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Eerie | A Crow Looked at Me

eerie
“예술가는 불행할 때 최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속설은 가끔 너무 잔인하게 다가온다. 일개 청자에 불과한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던질 때 따라오는 책임감은 먼지처럼 가볍지만, 정작 이 명제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게 되면 아찔하고 서늘한 죄책감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워싱턴 주 출신 필 엘버룸(Phil Elverum)의 1인 프로젝트 마운트 에리(Mount Eerie)의 2017년 작품 [A Crow Looked at Me]는 예술가 개인의 불행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반이다.

필 엘버룸의 아내 제네비에브 고셀린(Genevieve Gosselin)은 2015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은둔형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았던 이 부부가 2016년 공개적으로 GoFundMe 페이지를 통해 병원비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절박한 곳까지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병원비는 바닥났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고셀린은 2016년 여름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엘버룸의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 [A Crow Looked at Me]가 발매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완벽에 가까운 평을 받으며 그 해의 음반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마운트 에리는 행복해졌을까?

[A Crow Looked at Me]는 나지막한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이 음반을 여는 첫번째 노래 “Real Death”는 반주조차 없이 “Death is real”이라는 엘버룸의 건조한 목소리로 시작하여 (차마 노래라고 할 수조차 없는 울먹거림으로) “I love you”라고 말하며 끝맺는다. 바로 이어지는 두번째 노래 “Seaweed”에서는 “우리에겐 1년 6개월 된 딸이 있어. 당신이 죽은지 이제 11일이 되었네”라는 가사를 무심하게 내뱉는다. 음반의 가사는 엘버룸 개인이 겪은 실제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수필에 가깝다. 통기타만이 외롭게 떠받치는 그의 목소리는 말하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혹은 울먹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이정도 수준의 실제적 고통의 기록을 청자의 입장에서 ‘즐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물론, 데이비드 벤의 [자살의 전설]처럼 사적 경험을 비틀어 예술의 영역에서 풀어놓는 방식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폴 엘버룸이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또 지나치게 깊다보니 이것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버거울 뿐이다.

폴 엘버룸의 몸부림은 이 음반 이후 이어진 [Now Only]에서 계속된다. 예술가 개인의 불행을 통해 대중음악계가 또 한 장의 명반을 건진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인 것인가, 고민해보게 된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변방의사운드
신현준 교수가 진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프로젝트를 좋아하고, 또 지지하는 편이다. 그가 청년 시절 쓴 [얼트문화와 록 음악] 등의 책을 읽으며 십대시절을 보냈으니 어쩌면 나의 지지성향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편애를 탄생시킨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갖는 사회적 가치, 혹은 시의성에 기인한다. 그는 미국 대중음악의 한 조류를 실시간으로 분석한 거의 최초의 평론가였고([얼트문화와 록 음악]), 힙스터 문화의 일부분 정도로 취급될 수 있었던 6,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음악의 범주를 벗어나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하기도 했다. 즉, 그는 문화적 주체성이라던가 문화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에 주목하여 이러한 가치가 갖는 동시대성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가 속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기획하고 펴낸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음악이 어떻게 출발했고 또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한 눈에 조망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출판목적이라면, 단 한 권의 책에 그 방대한 역사를 균일하고 정밀하게 담아낼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역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예상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산업은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그 층위가 촘촘하게 나뉘어지기 마련이고, 국가별 저자의 시각 및 성향에 따라 선별적이고 편파적인 기술이 얼마든지 가능한 글쓰기 환경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만 집중하여 대안적인 사운드의 진화과정만 기술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대중음악 산업에 미친 전반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충분히 인지한다면 이 책의 시도 자체가 그리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를 “변방”으로 규정하며 시작한 이 모음집은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사회의 팝 문화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을 부정하지도 않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겪은 냉전과 독재라는 어두운 사회분위기가 미친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동시대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성질이 대중음악이라는 상품이 갖는 본질 중 하나라면, 이 기획에 참여한 저자들은 그러한 본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인색함이 없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큰’ 나라들이 음악산업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주체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흥미로운 지점인데, 어쩌면 정치 및 경제 면에서 드러나는 ‘덩치’가 개별적인 문화산업의 발전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심증을 확보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제조업 등에 기반하여 선진국을 ‘캐치업’하는 것이 경제적 필살기였던 이 나라는, 음악산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캐치업 효과를 극단적인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돌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현재 케이팝의 전세계적 성공이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 즉 ‘2등 중 최고의 2등이 되자’는 정서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 나라는 혁신과 같은 창의성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1등’의 모범적 사례를 비틀거나 발전시켜 나가며 경쟁력을 확보하는 틈새전략으로 생존해온 나라다. (예를 들어 서울을 보라. 이 곳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지만, 그 중 그 어떤 음식도 ‘서울만의’ 음식은 아니다) 아이돌 문화, 혹은 케이팝 컨텐츠도 이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1등’마저도 결국 이 아름답고 완벽한 ‘2등’에 홀딱 빠져버렸다는 역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