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 어느 가족

어느가족
어쩌다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들을 꾸준히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는 참으로 끈질기고 집요하게 가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팬이라면 “더이상 가족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감독의 선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족에 대한 다른 시선’을 담아보겠다는 영역확장에 대한 의지의 표현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보여주는 서늘한 가족 서사를 마지막으로 필모그래피의 한 단락을 마무리한 이후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그답지 않은 천진난만함으로 잠시 한템포 쉬어갔다면, [세번째 살인]에서는 가족과 사회 간 유기적인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관찰대상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모양새다.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미시적 가족 구조,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그 가족의 안을 한번 더 파고들어가 ‘개인에 대한 믿음’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는 이 영화는 고전적이고 진부한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서사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가족]은 [세번째 살인]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영화이자, 전작에서 감독이 흥미를 보였던 주제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간 작품이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혹은 그 법적 보호의 혜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가족과 유사한 형태를 이루어 살아간다. 각자 말하지 못하는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동거인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정, 혹은 돈이라는 물질적 욕망 사이 어딘가에 기대어 연대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인 가족과는 조금 다른 추동력을 가진 이 집단에 새로운 멤버가 우연히 들어오게 되고, 이 가장 어린 멤버이자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멤버를 중심으로 집단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난다.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 변화의 양상을 느린 속도로 가만히 비추는데 집중한다. 잠시나마 모성애와 혈연이라는 전통적인 가족의 영역으로 편입되는가 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법과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이 ‘가족 아닌 가족’은 결국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파멸한다. 이들이 가진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사회로부터 이해되지 못했고, 이들 스스로도 조금 더 ‘정상적인 가족’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채 뿔뿔이 흩어지는 쪽을 택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후반부 인터뷰씬에서 감독은 영화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데, 차라리 그 부분이 없었다면 더 좋을 뻔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반가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 영화 안에서도 곱씹어볼만한 질문을 여러개 던져주는 감독이다. [어느 가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의 변이와 확장을 사회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사려깊게 던지고 있다. 다만 형식적인 부분에서 확실히 질리는 부분이 점점 많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진부한 부분이 너무 많다. 전작들 중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싶은 기분을 느낀다. 홍상수처럼 자기복제의 함정에만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