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별 엮음 | IMF 키즈의 생애


“IMF 외환위기”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리우는 이벤트가 있었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한국 전역 쯤으로 대충 그 기간과 공간이 정의되고, 대외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이 연속적으로 도산하는 가운데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으로까지 그 여파가 미쳐 자칫하다 국가수준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이할 뻔 했다는 것이 이 이벤트의 전개과정에 대한 거친 요약이며,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그 이름도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공급받음으로써 단기적인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단기적인 결론이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로부터 요구받은 노동시장 유연화, 주요기업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 등의 정책에서 일종의 굴욕감을 느낀 이들은 위의 이야기에 더해 “나의 돌반지를 녹여내어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다” 따위의, 일제시대에서나 나올법한 무용담을 추가함으로써 나름의 자존감을 유지하려고도 해볼 것이다. 이 이벤트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1998년 이전과 이후 한국사회의 얼굴이 상당히 큰 폭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아마 모두가 공통적인 명백한 사실로써 받아들일 것이다. 그 중 누군가는 이 거대한 사회적 변화기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어, 예컨대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부질없는 가정을 덧대는 방식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IMF 키즈의 생애]는 프레시안 기자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서 유학중인 안은별이 1980년대에 태어난 7명의 일반인을 인터뷰한 결과물을 엮어놓은 책이다. 위의 문단에 IMF에 대한 간단한 요약을 실어놓은 이유는, [IMF 키즈의 생애]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이 책이, 사실상 ‘IMF 키즈’를 전혀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부각하기 위함이다. 안은별은 1980년대에 태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재까지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사를 수집함으로써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어떤 층위의 공통점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안은별은 그 공통점을 IMF 외환위기라는 하나의 사건을 프리즘처럼 사용하여 정리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결과는 대실패다. 나는 7명의 이야기를 읽으며, 대체 왜 이들이 ‘IMF’라는 키워드로 묶여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서문에 쓰인 저자의 변을 읽어보면 대충 이러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IMF 서사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IMF 위기를 단순한 외환 부족에서 일어난, 그것을 갚은 뒤에 진화된 단기간의 사건이 아니라, 전 지구적 변동 속에서 그때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권위주의 개발국가 시스템 자체가 문제시된 사태,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야기한 핵심 계기로 파악하고자 한다.

… 후자는 IMF 경제위기의 해법의 결과로 효율화되고 유연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로서, 자전적 이야기의 주체로서 주목하고 있다는 데서도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책은 후자의 의미에 훨씬 가깝다.

… 여기서 IMF는 인터뷰이 각자에게 자신이 시간을 보내온 혹은 시간을 보냄으로써 형성되는 ‘사회’라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생애를 그것과의 관련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매개장치다.

정신을 부여잡고 저자가 하려고 했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써보면, 저자는 ‘IMF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를 가진 자’를 인터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트위터에서 만난 저자 나이 또래의 ‘트친’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책으로 내려는 욕망을 솔직하게 밝혔다면, 서문에서와 같은 지면낭비는 최소한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IMF를 개인의 삶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 매개체가 되고 이를 통해 이들을 ‘IMF 키드’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의 IMF 키드는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그 많은 IMF 키드의 생애에서 건져올려낼 수 있는 IMF 외환위기에 대한 함의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적인 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여기에서는 IMF 외환위기 전개과정에 주로 등장하는 이름들이 될 것이다) 단지 그 시대를 살아낸 필부필부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혀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일반적이고 미시적인 삶에서 효과적으로 건져올려낼 수 있는 확실한 교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럴 수 있을 때에만 어떤 세대에게 합당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는 ‘IMF 키즈’ 세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7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IMF라는 이벤트는 이미 저만치 사라지고 희미해져버린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7명 중 상당수가 공무원이나 교사 등, IMF 외환위기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김괜저의 경우에는 뉴욕대까지 유학을 갔는데 2008년 금융위기때문에 집으로부터 송금받는 금액이 많이 줄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98년도 아니고 2008년 당시의 환율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이.. 왜 IMF 키드인지 모르겠다.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심지어 본인의 선택에 의해 자퇴와 휴학을 반복하다 치과의사로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고소득자의 삶이 IMF 키즈를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성’이라는 억지스러운 개념까지 끌어들인다. 여성이니까 조금 더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그게 여기서 왜 나와! 한마디로 나는 이 책에 ‘낚여’ 버린 셈이다. IMF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책이다.

물론, 이 책에도 분명 의미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홍스시의 기구한 가족사는 그 자체로 뭉툭하게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사는 IMF 이전부터 기구했다. IMF가 무언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힘들다. 서유진은 외고를 나와 대안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IMF 외환위기가 “권위주의적 개발국가 시스템”에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면, 그 큰 그림 안에서 서유진의 삶은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두고 “실패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IMF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엄마는 IMF 이전부터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부분에서, 이 책은 등장인물의 삶과 IMF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데에 실패한다. 그냥,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회사생활 관두고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트위터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기자생활하면서, 또 트위터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깊게 이야기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내면서 유학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고. 그냥 그 정도로만 책의 목표를 삼았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인터뷰 모음집이 될 수 있었다. 괜히 어줍잖은 어려운 용어 써가면서 애써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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