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이탈리아 여행 중 비행기에서 본 영화들

2008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최소한 두 번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경험하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공항과 좀 멀어질까 살짝 기대했지만, 출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은 몰랐다. 이후 신혼여행과 여름휴가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넣고 열시간 이상을 버티는 연습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이쯤 되면 좋든 싫든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나름의 여유를 찾고 유희를 즐기는 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적응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비행운(飛行運)도 지지리도 없는 편이어서 장거리 노선 항공권을 무려 10년동안 지속적으로 구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어느 한 항공사에 마일리지를 몰아서 쌓지 않았다. 어리석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여러 항공사에 마일리지를 고르게 나누어준 결과 남들은 한번쯤 경험한다는 비지니스석으로의 업그레이드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몸을 구겨 넣는 연습을 계속 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나의 경우, 공항에서는 최대한 여유를 찾으며 쉬는 쪽을 택하는 편이고,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청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하며 즐기는 편이다. 면세점 구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금이라는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를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대가로 소비의 노예로 기꺼이 전락하고 말겠다는 욕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 욕망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부추기는 면세점의 화려한 조명이 마치 미용실의 거울마냥 나의 현재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신 남들보다 훨씬 일찍 게이트 앞에 앉아 하염없이 멍때리는 쪽을 택한다. 기나긴 여정(=몸을 잘 구겨넣은 상태에서 아주 약간 허용된 자유공간을 최대한 허용하여 몸을 깔짝거림으로써 신체의 손상을 최소화시키려는 한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앞두고 심리적으로나마 최대한 안정을 취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결혼한 뒤부터는 이러한 루틴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면세점에서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시키려는 아내의 뒷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다보면 지금까지 면세점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내가 세계에서 가장 멍청하고 충직한 세납자가 된 것 처럼 느껴진다. (나의 충성심에 대한 국가의 화답은 더 높은 근로소득세와 건강보험료뿐!) 심지어 현명한 소비를 오래전 체득한 아내는 그렇게 쌓아올린 인생에 대한 보답으로 획득한 고상한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로마공항의 고급스러운 라운지에서 멍을 때릴 수 있는 기회까지 부여해주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행해왔던 내 멍때림의 질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경제적 소비와 그 소비를 거부하는 행위 사이에 이렇게나 깊은 연관성이 있을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국적기를 기준으로 인포테인먼트 화면도 많이 커졌고(심지어 요즘에는 터치도 된다!), USB 포트도 자리마다 마련되어 있어 휴대폰 충전도 가능하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미리 다운받아온 신문을 읽을 수 있다. 10시간 정도 비행을 할 경우 이륙 두시간 후 첫번째 식사가 나오고 착륙 두시간 전 두번째 식사가 나온다. 비행기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 두 식사 시간 전후로 발생한다. 탑승한지 별로 되지 않아 체력과 의욕이 넘칠 때, 그리고 착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무릎을 펼 수 있다는 희망을 서서히 가지기 시작할 때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법이다. 여기에 식사까지 제공해주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밥을 먹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행위는 특별하다. 나는 지금까지 10여년의 장기 비행기간동안 기내식 선택에 있어 단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의 감식안이 유난히 발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항공사 측에서 식사를 하며 영화를 보게끔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몸을 구겨넣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잡설이 길었다. 인천공항에서 쮜리히공항으로 가는 길은 동행자가 세 명이었다. 아내와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번 여행의 처음 열흘은 가족여행으로 계획되었고, 우리는 스위스의 이곳저곳과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인천-쮜리히 구간을 운항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의 좌석구조는 3-3-3이고(그렇다. 여전히 이코노미석이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 화장실 이용의 편리함을 위해 아내와 부모님을 가운데 3자리에 앉히고 나는 아내 옆 복도쪽 좌석에 앉았다. 좌섣배치가 이렇게 되고 보니 혼자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환경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인천에서 쮜리히로 가는 열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내가 선택한 첫번째 영화는 무려 [골든 슬럼버]였다. (..) 강동원의 억울한 표정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아주 명쾌하고 단순한 영화다.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안좋은 화질의 작은 화면으로 봐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점, 중간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도 영화에 정신이 팔려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골든 슬럼버]는 비행기 영화의 거의 모든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다. 강동원의 길쭉한 팔,다리와 억울한 표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두시간의 킬링타임을 제공한다. 그 외에는 별달리 할 이야기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영화는 비행기에서 유난히 선호되는 장르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자막을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글씨를 읽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선택한 두번째 영화는 [꾼]이었다. 이 영화 역시 현빈과 유지태라는 두 명의 훌륭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배우의 패션쇼 외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영화다. 플롯은 엉성하고 조연들의 캐릭터는 일차원적이다. (나나를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슴속 한켠에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극장에서 봤다면 상당한 허탈감을 느꼈겠지만, 비행기 안이라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유지태와 현빈이 눈을 부라리며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만으로 시간의 낭비를 꽤나 잘 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통 영화를 연달아 두 개 쯤 보고 나면 눈과 귀가 피로해진다. 이 시점에서 많은 승객들은 잠을 청한다. 항공기 측에서 조명을 꺼주기 때문이다. 창문은 강제로 닫혀졌고 불도 꺼졌으니 몸을 구기고 앉은 승객에 남아있는 옵션은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는 것 정도인데, 여기서 활자를 굳이 꺼내 읽는 용감한 승객은 굉장히 드문 편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랩탑을 켜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친정 부모님께 ‘쇼잉’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덕분에 외부 청탁 원고의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고, 나는 자랑스럽게 랩탑을 덮으며 영화가 아닌 스포츠 카테고리로 눈을 돌렸다. 대한항공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외국인 승객을 위해 마련된 듯 보이는 예상 밖의 훌륭한 컨텐츠가 가끔 들어있다. [NFL 결승전 2018] 역시 철저히 외국인 승객을 위해 준비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한국어 자막이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대사는 번역되지 않았다. “자, 이제 힘을 내자구!”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대사들만 억지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4th down conversion에서 와일드캣(Wilde Cat) 포메이션을 구사하는군요”와 같은 대사는 번역가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글스의 역사적인 수퍼보울 퍼포먼스는 백업 쿼터백을 데리고 탐 브래디와 빌 벨리첵을 상대로 거둔 승리이기에 더 값져보였다. 우리 브롱코스도 케이스 키넘이 아닌 닉 폴스를 데려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이 다큐멘터리와 커플처럼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컨텐츠는 [샤크 vs 코비] 인터뷰 필름이었다. TNT 농구중계방송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샤킬 오닐이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를 기념하여 인터뷰어로 나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를 여러차례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팀 동료로서 좋은 캐미스트리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두 명의 수퍼스타는 그러한 과정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서로를 질투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심 역시 숨길 수 없었던 두 명의 고백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끄러운 비행기 안에서 듣는 샤킬 오닐의 웅얼거리는 듯한 발음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법정 영화 [세번째 살인]은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와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연결해주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착륙하기 두시간 전 쯤 보기 시작했고, 30분 정도 시청하다 그만 잠들고 말았다. 부모님 앞에서 너무 열심히 일한 탓에 미처 눈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에 피로가 몰려온 것 같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첫번째 영화로 [세번째 살인]을 다시 택한 것은 옆자리에 앉아 [블랙팬서]를 시작한 아내에게 내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번째 살인]의 지루한 초반 전개과정을 무사히 넘기고 플롯이 뒤엉키며 급변하기 시작하는 후반부를 무사히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족영화의 범주에서 탈출해 만든 첫 영화이지만, 그가 결코 가족이라는 테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릴러의 구조를 택하고 있지만 긴장감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 완전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이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의 관계와 위로, 보상과 같은 고레에다 특유의 세계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묘한 영화다. 고레에다는 결국 이 영화의 다음 작품으로 [어느 가족]을 만든다. ‘역시 안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는 [더포스트]였다. 매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영화라는 한 줄의 묘사만으로 그야말로 모든 상투성의 집합소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놀랍게도 묵직한 감동을 무리없이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서사 자체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뉴욕 타임즈에 밀려 유력 지역신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워싱턴 포스트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특종을 잡아내는 비결은 정론보도라는 간단한 진리였다, 라는 아주 스필버그적이며 아주 미국적인 주제의식. 정작 나를 감동시킨 건 이걸 ‘영화적’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인들의 솜씨였다. 스필버그는 한 씬, 한 컷도 낭비하지 않는데 심지어 사소한 카메라워크까지 모두 서사와 주제를 위해 치밀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매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는 마치 연기란 이런 것이다, 를 강의하는 듯 교과서적인 움직임을 흐트러짐 없이 보여준다. 아마도 그 해 최고의 영화로는 절대 뽑히지 못했겠지만, 아무도 이 영화를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보리 vs 매켄로]였다. 역사적인 1980년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 상반된 캐릭터를 지닌 두 뛰어난 테니스 선수가 서로를 마주하는 자리까지 가는 과정에서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이야기다. 경기 장면은 그다지 역동적으로 찍히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다는 점에서 스포츠 영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을 세밀히 관찰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심리 관찰물에 가까운 영화처럼 느껴졌다. 다만 회상씬이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고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아무런 변화없이 똑같은 형식으로 그려져서 영화는 많이 지루한 편이다.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굳이 고백이란걸 해보자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컨텐츠는 [코리안 뉴웨이브(뮤직비디오)]였다. 2008년 유럽 배낭여행 이후 가장 길었던 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길, 착륙을 약 한시간 정도 남기고 선택할 수 있었던 최상의 컨텐츠였다. 주로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돌 음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남자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에는 상대 여성이 등장하는 반면 여성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에는 상대 남성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트와이스(Twice)의 신곡 “What is love?” 뮤직비디오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형이상학적인 사랑이 아니라 정말 그냥 십대의 사랑, 그런 느낌의 가사다) 뮤직비디오에서 상대 남성의 역할은 여성 멤버가 남장을 하고 대신하고 있다. 이들이 크로스드레서나 여성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문근영의 남장을 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정도의 느낌. 그와 함께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아이돌 음악과 그렇지 않은 성인 발라드(?) – 이것을 ‘코리안 어덜트 컨템프로리’라고 표현하자 – 사이에 이젠 질적인 격차가 확연히 느껴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후자의 경우 저옛날 SG워너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조차 그렇다. 놀라울 정도로 시대착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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