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 바다와 나의 변화

김해원
김사월X김해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이들의 음악은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김사월X김해원 들어봤어요?” “네, 완전 대박” 따위의 대화를 자주 주고받았다. 이들의 음악에 심장이 뛰었던 사람들은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크씬에 일으킨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을 넘어 한국 음악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이들의 음악은 서늘하면서도 뜨거웠고, 명쾌하면서도 다차원적이었으며, 매혹적이지만 마냥 살갑게 굴지도 않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김사월은 두 장의 솔로 음반을 통해 인디씬에 확고한 자기만의 위치를 만들었다. 주체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명료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녀의 음악은 단순히 잘 만든 음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김사월의 목소리를 꾸준히 접하는 동안 김해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프로듀싱과 영화음악 등을 통해 음악가와 청자, 감독과 관객의 매개자로 활동”해온 그가 “스스로 텍스트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곡, 작사는 물론 연주와 녹음, 편곡과 믹싱까지 음반 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힘으로 해낸 [바다와 나의 변화]는 놀라운 수준의 들끓는 에너지가 절제된 목소리 안에 고요히 담겨 있는 묘한 작품이다. 도시를 떠나 바다를 가까이 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김해원은 이번 음반에서 오롯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찰은 깊은 수준까지 내려간다. 연인 사이에도 드러내기 힘든 마음의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긁어내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주는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소리의 빈공간조차 농밀하게 채워져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로 작곡은 빈틈이 없다. 홈레코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녹음도 깔끔하다.

이 음반은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지극히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엇 스미스를 삼촌으로 둔 수프얀 스티븐스가 빅 띠프의 멤버들과 음반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첫곡 “Hungry Boy”에서 김해원은 ‘소리’를 직조하는 과정에서 단 일보도 후퇴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헝클어진 머리”와 “불길”에서는 이 음반을 듣는 청자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만큼 솔직해질테니, 나의 음악을 듣는 당신도 진실해지길,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다. “Television” 쯤에 이르면 김해원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제 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봤어”라는 단 한 줄의 가사를 두 번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후 묵묵히 이어지는 연주를 통해 화자의 감정을 절절하게 노출한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 라고 반문하는 이 노래를 듣는 청자의 마음도 함께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불길”과 “새벽녘”에서 보여주는 김해원의 기타 연주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인데, 이는 단순히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 악기연주를 통해 어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Listener”와 “종달새”에서는 그의 음악적 뿌리가 여전히 포크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잊고 있었다!), “Why So Hard?”에서는 김해원식 아름다움의 한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왜 후반부에 배치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이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순수하게 아름답다. 이 곡에 이어지는 음반의 타이틀곡 “바다와 나의 변화”과 음반을 마무리짓는 “오늘”에서는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화자의 서늘한 고백을 마주해야 한다. “차가워지는 물”과 “짐이 되어가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끼는 것들과 사람을 위해” “무거운 옷”을 입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고 되내이는 김해원의 고백을 듣다보면 얼굴의 솜털이 삐죽 곤두설 정도로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 가만히 자리잡고 있는 뭉클하고 뜨거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좀처럼 갖기 힘든 기이한 체험이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우리가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을 통해 상상하고 기대했던 김해원의 음악보다 훨씬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맑은 음악을 [바다와 나의 변화]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다. 윤영배 이후 언제 이토록 좋은 포크 음반을 접해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에게는 현재까지 이 음반이 ‘올해의 음반’이다. 최소한, 상반기 최고의 음반이다. 최소한. 반드시 헤드폰으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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