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anne Bier | Bird Box

[Bird Box]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엇’을 본 사람은 자살하게 되는 세계가 도래한다. 그것을 보면 반드시 죽는다. 죽지 않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고 창문의 커튼을 내린다. 음식 등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에는 눈을 가린채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어가며 길을 찾아야 한다. 주인공 멀로리(산드라 불록 扮)는 그 와중에 아기까지 출산했다. 한 집에서 함께 위기를 겪어나가던 여자는 동시에 아이를 낳고 숨졌다. 그녀와 한 집에 우연히 모여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던 동료들은 ‘그것’을 보아도 죽지 않는 미치광이에 의해 살해당했다. 멀로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료 톰(트레반테 로즈 扮)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외딴 곳에서 5년 동안 생존한다. 하지만 톰마저 미치광이들에 의해 숨지고, 멀로리는 우연히 무전교신을 통해 연락이 닿은 신원불명의 남자 ‘릭’이 가르쳐준 방향대로 눈을 가린채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무작정 그 ‘유토피아’로 나아간다.

영화의 매력도 단순하다. 영화는 산드라 불록이 가진 미덕을 최대한 전시하는데 집중한다. 그녀는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강인한 육체적 매력을 자신있게 보여줌과 동시에, 동 영화에서 주인공 라이언이 극복해야 했던 대상이자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었던 모성애를 마음껏 드러낸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디스토피아적 세계, 바깥 세상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집 안에서만 생활할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성, 그 좁은 공간을 공유하는 동료조차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상황설정 등 영화는 스릴러의 기본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영화의 단점도 명확하다. 우선 서사구조가 엉성하다. 설정 상 모순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하나같이 일차원적이다. 스릴러 장르 영화에 대한 클리셰로 가득차있다. 심지어 무언가를 보면 반드시 죽는다는 기본 설정조차 어디에서 본 듯 하다. (영화는 조쉬 메일러맨(Josh Malerma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넥플릭스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텔레비전이라는 한정된 전달매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시청자의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장치를 끊임없이 삽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손쉬운 장치가 스릴러 구조다. [버드 박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심지어 앞도 보지 못하는 포스트-아포칼립틱 세계에서 두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어머니의 사투라는 주제는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원천이다. 영화의 매력도 딱 거기까지고, 그 외 새로운 매력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의 관련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제의식을 [버드 박스]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시각을 지배하여 목숨을 잃게 만드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거주하는 집에 침입한 미치광이의 그림에 의해 대략적인 형태를 짐작할 수 있지만,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을 보면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초월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대립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관계는 ‘그것’을 보아도 눈이 멀거나 죽지 않는 미치광이 집단과 ‘그것’을 보면 죽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사투일 것이다. 미치광이는 주인공이 거주하는 집에 침입한 뒤 창문을 개방하여 동료들을 하나씩 죽게 만든다. “넌 저것을 봐야해. 얼마나 아름다운지.”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억지로 바깥 세상을 보도록 강요한다. 모두가 시력을 가진 세계에서 눈먼 자들은 비정상이라고 취급당한다. 하지만 모두가 시력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영화 속 세계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들은 미치광이, 혹은 폭력적 존재로 그려진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현실의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당연’한 일이자, 가끔은 퍽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에서 눈먼 자들이 사는 세상은 세심하게 보살펴지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면 영화속에서 눈을 가린 자들에게 바깥 세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미치광이의 모습이, 현실에서 눈먼자들에게 동등한 세계를 공유할 것을 강요하는 시력을 가진 이들의 행동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 미치광이에게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그 모습이 평범한 이들에게는 죽음으로 가는 독약이듯, 현실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다수에 의한 폭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버드 박스]가 성취하고 있는 가장 훌륭한 주제의식이 위와 같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영화의 결말은 두배로 실망스럽다. 모든 고난을 뚫고 멀로리와 두 아이가 도착한 곳은 실제 눈을 먼 이들과 시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의해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사는 일종의 유토피아인데, 그곳에서 어떻게 식량은 조달하는지 등 설정, 그곳에서의 삶이 미치광이 집단과의 대립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등에 대한 설명 등 꼭 필요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뭉클한 감동을 강요한 뒤 성급하게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 전형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화인데 서사구조나 영화적 장치는 너무나 전형적이다. 이런 모순도 가 설계된 것이라면 실로 대단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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