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 엑시트

에어컨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여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곡식이 익고 자연이 순환하기 위해서는 찌는 듯한 더운 계절도 필요하기에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지만, 습도에 약한 체질 탓에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집을 탈출하여 에어컨을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는데,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동네 영화관이었다. 영화관 역시 우리 부부처럼 별 생각 없이 극장에 와서 적당히 몇시간 때우고 갈 심산으로 올 사람들을 위한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고른건 [엑시트]였다.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기본 구조에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적당히 버무리되, 배우들을 혹사시키고 강약을 조절하는 법 없이 우직하게 신경쇠약 직전의 극단만을 강조하는 한국영화의 특수성도 함께 섞여 버린, 평범한 한국영화 그 자체다. 취업준비생 남자주인공과 성차별에 노출된 노동자 여성이 대학시절 갈고닦은 등산기술을 바탕으로 가족들을 위기에서 구하고 본인들의 삶도 능동적으로 개척한다는 줄거리는 ‘새로운 것은 전혀 없지만 결재선에 있는 임원 그 누구도 심하게 태클 걸지 않을 것 같은’ 전형적인 모범생 한국영화 시나리오다. 재난이라는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서사에 불안한 청춘의 삶을 녹여낸다는 발상은 이와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재난의 원인과 그보다 더 어이없는 재난의 거시적 해결과정때문에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채 사그라든다. 중간에 탈출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삽입한 장면은 노골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노린 것 같은데, 이것도 결과적으로 희화화시켜버리는 감이 없지 않아 ‘세월호 마케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임윤아의 연기는 ‘연기 못한다’라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한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억지로 망가지려는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튀게 느껴져 영화를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인지, 자신을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조정석의 대사는 잘 들리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대사를 귀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었다. 고함을 치거나 울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배우들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하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소리치게 만들고, 배우들의 고운 얼굴에 검댕이칠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디렉팅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감정과잉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렇게 힘든걸까. 한번 면전에 대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영화에서 딱 하나 볼만했던 장면은 조정석의 클라이밍 씬이었는데, 이건 마일드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내가 공포영화적인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겟아웃]보다 더 스릴 넘치게 지켜봤다. 그냥 단순히 고소공포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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