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수, 첫 학기

어제 2018년 봄학기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말고사와 성적입력 정도인 것 같다. 지난 3월 이 곳으로 이직한 이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루 하루가 시트콤이라고 할 정도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쉴새없이 터지는 가운데 서울과 대전을 오가느라 몸은 점점 피곤으로 찌들어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고, 보통의 국가기관과는 많이 다른 조직문화를 바닥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시키는 만큼 일하고 일하는 만큼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큰 걱정 없이 살았던 과거의 회사생활과 달리 중장기적인 ‘먹거리’를 찾아 ‘영업’을 해야하는 과정이 어색하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는 20%가 적당히 게으름 피우며 일하는 80%를 먹여 살리는 구조’는 이 곳에서도 비슷해보였지만, 개별적으로 주어진 연구실이 상징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교수사회에서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더 나아가 나 하나만 믿고 멀쩡히 잘 다니던(사실 그리 잘 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회사를 관둔 아내를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나의 출근과 퇴근시간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나를 밤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오빠를 보아온 이래 가장 열심히 사는 것 같아.”라는 아내의 평가에 으쓱해할 틈도 없이 3개월이 지나갔다.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된 첫학기였다. 앞으로 당분간 게으름 피울 시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다음 학기 나의 수업을 수강할 학생들에게 질 좋은 강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학 기간 내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지식이 일천한 상태에서 그저 ‘말빨’ 정도로 수업시간을 때우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요령도 얼른 터득해야 한다. 교수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연구활동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경험을 몇차례 겪었다.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하면 순식간에 정체되어 소멸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생각보다 논문에 집중할 시간이 생기지 않아 적지 않게 당황한 학기이기도 했다. 틈틈이 부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각종 행정업무도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행정처리 과정은 전에 다니던 회사들처럼 체계적이고 신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치껏 스스로를 잘 지켜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충분히 똑똑한 학생들과 배울 점이 많은 선배교수들, 그리고 헌신적인 교직원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교육이든, 연구든, 행정업무든 나의 부족함이 노력으로 극복될 희망이 존재한다.

어제 저녁에는 같은 단과대학에서 함께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 분들과 종강식을 가졌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교수님의 은퇴식을 겸하는 자리였는데, 평생의 일터를 떠나는 분의 고별사와 그 분과 수십년을 함께 일한 동료들의 환송사를 차례로 듣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내가 태어나던 해보다 한 해 일찍 이 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약 37년 정도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한 셈이다. 인품이 훌륭하셨던 덕분인지 많은 전,현직 교수들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석했다. 그 분이 고별사에서 남긴 말 중 인상 깊은 구절이 두어개 있었다. 하나는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을 반드시 하나 이상 해라. 개인적으로 꽃을 가꾸는 일이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신들과 함께 해서 참 행복하게 일하다 간다”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인사였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었지만, 그 분이 오랜 시간 걸어간 기나긴 길의 초입에 이제 막 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끝이 까마득해서 차마 보이지 않는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다른 교수님들의 덕담에서 “자식농사를 잘 지은 것”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점이 재미있었는데, 과연 나의 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져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 저녁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카톡이나 하나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괜히 머쓱하기도 했고, 직접 얼굴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생각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걸어간 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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