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구속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영장이 집행되는 과정을 많은이들이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페이스북에는 구속을 기념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도 보였고,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가 최종심에서 충분한 수준의 형을 선고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게 된 것은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판단된 범죄혐의를 그가 적극적으로 부인하였고, 때문에 증거인멸 등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구속수사는 불구속수사에 비해 수사의 용이성과 편의성이 조금 더 있을 뿐 법리적으로 그리 큰 의미를 가지는 형태의 수사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피의자가 영어의 몸이 되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즉 일종의 전시효과가 있기 때문에 최근 대형 범죄의 경우 대부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 같다. 즉, 검찰은 일반 시민들이 시각적으로 느끼며 만족하는 ‘형벌’의 모습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피의자가 이미 어느정도 심판을 받은 듯한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향후 재판 과정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비법리적 전략이 깔려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에서도 명백히 드러난 바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선 모습 자체에서 치욕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당시 정권에 대해 그러한 악감정을 가졌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 방침에 환호성을 질렀다. 수사의 공정성과 정권의 정치적 목적, 사회정의와 같은 비법리적 요인들이 사람의 감정에 작용하는 과정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이 사람들이 이 두 경우에 공정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대중의 이러한 심리에 복수심과 처벌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집단의 기쁨의 표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강요당했다는 믿음 아래, 이러한 ‘비극’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앙갚음해주겠다는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복수심이 육체적인 형벌과 처벌로부터 시작한다는 근대적인 사고관에 기인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푸코가 여러차례 지적했듯, 현대사회에서의 처벌과 형벌은 육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단계를 벗어나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통한 사회 안전망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잠재적 범죄자를 가둠으로써 사회를 안전하게 지킬수만 있다면 그 범죄자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든 텔레비전을 틀어주든 사실 크게 상관할바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구치소나 교도소의 ‘호화로움’에 대한 비판이 유독 한국사회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의 처벌에 대한 개념이 아직 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물론, 거액의 돈을 탈루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를 강하게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는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적극 동의한다. 이것이 또다른 전쟁의 시작으로 기록될지 여부는 그쪽 진영 사람들의 울분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번 수사가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좋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게 되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시절 그에 대한 주변 친구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광풍의 크기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친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적극적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돈에 대한 욕망이 집단적으로 합치되어 가장 저열한 형태로 발현된 상징체가 바로 이명박이다. 이 사회에 속한 우리 시민 모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수사는 그 책임의 시작일 뿐, 아직 그 어떠한 기쁨도 표출한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복수를 하고 싶다. 하지만 복수의 방식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

#MeToo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엉겹결에 반장을 맡게 되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당시 특목고의 고3 생활은 단조로운 자율학습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취소되었고, 아이들은 수능공부에만 매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장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임무를 부여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의 주된 임무는 자율학습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 정도였다. 수능을 앞둔 상태에서 모두가 예민했고, 자그마한 속삭임조차 거슬려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 수험생 중 한명으로 앞가림하느라 바빴기에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조용한 학업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어느날 밤 담임교사에게 입시상담을 받으러 갔던 여자 아이들이 울면서 교실로 돌아오던 그날까지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됐다.

그날 밤, 담임교사에게 불려갔던 여자아이들 중 일부가 교실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위로를 해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여자 아이들을 붙잡고 이것 저것 캐물었다. 그 중 나와 가장 친했던 아이 한명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반장이니까 알려달라’는 대의명분에 몇가지 사건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여자 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귓볼을 만졌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가슴에 부착된 명찰을 똑바로 해준다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도 욕이 터져나왔다.

그날부터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나는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정식으로 항의하는 절차를 밟았다. 물론 일개 학생이었던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어머니를 비롯해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공론화시켰다. 이후 꽤 오랫동안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교장에게, 교감에게, 각종 보직 교사들에게 불려다니며 협박을 당했다. 가해 담임교사의 동료 교사들은 우리반에서 수업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를 모른다며, 어린 것들이 뭘 알겠냐며 혀를 끌끌 차고는 우리를 무시했다. 아이들의 서명을 받고 투표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수능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어야 하냐는 항의가 아이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의견을 가장 먼저 낸 사람은 여자아이였다. 자신은 무관한데 왜 반 전체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는 문제제기였다. 학교측에서는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짓자고 제안해왔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아버지들이 나서기로 했다. 방송국 간부도 있었고, 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결국 외부로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학교측이 담임교사의 교체를 받아들였고, 그 담임교사는 같은 재단 내 남자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그 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듣지 못했다.

이상이 내 인생에서 최초로 겪은 성폭력 사건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어린 시절 동네 할머니들이 “꼬추 한번 보자”고 추근덕거리는 것이 일상이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같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중인 #MeToo 움직임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공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다. 권력관계의 우위를 점한 남성이 열위에 있는 다수의 여성을 압력을 행사하여 추행했고, 이 사건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더 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집단이 나서는 단계에서 해결되었다. 피해자 여성 다수는 이 사건이 퍼져 나가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고, 그 중 상당수가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극도의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의해 불필요한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방관자’들의 냉소적인 시선까지 견뎌야 했다. 구성원 중 다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피해자를 위한 서명을 모을 때에도 왜 자신의 이름을 포함시켜야 하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 이후 거의 모든 종류의 권력에 대해 어떤 혐오같은 것이 생겼다. 아마 그 전부터 내재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이 사건 이후 조금 더 노골적으로 권력과 그 권력이 탄생시킨 부조리한 관계 전부를 싫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보다 덩치가 큰 상대가 힘을 과시하려고 할 때 괜히 개기고 싶은 마음이 더 세진 셈이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생회에서 실시했던 근거 없는 농활 동원에도 빠졌고, 군대에서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다 거의 죽도록 맞을뻔 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세금을 전용하려는 상관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어줍잖은 ‘반골기질’은 각종 사회현상에도 투영될 때가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가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목격할 때이다.

장애인, 성적소수자, 그리고 여성. 우리 사회가 가장 노골적으로 타자화시키고 매몰시켜 버리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자 남성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구조화된, 그래서 아예 일상이 되어버린 차별과 폭력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폭력, 혹은 성추행이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학대 행위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차별이자 폭력 행위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회 구조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여성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까지, 심지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안에서까지,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권력 구조에서 우위를 갖기 매우 쉬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남녀 간 발생하는 대부분의 성적 학대 행위는 권력에 의한 압력행사를 통해 이루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 논리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즉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당하는 광경을 목격할 기회를 (어떤 이유에서든) 갖지 못하고 살아온 대부분의 남성들이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왜 그렇게 ‘어두워졌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만성화된 차별이 여성의 일생 전체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린 시대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나 퍽퍽한 삶이 여성에게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 라는 사실을 좀 알아라, 라고 선언하는 듯한 책이었다. 노회찬 의원같은 진보세력의 리더조차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 있다고 할 정도다.

‘평범한’ 남성, 즉 ‘평범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남성에게 이러한 현실을 일깨우는 작업이 과연 ‘계몽’의 영역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계몽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계몽의 방법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도출되어야 하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반대로 많은 남성들이 ‘미투 운동’의 변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남녀차별은 당연히 추방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혹은, #MeToo의 탈을 뒤집어쓴 “가짜” 페미니즘이 사회적 아젠다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구적으로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한 한 여성 운동가가 저지른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론의 한 예다. 워마드나 메갈리아와 같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커뮤니티가 일베와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하며 페미니즘 운동 전체가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은 현 여권 정치인에 집중되고 있는 성폭력 폭로 행위가 “공작”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남성 대 여성의 편가르기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멍청하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학문의 영역이 아닌 종교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구와 사색보다는 운동과 궐기의 형태로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발현되는 것을 걱정스럽게 보는 시각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위의 모든 주장과 걱정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지금 이것도 많이 부족하다. 얄팍한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개인의 욕망을 해소해보겠다는 원시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부조리한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여성이 남성과 진정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지금 이 핵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MeToo 움직임은 망가진 시스템을 수리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그 어떠한 예외도 없이, 권력의 우위에 선 자가 압력 혹은 위력을 행사하여 부조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규칙이 이번 기회에 정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결과론적인 평등이 아닌,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억압적 차별도 아닌, 특정 사회적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그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그리고 제3의 성은 그 자체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공기를 형성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는 식의 어리석은 결과론적 평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식사를 따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유치한 펜스룰의 확산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없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 성적인 차이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하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마도 이것은 계몽의 영역이 아닌 반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역사적으로 여성이 억눌리며 살아오게 만든 사회적 불균등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혹여나 방관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 혹은 피해자였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권력관계가 낳은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식이 더 높은 권력으로부터의 하향식 처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애초에 권력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공정했다면, 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의 빈도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필립 글래스 | 음악 없는 말

필립글래스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을 읽다 보면 패티 스미스의 자서전 [저스트 키즈]를 떠올리며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뉴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이 두 뮤지션이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현대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기 거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전업음악가로 살게 되기 전까지, 즉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전까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록에서 미묘한 호흡, 혹은 자세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글래스와 스미스 모두 가난한 젊은 시절을 견디며 음악가로의 꿈을 놓지 않았지만, 스미스의 경우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가난이라는 삶의 밑바닥을 스프링처럼 한단계 위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은 반면, 글래스는 음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두 뮤지션의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변곡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글래스의 삶이 인상적인 것은, 매순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시작한 막노동일은 나디아 불랑제와 라비 샹카르라는 두 스승을 사사하는 과정을 지나 뉴욕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 돈이 되지 않는 작곡일을 하는 음악가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속된다. 음악가가 흔히 가질 법한 과잉된 자의식은 최소한 500쪽이 넘는 글래스의 자서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밤 늦게까지 택시운전을 하고 새벽에 작곡을 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는 그의 중년의 일상은, 꼭 필요한 가구만이 존재했던 그의 집처럼, 혹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 당시 글래스의 미니멀한 작풍처럼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달려간다. 마치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을 남긴채 모조리 포기한 마라토너의 깡마른, 하지만 단단한 몸을 보는 것과 같은 삶이다. 책에 등장하는 당시 뉴욕을 주름 잡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도 글래스는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은, 하지만 지나치게 자만하지도 않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입받고 가르침을 청한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지만 남는 것은 얄팍한 명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빚더미 뿐.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가로서의 삶 자체에 감사하며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글래스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가 다른 많은 이들과 비슷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때이다. 일상의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음표 하나, 화음 하나에도 깊은 사유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며 수십년을 살다보면 결국 언젠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 된다는 진리를, 글래스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와 과장법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