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al Consoles | Persona

rival consoles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은 시대를 막론하고 일단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문법을 극단적으로 거스르려는 시도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결과물이 성공적일 경우 청자에게는 기분좋은 충격과 함께 ‘귀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 될 수 있다. 크라프트베르크(Fraftwerk)나 초기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지적인 실험들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영역을 한차원 넓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닐스 프람(Nils Frahm)처럼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함께 아우르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이들의 작업들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잉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라이벌 콘솔스(Rival Consoles, 본명은 Ryan Lee West)의 다섯번째 정규음반 [Persona] 역시 이러한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음반은 특이하게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1966년 발표했던 동명의 영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줄거리만  대충 살펴봐도 엄청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말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그녀를 보살피던 다른 여자의 인격이 서서히 겹쳐지는 심리 스릴러물이라고 하는데 벌써 거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음반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낀 라이벌 콘솔스의 음악은 다분히 해체적이고 효과적이다. 박자와 박자 사이를 해체하고 음과 음 사이를 분해하여 새롭게 배치하는 구조주의적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그렇게 재배치된 소리들이 마치 음향효과처럼 청자의 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려는 작곡가의 자세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자신을 보살피던 여자를 ‘관찰’한다는 사실을 그녀를 보살피던 여자가 알아차린 뒤 분노한다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라이벌 콘솔스는 소리의 재구성을 통해 보편적인 대중음악이 청자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효과와 조금 다른 차원의 효과를 청자와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점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라이벌 콘솔스의 [Persona]는 최근 들었던 모든 음반들 중 가장 놀라운 집중력과 농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음반의 첫곡 “Unfolding”부터 놀라움을 선사하는데, 이 놀라움은 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처음 느꼈을 때의 ‘촉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가 전개되는 내내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래 자체의 완벽함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다. 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4/4박자에 질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대중음악이 가진 기승전결이나 훅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의 경우에는 이 음반을 무척 즐겁게 들었다. “thrilled,” 혹은 “joyfully tensioned”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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