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 블랙클랜스맨

최근 스파이크 리는 도저히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구제불능 닉스 구단(New York Knicks)을 대변하는 상징물처럼 보여진 것이 사실이다. 본업인 영화판에서는 거의 잊혀지고 있었고, 오직 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텅빈 메디슨스퀘어가든의 터무니 없이 비싼 맨 앞줄 좌석 뿐이었다. 그런 그가 [블랙클랜스맨]으로 보기 좋게 재기에 성공했다. 스파이크 리가 흑인 정체성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니, 이보다 뻔한 스토리가 또 어디 있을까 싶겠지만, 그 결과물은 썩 그럴싸할 뿐 아니라 꽤 잘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와 그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영화가 스파이크 리의 ‘인생작’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사실을 곧 확인하게 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이 영화 이후 리 감독의 인생은 예전과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굳이 그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없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블랙클랜스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파이크 리의 개인사를 먼저 조금 되짚어보아야 한다.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학생 시절, 리는 한 교수가 [국가의 탄생]이 이룩한 영화기술적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영화의 정치적 편향성(1915년작인 이 영화는 토마스 딕슨 주니어의 KKK 미화 소설 [Clansman]을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분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제적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는데, 우선 이 일화에서 [국가의 탄생]과 KKK로 대변되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스파이크 리 개인의 관심(?)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2017년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발생한 폭력사태가 있다. 남부군기(Confederate Flag) 게양 논란으로 대변되는 미 남부지역 백인우월주의 운동 단체가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돌진한 차량에 의해 무고한 여성 시민 한 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다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일으킨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뒤에는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는 KKK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15년부터 2017년까지, 약 백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을 증오하고 백인의 유전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세력이 버젓이 미국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스파이크 리가 [블랙클랜스맨]을 만들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 영화는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 최초의 흑인 경찰인 론 스톨워스가 우연히 KKK 콜로라도 지역 지부로 흘러들어가 단원이 되고, 이 조직 중 일부가 기획한 폭탄테러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여 방지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그러니까 ‘왜 여태 스파이크 리가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리의 입맛에 딱 맞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스톨워스라는 형사가 명백한 흑인이었다는 사실이고, 콜로라도 스프링스 경찰 조직은 이를 위해 스톨워스의 옆에 필립 짐머맨이라는 유태계 백인 형사를 짝지워준다. 그러니까 전화로는 스톨워스가 ‘론 스톨워스’ 행세를 하고, 실제 조직으로 침투해 단원으로 활동하는 ‘론 스톨워스’는 백인 동료 형사가 맡은 것이다. 영화는 상당히 단순하고 순탄한 서사구조로 흘러간다. 별다른 반전이나 위기 없이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흑인-백인 버디 무비로 가볍게 즐기고 끝낼 수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보다 조금 더 생각할만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촬영기법이나 카메라 구도 등에서 미묘하게 ‘건드리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헐리우드 상업영화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인 요인이 존재하는데, 영화 초반 장광설처럼 쏟아내는 극중 스토클리 카마이클의 연설 장면이 좋은 예다. 카마이클의 연설 자체는 별다른 기교없이 다큐멘터리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연설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청중의 얼굴은 그의 ‘블랙파워’ 운동에 감화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과장된 콜라주 기법 – 마치 그룹 퀸의 “Bohemian Rhapsody” 뮤직비디오처럼 – 으로 표현된다. 이 극적인 대비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다큐멘터리적 색채로 구성된 영화의 화면에서 유독 튀는 부분으로 기억된다.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프로파간다를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셈인데, 이 강한 메시지가 결말부분을 대신하는 실제 다큐멘터리 필름(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빌 사건을 다룬다)과 호응하여 이 영화를 예술작품, 즉 조작된 허구로서 관객에게 기억되지 않고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을 환기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하게 만든다. 영화 곳곳에 이런 장치들이 숨어 있다. 스파이크 리가 ‘늙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지는 구간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끝까지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그런 소소한 단점들을 상쇄하는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볼 만하다. 아담 드라이버는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했고, 주연 론 스톨워스를 연기한 배우 존 데이빗 워싱턴은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유전자의 힘이 참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 소수의 배우가 제한된 무대에서 연극처럼 극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집중도가 더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보다 더 좋은 스파이크 리의 영화를 만날 확률은 극히 낮다. 그의 인생에서 한번은 풀고 넘어 갔어야 할 푸닥거리를 보는 것 같았는데, 그 살풀이가 꽤나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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