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여성중심주의를 반대하는 이유

최근 기성 언론을 통해 보도된 ‘워마드’를 중심으로 한 두세개의 사건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가톨릭 성체 훼손 사건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지하철 남성 조롱 사건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현직 대통령을 향해 “재기하라”고 발언한 사건이었다. “이게 ‘사건’ 정도나 되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요즘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생한 일련의 일들이 꽤나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워마드’가 어떤 곳인지는 해당 사이트를 여러 차례 방문해 관찰했기에 잘 알고 있다. ‘워마드’ 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다수 존재하고, 최근 혜화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위의 중요한 일원으로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인터넷 밖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현실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과 ‘워마드’가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정리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사용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올바르게 정의내려지지도 않고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하나의 공통적인 가치로 공유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극단주의 페미니즘(radical Feminism)만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liberal Feminism)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에게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운동’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페미니즘은 ‘학문’의 영역에서 이해된다. 누군가에게는 페미니즘이 양성 평등을 위한 이데올로기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저항운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나는 페미니즘이 “공부”를 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교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이 “믿음”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충분한 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운동은 우스꽝스러워지기 쉽상이다. 중요한 점은 페미니즘이 사회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 사회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 안에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을 사회과학(social science)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페미니즘의 태동 자체가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 사회의 ‘질서’와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온 이데올로기이며, 이 사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역시 사회의 ‘질서’ – 를 수정하든, 재정의내리든 – 라는 개념 안에서만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워마드’가 여성우월주의, 혹은 극단적 여성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하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현직 대통령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행위가 한 집단의 공통적인 입장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이건 더이상 개인의 장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현상이 아니다. 이들의 원동력은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 남성과 관련된, 남성이 포함된 거의 모든 집단을 향한 무차별적인 혐오. 현재 ‘워마드’가 가진 중요한 정서적 기반인 이 ‘혐오’의 집단화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그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일베’로부터 현현하기 시작한 혐오와 편가르기의 정서는 ‘워마드’로 인해 특정 정치 세력의 차원에서 성별의 문제로 진화했다. 개인이 소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정치성향과 달리 태어날 때 상당 부분이 결정되는 성 정체성을 혐오의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워마드’의 현재 위치는 매우 서글프고 안타깝다.

‘워마드’의 구성원들이 자신을 페미니즘의 한 분파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큰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워마드’가 해오는 방식처럼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혐오하고 깔아뭉개는 방식으로 발전해오지 않았다. 잘못된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보다 나은 세상을 공유하기 위해 인류는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 그러한 목적의식 하에 발전되어 온 여러 시각 중 하나가 성적 차이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목소리, 즉 페미니즘이다. ‘워마드’는 오히려 반(反)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진 이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으며, 페미니즘과 상충되는 개념을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혐오의 정서는 결국 여성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페미니즘에도 좋지 않으며, 양성평등의 방향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상향이 성적 차이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면, 극단적 여성중심주의가 나타내는 남성혐오 문화는 결코 그 해답이 될 수 없다.

상당수의 여성이 이러한 혐오의 정서에 편승하는 현상은 이들이 진정으로 혐오를 통한 남성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을 남녀 차별 극복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베’가  유행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성격의 단순하고 피상적인 본능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했노”라는 말투부터 특정 인물을 의도적으로 비하하고 희화화하여 조리돌림하는 과정까지, 올바른 사회화를 체득하지 못한 성인들의 집단적 퇴행현상이라고 볼만한 사례가 충분히 발견되고 있다. ‘워마드’가 내세우는 거의 유일한 존재 근거인 ‘미러링’이 (하필이면) ‘일베’를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베’는 ‘남성 주류사회’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페미니즘이 배척해야 할 남성주의적 정치성향을 가장 폭넓게 대변하는 단체도 아니다. ‘워마드’는 단지 ‘일베’가 발전시킨 집단적 혐오, 유아적 왕따의 정서를 도구적으로 차용하여 폭력의 대상을 상이하게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워마드’가 ‘일베’를 혐오한다면, ‘미러링’의 조건대로 ‘워마드’ 역시 사라져야 할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셈이다.

2010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은 ‘혐오’의 정서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보다 결과적인 불평등을 납득하지 못해 상대방이 가진 것을 강제로 빼앗아오려는 배고픔의 정서가 혐오를 낳았다. 결국 이 사회가 조금 더 가난해졌기 때문에 발생한 사회현상이다. ‘워마드’로 상징되는 여성중심주의적 혐오의 정서는 이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혐오의 정서 중 한 예일 뿐이다. 이 외에도 공무원을 향한 분노, 정규직을 향한 분노, 장애인을 향한 분노, 성적 소수자를 향한 분노 등 다양한 방향과 크기를 가진 분노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 갈수록 한국에서 먹고 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씩 더 많이 미워하고, 더 많이 질투하고 있다. 한국이 살기 힘든 이유이자 이 사회가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