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 | 음악 없는 말

필립글래스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을 읽다 보면 패티 스미스의 자서전 [저스트 키즈]를 떠올리며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뉴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이 두 뮤지션이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현대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기 거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전업음악가로 살게 되기 전까지, 즉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전까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록에서 미묘한 호흡, 혹은 자세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글래스와 스미스 모두 가난한 젊은 시절을 견디며 음악가로의 꿈을 놓지 않았지만, 스미스의 경우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가난이라는 삶의 밑바닥을 스프링처럼 한단계 위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은 반면, 글래스는 음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두 뮤지션의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변곡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글래스의 삶이 인상적인 것은, 매순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시작한 막노동일은 나디아 불랑제와 라비 샹카르라는 두 스승을 사사하는 과정을 지나 뉴욕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 돈이 되지 않는 작곡일을 하는 음악가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속된다. 음악가가 흔히 가질 법한 과잉된 자의식은 최소한 500쪽이 넘는 글래스의 자서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밤 늦게까지 택시운전을 하고 새벽에 작곡을 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는 그의 중년의 일상은, 꼭 필요한 가구만이 존재했던 그의 집처럼, 혹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 당시 글래스의 미니멀한 작풍처럼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달려간다. 마치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을 남긴채 모조리 포기한 마라토너의 깡마른, 하지만 단단한 몸을 보는 것과 같은 삶이다. 책에 등장하는 당시 뉴욕을 주름 잡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도 글래스는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은, 하지만 지나치게 자만하지도 않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입받고 가르침을 청한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지만 남는 것은 얄팍한 명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빚더미 뿐.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가로서의 삶 자체에 감사하며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글래스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가 다른 많은 이들과 비슷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때이다. 일상의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음표 하나, 화음 하나에도 깊은 사유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며 수십년을 살다보면 결국 언젠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 된다는 진리를, 글래스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와 과장법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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