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제임스 | 죽음을 이기는 독서

죽음을 이기는 독서
이번 여행에서 가지고 간 책은 이 [죽음을 이기는 독서], 달랑 한권이다. 아내와 가진 첫번째 여행은 남해로 떠나 한 곳에서 머무는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세 권을 가지고 갔다. 이번 여행은 3주 가까이 되는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한 권 이상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탓이 크고, 긴 일정과 잦은 이동으로 짐을 최대한 간편하게 싸야할 필요성도 컸으며, 무엇보다 햇반과 김치, 라면에 가방의 공간을 상당부분 양보해야 했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오자는 작은 소망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겨우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이번 여행은 빡빡했고, 또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기억들을 남길 수 있었으니 ‘인생은 항상 트레이드 오프(trade-off)가 있다’는 격언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클라이브 제임스는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2010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있으며, [죽음을 이기는 독서]는 [Latest Readings]라는 원제를 달고 2018년 출간됐다. 투병 중에도 끊임없기 독서를 해온 작가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아직 사망하지 않은 작가에게 “숭고함”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실례일 것 같다. 작가는 몸이 쇠약해진 투병 생활 중에도 독서 생활을 멈추지 않는다. 평생을 비평가로 활동해온 그가 나열하는 책의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 숨이 찰 지경이고 그가 읽은 책의 10%도 들어보지조차 못했지만, 그가 묘사하는 책의 내용을 세심하게 따라가기 보다는 책을 읽으며 삶을 버티어내는 그의 자세에 조금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물론 그가 소개하는 책들 중에는 꽤나 높은 흥미를 느껴 리딩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싶은 것들도 눈에 띈다. 서양인들에게는 거대한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히틀러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그렇고, 필립 라킨의 작품들이 그러하며, 나이폴의 책이 그러하다. (물론 클라이브 제임스가 찬양하는 책들 중 상당수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책에 대해 떠들든, 그가 떠드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고 작품이 되며 상징이 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한 지식인의 열정적인 마지막 모습들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나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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