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거주박물지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아파트 공화국’ 한국이 가진 문화적 획일성 문제의 미시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 고고학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파트라는 특수한 건축양식이 서울 전역을 뒤덮는 현상이 마뜩지 않고, 더 나아가 이러한 거주양식의 획일화가 어쩌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적 양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그러한 걱정을 확신으로 바꾸어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이 아파트에 지배당하고 있고 한국사회가 서울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가정이 사실이라면, 아파트라는 건축양식의 변화추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코드를 읽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질병’의 근원을 조금 더 내밀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건축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변화상으로 압축하기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그 무게감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궁금해 했던 한국형 거주문화의 독특한 형태들, 예컨대 ‘확장형 발코니’라던가 다목적실의 흔적으로 남은 식모방  등의 역사적 유래를 친절하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같은 오래된 아파트에 남아 있는 과거의 유산들(장독대, 더스트 슈트(dust chute), 단지내 수영장 등)이 탄생하고 사라져간 연유를 다양한 인문학 레퍼런스를 동원하여 설명하고있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욕망이 투영된 강남의 탄생, 그리고 국토건설 정책이 사회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 등 거시적인 차원의 담화 역시 빼놓지 않고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라는 책의 제목에 걸맞는 고고학적 기능을 충실히 이행할 뿐 아니라, 단순한 ‘화석의 전시’ 차원을 넘어 그 유물이 담고 있는 인문학적 배경을 통시성 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꽤 무게감 있는 건축 현대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설명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통해 몇 가지 공통된 시사점을 추려볼 수 있다. 첫째, 현대 한국 사회가 아파트라는 특수한 하나의 건축 형태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하게 된 데에는 정책당국의 결정, 혹은 판단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강남을 개발하고 아파트를 주된 공급 단위로 삼게 된 경제적 유인에 동의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강남의 아파트 한 채에 모든 욕망을 쏟아붓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박정희로 대표되는 6~80년대 독재정권의 개발 드라이브였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둘째, 해방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경제발전과 그 안에서 무실서하게 발생한 계급의 분화 과정 역시 현대 한국 사회의 아파트 신드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 관리자 등의 신 중산층 계급과 아주 빠른 속도로 재산을 증식한 신흥 자영업자를 시각적으로 ‘분리’시키기 위한 거주양식이 필요했고, 공급의 편의성 등 정책 당국의 경제적 유인과 맞물려 아파트라는 건축 양식이 강남을 중심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신드롬, 혹은 강남 신드롬은 새롭게 탄생한 지배 계급과 편의성, 목적 달성 중심의 정책 당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다양성을 존중하고 과정 중심의 행동 양태를 추구하는 최근의 사회적 움직임은 여전히 강력한 경제적 유인을 내포한 강남-아파트 연결고리를 쉽게 깨트리지 못할 것이다. ‘힙스터’로 대표되는 젊은 소규모 자본가들이 을지로나 효자동과 같은 비(非)아파트촌 낡은 동네로 걸어들어가 새로운 문화 공동체를 가꾸고 다른 차원의 경제적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가 서울,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아파트 등의)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 명제를 뒤엎을 정도의 강력한 사회적 운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들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경제적 수요는 여전히 니치(niche)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대안적 문화 생산이 치솟는 임대료 등에 의해 연속성을 쉽게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길이 없는 것이다.

더 많은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대체될 것이며, 그 속도는 전보다 더 빨라질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왠지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아 속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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