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며

내일 서울을 떠나 세종으로 이사한다. 세종시에 집을 구하기 위해 50채는 족히 넘을 수의 아파트들을 구경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야든동 우리 부부는 앞으로 2년동안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하게 되었다.

주거지를 이전한다는 결정은 우리 부부에게 상당히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보낸 6년과 군복무를 위해 강원도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한평생을 서울과 그 주변 위성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지방생활’에 대한 나름의 두려움이 있었다. 경상남도 출신으로 ‘서울 입성’이 십대시절 꿈이었던 아내 역시 갖은 고생 끝에 서울 한복판에 어렵사리 마련한 신혼집을 홀연히 떠나 직장마저 관둔 채 남편 하나 믿고 연고 하나 없는 도시로 내려간다는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임용이 된 후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첫 학기를 보낼 수 있는 분에 넘치는 행운을 얻었는데, 우리는 이 석달 남짓한 기간을 대전이라는 이 도시가 과연 살만한 곳인지 여기저기 둘러보며 탐색하는 기회로 삼았다. 우리의 결론은 ‘세종으로 가자’였다. 세종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생활환경을 제공해서는 아니었다. 세종은 현재 막 시작하는 단계의 계획도시이고, 정말 많은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도시다. (심지어 도미노피자도 없다 ->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전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혹은 현재의 ‘좋은 이웃’이라는 관점에서 대전이 세종보다 더 나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전적으로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서울과의 접근성, 우리 부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 인구 비중,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적당한 환경, 운전이 서툰 아내에게 적합한 도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세종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존재한 단 하나의 걸림돌은 자가운전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통근거리였는데, 금요일 퇴근시간 여의도-금호동 구간을 70여분에 걸쳐 운전하고 난 뒤 시큰한 무릎을 안고 귀가하던 나에게 그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매가 아닌 전세를 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탐색 초기 우리는 매매만을 고집했다. 당시 세종시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서울만큼이나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서울의 중심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의 거의 모든 부동산 시장이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내다봤는데, 단 하나의 예외지역으로 세종시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행정수도 문제부터 국회 분원 설치까지 호재만이 가득해보였다. 마침 가격대도 우리 부부가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간신히 도달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미 서울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들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승천한 이후라 세종시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 가격이 우리 부부에게 손을 내미는 마지막 동앗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집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시장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선 수많은 공인중개사, 혹은 “떳다방”이라고 부르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고 파급되는 경로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런 근거없이 ‘프리미엄’을 덕지덕지 붙여 나가며 투기심리를 집단적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은 충분히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높아져가는 가격구조를 떠받드는 지지기반이 취약해보였다. 아주 약한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느꼈다.

관건은 이 시장에 가해질 수 있는 가능한 ‘충격’의 성격이었다. 나는 이 충격이 외생적일 뿐 아니라 견고한 구조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금리 인상 기조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무역전쟁은 트럼프가 집권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 세계경기가 둔화될 수 밖에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한껏 강화된 LTV/DTI 규제가 부동산시장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역사적으로 6개월~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발생했다. 이제 슬슬 그 여파가 발생할 지점이다. 조금 더 지엽적으로 바라보면, 이미 대전, 공주, 청주 등으로부터 인구를 빨아들인 세종이 추가적인 인프라를 갖추기 전 단기적으로 수도권 인구를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어제 밤 늦게 세종청사 부근에서 학교 기숙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해보았는데 정확히 한시간 반이 걸렸다) 이런 저런 환경들을 따지고 보니 부동산 시장에서 유동성을 걷어갈 요인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 요인들은 일시적이기 보다는 최소한 몇 년은 지속되는 항구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 참가자가 내재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외생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즉, 앞으로 2년동안 세종시의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변동성도 큰 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장 ‘지금’ 아파트를 급하게 구입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에 더해, 해당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하면 주어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신청자격을 포기하는 것도 아까웠다. 세종시는 분양가 제한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현재 시장가치에 비해 저렴한 수준에 분양매물이 공급된다. 공급매물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한번쯤은 노려보자는 생각이 그리 허황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세종시의 전세가격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당분간 ‘빚’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게끔 만들어주었다. 아내에게 세종시에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동네를 선택해줄 것을 부탁했고, 아내는 장기적인 투자 가능성도 높고 단기적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동네를 골랐다. 우선 실내 구조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청과물 가게부터 스타벅스까지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에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서울에 비해 각종 편의시설은 당연히 많이 부족하지만, 자가운전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몹시 불편한 ‘지방 도시’라는 본질적 한계를 세종시 역시 가지고 있는바, 아내의 운전솜씨가 조금씩 늘다 보면 움직일 수 있는 영역도 조금씩 확장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주차장도 넉넉해보였고 운동시설도 단지내에 있을 뿐 아니라 요가 등 각종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도 단지 바로 근처에 있었다. 내가 출근한 이후 일과시간을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아내에게 그나마 가장 나은 환경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아내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외롭고 쓸쓸하지 않기를 바랐다.

서울에 지나치게 쏠려있는 문화적 불평등 현상은 우리 부부가 극복해 나가야할 과제 중 하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도시 서울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모순은 지방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좋은 커피숍 뿐 아니라 셰프와 주인장의 개성이 살아있는 작은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는 재미는 서울생활의 백미 중 하나였다. 이제 쉑쉑버거를 먹으려면 11,000원과 한시간 반의 비용을 지불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이때문인지 아내는 현명하게도 얼마전부터 부쩍 직접 요리하는 시간을 늘려왔다.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차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난 덕분에 서울을 떠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한 요리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내 삶에 찾아온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다행히 세종시에는 좋은 도서관이 있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있다. 서가에 서서 책을 둘러보는 재미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더이상 김밥레코즈에서 음반을 뒤적거리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지만, 유비쿼터스한 세상에 살고 있는 덕분에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은 계속 들을 수 있다. 놀랍게도 세종시에도 영화관이 하나 있으며,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영화는 거의 대부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굳이 예술영화를 보고 싶다면 대전 시내에 있는 극장까지 차로 슬슬 나가면 된다. 백화점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우리 부부는 백화점 산책(?)을 좋아한다), 이 역시 11,000원과 한시간 반의 비용을 지불하면 고속터미널역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의 백화점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나름의 궁색한 대비책이 있는 셈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공연이다. 서울에 머무른 기간동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공연을 보려고 노력했다. 결혼한 이후에는 그조차 쉽지 않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만 먹으면 홍대로 달려가 표를 끊고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공연 하나를 겨우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적 다양성을 포기한 대신 우리 부부가 기대하는 것은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생활이다. 이미 임용 이후 우리 부부의 생활은 큰 폭으로 바뀌고 있다.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간다. 원하기만 하면 새벽 두시까지 나른한 자세로 누워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새벽 두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일쑤지만.. 아홉시 쯤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열시가 넘어서야 씻기 시작한다. 그래도 생활이 가능하다니! 물론 이번 학기에는 대전과 서울을 바쁘게 오가느라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과 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제는 그런 부스러기 시간조차 아낄 수 있게 됐다. 그 시간과 돈을 모으고 모아 여기저기 놀러가볼 생각이다. 아직 한국에서 가보지 못한 좋은 곳이 많이 있다. 대전이 우리 부부에게 주는 거의 유일한 축복은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접근성이다. 이것을 최대한 활용해볼 생각이다.

서울을 떠나는 대신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했던 관계들도 함께 조금 더 멀리 할 수 있다는 점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아마 조금 더 고립되겠지만, 그만큼 조금 더 우리 가족 안에서의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들과 조금 더 많이 작별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2년 뒤, 세종에 대해, 또 서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지금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방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을 수 있고, 목가적인 지방생활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지금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갖은 고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가능성이든 열려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앞으로의 2년이 큰 도전이다.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은 그 어떤 가능성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열심히 살고, 많이 배우는 2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7 thoughts on “서울을 떠나며

  1. 어서오세요. 근데 이 글에는 커다란 오류하나가 있군요. ㅋ
    도미노피자가 없다니요! 아름동에 하나 있습니다. 3생활권이라면 배달은 안되겠지만 ㅎㅎ
    이사 오시면 꼭 만나서 차 한 잔 해요~

    • 헉! 중차대한 오류를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저희는 도미노피자만 있으면 됩니다! ㅋ 내려가서 연락드릴게요. 저희는 새롬동으로 갑니다~

  2. 서울로의 육상 접근이 그나마 더 용이하다는 점만 빼면, 제가 제주로 이주해 올 때랑 거의 유사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여서,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백화점, 음식점, 카페 이런 것들은 금방 잊혀진 편이었지만, 극장과 공연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아픈 손가락이여요. ㅠㅠ 기본 인구밀도가 적어도 부산 만큼은 올라가야 가능한 영역이더군요. 그래도 세종에서 서울 공연은 마음 먹으면 당일로도 가능하니까, 저보다는 나으시리라 생각하지만.
    마지막 문단, 고립되면서도 둘만 평화롭다면 오히려 더 여유있고 알찬 생활이 가능해지는 점은 저 또한 제주에서 매일 느끼는 장점입니다. 두 분은 둘이서도 정말 잘 노시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

    • 세종으로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치니님 블로그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내가 제주도를 무척 좋아해서 가끔 농담삼아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대화를 나누는데, 이번에 실제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서울을 떠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특히 말씀하신 공연 부분은, 당장 공연 하나를 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딱 나더라구요. 2년동안 살아보면서 이것저것 배우다보면 대충 감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3. 와 제가 작년에 세종에 이사오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정확하게 잘 표현해주셨네요. 저도 이제 일년차 세종러인데 가끔은 아쉽고 불편한 점도 많지만 (결국 많은주말은 서울을 가게되죠) 살다보면 확실히 흥미로운 점이 많은 신기한 도시에요. 환영합니다!

    •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1년이나 사셨으면 대선배님이시네요 ㅎㅎ 저는 깨끗하게 구획된 도시구조는 마음에 드는데요, 결국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닌 그 곳에 사는 사람들같아요. 얼마나 좋은 이웃들이 있을지가 제일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열심히 적응해볼게요.

    • 아 좋은 이웃 무엇보다 중요하죠. 동의합니다. 확실히 세종을 지배하는 정서는 “심심함” 인듯해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게 해줄만큼 충분히 친밀한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 있는지가 적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더라구요. 제가 지난 일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갈만한 식당, 운동, 좋은 이웃들 등등 나중에 필요하시게 되면 얼마든지 나누어드릴게요 다시한번 환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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