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 골목안 풍경 전집

골목안풍경전집
한국은 서울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은 아파트에 지배당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큼지막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중 한줌의 구역을 손에 넣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서울은 골목 안 풍경 팔이 장사로 돈을 벌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젊은이들은 골목 안에 숨은 예쁘장한 가게와 이를 둘러싼 풍경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그들은 결코 골목 안의 세상에 소속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서울은 노골적인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 서울은 골목 안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정작 그 골목 안의 풍경은 끝끝내 전시의 대상으로서만 취급될 뿐이다. 우리는 결코 아파트 바깥으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곳이 경복궁 뒤로 숨은 효자동 골목과 홍대 번화가 뒤에 자리잡은 연남동의 작은 골목들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반포 자이 아파트와 압구정 현대 아파트의 유혹 앞에서는 모두가 가지런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 서울이다. 공동체 의식은 무너지고 있고,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서울의 정체성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몹시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아주 바쁘게 이곳저곳에 아파트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서울 안에 있는 골목들은 오늘도 쉼 없이 파괴되고 있다. 골목 안 풍경을 사랑하는 듯 위선을 떠는 한편 오늘도 바쁘게 옛 골목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도시가 서울이다. 속절없이 망가져버린 이 거대한 도시에서 콘크리트 한 줌의 은혜를 받으며 벽돌과 시멘트와 유리의 신에게 찬양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우리들은 골목 안 풍경에 대해 과연 무엇이든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은 19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서울의 중림동과 도화동, 만리동과 천호동 일대의 ‘골목’안 풍경을 담고 있다. 그곳에 빼곡히 자리잡았던 달동네 다세대 주택과 그들의 핏줄과도 같았던 골목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평당 가격이 2천만원을 넘기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김기찬의 사진들은 서울의 소중한 유산이었지만 아무도 보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골목길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기록사진으로서의 가치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70년대부터 꾸준히 한 동네를 드나들던 한 사진가가 그곳에 살던 주민들과 나누었던 미묘한 ‘거리’의 유지에 있다. 사진은 때론 덤덤하게, 때론 친근하게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비춘다. 주민들 역시 카메라의 존재를 굳이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렌즈에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빨간 풍선]에서 빠리의 이곳저곳을 떠돌던 풍선의 시선처럼, 김기찬의 시선은 자유롭게 골목 안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그 골목길이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라고 알지 못했을까. 사진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골목길을 유랑한다. 멸종해가는 골목길에 대한 절박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딴전을 피우듯, 그렇게 공기처럼 골목 안으로 흘러들어갔다가 기척도 없이 빠져나온다. 이 전집이 유독 짜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골목안 풍경 전집]은 중림동과 도화동 등 작가가 찾았던 공간들이 재개발로 사라진 뒤, 작가가 그곳에 살던 이들을 수소문해 다시 찾아 찍은 사진들에서 다른 차원으로 승화한다. 아랫도리를 벗어재낀 채 골목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7살 꼬마는 청년이 되어 늙어버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쪽방에서 몸을 반쯤 겹친 채 누워 자던 여섯 형제들은 무사히 성인이 되어 같은 동네에 오손 도손 모여살며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었다. 골목은 사라지고 공간은 잊혀져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계속 살아남아 생을 지속한다. 서울은 끊임없이 옛공간을 파괴하고 역사도 없고 맥락도 없는 새로운 건물들을 쌓아 올리는데 열중하고 있지만, 파괴된 옛공간에 살던 사람들은 그 공간을 마음으로 기억하며 다음 세대로 전이한다.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서울의 옛 골목들에는 젊은 소규모 자본가들이 들어와 서울의 옛모습과 미국의 힙스터 문화를 적절히 섞어 만들어낸 ‘흉내’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지방은 그런 서울의 모습을 한번 더 ‘흉내’내며 문화적으로 기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 역시 한국에선 서울이 최고다!”라는 쓴 농담을 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도 배척받고 경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7,80년대 골목 안 풍경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도록 강요받고 있다. 김기찬의 사진집은 이런 이유에서든, 혹은 저런 이유에서든 소중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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