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숨통

[숨통] 표지

이주자 문학, 혹은 디아스포라(diaspora) 문학을 읽을 기회가 생기면 피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읽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대부분이 원문으로 영어를, 문학의 배경공간으로 미국을 택했다. 그만큼 미국이 상대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일까, 강한 자성을 가진 커다란 행성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국부때문일까. 미국에서 오랜 기간 (어떤 종류든) 이민자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소수인종으로서 주류 백인사회를 지근거리에서 경험해보았다면, 그 나라가 대외적으로 자랑하는 문화적 다양성과 다인종간 공존의 사회적 가치가 실상은 구조적으로 묘하게 뒤틀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인종, 성별, 학벌에 의해 확연히 구분되고, 주류사회로의 편입과정에서 두꺼운 ‘유리장벽’이 존재하며, 백인중심의 획일적인 문화의 강요가 다양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취해지는 사회가 내가 경험한 미국이다. 최근의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민 생활의 고단함과 문화적 이질성에서 오는 충격을 전시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차원을 넘어, 위와 같은 미국사회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프리즘으로도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집 [숨통]은 최근 몇년 간 읽은 모든 디아스포라 문학을 통털어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가끔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읽고 싶어지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코맥 맥카시의 장편소설이 그랬고, 줌파 라히리의 단편들이 그러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은 또 어떠한가. 한 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작가들의 작품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문학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문학이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이유는, 더 나아가 예술의 최전선에서 인간애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이유는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맥카시의 건조하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문체, 사려깊고 속정 많은 라히리의 문체, 낭비되는 단어가 하나도 없어 보일 정도로 간결하고 완벽한 이시구로의 문체는 모두 그 자체로 하나의 차원을 형성한다. 둘째, 이들의 작품은 세상을 비추는 투명한 창이다. 미학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내딛는 그 발걸음이 언뜻 보기에도 무척 무거워, 한 문장이라도 게으르게 읽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는 내가 있고, 나의 주변이 있고, 내가 속한 사회가 있다. 그 안에서 공감하고 위로받고 반성하게 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숨통]은 위와 같은 대가의 미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젊은 작가만이 뿜어낼 수 있는 강렬한 숨결을 추가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숨통]의 단편들은 사려깊게 쓰였고, 용기있게 발언하며, 슬픈 현실에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무척 아름다우면서 나이지리아와 미국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비춘다. 단순히 묘사하고 풍자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장 안에 작가의 시선을 녹여내는 시도가 가히 ‘예술적’이다. [숨통]에서 창조된 세계는 결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작가가 경험한 세계를 조금씩 변주해갈 뿐이다. 작가가 성장한 나이지리아의 어지러운 상황과 미국으로 이주한 뒤 경험한 필라델리파와 프린스턴 주변의 이중적인 미국백인사회, 그리고 작가와 작가의 아버지가 살아온 터전인 대학과 교수사회가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된 배경으로 존재한다. 이토록 좁은 배경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이야기들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문학적으로 마법적이기 까지 한데, 이건 순전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개인의 특출난 재능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별다른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음에도 한 여성의 내면을 깊숙히 따라가는 것만으로 하나의 거대한 감정적 격랑을 만들어내는 ‘지난 월요일에’는 여러 뛰어난 단편들 중에서도 가장 아디치에의 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 개인의 경험이 솔직하게 드러난 듯한 ‘전율’은 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또다른 작품이다. ‘미국대사관’은 [숨통]을 관통하는 여러 가치들, 예컨대 아프리카 이민자의 고단한 삶, 나이지리아의 어지러운 정치상황, 아프리카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차별과 학대를 모두 응집한 폭발적인 작품이며, ‘중매인’은 미국사회에서 이민자가 살아가는 두가지 얼굴(철저하게 미국사회에 복종하던지,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만 살아가던지)을 극명하게 대비하며 보여주는 현명한 작품이다. 버릴 단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고, 책장을 넘기는 것이 무척 아까울 정도로 모든 문장이 사랑스럽다는 사실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