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 골목길 자본론

나의 누나는 ‘강남’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다. ‘강남’으로 인식되는 동네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노라고 내 앞에서 선언까지 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강남을 싫어하거나 경멸한다기 보다는 재미없어 하는 쪽에 가깝다. 그 동네는 그녀의 문화적 흥미를 자극할 만한 특출난 자산을 가지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강남역 대로변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을 갈 일이 생겨도 그리 신이 나지 않는다. 강남의 어느 동네에 갈 때마다 ‘간지럽다’는 표현을 머릿속에 되내이게 되는데, 그 곳의 문화적 공기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져 도저히 동화될 수 없는 거리감이 들 때 그런 표현이 떠오르는 것 같다. 아내도 최근 비슷한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아랫 동네”보다는 “윗 동네”가 자기 취향에 더 맞는 것 같다며, 마포구나 종로구를 살고 싶은 곳으로 꼽았다. 운이 좋게도 두 곳 모두 내가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들이다.

누나, 아내, 그리고 내가 서울의 특정한 공간을 유별나게 사랑하는 이유, 혹은 그 곳과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을 유독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공간들이 가지고 있는 ‘골목’의 이질성 때문일 것이다. 버스나 차를 타고 가면 보이는 대로변에 있는 가게들은 홍대입구 앞이나 강남역 주변이나 비슷하다. 올리브 영과 베스킨 라빈스 따위의 가게들이 줄지어 정렬해 있는 모습은 서울이나, 대전이나, 오송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큰 길가에서 한 두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길, 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비로소 그 동네의 진짜 정체성이 드러난다. 어떤 동네의 골목에는 인디 뮤지션들이 태연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고, 다른 동네의 뒷골목에 가면 고시생들이 컵밥을 손에 들고 바삐 움직인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있는 골목의 얼굴이 그 동네의 얼굴인 셈이고, 타지에서 온 방문객들은 그 골목의 얼굴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모종린 교수는 [골목길 자본론]에서 상권을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한다. 서울 등 대도시의 주요 상권을 명동, 건대입구와 같은 중심상권, 삼성역이나 동대문과 같은 몰링상권, 노량진, 종로 피맛골과 같은 대로변 상권, 그리고 성수동, 연남동, 경리단길과 같은 골목상권으로 나눈 저자는 골목상권이 발생하고 팽창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상세히 기술한다. 예컨대 설계된 도로의 구조라던가 스타벅스의 입점 여부, 대중교통의 접근성 등이 골목상권을 필연적으로 탄생시키는 여러가지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러가마트를 보유한 연희동의 주민들이 부러워지고,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혁하여 젊은 도시로 다시 태어난 일본 도야마시의 주민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풍부한 사례를 들어 골목상권의 현재를 응시하는 저자의 시선이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몇몇 지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순간이 점점 늘어남을 느끼게 된다. 우선 책의 구성이 엉망이다. 저자가 여기저기 매체에 기고한 글을 주제별로 묶어 출판한 듯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같은 내용이 몇 번씩 반복된다. 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책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셈이다. 사진은 또 어떠한가. 사진 출처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실은 모양인데, 보기 부끄러울 정도의 낮은 수준을 보이는 사진을 당당하게 실은 저자의 호연지기에 감탄할 때 쯤 뜬금없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옹호의 글을 발견하자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곳곳에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심증은 확증으로 바뀌어간다. 일본 사례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 (“서울은 도쿄가 될 것이다” 등의 주장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제언으로 주장한 일본식 도제시스템을 살짝 바꾼 듯해 보이는 “장인 공동체”, 혹은 “장인대학”, 젠트리피케이션은 건전한 전치과정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늬앙스까지. 저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본 뒤 무릎을 탁 치며 책을 덮었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헛똑똑이 학자의 브루주아 골목 탐방기 잘 읽었습니다.

tell me what you live for

교수라는 직업이 기대했던 것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두 학기가 채 끝나지 전에 알아버렸다. 하지만 싫증을 느끼고 이직을 알아보던 전과 다르게 나는 이 직업에 계속 머무르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상당히 중요한 이유 하나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국립대는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대와 달리 조기교육 및 사교육의 수혜를 듬뿍 받아 예쁜 수능 점수와 아름다운 학생부 기록을 완성한 학생들만이 오는 곳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효율성의 고통 속에서도 어떤 공무원들이 조금씩 쌓아올린 다양한 입시전형을 통해 꽤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국립대로 진학한다. 그 중에는 집이 가난해서, 부모가 도움을 충분히 주지 못해 서울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도 있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업이 더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 중 정말 똑똑하고 영특한데 공부에 대한 열정까지 뛰어난 학생을 발견할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낀다. 눈물도 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어떤 감정인데,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몇 안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며칠 전 막내 교수로서는 쉽지 않은 시도를 하나 했다. 조금 용기를 내어 의견 하나를 개진했다. 학과에서 책정된 아주 작은 규모의 장학금이 있는데, 면담을 하던 중 사정을 알게 된 한 학생을 추천했다. 오늘 그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학생 말고도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들 모두를 충분히 도울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좌절도 많이 하게 된다. 내 월급을 쪼개서 누군가를 도와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학생과의 상담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을 캐채해내지 못했다면, 그 학생은 아마도 이 적은 금액의 장학금에 대한 존재 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 정도의 행동에 대해 딱 그 정도의 뿌듯함을 느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를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국립대 교직원이라면 교육서비스에 대한 관점을 조금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값비싼 사적 재화가 아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재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는 것이 국립대에서의 교육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국립대 도서관에는 지역 시민까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국립대 강의는 영상으로 녹화되어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역사적으로 아주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다. 한국의 국립대는 그러한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 중 하나다. 

그 학생은 아주 명석한 학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성격도 좋다. 그 친구가 부디 마음껏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런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선생 입장에서 굉장히 큰 영광이다.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계속 교수라는 직업에 머무르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