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가 모국어인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문장과 글에 인생을 걸고, 결국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두루 쓰이는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직조한다는 찬사를 받게 된 사람이 어느 순간 다른 언어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언어적 이민을 선택할 수 있다니,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자 꽤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라히리 개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지, 라히리의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특히나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와 같은 변방의 독자에게는, 조금 차갑게 표현하자면 라히리가 영어로 글을 쓰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든 대수롭지 않은 변화로 느껴질 수 있다. 어차피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정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어와 영어 외에는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없는 나에게는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그녀의 모국어인 영어로 읽는 것이 그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도, 이언 매큐언의 책도, 코맥 맥카시의 책도, 이창래의 책도, 주노 디아즈도, 크리스 리도, 앤드루 포터도… 최소한 한 권의 책은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로 읽었다. 그래야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는다 해도 번역되기 전 원어 상태의 문장이 가지고 있던 질감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로 쓰인 책을 읽는 데에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머리도 아프다. 휴대폰 영어사전을 옆에 펼쳐 놓고 모르는 단어를 계속 찾아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장은 그 지역의 특산품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떠난 언어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기 마련이다. 날 것의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위와 같은 차원에서, 라히리와 나의 사이가 조금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쓴 글의 원문을 찾아낸다 해도 더이상 읽어낼 능력이 없다.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이탈리아어로 쓴 첫번째 소설 [내가 있는 곳]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아주 짧은 호흡의 챕터들도 엮어 있다. 짧은 것은 한 쪽, 긴 챕터라고 해봐야 일곱 쪽이나 될까. 호흡이 너무 짧아 쉽게 몰입할 수 없다는 단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소설을 구성했다는 것은 그 짧은 분량 안에서도 충분히 라히리 특유의 풍성한 감정을 녹여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소설은 라히리의 세계에서 익히 보아온 쓸쓸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여성은 40대를 넘긴 여성 학자다. 학교에서 일하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친구를 사모하며, 유부남과의 뜨거운 기억도 가지고 있지만, 부모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과 몇 번의 실패한 사랑 등이 얽혀 현재는 고독을 친구 삼아 평생 살아온 도시를 방랑자처럼 경험하고 있다. 충분히 라히리의 소설이라 할만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소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장소를 중심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지만 결코 특정 장소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지명 등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장점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경우 그보다는 조금 상투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라히리 소설의 주독자층인 30대 이상의 여성이 쉽게 공감할만한 내용을 도구처럼 여기저기 배치시킴으로써 짧은 챕터 구성으로 인한 몰입도 저하를 상쇄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모든 남자를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아닌” 주인공이 행하는 거의 모든 행동은 너무나 범세계적이어서 독자는 스스로를 주인공에 투영시키기가 무척 쉽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넌 소심하니까 A형이지?” 와 같은 혈액형 맞추기 게임을 보는 느낌도 든다.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범용적이고 모범적인 답변지의 인상.

[내가 있는 곳]은 줌파 라히리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범작에 가깝다. 그가 오랜만에 신작 소설을 내준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떠난 그의 언어가 더이상 내게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 서글퍼졌다. 나는 그녀의 영어 문장을 사랑했다. 과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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