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ed by Notre Dame fire

많은 이들에게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최근 빠리의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많은 빠리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오바마나 트럼프같은 세계 유명인사들도 노틀담 성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도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자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 중 하나인 성당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스타그램에는 저마다 개인적으로 간직한 노틀담 성당의 모습을 올리며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빠리에서 노틀담 성당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다지 마음이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만큼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이유는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나는 빠리가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보도블럭 한장까지 도시의 역사로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고 스카이라인을 보존하기 위해 고층건물조차 허락하지 않는 빠리 시민의 완고함을 존중한다. 아침 길거리 공기 위에 스며드는 빵 냄새와 지하철 역사에 울려퍼지는 악사의 음악을 사랑한다. 하지만 몇백년 전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경외감보다는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꼈다. ‘역겨움’이라는 표현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생제르망 데 프레 성당(Church of Saint-Germain-des-Prés) 앞에서 에서 문자 그대로의 메스꺼움을 느꼈다.

몇백년 전 대성당이 건축되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수천명의 노역이 동원되었다.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었을 것이다. 수십년, 때로는 백년이 넘게 걸리는 건축과정에서(노틀담 성당은 정확하게 100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책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노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지 않았다. 성당이 완성된 후 프랑스 혁명 전까지 일반인은 이 성당에 출입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치루는 등 여전히 노틀담은 상위계층의 전유물로 남아 있었다. 신에 대한 찬양을 증거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성당이다. 그 성당에서 신을 향해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은 계급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었다. 당시의 신은 계급주의를 신봉하는 신이었다.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많은 중세시대 대형 건축물이 인구의 99%를 차지하는 서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증거는 외부 장식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틀담 성당의 정문 주변에는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되고 조각된 예술품이 도처에 깔려있다. 정문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문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예술적인 장식물은 모두 권위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의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 권력자이자 권위자로서의 신의 모습, 다양한 형태로 노려보는 듯한 악마와 괴물들의 모습이 성당의 거의 모든 외관을 휘감고 있다. 12사도와 천사의 표정은 이들이 우리 편인지, 혹은 우리를 지배하러 온 이들인지 헷갈릴 정도다. 당시 성당은, 그 앞을 지나다니던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절대적인 신 앞에 복종하라. 단, 당신의 왕과 귀족은 신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고 있으니, 왕과 귀족에게도 복종하라. 대충 이런 메시지로 읽힌다. 즉 신과 지배계층의 모습을 일치시킨 것이다. 이런 노틀담 성당이 내 눈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99%의 확률로 나의 조상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 역시 한번도 없다. 지금은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해도, 그 공간의 역사적 유래는 변하지 않는다. 서양 건축물에 대한 내 불호의 예외가 있다면 프라하에서 확인한 카프카의 생가, 혹은 니스에서 찾아가본 세잔의 아뜰리에 정도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삶을 살다 간 예술인의 개인적인 공간 정도가 내가 유럽에서 사랑하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외 대부분의 관광명소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의 폭압적인 권위주의가 읽혀져 더이상 있기 싫어진다. 노틀담 성당이 불탄 것이 경사로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슬퍼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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