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묘진 | 악어 노트

문학도 음악처럼 ‘오버’와 ‘인디’를 구분할 수 있다면, 좋은 ‘인디 문학’ 작품을 만났을 때 쾌감을 꽤 크게 느끼는 편이다. 그 인디 문학작품이 작든 크든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 사회의 공기를 바꾸는 순간도 가끔 일어나는데, 그 때에는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끼게 된다. 사회의 진화를 추동하는 원동력 중 하나는 과거의 시스템에 구속당하지 않는 창조성이고, 인디 문화는 그러한 긍정적인 에너지의 반동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인디 문학가로서의 개인적인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도 간접적으로나마 잘 알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인디 문학가의 개인적이 삶이 비극으로 끝났을 때, 가슴 속에는 꽤 깊은 멍자국처럼 먹먹함이 남아있게 된다. 일종의 미안함인 것 같다. 빚을 진 것 같은.

대만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구묘진은 1969년 대만에서 태어나 1995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에 해당하는 국립대만대학에 입학하여 대만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문학상까지 수상한 그가 머나먼 타국에서 스스로 가슴에 칼을 꽂아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유를 내가 감히 헤아릴 길은 없겠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성정체성,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외부세계와의 내적 사투가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추측이다. 이른 나이에 생을 거둔 구묘진이 남긴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중 장편소설 [악어 노트]는 그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으며, 최근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1994년에 최초 발표된 이 책은 저자의 죽음과 연계되어 대만 사회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결국 2017년 대만에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 이 작품이 알려진 시기도 2017년 즈음이다. 번역가 보니 휴(Bonnie Huie)의 노력으로 미국에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뉴욕 타임즈 등의 매체의 즉각적인 찬사를 이끌어냈고, 더 펜 번역상 등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린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두 문단에 걸쳐 구구절절하게 이 책의 배경에 대해 조사한 바를 적은 이유는, “울면서 번역했다”고 말한 영문 번역가 보니 휴, 그리고 “미안하다”고 옮긴이의 말에 적은 한국어 번역가 방철환처럼, 이 책을 읽는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독자들 모두 이 책을 몹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 이유가 위와 같은 시대적 진보와 개인의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라즈’라고 불리우는 주인공이 적은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대만과 중국어권 사회에서 ‘라즈’는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대학교에 막 들어간 첫 학기부터 마지막 학기인 8학기까지의 이야기가 8개의 챕터로 나뉘어 전해지는데, 한마디로 이 책은 ‘죽음’으로 가까워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자를 사랑하는 본성을 타고난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마음의 병으로 발전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치닫게 된다. 화자는 멈출 수 없는 불같은 사랑과 그 열병이 비극으로 끝났을 때 떠안게 되는 죽음과 가까운 깊이의 절망에 대해 끊이없이 이야기하며, 화자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당면한 죽음으로 가는 이 비극적 길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존재할 뿐, 이 길을 걷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애자로 스스로를 재규정하는 것인데, 주인공 라즈 역시 사랑에 실패한 후 남자를 억지로 만나 ‘여성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 본질적인 처방전은 아니며,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구실만 제공할 뿐이다. 당시 구묘진이 느꼈던 대만사회의 폐쇄성이 책의 곳곳에서 절절하게 드러난다. 유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읽히는 이 책은 구묘진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구묘진이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몽마르트 유서]와 함께 퀴어 문학에 있어 컬트적인 작품으로 남을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전자음악을 하는 키라라가 한 시상식에서 “더이상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한 발언은 그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에 부채처럼 남아있다. 그들이 외부의 차별과 내부의 갈등을 동시에 상대하며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나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키라라같은 이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 나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이성애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번쯤 생각해보개 되는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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