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는 사회를 바라며

대전-세종 지역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의 양 변에 불법주차되어 있는 차들때문에 불필요한 교통체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불법주차 문제야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서울과의 차이점이라면 세종은 물론이고 대전도 서울에 비하면 주차 여건이 매우 양호한 편이라는 점이고, 서울에 비해 이러한 불법 주정차 행위가 일반 시민들의 습관적인 행위로 거의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감히’ 서울에 비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공용주차장이나 대형 주차빌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불법주차를 ‘기어코’ 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선량해 보이는 시민의 얼굴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끔 놀랍게 다가온다. 텅텅 빈 주차빌딩 앞을 가득 메운 불법주차 차량을 보면 그로테스크한 기분까지 느낀다. 세종시의 경우 아직 대부분의 빌딩 주차장이 요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고, 더 나아가 주차요금을 부과한다고 해도 몇 천원 차이로 불법을 감행할 정도로 이 지역 주민의 소득수준이 서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굳이 해답을 생각해본다면 첫째, 지하 2,3층 주차장까지 차를 끌고 내려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혹은 ‘귀차니즘’이 큰 영향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높고, 둘째, 그 귀차니즘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좁은 도로의 양 변으로 인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적으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않는 현상이 개별 경제주체에게 올바른 경제적 유인을 부여하지 않아 발생한 시장실패의 문제라면, ‘이성적인 판단’ 아래 불법주차를 하는 개별 경제주체에게 정확한 처벌을 가하지 않는 정책당국의 게으름으로 인해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도로 위 사고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공공성 훼손의 문제는 정부실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판단 아래 나는 최근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장애인 주차장 불법주차 차량에 대한 신고부터 시작했다. 불법 주정차 신고는 ‘생활불편신고’ 앱에서 가능한데, 휴대폰으로 바로 사진을 찍어 업로드한 뒤 간단한 신고 사유를 덧붙이면 바로 신고가 완료된다. 불법행위를 발견하고 5분 안에 신고가 끝나기 때문에 따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문자 등을 통해 신고 경과를 알려주기 때문에 피드백 또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불법 유턴이나 난폭운전, 보복운전 등 운전 상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한 신고는 경찰청에서 발행한 ‘스마트 국민제보’ 앱에서 가능한다. 이 앱의 경우 운전 중 휴대폰 촬영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불법행위 발견 후 귀가하여 녹화된 파일을 일일이 검색하고 편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동영상으로 확실한 증거를 획득한 경우 사고 위험이 높은 행위에 대해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편익 분석 측면에서도 충분히 할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나와 같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신고행위는 장기적으로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세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위와 같은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는 초범의 경우 대부분 계도 수준에서 마무리되며, 실제로 벌금부과까지 가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자에게 실질적인 ‘신호’를 보내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해 어떤 이가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정부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 신호는 생각보다 중요한데, 경제주체가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거짓말로 인한 이득이 거짓말을 들켰을 때 감당해야 하는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잘못된 행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잘못된 행동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경제적 유인 제공이고, 다수의 신고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신호를 발생시켜 경제주체에게 ‘규칙을 위반할 경우 발생하는 잠재적 비용’을 높게 상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신고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더 굳건히 믿게 된다. 규칙을 어기면 신고를 당할 것이고, 그래서 규칙을 어기면 안된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규칙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규칙을 어기게 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듯 규칙을 어길 경우 발생하는 이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상대방도 규칙을 어길 것이다’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한다. 즉, 달리 말하면 모두가 규칙을 어기는 가운데 혼자만 규칙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덩달아 규칙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신고가 일상화되고 규칙 위반자에 대한 처벌 역시 일상화된다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소수로 보일 수 있으며, 이러한 소수의 규칙 위반자에 대한 시선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변질된 유교사회에서 신고행위는 ‘이웃을 믿지 못하게 한다’는 그릇된 통념으로 비추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신고를 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모두가 불법을 저지르며,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린다. 이웃이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그 행위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이 더 나은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한 공동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둘 중 어떤 행위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나아가게 만들까. 상식적으로 너무 명백한 문제인 것 같다.

셋째, 공무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국가가 정한 여러가지 규칙 중 실제로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미흡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불법 주정차를 예로 들면, 하루에도 수백건 씩 발생하는 이러한 규칙위반 행위를 담당 공무원 한두명이 완벽하게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담당 공무원 본인의 경제적 혜택과 거의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해서 모럴 헤저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일반화된 신고행위는 공무원들을 강제로 일하게 함으로써 정책당국에게도 일정한 신호를 보낸다는 장점이 있다. 즉, 시장실패 뿐 아니라 정부실패 차원에서도 일정 부분 교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자발적으로 모든 규칙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이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강제적으로라도 규칙을 준수하게끔 만드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필요하다. 시민의식이나 공동체의식같은 개념은 단기간에 교육이나 훈육을 통해 발전된다기 보다는 장기간 사회적 유전자 속에 주입됨으로써 서서히 습득해나간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나는 우선 내가 사는 동네 주변부터 신고를 통한 효과가 어느정도인지 실험해나가기로 했다. 동네에서 가장 불법행위가 만연하여 불필요한 번잡스러움이 일상화된 한 골목을 타겟으로 정했다. 앞으로 6개월에서 1년동안 지속적으로 그곳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에 대해 신고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만 더 있다면, 그 효과는 조금 더 커질 수 있을까.

2 thoughts on “신고하는 사회를 바라며

  1. 강릉도 주차 문화가 엉망입니다. 대중교통이 열악하니 대부분은 1가구 2차량 생활이 당연하고, 주차는 길가에 대는 게 당연합니다. 가끔 붐비는 도로변은 이중주차까지 되어 있습니다. 3분만 걸으면 공영주차장이 비어 있는데 말입니다. 참 걷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상황에서 전부 다 신고할 수는 없으니 굳이 인도를 점유하는 차량, 골목길 코너 주차차량정도에 한해 (그리고 눈에 밟히는 경우에 한해) 굳이 5분 기다려서 신고를 하곤 합니다. 기다릴 때면 가끔 불법주차 중 악질적인 몇 종류는 굳이 사진 촬영에 5분 간격을 둘 필요가 전혀 없는데 왜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합니다.

    • 이미 신고를 하고 계셨군요 ㅎㅎ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일수록 주차문화가 조금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런 주차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도시를 설계한 공무원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고요. 악성 주차 차량은 말씀하신 것처럼 5분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아마도 공무원들 면피용으로 만들어놓은 장치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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