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계속 생각난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투명한 유리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듯 살아온 유명인들의 죽음은 그만큼 더 극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의 죽음은 그 순간 잠시 서늘한 기분을 느끼고는 빠르게 증발해버리는 편이다. 유명인의 전시된 삶을 소비하듯 보아온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죽음 역시 일종의 전시처럼 보여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잊혀지지 않는 죽음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다가도 문득 그가 생각나 울컥해지고, 우울해지고,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죽음이 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는 무겁게 짓누르는 그런 죽음이 있다. 노무현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리고 요즘에는 노회찬이 자꾸 생각난다.

그가 하는 말들이 무척 인상 깊었다. 정치인 중 그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지금도 아무도 없다. 그가 만들어내는 비유는 참신할 뿐 아니라 날카롭기까지 해서, 그가 뱉은 말들을 후에 한참동안 곱씹어봐도 절묘하고 정확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인지,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하며 쌓은 경험이 좋은 재료를 제공해주는 것인지 궁금했다. 뉴스를 보며 답답해진 가슴은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조금씩 시원해졌다. 소수정당에 소속된 한계가 그를 짓누를 때마다 안타까웠고, 그의 언행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쩌면 노무현처럼 그 역시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정치인이었을지 모른다. 삭막한 정치판에 한줄기 유머를 선사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고, 이데올로기에 갇히지 않고 실제적인 소수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던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우리 사회가 그의 목소리에 조금 더 크게 호응해주었다면, 그의 유머에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웃어주었다면, 그의 날카로운 비판에 조금 더 큰 박수로 화답해주었다면, 어쩌면 며칠 전과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의식이 마음을 짓누른다.

죽기 전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차마 짐작도 되지 않는다. 굳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라며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지만, 운동권 특유의 극단적 문화에 노회찬 고유의 강성함이 더해져 도저히 스스로를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 정도 되는 그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만, 몹시 어지러웠을 그의 마음 자체를 최소한 부정은 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많이 아쉽다. 그를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더 넓은 영역에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지 못해 슬프고 슬프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아려온다. 공무원의 신분이라 그에게 후원금 한푼 보내주지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그를 계속 응원하고 있었다. 빗자루를 기타 삼아 흥을 돋우던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노무현이 없는 노무현의 세상이 조금씩 오고 있는 것처럼, 노회찬이 없는 노회찬같은 세상도 올 수 있을까. 계속 슬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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