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loe Aridjis | Asunder

이 책을 산 건 2013년이다. 어떤 경로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주말 섹션의 책소개 코너에서 리뷰를 읽었을 수도 있고, 당시 살던 볼더의 볼더 서점(Boulder Bookstore)을 어슬렁거리다가 점원 추천 코너에서 덥석 이 책을 집어 들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이후 최근까지 약 6년의 세월동안 이 책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끝내지 못했다 함은 최소한 시작은 해봤다는 이야기다. 최근 이 책에 재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책에 꽂혀 있던 책갈피는 과거의 내가 99쪽까지 힘겨운 여정을 걸어 왔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당연히 책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1쪽부터 다시 읽어야 했다. 참고로 책은 꽤 짧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포드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런던에 거주 중인 작가 클로에 아리히스(Chloe Aridjis)는 두번째 장편 소설 [Asunder]에서 그녀가 가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십분 발휘한다. 소설의 주인공 마리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감시원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소설의 주된 서사 구조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그녀가 감시원으로 일하는 미술관에 존재하는 오래된 작품과 그 작품에 다가가려는 관람객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경계가 한 축이다. 감시원인 마리는 배경을 알 수 없는 신원미상의 관람객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에 지나치게 깊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 주된 임무다. 이와 함께 마리는 10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면서 그 곳에 걸린 오래된 작품이 아주 느린 속도로 미세하게 늙어가는 것을 감지하기도 한다. 마리 본인은 작품의 작은 변화까지 감지할 정도로 예민하지만, 그 변화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은 관람객을 막아야 하는 입장에 서있기도 하다. 소설의 두번째 축은 마리와 그녀의 오랜 친구 다니엘 간의 관계다. 시인을 자처하는 다니엘은 마리에게 박물관에 걸린 작품과 같다. 더 깊게 다가가고 싶지만 경계를 넘는 순간 작품을 훼손하는 관람객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 두렵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우연찮게 발생하게 된 파리 여행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둘만의 여행일 줄 알았던 이 여행에 불청객 피에르가 합류하게 되고, 잔뜩 뿔이 난 마리는 오래된 고성에서 사회성을 잃고 오랜 시간 홀로 은둔하던 성주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그로부터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는다. 천천히, 미세하게 홀로 무너져 가는 오래된 작품이 둘러친 경계선을 넘어선 셈이다. 이 여행이 소설의 세번째 축으로 기능한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 소설은 다가감과 망설임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이 가진 직업의 특수성을 주인공의 심리와 긴밀히 연결하고, 그 미묘한 떨림을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통해 상징화하는 서사구조는 특별할 것 없이 솔직하고 명쾌하다. 소설 중간에 등장하는 최면술사(hypnotist)의 일화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는 상충관계(trade-off)가 존재한다’는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이 소설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입장에서 거의 모든 문장이 하나의 숙제처럼 읽힐 정도로 어려웠다. 문장구조도 어려웠고 단어도 어려웠다. 물론 그만큼 작가가 타협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단어는 정의 그대로 완벽하게 쓰이고 있고, 문장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제이디 스미스(Jadie Smith)처럼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쓰이지도 않았고, 주노 디아즈(Junot Diaz)처럼 화려한 언변을 잔뜩 뽐내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 소설의 장점이 이게 다라는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주제와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을 평범한 서사구조로 묶어내기 위해 200쪽이나 낭비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무척 지루하다. 작가가 자신의 문장력을 연습하는 연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심증을 확실케 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묘사는 치밀하지만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불필요하며, 심지어 쓸모도 없다. 열 세개 챕터 중 아홉개 정도는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설의 종반부까지 켜켜이 쌓아올린 주인공 마리의 인격은 마지막 두 쳅터에서 갑자기 질투심에 눈이 먼 십대 소녀처럼 주저앉아 버리고, 이와 함께 소설의 장르적 특성 역시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끝나기 20쪽 전부터 갑자기 소설은 정체성에 대해 방황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문장은 참 좋은데, 딱 그 뿐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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