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젠킨스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데뷔 영화로 소위 – 아, 물론 예술적으로 – 대박을 친 감독의 소포모어 작품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금부족과 프로듀서의 압박에 시달리던 영세한 신세에서 벗어나 드디어 인정받은 예술혼에 자본이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쪽이 하나의 유형이라면, 한껏 높아진 자유도와 감당할 수 없는 자본에 잡아먹혀 스스로를 통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헤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쪽이 다른 유형이다. 베리 젠킨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데뷔작 [문라이트]로 아카데미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그의 후속작에 당연히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젠킨스는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완전히 올인해버렸고, 그 결과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국내 극장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한 채 VOD 서비스로 넘어가 버렸다. (..) 젠킨스가 제작자 브래드 피트와 함께 만든 두번째 작품,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 영화적 리듬을 망쳐버린 실패작일까, 아니면 섬세한 미적 감각이 한단계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간 ‘젠킨스 월드’의 본격적인 시작점일까.

간단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라이트]에서 당신이 젠킨스의 어떤 면을 좋아했는지에 따라 데뷔작만 못한 범작으로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그 시도가 실패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먼저 이 영화에는 실패라고 불리울만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 팬들 사이에서 영화 본편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예고편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회화적 시선으로 매 씬, 매 컷을 완성시켜 나가는지 알 수 있다. 최근 십년 동안 본 영화 중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영화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유지시켜나가는 작품은 이 영화 외에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단히 문학적이기도 하다. 아마 흑인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일텐데, 전작 [문라이트]가 연극을 원작으로 해서인지 지극히 연극적이고 시적이며 순환적었다면,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해서인지 지극히 문학적이고 구조적이며, 수평적이다. 이건 극중 여자 주인공인 티치의 독백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탓도 있지만, 화면을 회화적으로 구성하고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의 성향을 고려했음에도 이 영화는 어떤 중심적인 메시지에서 크게 비켜나가지 않고 꾸준히 ‘문장’으로서의 중심적인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 메시지는 아마도 흑인 동성애자로 평생 미국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아온 원작자 제임스 볼드윈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 그 자체일 것이며, 비록 이성애자이긴 하지만 [문라이트]에서 소수자의 감정적 소요와 불안을 절절하게 표현했던 젠킨스의 미학적 감수성이 볼드윈의 문학성과 만나서 빵! 하고 메시지로 화면을 터뜨린게 바로 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이 몹시 부정확하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눈으로 읽는 아름다운 소설’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두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 커플과 그 커플의 가족이 그들을 둘러싼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이야기인데, 어린 커플을 연기한 신인급 배우들의 연기는 젠킨스가 작정하고 남발하는 무수한 클로즈업 씬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빛을 발한다. 그들의 부모와 가족을 연기한 배우들을 비롯해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튀어 나오는 반가운 깜짝 출연진까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이루어진 작품답게 배우들의 영화, 배우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문라이트]의 모래사장씬이나 마지막 식당씬에서 절묘한 리듬감을 선보였던 젠킨스이기에 그런 부분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한 팬들은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서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확실히 지나치게 늘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조차 젠킨스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확실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극중 남자주인공인 포니와 그의 친구 대니얼 카티([애틀랜타]의 그 래퍼 사촌형이 연기한다!)가 나누는 감옥 경험 회고 씬은 지나치게 길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지만, 작품 속 시대 감옥에서 흑인 수용자가 겪어야 했던 폭력적인 환경에 대한 묘사로는 영화사상 최고의 밀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힌다. 비슷한 예로 두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는 베드씬이 있다. 한없이 늘어지는 리듬에 속이 답답해 미쳐들어갈 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0세를 막 통과하는 지점에 서 있는 이 ‘어린’ 커플의 첫경험을 묘사하기에 단 몇 분은 너무 짧지 않나, 하는 젠킨스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이보다 아름다운 베드씬은 최근 본 기억이 없다.

영화는 마지막 씬에서 젠킨스 예술세계의 절정을 선보인다. 서글픈 현실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 커플의 용기와 사랑에 무한한 헌사를 보내는 젠킨스의 시선은 [문라이트]보다 묵직하고 단단하다. 이 마지막씬에서 나는 젠킨스가 진화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다음 영화가 무척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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