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장강명의 최근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젊은 세대라면 한번쯤 들어보았고 생각해보았을 “헬조선”을 중심으로 풀어낸 주제의식도 마음에 들었고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되는 쉽고 쫀득한 문체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대 이상으로 치밀하다고 느낀 작가의 취재능력이었다. 공중에 5cm 정도 떠 있는 다른 한국 소설들과 달리 현실의 밑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그 까칠한 촉감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이 소설의 진면목이 작가의 치밀한 사전 취재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나, 기자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신작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에 적지 않은 흥미를 느꼈다. 그것도 공채와 문학상으로 대표되는 ‘고인 물’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르포 형식이라니, 국내 유력 일간지 공채 기자 출신으로 굵직한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그가 작심하고 소위 ‘내부 총질’을 하는데 어찌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당선, 합격, 계급]은 치밀하게 전개하고 명쾌하게 쏟아내는 좋은 논픽션이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필요한’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 책은 저자가 과거에 속한 사회적 집단(대기업, 정부, 공기업, 언론사를 포괄하는 주류 대기업)이 내부 구성원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대표적인 방식인 ‘공채’와, 저자가 현재 속한 사회적 집단(문학계)이 구성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대표적 방식인 ‘문학상’의 이면을 파고들어 그 명과 암을 제대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인재 선발 양식인 공채와 문학상에 대해, 저자는 그 사회적 장점 – 예컨대 공정성과 같은 – 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형태의 인재선발 방식이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역동성을 해치고 있음을 다각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극소수의 인원을 선발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가 장기간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 비효율성, 기업이나 문학상이 원하는 인재상과 그 선발 기준 및 절차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 비논리성, 그리고 선발되지 못한 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배타성과 차별까지 조목조목 제시한다. 결국 이러한 선발 방식은 사회의 계급을 분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역할만 할 뿐, 제대로 된 인재를 발견하고 키워내기 위한 적합한 방식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방 정부의 말단 공무원으로 평생 일해야 하는 사람이 어려운 국사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야 할 이유는 없다. 몇 년 뒤 자신들의 먹거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삼성그룹에서 몇십년 뒤의 먹거리까지 책임질 인재를 몇십개의 시험문제로 선발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학계와 영화계 등 예술계에서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행해지는 ‘등단’, 혹은 ‘입봉’의 과정이 갖는 불합리성 역시 본질적으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극히 상대적이고 우연적인 이유에 의해 선정된 작가에게 부여되는 ‘등단’이라는 특혜와 그 이후 문학계의 주류 안으로 편입시켜 내부자(insider)로 활동하게 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기본이고, 문학상이라는 ‘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혹은 그러한 방식을 거부한 다수의 작가들에게 가해지는 배타적 차별 현상 역시 만성적이고 노골적이다. 이러한 부조리함은 변호사와 의사, 공무원 등 특정 시험을 통과한 후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결코 소속집단에서 누락되지 않는 현상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이들의 능력이 공적으로 평가되고 취합되어 공개되는 과정이 암묵적으로 생략되는 현상으로가지 나아간다. 어떤 변호사가 승률이 높은지, 어떤 의사가 어떤 병을 잘 고치는지 일반인이 알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영화 평점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보의 민주화’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문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문학작품이 자신의 취향과 맞는지 판단할 적절한 기준이 공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평론가의 서평은 너무 현학적이고 언론사의 서평은 칭찬 일색이다. 이 분야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원인이 바로 ‘공채’와 ‘문학상’으로 대변되는 선별적이고도 차별적인 시스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명확하고 중대한 문제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많은 사람들이 공채와 문학상이 사라지기를 바랄까? 저자는 그조차 어둡게 본다. ‘로스쿨 vs 사시’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 좋은 예다. 사람들은 공채와 문학상으로 대변되는 비합리적인 ‘과거제도’ 방식이 여전히 존치되기를 원하고 있다. 갖은 고생을 해서라도 그 장벽만 넘는다면,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량진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취업을 포기한채 공시에 집착하는 현상부터 “기대치를 낮추어 중소기업에 취직하라”며 중소기업의 연봉구조나 복지혜택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어른들의 행태까지, 이 사회가 조금 더 보잘것 없어지는 현상의 이면에는 개인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공채와 같은 사회적 장치가 존재하고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대학 졸업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했다. 승승장구하던 그 친구는 최근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원으로 올라갈 길이 막혔다는 생각이 들자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 중이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오직 공채 출신만이, 그 중에서도 윗선으로 선택을 받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만이 그룹의 관리를 책임지는 임원 레벨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지인 한 명 역시 대학 졸업 후 국내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지금도 여전히 ‘임원 코스’를 밟으며 잘 나가고 있다. 그가 가진 소속 그룹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은 대단한 수준이다. 각종 비리에 얽혀 뉴스에 그 회사가 등장하는 것 따위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이 두 명의 사례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는 국내 대기업의 공채 시험을 통과하여 그 기업의 주류가 되었다는 ‘업적’을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했다. 아직 기업 내부에서 관리직급으로 올라가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채를 통과했다는 결과만으로 이미 다수의 다른 한국인들과 자신을 가르는 어떤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들의 삶에서 ‘계급’의 발생은 대기업에 입사할 즈음, 이십대 중반 정도의 젊은 나이에 이미 역동적으로 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급 안으로 입성하기 위해 이들이 치루어야 했던 공채 시험이 과연 정말 효율적인 시험방식이었는지, 혹은 심지어 공정한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해보지는 않았을 확률이 높다.

이들과 비슷한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계급의 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강명은 공채라는 특수한 시험 방식을 통해 계급의 분화와 고착화의 핵심을 잘 꼬집고 있다. 나는 그의 생각에 거의 대부분 동의한다. 그는 이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잘 짚어냈다. 그의 답답함이 책의 이곳저곳에서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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