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엉겹결에 반장을 맡게 되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당시 특목고의 고3 생활은 단조로운 자율학습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취소되었고, 아이들은 수능공부에만 매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장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임무를 부여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의 주된 임무는 자율학습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 정도였다. 수능을 앞둔 상태에서 모두가 예민했고, 자그마한 속삭임조차 거슬려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 수험생 중 한명으로 앞가림하느라 바빴기에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조용한 학업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어느날 밤 담임교사에게 입시상담을 받으러 갔던 여자 아이들이 울면서 교실로 돌아오던 그날까지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됐다.

그날 밤, 담임교사에게 불려갔던 여자아이들 중 일부가 교실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위로를 해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여자 아이들을 붙잡고 이것 저것 캐물었다. 그 중 나와 가장 친했던 아이 한명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반장이니까 알려달라’는 대의명분에 몇가지 사건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여자 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귓볼을 만졌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가슴에 부착된 명찰을 똑바로 해준다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도 욕이 터져나왔다.

그날부터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나는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정식으로 항의하는 절차를 밟았다. 물론 일개 학생이었던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어머니를 비롯해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공론화시켰다. 이후 꽤 오랫동안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교장에게, 교감에게, 각종 보직 교사들에게 불려다니며 협박을 당했다. 가해 담임교사의 동료 교사들은 우리반에서 수업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를 모른다며, 어린 것들이 뭘 알겠냐며 혀를 끌끌 차고는 우리를 무시했다. 아이들의 서명을 받고 투표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수능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어야 하냐는 항의가 아이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의견을 가장 먼저 낸 사람은 여자아이였다. 자신은 무관한데 왜 반 전체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는 문제제기였다. 학교측에서는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짓자고 제안해왔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아버지들이 나서기로 했다. 방송국 간부도 있었고, 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결국 외부로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학교측이 담임교사의 교체를 받아들였고, 그 담임교사는 같은 재단 내 남자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그 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듣지 못했다.

이상이 내 인생에서 최초로 겪은 성폭력 사건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어린 시절 동네 할머니들이 “꼬추 한번 보자”고 추근덕거리는 것이 일상이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같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중인 #MeToo 움직임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공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다. 권력관계의 우위를 점한 남성이 열위에 있는 다수의 여성을 압력을 행사하여 추행했고, 이 사건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더 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집단이 나서는 단계에서 해결되었다. 피해자 여성 다수는 이 사건이 퍼져 나가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고, 그 중 상당수가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극도의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의해 불필요한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방관자’들의 냉소적인 시선까지 견뎌야 했다. 구성원 중 다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피해자를 위한 서명을 모을 때에도 왜 자신의 이름을 포함시켜야 하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 이후 거의 모든 종류의 권력에 대해 어떤 혐오같은 것이 생겼다. 아마 그 전부터 내재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이 사건 이후 조금 더 노골적으로 권력과 그 권력이 탄생시킨 부조리한 관계 전부를 싫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보다 덩치가 큰 상대가 힘을 과시하려고 할 때 괜히 개기고 싶은 마음이 더 세진 셈이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생회에서 실시했던 근거 없는 농활 동원에도 빠졌고, 군대에서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다 거의 죽도록 맞을뻔 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세금을 전용하려는 상관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어줍잖은 ‘반골기질’은 각종 사회현상에도 투영될 때가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가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목격할 때이다.

장애인, 성적소수자, 그리고 여성. 우리 사회가 가장 노골적으로 타자화시키고 매몰시켜 버리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자 남성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구조화된, 그래서 아예 일상이 되어버린 차별과 폭력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폭력, 혹은 성추행이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학대 행위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차별이자 폭력 행위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회 구조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여성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까지, 심지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안에서까지,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권력 구조에서 우위를 갖기 매우 쉬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남녀 간 발생하는 대부분의 성적 학대 행위는 권력에 의한 압력행사를 통해 이루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 논리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즉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당하는 광경을 목격할 기회를 (어떤 이유에서든) 갖지 못하고 살아온 대부분의 남성들이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왜 그렇게 ‘어두워졌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만성화된 차별이 여성의 일생 전체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린 시대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나 퍽퍽한 삶이 여성에게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 라는 사실을 좀 알아라, 라고 선언하는 듯한 책이었다. 노회찬 의원같은 진보세력의 리더조차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 있다고 할 정도다.

‘평범한’ 남성, 즉 ‘평범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남성에게 이러한 현실을 일깨우는 작업이 과연 ‘계몽’의 영역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계몽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계몽의 방법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도출되어야 하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반대로 많은 남성들이 ‘미투 운동’의 변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남녀차별은 당연히 추방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혹은, #MeToo의 탈을 뒤집어쓴 “가짜” 페미니즘이 사회적 아젠다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구적으로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한 한 여성 운동가가 저지른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론의 한 예다. 워마드나 메갈리아와 같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커뮤니티가 일베와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하며 페미니즘 운동 전체가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은 현 여권 정치인에 집중되고 있는 성폭력 폭로 행위가 “공작”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남성 대 여성의 편가르기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멍청하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학문의 영역이 아닌 종교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구와 사색보다는 운동과 궐기의 형태로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발현되는 것을 걱정스럽게 보는 시각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위의 모든 주장과 걱정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지금 이것도 많이 부족하다. 얄팍한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개인의 욕망을 해소해보겠다는 원시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부조리한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여성이 남성과 진정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지금 이 핵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MeToo 움직임은 망가진 시스템을 수리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그 어떠한 예외도 없이, 권력의 우위에 선 자가 압력 혹은 위력을 행사하여 부조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규칙이 이번 기회에 정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결과론적인 평등이 아닌,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억압적 차별도 아닌, 특정 사회적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그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그리고 제3의 성은 그 자체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공기를 형성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는 식의 어리석은 결과론적 평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식사를 따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유치한 펜스룰의 확산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없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 성적인 차이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하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마도 이것은 계몽의 영역이 아닌 반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역사적으로 여성이 억눌리며 살아오게 만든 사회적 불균등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혹여나 방관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 혹은 피해자였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권력관계가 낳은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식이 더 높은 권력으로부터의 하향식 처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애초에 권력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공정했다면, 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의 빈도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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