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 나는 가드너입니다

나는가드너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밖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삶을 살아온 나조차 흙 위를 걸을 때의 반가움과 꽃향기를 맡을 때의 황홀함에 본능적으로 익숙해져있는 것을 보면, 자연이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뒤덮혀 온전한 흙길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현대 도시 안에 가지런히 박제된 나무와 꽃들의 모습은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같아 마냥 좋아보이지만은 않는다. 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에 억지로 식물을 가져다 놓고 오로지 인간을 위해 전시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의 동물원을 볼 때의 불편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아내가 꽃을 좋아해 가끔 꽃을 한다발씩 사다주고는 하지만, 우리가 꽃병에 꽃을 꽂아놓고 감상하는 행위는 사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식물이 완전히 숨을 완전히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고통과 탄식을 애써 무시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은 식물을 사랑한다. [나는 가드너입니다]의 저자 박원순이 에필로그에 적은 문구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식물에 끌리게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의 여러 덕후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에 미친 식물광또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은이는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중, 원예와 식물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한 채 아내와 딸을 이끌고 제주도의 한 식물원으로 향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가드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자 세계 최고의 식물원 중 하나인 롱우드 가든(Longwood Gardens)으로 떠난다. [나는 가드너입니다]는 지은이가 가족을 한국에 남기고 홀홀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롱우드 가든에서 1년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속지는 초록색과 흰색, 두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초록색 속지에 적힌 글에서는 가드너로서의 전문가적 지식을 바탕으로 롱우드 가든의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있다.  흰색 속지에 적힌 글들은 조금 더 캐주얼한 일기 형식으로 적혀있다. 낯선 미국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부터 덕질의 대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일할 때 느껴지는 기쁨까지 식물과 가드닝에 얽힌 다양한 감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타지로 유학을 떠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은이의 고된 유학생활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은이가 롱우드 가든에서 배운 가드닝은 현대사회가 식물을 대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눈에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잘 자라고 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인간이 보고 싶은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배양을 한다. 원래 꽃을 피우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보고 싶은 시기에 꽃을 피우도록 식물을 “속이기”도 한다. 지중해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은 춥고 건조한 펜실베이나의 온실에 잘 마련된 가짜 지중해식 기후 환경에서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지은이는 이러한 인위적인 식물배양에 대해 아주 짧은 고민만을 한 뒤 이내 그 화려한 결과물에 대해 장황할 정도로 찬양을 늘어놓는다. 결국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으니 좋은게 아니냐는 논리가 기저에 깔려있다. 요즘 인간들이 꽃을 대하는 방식의 전형이라 지은이만을 탓할 수도 없고, 나 역시 그러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므로 돌을 던질 자격이 없을 것 같다. 인간이라는 신분 자체가 원죄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후 롱우드 가든과 델라웨어 대학이 공동으로 개설한 2년짜리 대학원과정까지 마치고 귀국하여 현재 에버랜드에서 가드너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배워온 ‘선진’ 가드닝 기술이 한국의 정원에도 충실히 이식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에버랜드와 롱우드가든에는 아직 가보지도 못했지만, 한국의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이 마냥 예뻐보인다.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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