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 | 요시노 이발관

여기 이상한 마을이 하나 있다. 익명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규모의 이 마을에 사는 모든 미성년 남자아이는 하나같이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마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발관에서 동일한 스타일의 머리모양으로 깎아야만 하는 이유는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때문이다. 전통인지 강압인지 알 수 없는 이 마을의 관습을 지키기 위해 마을의 모든 어른들은 합심하여 아이들의 머리모양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데, 도쿄에서 전학 온 도시소년 한명이 여기에 반기를 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카메모 식당], [안경] 등 잔잔한 영화를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의 2004년작 [요시노 이발관]은 단순하고 소박한 시놉시스에서 시작하여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으로 마무리짓는다. 두발의 자유화를 부르짓는 소년은 곧 몇명의 동지를 구하지만, 이 어린 소년들이 오랜 마을의 전통을 지키려는 어른들의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은 쉽지 않다. 논리나 이유는 없다. 감정적인 설득도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하는 어른들만 있을 뿐이다. 어른들의 강압적인 태도 뒤에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 목적이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아이들이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 된다. 자신이 원하는 머리모양을 하기 위해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아름답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섬뜩한 이데올로기 간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통제 기제가 머리모양으로 상징화되고 있는 셈인데, 어째서인지 영화는 마냥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머리 모양을 제멋대로 바꾼 아이들은 결국 강제로 머리를 짧게 깎이게 되지만, 여전히 평화롭게 어른들과 공존하며 조금은 나아진 머리모양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쌓아온 서사구조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타협’이 결론인건가? 적당히 굴복하되(혹은 굴복당하는 현실을 인정하되) 상존하는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쪽을 택해라는 것인가? [안경]에서 꽤 그럴듯한 멋진 마무리를 선사했던 감독은 [요시노 이발관]에서는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다. ‘화합’이나 ‘이해’ 같은 것을 이끌어내고 싶었다면 이 영화는 지나치게 게으르고 건방지다. 조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다. 열린 결말로 시청자에게 어느 정도의 몫을 남겨두기에는 모든 이야기가 명확한 마침표를 가지고 있다. 관객이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다. 이래저래 답답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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