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rgos Lanthimos | The Favourite

[The Favourite] poster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요즘 영화판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꾼인 것 같다. [더 랍스터(The Lobster)]부터 [킬링 디어(The Killing of Sacred Deer)]를 지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까지, 큰 실수 없이 착실하게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구축했다. 감정을 숨긴 무표정한 배우의 얼굴, 새파란 숲, 극단적인 광각 렌즈의 사용 등 란티모스 영화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시각적으로 우선 강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시각적으로 선사하는 깔끔한 모습은 아주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독창적이진 않다. 란티모스를 동년배의 다른 감독군과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서사구조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와중에 창의적으로 이끌어내는 선명한 문제제기 능력일 것이다.

그의 세계는 항상 날카로운 대립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극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은 대립적인 두 세계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사람이다. 가운데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하며 그 누구도 균열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더 페이버릿]에서는 여왕 앤이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는 누구나 대립관계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친절하게 설명한 뒤 부차적인 장식물은 모두 거세한 채 빠른 속도로 핵심으로 치닫는다. 관객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긴장감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인지 직선적인 서사구조로 인해 지루해할 틈은 없다. 지극히 판타지스러운 이 세계는 결말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갑자기 관객의 현실을 환기시키는데, 나는 이 부분이 란티모스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일그러지는 앤의 얼굴과 마비되어가는 팔, 다리는 잘못된 선택이 연속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낡고 굳어버린 처지를 상징한다. 그렇다고 앤의 사랑을 차지한 한쪽 세계가 많이 행복해보이진 않는다. 그녀는 여왕의 무릎 밑에서 짓눌리는 삶을 평생 살아야 한다. 껍데기 뿐인 권력이지만 그 권력의 끄트머리를 부둥켜 잡고 살아야 겨우 생존하는 가냘픈 인생이 이 한쪽 세계의 전부임을, 영화는 꽤 긴 클로즈업을 통해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여왕의 사랑과 권력을 빼앗긴채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다른 세계의 모습이 오히려 더 담담해보인다.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쟁취했지만 불안감에 한 치도 마음 놓을 수 없는 현실, 틀린 것을 알고 있지만 바로잡을 용기가 없는 삶, 지나친 소유욕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알량한 자존심. 그렇게 판타지스럽지 않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다. [더 페이버릿]은 그런 현실의 누추함을 비추는 현명한 우화다. 란티모스의 영화는 테크닉이 너무 화려하고 뛰어나서 별 네개 이상을 줄 수 없게 만들지만([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문라이트]같은 영화가 내가 별 다섯개를 줄 수 있는 영화들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시기하거나 깎아내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지적으로 자극이 되는 흥미로운 영화를 계속 만들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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