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rgos Lanthimos | The Lobster


저녁식사를 위해 고기를 구워야 해서 짧게 감상평을 남긴다. (무려 창원에서 공수된 등심 소고기다. 아내를 실망시킬 수 없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에 대한 명성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의 영화를 본 것은 이 [랍스터]가 처음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2015년 당시에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깔끔하고 똑똑하다는 평가가 적절할 것 같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지적으로 까탈스러운 평론가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영리하다.

영화는 부조리로 가득찬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벌어지는 감정에 대한 억압의 문제를 블랙 코미디 장르 위에서 유려하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반드시 짝을 찾아야 하는 세계와 절대 짝을 찾으면 안되는 세계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두 세계는 대립하고 있고, 주인공은 딱히 굳건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 자신이 속한 세계의 규칙에 순종하기 위해 애쓴다. 짝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세계든, 그렇지 않은 세계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 혹은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은 결국 주인공과 그의 파트너를 일종의 감정적 파멸로까지 이끌게 되는데, 영화는 이 외에도 자연스럽게 피어나야 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규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부조리극의 설계를 탄탄히 한다. 관객은 ‘왜’ 그런 세계가 만들어졌고 유지되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는데, 이건 사실 알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일상의 관계에서 우리가 알게모르게 집착하게 되는 감정의 규범화, 혹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의 강요 등의 문제다. 상대방에게 사랑의 언어를 자신의 원하는 형식으로 강요한 적은 없는지, 상대방과의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나머지 억지로 공유지점을 창조하여 관계의 지속을 스스로에게 강요한 적은 없는지, 감정의 소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에서 이를 거부하며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떠밀었던 적은 없는지 생각해볼만 하다.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한 세계의 지도자에 의해 신체의 일부분을 잃은 등장인물 중 하나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거잖아요!” 라고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이 등장인물은 이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불행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욕망을 정당화한다. 이런 장면들의 반복만으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충분했다. 어른을 위한 우화로 꽤 괜찮은 만듦새를 가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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