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한국에서 여성이 취미로 축구를 한다’

억지로 한 문장에 우겨넣은 이 책의 요약은 그 자체로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다. 에세이스트 김혼비는 자신이 경험한 여성 사회인 축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자체로 독자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여럿 던진다. 남성의 전유물과 같이 여겨지는 스포츠, 그 중에서도 과격한 축에 드는 축구를 여성이 한다는 것, 더 나아가 2,30대 젊은 여성이 아닌 4,50대의 나이 지긋한 여성이 주축이 된 사회인 체육의 형태로 스포츠를 향유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나를 포함한 한국인 대다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익숙하지 않음’의 이유를 하나씩 파고들다 보면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축적되어온 불평등과 억압의 역사가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 불편한 현실을 불편하지 않게,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전달한다는 점이 이 책의 첫번째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축구는 여성의 운동으로 자리잡은지 꽤 되는 편이다. 전체적인 프로스포츠 시장 자체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이건 스포츠 활동을 함에 있어 남성의 육체적 능력이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생물학적 특성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한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원체육이나 사회인 체육 쪽에서는 축구가 여성에게도 많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전세계적 추세’가 한국을 중심으로 살아온 3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 ‘인식’되는지의 문제로 한정짓는다면,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동호회에 처음 가입할 때의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이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여성 관중들을 보며 “규칙도 모르면서 치킨이나 먹으러 간다”고 비아냥거리는 자칭 ‘야구매니아’ 남성이 도처에 깔려 있는 현실에서(아니,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야구 규칙 잘 모르면서 치킨 먹으러 야구장 가는게 그렇게 분하게 생각할 일인가?), 인사이드킥을 연습하고 아웃사이드 드리블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여성의 모습이 마냥 편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그 불편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예의바르게 건드린다. 이건 축구 자체에 대한 저자의 절대적인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글쓰기 방식이었을 것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좌도 우도, 남도 여도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에세이의 형식을 통해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여름이 끝나갈 때 쯤 집 근처에 있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한번 가보기로 결심했다. 2부리그에 있는 대전 시티즌에 소속된 선수 중 아는 선수라고는 한 명도 없지만, 로컬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기쁨을 너무 잊고 산 것 같아 많은 반성을 했다.

노회찬이 계속 생각난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투명한 유리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듯 살아온 유명인들의 죽음은 그만큼 더 극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의 죽음은 그 순간 잠시 서늘한 기분을 느끼고는 빠르게 증발해버리는 편이다. 유명인의 전시된 삶을 소비하듯 보아온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죽음 역시 일종의 전시처럼 보여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잊혀지지 않는 죽음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다가도 문득 그가 생각나 울컥해지고, 우울해지고,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죽음이 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는 무겁게 짓누르는 그런 죽음이 있다. 노무현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리고 요즘에는 노회찬이 자꾸 생각난다.

그가 하는 말들이 무척 인상 깊었다. 정치인 중 그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지금도 아무도 없다. 그가 만들어내는 비유는 참신할 뿐 아니라 날카롭기까지 해서, 그가 뱉은 말들을 후에 한참동안 곱씹어봐도 절묘하고 정확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인지,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하며 쌓은 경험이 좋은 재료를 제공해주는 것인지 궁금했다. 뉴스를 보며 답답해진 가슴은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조금씩 시원해졌다. 소수정당에 소속된 한계가 그를 짓누를 때마다 안타까웠고, 그의 언행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쩌면 노무현처럼 그 역시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정치인이었을지 모른다. 삭막한 정치판에 한줄기 유머를 선사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고, 이데올로기에 갇히지 않고 실제적인 소수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던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우리 사회가 그의 목소리에 조금 더 크게 호응해주었다면, 그의 유머에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웃어주었다면, 그의 날카로운 비판에 조금 더 큰 박수로 화답해주었다면, 어쩌면 며칠 전과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의식이 마음을 짓누른다.

죽기 전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차마 짐작도 되지 않는다. 굳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라며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지만, 운동권 특유의 극단적 문화에 노회찬 고유의 강성함이 더해져 도저히 스스로를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 정도 되는 그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만, 몹시 어지러웠을 그의 마음 자체를 최소한 부정은 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많이 아쉽다. 그를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더 넓은 영역에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지 못해 슬프고 슬프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아려온다. 공무원의 신분이라 그에게 후원금 한푼 보내주지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그를 계속 응원하고 있었다. 빗자루를 기타 삼아 흥을 돋우던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노무현이 없는 노무현의 세상이 조금씩 오고 있는 것처럼, 노회찬이 없는 노회찬같은 세상도 올 수 있을까. 계속 슬퍼온다.

클라이브 제임스 | 죽음을 이기는 독서

죽음을 이기는 독서
이번 여행에서 가지고 간 책은 이 [죽음을 이기는 독서], 달랑 한권이다. 아내와 가진 첫번째 여행은 남해로 떠나 한 곳에서 머무는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세 권을 가지고 갔다. 이번 여행은 3주 가까이 되는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한 권 이상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탓이 크고, 긴 일정과 잦은 이동으로 짐을 최대한 간편하게 싸야할 필요성도 컸으며, 무엇보다 햇반과 김치, 라면에 가방의 공간을 상당부분 양보해야 했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오자는 작은 소망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겨우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이번 여행은 빡빡했고, 또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기억들을 남길 수 있었으니 ‘인생은 항상 트레이드 오프(trade-off)가 있다’는 격언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클라이브 제임스는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2010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있으며, [죽음을 이기는 독서]는 [Latest Readings]라는 원제를 달고 2018년 출간됐다. 투병 중에도 끊임없기 독서를 해온 작가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아직 사망하지 않은 작가에게 “숭고함”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실례일 것 같다. 작가는 몸이 쇠약해진 투병 생활 중에도 독서 생활을 멈추지 않는다. 평생을 비평가로 활동해온 그가 나열하는 책의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 숨이 찰 지경이고 그가 읽은 책의 10%도 들어보지조차 못했지만, 그가 묘사하는 책의 내용을 세심하게 따라가기 보다는 책을 읽으며 삶을 버티어내는 그의 자세에 조금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물론 그가 소개하는 책들 중에는 꽤나 높은 흥미를 느껴 리딩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싶은 것들도 눈에 띈다. 서양인들에게는 거대한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히틀러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그렇고, 필립 라킨의 작품들이 그러하며, 나이폴의 책이 그러하다. (물론 클라이브 제임스가 찬양하는 책들 중 상당수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책에 대해 떠들든, 그가 떠드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고 작품이 되며 상징이 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한 지식인의 열정적인 마지막 모습들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나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다.

스위스-이탈리아 여행 중 비행기에서 본 영화들

2008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최소한 두 번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경험하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공항과 좀 멀어질까 살짝 기대했지만, 출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은 몰랐다. 이후 신혼여행과 여름휴가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넣고 열시간 이상을 버티는 연습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이쯤 되면 좋든 싫든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나름의 여유를 찾고 유희를 즐기는 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적응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비행운(飛行運)도 지지리도 없는 편이어서 장거리 노선 항공권을 무려 10년동안 지속적으로 구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어느 한 항공사에 마일리지를 몰아서 쌓지 않았다. 어리석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여러 항공사에 마일리지를 고르게 나누어준 결과 남들은 한번쯤 경험한다는 비지니스석으로의 업그레이드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몸을 구겨 넣는 연습을 계속 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나의 경우, 공항에서는 최대한 여유를 찾으며 쉬는 쪽을 택하는 편이고,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청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하며 즐기는 편이다. 면세점 구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금이라는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를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대가로 소비의 노예로 기꺼이 전락하고 말겠다는 욕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 욕망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부추기는 면세점의 화려한 조명이 마치 미용실의 거울마냥 나의 현재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신 남들보다 훨씬 일찍 게이트 앞에 앉아 하염없이 멍때리는 쪽을 택한다. 기나긴 여정(=몸을 잘 구겨넣은 상태에서 아주 약간 허용된 자유공간을 최대한 허용하여 몸을 깔짝거림으로써 신체의 손상을 최소화시키려는 한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앞두고 심리적으로나마 최대한 안정을 취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결혼한 뒤부터는 이러한 루틴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면세점에서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시키려는 아내의 뒷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다보면 지금까지 면세점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내가 세계에서 가장 멍청하고 충직한 세납자가 된 것 처럼 느껴진다. (나의 충성심에 대한 국가의 화답은 더 높은 근로소득세와 건강보험료뿐!) 심지어 현명한 소비를 오래전 체득한 아내는 그렇게 쌓아올린 인생에 대한 보답으로 획득한 고상한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로마공항의 고급스러운 라운지에서 멍을 때릴 수 있는 기회까지 부여해주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행해왔던 내 멍때림의 질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경제적 소비와 그 소비를 거부하는 행위 사이에 이렇게나 깊은 연관성이 있을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국적기를 기준으로 인포테인먼트 화면도 많이 커졌고(심지어 요즘에는 터치도 된다!), USB 포트도 자리마다 마련되어 있어 휴대폰 충전도 가능하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미리 다운받아온 신문을 읽을 수 있다. 10시간 정도 비행을 할 경우 이륙 두시간 후 첫번째 식사가 나오고 착륙 두시간 전 두번째 식사가 나온다. 비행기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 두 식사 시간 전후로 발생한다. 탑승한지 별로 되지 않아 체력과 의욕이 넘칠 때, 그리고 착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무릎을 펼 수 있다는 희망을 서서히 가지기 시작할 때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법이다. 여기에 식사까지 제공해주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밥을 먹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행위는 특별하다. 나는 지금까지 10여년의 장기 비행기간동안 기내식 선택에 있어 단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의 감식안이 유난히 발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항공사 측에서 식사를 하며 영화를 보게끔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몸을 구겨넣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잡설이 길었다. 인천공항에서 쮜리히공항으로 가는 길은 동행자가 세 명이었다. 아내와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번 여행의 처음 열흘은 가족여행으로 계획되었고, 우리는 스위스의 이곳저곳과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인천-쮜리히 구간을 운항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의 좌석구조는 3-3-3이고(그렇다. 여전히 이코노미석이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 화장실 이용의 편리함을 위해 아내와 부모님을 가운데 3자리에 앉히고 나는 아내 옆 복도쪽 좌석에 앉았다. 좌섣배치가 이렇게 되고 보니 혼자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환경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인천에서 쮜리히로 가는 열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내가 선택한 첫번째 영화는 무려 [골든 슬럼버]였다. (..) 강동원의 억울한 표정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아주 명쾌하고 단순한 영화다.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안좋은 화질의 작은 화면으로 봐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점, 중간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도 영화에 정신이 팔려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골든 슬럼버]는 비행기 영화의 거의 모든 미덕을 갖추고 있는 영화다. 강동원의 길쭉한 팔,다리와 억울한 표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두시간의 킬링타임을 제공한다. 그 외에는 별달리 할 이야기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영화는 비행기에서 유난히 선호되는 장르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자막을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글씨를 읽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선택한 두번째 영화는 [꾼]이었다. 이 영화 역시 현빈과 유지태라는 두 명의 훌륭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배우의 패션쇼 외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영화다. 플롯은 엉성하고 조연들의 캐릭터는 일차원적이다. (나나를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슴속 한켠에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극장에서 봤다면 상당한 허탈감을 느꼈겠지만, 비행기 안이라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유지태와 현빈이 눈을 부라리며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만으로 시간의 낭비를 꽤나 잘 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통 영화를 연달아 두 개 쯤 보고 나면 눈과 귀가 피로해진다. 이 시점에서 많은 승객들은 잠을 청한다. 항공기 측에서 조명을 꺼주기 때문이다. 창문은 강제로 닫혀졌고 불도 꺼졌으니 몸을 구기고 앉은 승객에 남아있는 옵션은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는 것 정도인데, 여기서 활자를 굳이 꺼내 읽는 용감한 승객은 굉장히 드문 편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랩탑을 켜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친정 부모님께 ‘쇼잉’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덕분에 외부 청탁 원고의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고, 나는 자랑스럽게 랩탑을 덮으며 영화가 아닌 스포츠 카테고리로 눈을 돌렸다. 대한항공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외국인 승객을 위해 마련된 듯 보이는 예상 밖의 훌륭한 컨텐츠가 가끔 들어있다. [NFL 결승전 2018] 역시 철저히 외국인 승객을 위해 준비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한국어 자막이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대사는 번역되지 않았다. “자, 이제 힘을 내자구!”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대사들만 억지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4th down conversion에서 와일드캣(Wilde Cat) 포메이션을 구사하는군요”와 같은 대사는 번역가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글스의 역사적인 수퍼보울 퍼포먼스는 백업 쿼터백을 데리고 탐 브래디와 빌 벨리첵을 상대로 거둔 승리이기에 더 값져보였다. 우리 브롱코스도 케이스 키넘이 아닌 닉 폴스를 데려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이 다큐멘터리와 커플처럼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컨텐츠는 [샤크 vs 코비] 인터뷰 필름이었다. TNT 농구중계방송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샤킬 오닐이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를 기념하여 인터뷰어로 나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를 여러차례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팀 동료로서 좋은 캐미스트리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두 명의 수퍼스타는 그러한 과정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서로를 질투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심 역시 숨길 수 없었던 두 명의 고백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끄러운 비행기 안에서 듣는 샤킬 오닐의 웅얼거리는 듯한 발음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법정 영화 [세번째 살인]은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와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연결해주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착륙하기 두시간 전 쯤 보기 시작했고, 30분 정도 시청하다 그만 잠들고 말았다. 부모님 앞에서 너무 열심히 일한 탓에 미처 눈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에 피로가 몰려온 것 같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첫번째 영화로 [세번째 살인]을 다시 택한 것은 옆자리에 앉아 [블랙팬서]를 시작한 아내에게 내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번째 살인]의 지루한 초반 전개과정을 무사히 넘기고 플롯이 뒤엉키며 급변하기 시작하는 후반부를 무사히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족영화의 범주에서 탈출해 만든 첫 영화이지만, 그가 결코 가족이라는 테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릴러의 구조를 택하고 있지만 긴장감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며, 완전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이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의 관계와 위로, 보상과 같은 고레에다 특유의 세계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묘한 영화다. 고레에다는 결국 이 영화의 다음 작품으로 [어느 가족]을 만든다. ‘역시 안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는 [더포스트]였다. 매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영화라는 한 줄의 묘사만으로 그야말로 모든 상투성의 집합소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놀랍게도 묵직한 감동을 무리없이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서사 자체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뉴욕 타임즈에 밀려 유력 지역신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워싱턴 포스트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특종을 잡아내는 비결은 정론보도라는 간단한 진리였다, 라는 아주 스필버그적이며 아주 미국적인 주제의식. 정작 나를 감동시킨 건 이걸 ‘영화적’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인들의 솜씨였다. 스필버그는 한 씬, 한 컷도 낭비하지 않는데 심지어 사소한 카메라워크까지 모두 서사와 주제를 위해 치밀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매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는 마치 연기란 이런 것이다, 를 강의하는 듯 교과서적인 움직임을 흐트러짐 없이 보여준다. 아마도 그 해 최고의 영화로는 절대 뽑히지 못했겠지만, 아무도 이 영화를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보리 vs 매켄로]였다. 역사적인 1980년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 상반된 캐릭터를 지닌 두 뛰어난 테니스 선수가 서로를 마주하는 자리까지 가는 과정에서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이야기다. 경기 장면은 그다지 역동적으로 찍히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다는 점에서 스포츠 영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을 세밀히 관찰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심리 관찰물에 가까운 영화처럼 느껴졌다. 다만 회상씬이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고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아무런 변화없이 똑같은 형식으로 그려져서 영화는 많이 지루한 편이다.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굳이 고백이란걸 해보자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컨텐츠는 [코리안 뉴웨이브(뮤직비디오)]였다. 2008년 유럽 배낭여행 이후 가장 길었던 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길, 착륙을 약 한시간 정도 남기고 선택할 수 있었던 최상의 컨텐츠였다. 주로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돌 음악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남자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에는 상대 여성이 등장하는 반면 여성 아이돌 음악의 뮤직비디오에는 상대 남성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트와이스(Twice)의 신곡 “What is love?” 뮤직비디오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형이상학적인 사랑이 아니라 정말 그냥 십대의 사랑, 그런 느낌의 가사다) 뮤직비디오에서 상대 남성의 역할은 여성 멤버가 남장을 하고 대신하고 있다. 이들이 크로스드레서나 여성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문근영의 남장을 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정도의 느낌. 그와 함께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아이돌 음악과 그렇지 않은 성인 발라드(?) – 이것을 ‘코리안 어덜트 컨템프로리’라고 표현하자 – 사이에 이젠 질적인 격차가 확연히 느껴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후자의 경우 저옛날 SG워너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조차 그렇다. 놀라울 정도로 시대착오적이었다.

허주영 엮음 |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표지
이 책은 2016년 시작된 ‘수요자 모임’에 참석한 남성들이 성매매와 관련된 각자의 사연들, 주장들, 혹은 상념들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수요자 모임’은 성매매의 공급 측면이 아닌 수요 측면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2016년 만들어진 일종의 토론 모임으로, 이 포럼의 참가자는 대부분 성매매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참가자들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성매매 시장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해오고 있다고 한다.

각종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 남성 중 약 절반 정도가 성매매 경험이 있고,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1년에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약 6조원 정도 규모로 국내 커피시장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국인 중 성매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성매매는 남·녀 간 젠더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통계적으로 성매매의 수요자-공급자 관계가 남-녀 관계로 고정될 때가 많으며, 성매매 거래의 특성 상 육체의 직·간접적 통제와 구속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에, 사회에 만성적으로 퍼진 성매매 문화가 남·녀 간 젠더 불평등성 심화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의 배경이 되는 ‘수요자 모임’은 기본적으로 성매매로 인해 피해를 받는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성매매 반대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에 더해 성매매를 구매하는 남성의 자발적인 반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양성 평등적 가치 아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매매가 만성화된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남성들이 갖는 상식적 수준의 합의를 무난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은 성매매 합법화 반대 논리가 지나치게 귀납적이고 추상적이며 윤리적인 차원에 갇혀 있다는 비판과, 그 비판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주최측의 한계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흔히 받게 되는 성매매 유혹이나 이후 사회생활에서 강요받게 되는 ‘2차’ 문화 등을 개인적 차원의 ‘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나름 슬기롭게 피해다녔다고 생각하는 나 조차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너무 얕게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의 말처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멍청해서, 혹은 젠더 감성이 부족해서 성매매를 합법화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성매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성적 불평등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사회적 모럴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장논리 아래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그 산업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변질된 유교문화의 압박 속에서 여성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는 유럽국가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성매매의 변질된 형태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폭력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에 존재하는 성매매 산업은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흔히 성매매에 찬성하는 남자들은 “못생긴 남자는 어떻게 푸냐?”는 주장을 한다. 여성에게 충분히 성적인 어필을 할 수 없는 남자는 돈을 지급하고 시장에서 성을 구매할 수 있게 허락해야 한다는 논리다. 나의 답은 조금 다르다. “섹스를 못(안)하시면 됩니다” 못생긴 수컷은(혹은 암컷은)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평생 짝짓기를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생명을 다하는 동물도 많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의 법칙이기도 하다. 매력이 없는 상품은 팔리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고, 팔리지 않는 것이 맞고, 팔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상품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나라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가장 쉬운 법칙이다. 이걸 정부가 인위적으로 나서서 구제해 줘도 괜찮을 정도로 성적 평등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모럴이 엄청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대기업에 들어가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이 돈을 내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가. 평생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주장… 을 백번 수용한다고 해도, 쌍방의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성관계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