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생활 1년

세종시에 전세집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선배 교수님들께 처음 전해드렸을 때 그 분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지 않겠어요?” 나는 “차로 30분 정도 걸립니다”라고 답변드렸지만,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30분이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세종시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대전으로) 돌아온 교수님들도 많더라구요” 세종시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를 재어 보았다. 20키로 쯤 나왔다. 서울에 살 때 금호동 집에서 여의도 직장까지 거리를 재어 보았더니 16키로 쯤 나왔다. 여의도 회사에서 자동차로 집까지 퇴근할 때 걸렸던 시간은 최고 70분 정도였다. 평소에는 한시간 정도면 집에 올 수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세종시에서는 금요일 저녁 6시 정각에 학교에서 나선다고 해도 35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퇴근시간대 대전의 교통량에 대한 출신 지역에 따라 조금 상이하다. 여기 사는 분들은 “몹시 막힌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통행량이 조금 많은 정도”라고 주장한다) 요즘에도 가끔 교수님들이나 학교 동료들이 물어본다. 출퇴근이 힘들지는 않냐고. 요즘에는 “그럭저럭 다닐만 합니다” 하고 가볍게 뭉뚱그린다.

위의 예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약간은 과격한 이분법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방 사람’이라는 이 논리는 사실 정당하지 않은, 어찌 보면 매우 ‘후진’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이 논리가 비현실적이라고 부정하기에는 서울이 가진 위상이 너무 남다르다. 서울은 좁고 밀집되어 있다. 지방은 널찍하게 퍼져있다. 이렇게만 보면 지방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서울이 가진 살인적인 ‘밀집도’는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효율적’이라는 표현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지하철 노선과 기간 도로의 배치, 주요 상권과 관공서, 주요 업무지구의 배치를 살펴보면 에너지의 집중과 분산이 몹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시설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서울의 자원분배가 효율성 우선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형평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 안에서도 특정 지역에 사람과 돈, 문화와 창조성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은 지난 60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철저하게 스스로를 다른 지역과 고립시켜 왔고, 심지어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계급을 분화해 왔다.

심지어 요즘에는 비슷한 몸집을 지닌 세계적인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갖추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집은 서울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아닙니다 부산에 있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프랑스 요리나 일식 요리를 먹고 싶다면 굳이 빠리나 도쿄로 가지 말고 서울로 가면 된다. 지금 가장 핫한 미국의 인디 뮤지션이 궁금하다면 6개월만 꾹 참고 기다리면 된다. 국내 에이전시가 서울의 작은 공연장에 그 뮤지션을 대령해 놓을테니까. 서울은 한국사회의 모든 에너지원을 독점하며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도시와의 차별점을 굳이 꼽자면, 국내에 서울의 경쟁자가 전무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울은 한국사회의 편애를 잔뜩 받고 자란 외동아들과 같은 존재다.

이런 서울을 고향으로 하는 나는, 서울을 벗어나 살기 전까지 스스로를 서울 안의 작은 구역에 가두며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즉, 서울을 다시 잘게 쪼개기 시작한 것이다. ‘강남 3구’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압구정동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가봤다. 서울의 다른 지역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강동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봤다. 노원구에 사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원구와 강북구, 중랑구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양천구와 강서구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나는 종로구와 마포구, 서대문구에서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커왔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 살아보니 그 모든 정체성이 다 부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나는 ‘서울에서 온 사람’일 뿐, ‘마포구에서 온 사람’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어디에서 오셨어요?” 라는 질문 다음에 “그래서 서울 어디서 오셨냐구요?”라고 이어 묻지 않았다. 내가 세종에서 산 1년여의 기간동안 얻은 가장 큰 레슨이 이것이다. 서울 사람은 서울이 전부인 줄 안다. 하지만 서울 밖에서 살다 보면, 서울이 한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24시간 내내 체감하게 된다.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외의 지역은 가끔 놀러 가는 경치 좋은 곳이거나 특이한 음식을 파는 맛집이 있는 곳, 혹은 명절 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친척이 사는 곳 정도로 인식되겠지만, 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저 또다른 서울’일 뿐이다. 지역 주민에게 삶의 중심은 그 지역이고, 그 지역의 일정 반경을 벗어나면 거기서부터 ‘지방’으로 인식된다. 사실 그렇게 인식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서울과 서울 외 지역 간 격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이들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놓고 자신과 자신이 사는 지역을 주변으로 놓는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서울과 지방’ 문제가 일차원적이지 않은 이유다. 이 ‘격차’는 앞서 표현한 에너지의 격차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격차는 앞으로 점점 벌어질 일만 남았다. 지금과 같은 낮은 성장률이라면, 특정 기간산업에 집중하여 수출을 통해 성장률을 떠받드는 국가전략을 고수한다면, 서울에 모든 기관과 기업이 모여 있고 그 에너지의 흔적이라도 받아 먹기 위해 다른 모두가 서울로만 모여든다면, 서울 외의 모든 지역은 지속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이 거대한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만든 여러 정책 중 유일하게 실패라고 낙인찍히지 않은 것이 바로 세종시다. 어떻게 보면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마지막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은, 아직 많은 것이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빈칸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2019년 3월 기준 세종시의 인구는 약 32만명인데, 이중 약 28%가 수도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62%는 대전과 충청도 등 충청권에서 유입되었다. 정부에서 작정하고 키우려고 하는 도시이니 그동안 부동산 광풍 등 ‘돈벌이’에서 소외되어 온 충청권 주민들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충청권의 한계적인 인구를 감안할 때, 수도권에서 지속적인 유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030년 목표로 잡은 80만명의 인구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열 개가 넘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매 블록마다 있는 스타벅스를 바라보던 이들이 세종시로 올 수 있을까? 삼성과 엘지, 국회와 청와대가 서울에 가만히 버티고 있는데 기차와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두시간 쯤 걸려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신도시에 호기롭게 내려올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처럼 운이 좋게 좋은 직장이라도 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대규모의 인구 이동을 유인할 만큼 ‘질 좋은’ 일자리를 세종시에서 얼마나 많이 창출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물음표로 남아 있다.

조금 덜 거창하게 이야기의 차원을 좁혀 매일 매일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곳에서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서울에는 때때로 올라간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그 곳에 있고, 많은 공연이 그곳에서 열리며, 심지어 내가 사고 싶어하는 물건을 파는 백화점도 서울의 강남구에만 있다. 하지만 대전의 신도심과 세종시를 오며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후회가 들 정도’의 심대한 불편함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물론 생활이 조금 느려지는 측면은 반드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전의 큰 병원을 한 번 가려고 해도 반드시 차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퇴근 후 교수님들과 한 잔 하려고 하면 시간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버스가 일찍 끊기기 때문이다. 이마트라도 한 번 다녀오면 장바구니는 가득 차 있고 하루 반나절이 지나가 있다. 퇴근길에 잽싸게 백화점 식품코너에 들려 그날 그날 먹을 것을 사던 서울생활과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시간의 느려짐’은 어찌 보면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축복이다. 서울의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는 서울에서의 탈출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단지 내부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 낮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동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쓰레빠를 끌고 어슬렁 바깥으로 나가면 공차부터 베스킨 라빈스까지 많은 거대자본 점포들이 눈에 보인다. 특색 있는 소규모 자본의 성업을 벌써부터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역사가 10년도 되지 않은 도시다.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전의 대규모 거주지역은 거대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밖에 없다. (서울의 대부분의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마포와 용산, 강남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그 지역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몇이나 되는가? ‘~리단길’은 왜 그리도 많은지, 자기 지역 다운타운의 별칭 하나 자신 있게 짓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공원이 두세개 정도 위치해 있어 쉽게 흙밭과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그 어떤 시간대에도 절대 막히지 않는다. 뭐 ‘통행량’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좋은 숲과 절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아서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서울 사람들의 눈에는 상가 공실도 많고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죽은 도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 실제로 ‘죽어가는’ 서울보다는 훨씬 생명력이 넘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의 재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유는 ‘연고’ 때문이다. 처음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 많은 이들이 그곳에 연고가 있는지 걱정했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결정의 결정적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고는 상당히 중요하다. 지역에 연고가 있다는 것은 ‘연대’로의 이행이 그만큼 쉬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종시가 아무리 도시 설계가 잘 되어 있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나의 실제적인 이웃이 될 수 없다면, 이 도시가 나에게 아주 깊은 유대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세종시에서 ‘좋은 이웃’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아내는 친구를 한 명 사귀었고, 오랫동안 온라인상으로 알고 지낸 분의 가족과 식사도 함께 했다. 단골 커피숍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장기간 삶을 지속하고자 할 때 이 곳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우리 부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고, 그 익숙한 공간에서 많은 친구들과 서로 의지해가며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 우리가 말버릇처럼 “친구 아무개만 이 곳으로 이사오면 서울은 꿈도 꾸지 않을텐데” 라고 농을 주고 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너무 나약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세종시가 심리적으로 아주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확장할 수 있는 여력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친밀한 이웃 두어 가족 (더!).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퍼즐조각이다. 이 조건만 만족된다면, 좋은 직장과 쾌적한 주거 환경이라는 기본 전제조건과 함께 우리 부부는 세종시를 서울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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