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ail Mail | Lush

snail mail
최근 음악 일기가 많이 밀렸다. 좋은 음악은 끊임없이 듣고 있는데, 그 감상을 차분히 글로 풀어내는 일은 항상 해야할 일들 중 우선 순위가 가장 뒤로 밀리게 된다. 물론 나의 게으름 외에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에 민망한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 블로그에 기록하지 못한 좋은 음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밀린 일기를 해소해야 할 때 주로 하게 되는 고민은 ‘무엇부터 쓸 것인가?’이다. 나는 보통 가장 좋게 들었던 음악부터 적어나간다. 최근 몇 달 사이에 가장 감명깊게 들었던 음반은 만 18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발매한 데뷔 음반, [Lush]였다. 스네일 메일(Snail Mail)이라는 무대명을 가진 린지 조던(Lindsey Jordan)은 2018년 볼티모어 교외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마타도어(Matador)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음반 [Lush]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올 해 가장 인상깊은 데뷔 음반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며,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올해의 음반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최근 사커 마미(Soccer Mommy)나 US 걸스(US Girls) 등 미국 로 파이(Lo-Fi)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 뮤지션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스네일 메일은 이러한 흐름의 끝판왕격으로 등장한 충격적인 신예 뮤지션이다.

5살 때부터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고 하며, 십대 시절 가족과 함께 파라모어(Paramore)와 피오나 애플의 공연을 본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며 두 장의 EP를 발매했다. (볼티모어 교외에 살던 린지 조던은 워싱턴DC의 NPR 사무실에서 열린 파라모어의 Tiny Desk 공연을 직접 가서 관람했고,  이후 2017년 본인이 직접 Tiny Desk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인터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음반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Loaded] 음반을 언급하는 이 뮤지션은 결코 애늙은이처럼 90년대 음악을 답습하지 않는다. [Lush]는 십대의 펄떡거리는 정서가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학교와 가족, 사랑과 이별, 우정 등 십대 시절 경험하게 되는 여러가지 성장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 음반은 그렇다고 여느 십대 갤러지 밴드의 음악들처럼 아마추어적이지도 않다. 그녀는 이미 뛰어난 기타리스트이며, 아주 뛰어난 작곡가이자 작사가이다. “Pristine”, “Heat Wave”, “Stick”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도저히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탄탄하고 쫀득한 구성과 훅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Full Control”인데, 90년대 로 파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스네일 메일만이 가지고 있는 폭발적인 정서가 형식적으로 잘 구현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른하고, 또 가끔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이 시절의 정서가 감각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요즘 힙합 음악이 대세인 것은 아마도 힙합이 가진 뛰어난 서사 전달 능력이 한 목 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흔히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르는 힙합 음악의 서사 전달 기능은 최근 록음악으로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Lyrical Rock’이라고 불리는 이 장르에서 성공한 뮤지션으로는 최근의 코트니 바넷(Courtney Barnett) 정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고, 그 이전에는 아마도 홀드 스테디(Hold Steady)가 어느 정도의 기반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스네일 메일은 대중음악에서 왜 가사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자, 가사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음악적 공간(soundscape)이 어떻게 더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 그 자체이기도 하다. 10월 3일 내한공연을 가진다고 한다. 김밥레코즈가 주관하는 내한공연은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짧고 구성이 지나치게 단촐하다는 공통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데뷔 음반을 이제 막 발매한, 로 파이를 기반으로 하는 뮤지션의 공연은 김밥 레코즈와 함께 해도 관중 입장에서 별로 잃을 것이 없어보인다. 꼭 가서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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