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수, 한 달

지난 3월 1일자로 임용되었으니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한지 이제 막 한 달을 채웠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도 내 이름 앞(혹은 뒤)에 붙는 교수라는 수식어가 몹시 어색하여 실실 웃음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방금전에도 강의 하나를 막 마치고 나온 엄연한 교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회사들을 다닐 때에는 떠올리지 않았던 것들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여기까지 왔고, 또 여기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생에 대한 심오한 고민 따위로서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정말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자꾸 떠오른다. 왜 이렇게 됐지? 왜 여기까지 왔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서울에서의 삶과 이 곳에서의 삶 사이에 흐르는 간극이 무척 크게 느껴지나보다.

대학원생 시절에도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조교수의 삶’은 희화화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었다. 대학원생보다 일찍 출근하여 대학원생보다 늦게 퇴근하는 젊은 조교수들의 모습을 보며 ‘참 열심히 일하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들을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의 교수가 아닌 일상 속에서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들과 비슷한 삶을 잠깐이나마 살아보니, 강의실과 연구실 안과 밖의 균형을 절묘하게 조절해 나가야 하는 생각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의 숙제를 받아들게 되었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으로 오는 바람에 흡사 외국에 다니 나온 것과 같은 기분을 가끔 느끼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밥벌이 수단으로 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살 집을 구하는 단기적인 문제부터 새로운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조금 더 긴 호흡의 숙제까지 처리해나가느라 지난 한 달여의 시간동안 연구실과 강의실 밖에서 오히려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더해, 학생 신분으로는 자세히 알기 힘든 교원으로서의 다양한 고충과 고난이 조교수라는 특정 직위에 상대적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이 직업을 새롭게 시작하며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평등하고 독립적인 교원 간 관계는 개별 교원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무게를 타인에게 양도할 빈틈도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의 양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신입 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특히 교육 부문에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신입이니까, 와 같은 너그러움을 학생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최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지금도 내가 잘 모르는데 감히 누구를 가르치나, 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새벽 늦게까지 강의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전임교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다양한 형태의 매력을 음미할 여유는 아직까지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매력’에는 일반적으로 익히 알려진 출퇴근 시간의 자유, 방학이 주는 여유로움, 조직 내에서 절대 복종해야하는 절대적인 ‘갑’의 부재 등이 해당된다. 나도 학교에 임용되기 전 이러한 환상에 빠져 잔뜩 기대를 부풀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사람, 저 모임, 그리고 다시 이 업무에 불려다니는 와중에 매주 새로운 강의노트를 만들고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삶에 허덕이며 지난 한 달을 보냈다. 논문은 아직 한 편도 읽지 못했다. 게으르게 보내기로 마음 먹는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직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어렴풋하게 들었지만, 나의 경우 아마도 은퇴하기 전까지 게으르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운명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힘든 한 달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한 한 달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이 직업으로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대한 답은 (당연히) 찾지 못했지만, 최소한 서울에 있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지금 현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강의 실력이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져 학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줄어들고, 그 와중에 조금씩 시간을 더 잘 활용하게 되어 논문을 계속 써나갈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남은 시간을 오롯이 가족에게 할애할 수만 있다면, 그 지점부터 내 삶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슴프레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2 thoughts on “조교수, 한 달

  1. 교수님들은 천직의식을 가지신 분들이 많던데
    김교수님도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 인품 모두 가지고 계세요~
    아마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 잘 하시는 교수님 될 것 같아요 ㅎㅎ

    그나저나, 글을 참 재밌고 담담하게 잘 쓰시네요.
    보고서만 볼 땐 몰랐음요ㅋㅋ

    • 모든 글는 독자를 고려해서 써야 합니다. 보고서는.. 독자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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