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ARA | Sarah

KIRARA | Sarah

공연을 할 때마다 청하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뮤지션 키라라(KIRARA)가 “음반 안에서 개연성을 가지게 만든 첫번째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하는 [Sarah]는 그녀의 세번째 정규음반이다. 키라라의 표현에 따르면 앞선 두 장의 정규음반이 기존에 작업했던 곡들을 음반의 형태를 갖추어 발매한 “모음집”의 형태였다면, [Sarah]는 ‘Sarah’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슬픔, 외로움, 절망과 같은 감정을 녹여내고 있다. 여기서 ‘Sarah’는 아마도 당연히 키라라 자신이겠지만, 키라라와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기도 할 것이다.

키라라의 음악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다. 음반의 첫 곡이자 음반의 전체적인 방향을 정립하는 곡 “걱정”에는 이 뮤지션의 사려깊고 섬세한 마음씀씀이가 잘 드러나있다. 한 친구의 자살로부터 시작된 염려와 걱정의 관념은 [Sarah]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잘 지내냐”는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번민과 얼마나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 속을 오고 나갔을까. 이러한 절절한 마음에 대한 표현은 이어지는 노래인 “Wish”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Sarah]만이 가지는 어떤 하나의 얼굴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녀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쁘고 강해” 보이기도 하고, 웨이브에 실린 표현처럼 “뿌숨과 감화”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Sarah]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층위의 시각과 주제가 있을 것이다. 하우스와 빅비트, 시부야케이와 같은 장르, 캐미컬 브라더스, 이디오테잎, 코넬리우스와 같은 뮤지션, “Rain Dance” 등에서 드러나는 재미있는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라라의 음악에 대한 반응 중 상당 부분이 청자와 뮤지션 간에 발생하는 감정적인 교감에 대한 고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자음악만큼 뮤지션과 청자 간 존재하는 감정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장르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전자음악을 흔히 “기계적”이라는 이유로 멀리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인간의 목소리를 포함해 음반의 형태로 청자의 귀에 전달되는 음악의 대부분은 0과 1의 신호로 변환된 기계음이다. 오히려 전자음악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추상적이라는 특징을 지니며, 이 지점에서 성공적인 성취를 이루어내는 뮤지션의 경우 본인의 감정을 상대적으로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추상화를 볼 때 아무런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 혹은 현실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도 화가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가 있듯 말이다.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궤변이지만, 아무튼 나의 이런 가정에 따르면 [Sarah]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키라라가 전자음악이 가진 추상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소리의 분해와 조립의 과정을 통해 본인만의 특유한 질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음반이고 고마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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