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Bulger | CounterPunch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펀치(Counterpunch)]를 기획하고 감독한 제이 벌저(Jay Bulger)는 복싱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회고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전국적인 인기를 끈 스포츠 종목이자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상징과도 같았던 복싱은 이제 NFL이나 NBA에게 그 영광을 내어주고 관심의 뒷편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반쯤 벌거벗은 몸뚱아리가 전시의 전부인 오락물이자 육체적 강인함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승리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원시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스포츠 종목인 복싱에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던 가난한 흑인사회가 더 열광적으로 반응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 흑인사회마저 등을 돌릴 정도로 쇠락의 길로 빠져든 이 원초적 스포츠의 속살을 담담하게 비추고자 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오히려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복싱을 담아내는 영화의 카메라 렌즈는 대부분 역동적인 각도를 잡아내기 위해 애쓰고, 복싱을 담아내는 영화의 시놉시스는 대부분 가난과 영광, 그 이후의 몰락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이 종목을 활용하고자 노력하는데 반해 다큐멘터리 [카운터펀치]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시작한 복서 세 명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다루되, 감독의 시선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복싱 영화로 기억될 만 하다.

영화는 “Lil B-Hop”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유망주 소년 복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콜버트(Christopher Colbert)는 뉴욕주 브루클린의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고, 이 지역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역 경찰들이 합심하여 문을 연 무료 체육관 ‘Atlas Cops & Kids Boxing Gym’에서 복싱을 처음 접했다. 이후 이 스포츠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화려한 아마추어 커리어를 마무리한 뒤 본격적인 프로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콜버트의 이야기가 드러내는 것은 복싱이 지역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성이다. 이 무료 체육관은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 브루클린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청소년 대상 무료 체육관이었다. 이제 경찰복을 벗고 체육관 운영에만 매달리는 운영자들은 매일 운영난에 허덕인다. 복싱은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고, 가끔 콜버트와 같은 유능한 인재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알 헤이먼(Al Haymon)과 같은 거물 프로모터가 거절할 수 없는 금전적 제안을 해오며 냉큼 빼내간다. 콜버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부와 명예의 길로 가장 빠르게 안내해줄 사람은 헤이먼과 같은 유능한 프로모터다.

알 페이먼과 같은 프로모터가 현 복싱계에 미치는 파급력은 영화의 다른 주인공, “Kid Chocolate”으로 불리우는 피터 퀼린(Peter Quillin)의 이야기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부각된다. 피터 퀼린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복서다. 미시건의 가난한 마을에서 성장하여 뉴욕에서 복싱을 연마한 뒤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자신의 고향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에 멋진 저택을 짓고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밝은 앞날만이 가득해보였던 그가 돌연 챔피언 의무 방어전을 포기하고 벨트를 스스로 내려놓는 선택을 한다. 젊은 나이의 전도유망한 챔피언이 스스로 벨트를 포기했다는 뉴스는 전세계적인 화제의 대상이 되고, 곧 그의 비상식적 선택의 뒷편에 알 헤이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헤이먼이 자신의 구미에 맞는 대진을 짜기 위해 퀼린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도전자와의 경기를 포기하라고 종용한 것이다. 이후 퀼린은 1년 간의 공백을 끝개고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기전에서 체중을 맞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TKO로 패배하게 된다.

콜버트와 퀼린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알 헤이먼은 플로이드 메이웨더(Floyd Mayweather)와 각별한 관계이며, 현 복싱계의 패러다임을 형성한 사람 중 하나로 지목받는 사람이다. 콜버트와 퀼린 모두 메이웨더를 우상으로 대한다. 첫번째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퀼린은 자신과 메이웨더의 공통점으로 ‘무패 전적’을 꼽으며 그와의 관계를 주기적으로 상기시킨다. 콜버트는 “어린 시절 메이웨더를 보는 것과 같다”는 복싱계 평단의 평가에 흡족해하며 링 위에서 쇼맨쉽을 기르기 위해 애쓴다. 메이웨더와 같은 수퍼스타 복서의 경기에 걸린 베팅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이며 경기 입장권 금액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복싱이 몇몇 소수 프로모터와 수퍼스타 복서에 의한 돈잔치가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카운터펀치]는 복싱을 처음 시작하는 어린 흑인선수와 이미 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프로모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베테랑 복서의 예를 통해 복싱계가 선정성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더이상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돈잔치 복싱계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영화의 세번째 주인공이 있다. 캠 F. 어썸(Cam F. Awesome)은 베테랑 아마추어 복서다. 영화제작 중이던 2015년 당시 캠 어썸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중이었다. 그는 전국의 유명한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지만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려야 한다. 협회에서 어느정도 생활비를 보조해주긴 하지만 한 달에 두번 헌혈을 해야 복싱을 계속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프로행을 권유하지만 그는 올림픽이라는 큰 꿈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올림픽 역시 완전히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포기한지 오래다. 대표선수 선발전에서는 갑자기 헤드기어 착용을 금지하는 규칙이 통과된다. 복싱이 가진 원시성과 야만성이 흥행을 위한 좋은 도구임을 잘 알고 있는 협회의 결정에 어썸은 분통을 터뜨리지만, 돌아온 것은 눈 위에 크게 생긴 상처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선수 자격을 획득하지만, 해외 대회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포인트를 쌓지 못한 그는 결국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한다.

비교적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영화의 공기를 환기시켜 주는 일은 슈가레이 레너드(Sugar Ray Leonard)와 같은 복싱계 전설들의 인터뷰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현 복싱계가 과거와 달리 지나치게 편파적이고 선정적임을 비판한다. 복싱의 역사이기도 한 이들은 메이웨더로 상징되는 현금인출기능만이 강조되는 현 세대의 복싱 관계자들의 태도를 책망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콜버트는 2018년 말 현재까지 10승 무패를 기록하며 잘 나가고 있다. 퀼린은 충격적인 패배 후 다음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며 재기를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다. 어썸은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한 후 체육관을 운영하며 프로 전향을 저울질하고 있다. 복싱이 가진 순수성, 원시성이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지켜질 수 있다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카운터펀치’가 제대로 꽂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해보이지 않는다. 메이웨더가 추진하는 ‘돈이 되는’ 이벤트성 경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전통있는 아마추어 대회인 ‘골든 글로브(Golden Glove)’는 그 권위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콜버트를 키워낸 아틀라스 체육관은 전국으로 그 규모를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브루클린에서 이 체육관 외에 빈민가 흑인 청소년을 위한 다른 복싱 체육관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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