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 플로리다 프로젝트

florida1
션 베이커 감독의 전작 [탠저린(Tangerine)]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비전문배우들과 함께 아이폰으로 촬영해서 만든 영화라는 점, 트렌스젠더-매춘이라는 LA 최하위문화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영화의 기본 서사구조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탄탄하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평단으로부터의 좋은 평가와 함께 영화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올곧은 시선으로 관찰하는 션 베이커에게 새로운 힘을 실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조금 더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무척 반갑고 행복했다.

영화는 몹시 아름답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마법, 혹은 기적과도 같은 장면들을 내뿜는다. 아이들이 두 싸구려 모텔을 오가며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쌓아올려가는 과정이 신비롭기만 하다. 빈민가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 [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희곡적인 요소가 강한 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영화적이다. 이 점이 우선 가장 놀라웠다. 션 베이커가 한단계 더 높고 깊은 세계로 나아갔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미학적인 진전만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미국의 다르덴 형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윤리적 시선도 더 강하고 단단해졌다. 전작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베이커는 이번 영화에서는 히든-홈리스(hidden homeless)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텔에 장기 투숙하기 때문에 통계상 홈리스로 잡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열악한 삶의 조건에 놓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무니의 엄마는 무니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없다. 무니는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하지만, 그 끝에는 “절친과 다시 만나지 못할”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이에는 이 안쓰러운 모녀를 묵묵히 지켜보지만 그 자신조차 이 싸구려 모텔의 가난한 삶에서 구원해내지 못하는 바비라는 모텔 관리인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코끝 찡한 사연이 전혀 유치하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의 완전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 역시 아름답다. 서서히 중첩되는 서사구조 안에서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하나의 결론으로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영화의 엔딩씬은 또다른 마법의 시작이다. 영화 시작 후 처음으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이 씬은 (아마도 확실히) 아이폰과 같은 다른 기기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거칠고 투박한 카메라의 시선이 두 소녀의 뒤를 바짝 따라 붙을 때 기묘한 체험이 새롭게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두 소녀의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 쯤 영화는 갑자기 끝나게 되는데, 엔딩 크레딧의 배경음악으로 (아마도 확실히) 디즈니랜드의 실제 군중 목소리가 삽입된 것을 보면 관객의 마음 안에서 두 소녀의 여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게 된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적인 기적을 체험했다.

김은덕, 백종민 | 사랑한다면 왜

사랑한다면왜
[사랑한다면 왜]는 재미있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자 “비혼주의자”였던 두 저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해 한 집에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된 일들, 그리고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부부가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삶을 살펴보면 약간 독특하다고 할만한 특징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식을 치루어냈으며, 결혼 후 1년 간 맞벌이 생활로 돈을 모은 후 2년동안 ‘한 달에 한 도시’ 컨셉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세 권을 함께 집필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통장잔고 0원”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 회사에 취직하는 방법 대신 함께 글을 쓰는 삶을 택했다. 그러는 와중에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오고 강연 초청도 제법 받게 되는 등 나름의 터를 잘 닦아 나가고 있다. 청담동의 고급 웨딩홀에서 식을 치룬 뒤 서울 변두리 어딘가에 살고 있을 보통의 젊은 부부에게는 다소 의아한 삶의 방식일테지만, 달리 말하면 망원동이나 합정동 어딘가에 머물며 제도권 문화의 영향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한국판 힙스터 부부가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전형적인 형태다.

이들이 200쪽 남짓한 짤막한 책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진솔하고 치열하다. “며느리”, “시댁”과 같은 호칭부터 거부하는 여자의 태도는 완고하며, 주방을 ‘차지’하고 요리를 전담하는 남자의 태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들의 개인주의적인 삶의 태도는 주변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양가 부모님과 가까운 가족, 그리고 다섯명 정도의 친구 정도만 남게 된 이들의 삶에는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지도 지워졌다. 때문에 이들이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은 주변의 ‘방해’를 최소화시키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의 부모는 각자 책임진다는 규칙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부모로부터의 속박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식솔의 수도 ‘0’명으로 최소화시켰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이미 충분히 선택되어진 형태로 존재하고, 그렇게 잘 짜여진 조건 위에서 이들의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모순과 부딪히기도 한다. 예컨대 책을 읽는 내내 대체 ‘명절’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한 부부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가족 안에 매몰되는 것이 싫어서” 출산을 거부한 이들이 “비혼주의자 친구들과 평생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에서 ‘적당한 거리의 관계만 취하며 살겠다’는 요즘 세대의 태도가 전형적으로 느껴져 갑자기 지루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최소한 이들은 지금까지 결혼이라는 제도와 한국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으며, 그 고민의 결과물을 나름의 실천을 통해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부가 자신의 생각에 갇혀 이미 상당히 완고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록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지언정 삶의 태도를 타의에 의해 바꿀 의지까지는 없어보인다. 나는 이 ‘완고함’이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진 아주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닫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열려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부는 자신의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부모는 그 세대 안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그들의 아들과 딸이다. 그 아들과 딸은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다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달라진 시대와 함께 그 외형만을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우리가 맞아’라는 한국인 특유의 완고함을 1도 버리지 못했다. 이 완고함이 왜 나쁘냐 하면,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태도에서 이타적인 마음, 주변을 살피는 마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꽁냥꽁냥하는 것에서 삶의 기쁨을 느꼈다면 이제 범위를 확대하여 그 기쁨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이 포기한) 출산과 육아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 깨달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사회로 환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 출산과 육아를 포기했다면(그것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와의 공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마음도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지 너무 가볍게 넘겨짚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지독한 개인주의자”가 저지르는 가장 기본적인 실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나보다. 이 부부는 좋은 사람일지언정 아직 좋은 이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좋은 이웃이 아니라면, 페미니즘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