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 베니 사프디 | 굿타임

Good-Tim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굿타임]을 동생을 사랑한 형의 좌충우돌 모험기로 읽어내려간다고 해도 그 자체로 크게 무리없이 완결된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영화는 무척 심심하고 엉성한 작품으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형 코니가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코니와 동생 닉이 타고가던 택시에서 갑자기 분홍색 가루가 터지는 순간부터 이 비논리적 연결고리를 이해해야 했다. 영화는 두 형제가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채 경찰에 쫓기게 되는 이 결정적 사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코니가 왜 유태인에게 돈을 맡겨야 하는지, 왜 그에게 압박을 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왜 병원으로 잡입하여 동생을 몰래 꺼내려는 시도를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영화는 늘 이런 식으로 상냥하지 않게 군다. 그래서 동생 닉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형 코니가 뉴욕의 어두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해가 뜨고 사건은 종료된다, 라는 서사구조는 심심하고 불완전해 보인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슴을 때리는 전자음악 등 감각적인 요소들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하지만 평론가 정성일이 주장한 바대로 동생 닉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꿈, 혹은 상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오는 시점은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뒤, 닉과 코니가 경찰에 의해 강제적으로 헤어진 뒤부터다. 영화는 코니와 닉이 분리된 시점부터 어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암시를 적극적으로 건네고 있다. 닉이 구치소에서 싸움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시점부터 형 코니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코니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취한다. 연인관계였던 코리는 중년의 여인이지만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했고 아이처럼 울거나 보챈다. 코니를 집으로 들이고 방까지 내어주는 흑인 할머니, 집에 있는 염색약을 마음대로 쓰는 코니를 따라다니며 그에게 자동차 키까지 내어주는 손녀딸 크리스탈 모두 이유없는 친절함을 베푼다. 특히 열여섯 소녀인 크리스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준다. 이 역시 비정상적이다. 닉인줄 알고 병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온 얼치기 죄수 레이와 그의 동료 칼리프 역시 코니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마약의 위치까지 공유하며 코니로 하여금 동생을 빼내오기 위해 돈을 모으려는 노력을 하게끔 만든다. 즉, 이 모든 주요 등장인물은 형 코니가 어떤 정해진 운명으로 나아가게끔 도와주는 조력자들로 기능할 뿐, 코니의 존재나 코니의 목적을 위협하는 방해요소가 되지 못하는 셈이다. 레이와 함께 훔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부터 영화는 그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데, 이건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는 탈주자를 비추는 경찰의 카메라 앵글과 흡사하다. 즉 자신은 병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충분히 인지한 닉의 마음 속에서 형의 영웅적인 노력은 결국 경찰에 의해 저지당할 것이라는 결말이 미리 정해져있던 셈이다. 이 외에도, ‘코니는 닉의 꿈’이라는 가설 안에서,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친절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동생 닉의 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닉은 정신병원의 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질의응답을 소화해야 한다. 널리 알려진 문장을 듣고 그 의미를 추리하거나 두 단어 간 관계를 연상하는 등의 간단한 활동이었지만, 닉은 잘 대답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닉의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닉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고, 정신과 의사는 “코니는 코니대로 옳은 일을 했다”며 닉을 위로한다. 닉은 다른 환자들에 둘러싸여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몸으로 보이는 활동을 한다. 어떤 질문에도 반응하지 않던 닉은 “가족과 다툰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이어 “내 잘못이 아닌데 손가락질당한 적이 있나요?”, “외로웠던 적이 있나요?”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느새 닉은 방 안에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카메라와 닉 사이에는 창문이라는 벽이 존재하게 된다. 즉,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닉은 지금까지 그 방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방 안에서 외롭게 혼자 지낼 것임을 알 수 있다. 코니는 닉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친구였으며, 어쩌면 코니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닉이 창조해낸 ‘장르’ 그 자체일 수 있다. 엔싱 시퀀스에 맞춰 흐르는 이기 팝의 노래 가사(“순수한 녀석과 망할 녀석은 하나였다”)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증언한다.

영화는 퍼즐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퍼즐같은 재미가 있다. 카메라 앵글 하나하나에 의미가 깃들어 있으며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빛의 강도와 음악의 세기까지 정밀하게 설계된 듯 보인다. 코니와 닉을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과 베니 사프디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화면부터 음악까지 거의 모든 요소가 너무나 감각적이어서 자칫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무엇보다 뉴욕의 낮은 부분을 직설적으로 비춘다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이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영화의 이곳저곳에 깃들어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프디 형제의 영화는 [굿타임]이 처음이었는데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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