를 했던 것 같으니
      그 이전은 고등학생 때인지 학부 때인지
      혹은 대학원 다니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을 포함시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게 왜 계속 자체적으로
      삭제되는지 모르겠네요

      개정 전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요;;

      책이나 영화제목 등 표시하는
      괄호는 자체적으로 삭제되나 보네요ㅎㅎ

      도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 뾰족한 꺽쇄 표시는 여기서 함수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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