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 Tweedy: WARM

지난해에는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쓰지 못했다. 음악을 꾸준히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꾸준히 듣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는 ‘물리적 매체(CD든, LP든)의 형식으로 구입한 음반에 대해서만 블로그에서 이야기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위기에 봉착한 첫 해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물리적 음반을 구입하지 않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물리적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음반가게가 주변에 전무하기 때문이고, 둘째, 세종시로 내려온 뒤 우리 가족의 수입이 줄어드는 바람에 ‘문화적 낭비’를 더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플뮤직에 한달에 만원 정도를 내고 거의 대부분의 음악을 무한정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음반 한 장을 만원 넘게 주고 산다는 것은 낭비에 가까운 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을 끝까지 거부하는 독서광의 취향과도 같은 이 고지식함에는 음반을 손으로 직접 고르는 디깅(digging)과 턴테이블에 음반을 걸고 치직, 거리는 잡음을 듣는 아날로그적 감성 등 낭비되는 금액보다 더 큰 행복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인데, 나는 지난해부터 과감히 이 행복을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 일종의 사치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이러한 행복이 없어도 음악을 진실되게 듣는 과정은 전혀 손상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마지막 남은 고집조차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위와 같은 나름의 혼란기(?)를 겪으며 가장 후회되는 것은 지난해 발매된 좋은 음반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가장 좋게 들었던 다섯장의 음반을 인스타그램에 짤막하게 남겨 놓았는데,

김해원: 바다와 나의 변화
Snail Mail: Lush
Mitski: Be the Cowboy
The Beach House: 7
Khruangbin: Con Todo El Mundo

2018년은 위의 다섯장 외에도 정말 좋은 음반이 꽤 많이 나온 해라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기록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중 2019년 1월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 [WARM]은 ‘올해의 음반’에 필적할 정도로 좋아서 반드시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윌코(Wilco)는 내 세대의 인디음악 팬들에게나, 나 개인에게나 무척 특별하게 다가오는 그룹이다.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을 하나만 꼽으라면 언제나 2009년 7월 3일 콜로라도주 모리슨(Morrison)의 레드락스 야외공연장(Red Rocks Amphitheatre)에서 관람했던 윌코의 공연을 꼽는데, 그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그 날이 내 생일이었고, 제프 트위디가 직접 “오늘 생일인 사람들 모두 축하합니다”라는 멘트를 했다는 점이 물론 가장 큰 이유일 수 있겠지만 이건 너무 개인적이라 공식적(?)인 이유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음악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음반 중 하나를 발표한 예술가임과 동시에 음악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 그룹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공연을 본 뒤 이제 햇수로 10년 째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필적할 정도로 좋은 공연은 보지 못했다. 윌코 정도 되는 엄청난 커리어를 남긴 밴드가 앵콜을 두 번, 세 번씩 열정적으로 서비스하는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고, 곡과 곡 사이에 트위디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로 관객들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훌륭한 무대 매너와 비교될 정도의 입담을 자랑하는 뮤지션도 아직 무대에서 만나보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전통적인 로큰롤 악기 구성에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공기의 밀도를 꽉 채우는 압도적인 사운드메이킹 능력을 보여준 연주실력을 가진 뮤지션도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윌코의 음악을 좋아하는 한국팬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공연을 보라”고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한 셈이다. 그들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가장 미국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 중 하나이자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후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음악을 꾸준히 해온 밴드, 거기에 더해 미국 인디씬의 흐름을 정의내리고 한 시대의 기틀을 확립한 밴드라는 타이틀이 그리 거창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제프 트위디(Jeff Tweedy)는 윌코의 보컬이자 리더이자 알파요 오메가인 아티스트다. 일리노이의 작은 마을에서 노동자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여섯살 때 기타를 선물받고 12살 무렵 자전거 사고로 한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로커빌리와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로컬 밴드의 보컬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뒤 윌코라는 영광의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그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해 첫번째 솔로 음반 [WARM]을 발매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역시) 첫번째 회고록 [Let’s Go]에서 그는 한평생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약물(주로 진통제를 언급하고 있다)을 5주 이상 끊은 적이 단 한차례도 없음을 밝힌바 있다.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팬들을 기다리게 만든 그의 첫번째 솔로 음반은 모두의 예상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둡다. 그리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이 음반으로 인해 트위디가 윌코의 보컬리스트라는 이미 높은 명성에서 한단계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였음을 직감한다. 음반의 형태로 시현된 제프 트위디의 자서전이자 그를 평생 괴롭혀온 정신질환과 약물중독, 그로 인한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감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담아낸 섬뜻한 수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이런 나도 아직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여러분도 다시 한번 힘을 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묵직하게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음악이 별로면 말짱 꽝이기 마련이다. [WARM]의 수록곡은 메시지와 음악적 형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음악적 커리어의 근간이자 뿌리인 컨트리와 포크 음악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딘 채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악기 연주는 제프 트위디가 직접 했는데, 그의 두 아들인 스펜서와 새미 트위디가 각각 드럼과 백킹 보컬로 참여한 점이 이채롭다. (제프 트위디는 2014년 아들 스펜서와 함께 [Sukierae]를 발매한 적이 있다) 가족의 참여는 그로 하여금 조금 더 진실된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게 된다. (아래 지미 키멜 라이브 영상에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백킹 보컬을 하는 이가 아들 새미다) 11곡의 수록곡은 격정적인 정점이나 화려한 편곡같은 ‘할리우드적 포인트’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의 목소리를 조근조근 따라가다보면 결코 지루하지 않게 몇 번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Having Been Is No Way to Be”에서는 약물 중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네가 과거에 했던 마약은 뭐야?
왜 그걸 다시 시작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내 친구들이 아니야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면
마약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게 다 무슨 소용이야


“Bombs Above”에서는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참회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과 같았어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조금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정말 미안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내 손을 잡고 이야기했어
고통은 모든 이에게 마찬가지라고
그는 옳았어.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엔 너무 잘못되었지


제프 트위디의 통렬한 자기고백은 거의 모든 곳에서 너무나 직설적이고도 시적인 방식으로 반복된다. 아름다운 선율과 단촐한 악기구성,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얹혀 전달되는 가사는 침울한 진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가라앉아 있지만, 그의 따뜻한 목소리는 노래를 듣는 타인까지 가라앉히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까. 노아의 방주 신화를 차용한 “Let’s Go Rain”은 시니컬한 자기비하와 리스너에 대한 존중이 함께 들어있는 전형적인 트위디 풍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오, 나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세상의 모든 죄를 씻어버렸지
누군가는 파괴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하지
그리고 난 그게 한번 더 일어날거라고 생각해

내가 한때 크리스찬일 때는 말야(역자주: 트위디는 그의 유대인 아내를 따라 최근 유대교로 개종했다)
그걸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
그런데 지금에서야, 하늘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하늘이 오줌을 갈길 때 비로소 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겠지

오, 난 나무배를 만들어야겠네
나와 함께 기타의 바다에 살지 않겠어?


음악은 아름답다. 가사는 진솔되다. 좋은 음반이 아닐 이유가 없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어야 하는 음반이다.




2 thoughts on “Jeff Tweedy: WARM

    • 이 댓글을 지금에서야 확인했네요. 죄송합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은 친구추천이 최고라고 해요. 꼭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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